정부‧산업‧학계 "신약 개발 성공 위해 임상통계 전문가 더 늘어나야" 한목소리

지난 10월 말 오송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만난 식약처 바이오생약심사부 김대철 부장, 박애란 심사관, 신우영 심사관, 셀트리온 이상준 부사장, 연세대 응용통계학과 강승호 교수 등 국내 내로라 하는 임상통계 전문가들이 제약바이오산업 발전을 위해 더 많은 임상통계전문가들이 제약바이오 분야에 진출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임상통계는 의약품의 안전성 및 유효성을 확인할 목적으로 하는 임상시험에 사용되는 제반 통계학적 사항들을 포괄적으로 지칭한다. 임상시험 표본수를 산정하거나, 목표한 대상자수를 통해 얻어진 임상자료의 통계적인 결과 분석까지도 임상통계 속한다.

쉽게말해 개발된 약이 정말 인류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지, 출시해도 될만한 약인지 결정을 하는 게 바로 임상통계 전문가들의 역할이다.

임상통계 전문가는 통계는 기본이고, 제약바오이분야에 대한 이해가 수반돼야 한다.

"임상통계는 신약 개발 의사결정에 매우 중요…다른 산업 통계보다 소외"

식품의약품안전처 바이오생약심사부 김대철 부장

식약처 김대철 바이오생약심사부장은 “제약바이오 분야가 많이 발전했음에도 다른 통계분야와 비교하면 약간 소외된 느낌이 든다. 아직까지 제약바이오산업에서는 임상통계분야의 중요성을 인지하지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외국 규제기관에 가서 여러 가지 허가심사자료 제출 시 근거가 되는 자료들을 통계전문가들이 만들기 때문에 임상통계 전문가는 굉장히 중요하다. 제약강국이 되려면 기본적인 개발도 중요한데 임상통계를 통한 근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임상통계를 널리 알리고 이 분야에 종사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임상통계 분석이 잘못돼 유효성이 없는 약이 된 경우도 있다.

셀트리온 이상준 부사장은 “임상디자인이 잘못돼 약효가 있는 약인데 효과를 보이지 못했다는 해외 논문이 나온 적이 있다. 처음 임상시험 설계 시 통계에 대한 이해없이 진행하면 이런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면서 통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상준 부사장은 국내 첫 번째 바이오시미럴 램시마의 개발과 국내 및 유럽, 미국 허가를 받는데 역할을 했다. 그 역시 통계를 전공했다.

연세대 응용통계학과 강승호 교수

연세대 응용통계학과 강승호 교수는 ‘임상통계학은 약물에 적용되는 의사결정학‘이라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미국 위스콘신대학에서 통계학 박사를 받고, 미국 FDA, 텍사스 메디컬 센터에서 근무한 임상통계 전문가 중에서도 전문가다. 임상통계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었을 ‘신약개발에 필요한 의학통계학’ 저자이기도 하다.

강승호 교수는 “통계학을 ‘의사결정학’이라고 하는데 임상통계는 다른 통계분야와 확실히 다르고 매우 엄격하다"고 했다.

임상통계가 어떤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일까.

강승호 교수는 "시험약이 효과가 있는데 효과가 있다고 하면 ‘옳은 결정’이다. 효과가 없는데 없다고 하는 것도 ‘옳은 결정’이다. 그러나 효과가 있는데 없다고 잘못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이걸 1종의 오류라고 한다. 효과가 없는 약을 효과가 있다고 잘못 판단하면 2종의 오류다”라며 “임상통계학은 1종의 오류와 2종의 오류를 최소화하는 결정을 도와주는 학문”이라고 했다.

셀트리온 이상준 부사장은 “회사에서 모든 사업미팅, 임상시험 설계, 개발품목선정 시에도 통계 전문가가 필요하다. 투입되는 임상비용이 크기 때문에 개발 순위를 정할 때도 필요하다. 산업에서 임상통계 전문가의 역할이 커졌다”고 했다.

식약처 역시 임상통계 전문가 인력 확보가 더욱 더 중요해지고 있다. 임상통계 전문가들은 주로 임상시험계획서 검토, 안전성 및 유효성을 심사한다. 글로벌 신약의 국내 허가신청, 국내 제약사들의 신약개발이 늘어나면서 이를 더욱 꼼꼼히 볼 전문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식약처 김대철 바이오생약심사부장은 “회사에서 제출하는 계획서를 식약처 심사자와 통계 전문가들이 검토하는데 왜 이렇게 디자인을 했는지, 환자군에서 이 부분은 왜 제외했는지, 약의 용량을 결정한 근거 등 각종 설명을 요구하게 된다. 이를 답하는 게 기본적으로 통계전문가다. 충분한 경험을 가진 이들이 있다면 문제없겠지만 인력이 부족하거나 경험이 충분치 않으면 이런 부분조차 어렵다. 이는 결국 허가지연, 임상시험계획 승인 지연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특히 임상시험은 사전에 계획된대로 수행해야 한다. 중간에 변경을 하려면 식약처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결과 분석 역시 사전계획대로 수행해야 한다. 이를 모두 검토하고 판단하는 게 이를 검토하고 판단하는 게 식약처에서 일하는 임상통계 전문가들의 역할이다.

식약처, 임상통계 전문가 부족…의약품 임상시험계획 및 허가승인 지연으로 이어져

미국 FDA의 경우 임상통계 전문가만 3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중국 식약청 역시 임상통계 전문가를 대폭 늘렸다. 글로벌 제약사인 화이자, 엠젠, 제넨텍 등은 통계전문가만 100명이 넘는 수준이다. 하지만 식약처에서 근무하는 임상통계전문가는 이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수준이다.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생물제제과 박애란 심사관

식약처에 입사한 지 8년차인 생물제제과 박애란 심사관은 “심사관 1인이 담당하는 건수는 각 심사부마다 상황이 다르지만 1년에 몇 백건 수준이다. 중요도나 난이도에 따라 소요되는 시간이나 인력이 다르게 책정되기 때문에 단순히 건수만으로 업무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현재 식약처는 다른 규제기관에 비해 심사인력이 더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다행히 최근 몇 년 사이 국내 임상통계 전문가의 양적, 질적 성장이 이뤄지고 있다. 셀트리온의 경우 임상통계 전문가만 50명 가량 채용하고 있다.

셀트리온 이상준 부사장은 “의약품 개발은 시간싸움을 해야한다. 내부 임상통계 전문가들에게 환경만 제공한다면 퍼포먼스를 낼 것이라고 봤다”며“셀트리온은 지난달에 미국FDA로부터 만장일치로 리툭시맙 바이오시밀러 허가권고를 받았는데 제출한 데이터 모두 100% 셀트리온 임상통계 전문가들이 만든 것이다. 오류가 하나도 없었으며 내부 인력을 통해 훨씬 효과적으로 승인권고를 받을 수 있었다. 그만큼 시장 진출에 임상통계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했다.

연세대 강승호 교수 역시 “제약바이오산업이 약 개발 후에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개발 후에도 데이터를 수집해야 하고, 규제기관에서 계획되지 않은 분석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 위한 인프라를 갖춰야만 국제 경쟁시대에서 생존이 가능하다. 개발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인력도 시간도 부족해진다. 글로벌 회사로 성장하는 것은 임상통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 FDA 등 전 세계적으로 리얼월드데이터를 소아적응증 등에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데 리얼월드데이터에서 의미있는 데이터와 그렇지 않은 데이터를 걸러내고 분석하기 위해서 앞으로 임상통계 전문가의 필요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위해서는 산관학이 협력해 국내 임상통계 분야를 더 발전시켜야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생물제제과 신우영 심사관

식약처 신우영 심사관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통계분석법이 도입될 때가 있다. 이런 경우 식약처에서 먼저 공부해서 업체에 알려줘야 하기 때문에 식약처에서 컨퍼런스를 열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임상통계 분야발전을 위해서 식약처는 지난 2016년부터 ‘임상시험 및 연구를 위한 산관학 공동 통계 컨퍼런스’를 개최하고 있다. 올해도 11월 16일 오전 9시부터 서울 청담동 소재 프리마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컨퍼런스가 열릴 예정이다.

식약처 김대철 바이오생약심사부장은 “식약처만 임상통계를 잘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산관학이 같이 발전해야 한다. 어느 한 분야가 일방적으로 크거나 열악해서 따라오지 못한다면 성장할 수 없는 분야다. 한국 기업이 글로벌에 잘 진출하기 위해서는 근거를 만드는 임상통계 분야가 같이 커나가야 한다는 생각이다”라며 “라이센스 아웃 시에도 약물에 관련된 모든 임상통계자료를 주게 돼 있다. 그 부분이 탄탄하지 않으면 해외진출에 실패한다. 통계데이터와 분석자료들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산업 측면에서 소비자 안전측면에서 이 부분에 좀 더 발전을 해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

다행히 최근 10년 사이 국내 임상통계 분야는 많이 발전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하지만 앞으로 갈 길은 멀다.

연세대 강승호 교수는 “10년 전만해도 존재하지 않았던 임상통계 전문가들이 늘었다. 11월에 열리는 컨퍼런스에 가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깜짝 놀란다. 그들과 이야기해봐도 발전하는 게 느껴진다”고 했다.

셀트리온 이상준 부사장

셀트리온 이상준 부사장도 데이터를 검증하는 임상통계 전문가에 대한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식약처와 업체에 인력이 더 늘어나서 검증력을 확보하고,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식약처 김대철 바이오생약심사부장은 “2016년 11월부터 산관학 통계세미나를 하자고 했던 가장 큰 이유도 그것이다. 세 분야가 함께 통계에 대한 인식과 지식을 키워나가자는 차원에서 한 것이다”라며 “규제기관은 회사에서 개발하고 있는 약들이 적절히 개발되고 효율적으로 임상시험이 진행돼 빠른 시간 내 허가되도록 했으면 한다. 이 과정이 물 흐르듯 유지되려면 임상통계 부분이 꼭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분야에 관심을 갖고 뛰어들었으면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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