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혈전지혈학회, "적절한 시기 정확한 진단이 치명적 결과 막아…국민 관심 필요"

#1. 테니스 스타인 세레나 윌리암스는 지난 2010년 윔블던 우승 직후 깨진 유리 조각을 밟아 생긴 부상이 폐색전증으로까지 이어져 슬럼프를 겪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2012년 윔블던과 US오픈 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2 2003년 이라크 전장을 취재해온 미 NBC방송의 특파원 데이비드 블룸은 참호 취재를 마치고 (오랫동안 쪼그려 앉아 움직이지않았음), 병사들과 함께 이동하다가 바그다드 인근에서 갑자기 쓰러져 사망했다. 원인은 폐색전증이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적인 운동선수와 전장을 뛰어다니던 종군기자, 출중한 신체를 가진 이 둘도 폐색전증을 피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뭘까?

폐색전증은 정맥혈전색전증의 유형 중 하나로, 다리 정맥에서 발생한 혈전이 떨어져 나와 폐동맥을 막아 발생하는 질환이다. 이러한 정맥혈전 질환은 고령화, 유전적 요인, 식생활습관 변화 등 다양한 이유로 최근 국내에서도 증가하고 있다. 2004년 인구 10만명 당 8.83명 발생했던 국내 정맥혈전 환자는 2014년 29.2명으로 10년 새 3.3배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정맥혈전이 세레나 윌리엄스와 같은 건강한 사람도 걸릴 수 있는 질환으로, 진단이 늦어질 경우 폐색전증으로 사망을 초래할 수 있음에도 이에 대한 국내 인지도는 낮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10월 13일 세계혈전의 날을 기념해 한국혈전지혈학회와 공동으로 ‘정맥혈전’의 원인, 예방, 치료, 등에 대해 살펴보는 전문가 좌담회를 개최했다.

좌담회에는 ▲한국혈전지혈학회 방수미 총무이사(서울의대 혈액종양내과) ▲한국혈전지혈학회 김진석 학술이사(연세의대 혈액내과) ▲한국혈전지혈학회 김양기 무임소이사(순천향의대 호흡기내과) 등이 참석했다.

한편, 한국혈전지혈학회는 혈액학, 진단검사의학, 심장학, 호흡기학, 신경과학, 혈관외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혈전과 지혈의 기전 및 임상 전 분야를 연구하는 혈전과 지혈 질환 관련 학회다.

Q. ‘정맥혈전’은 왜 발생하나?

한국혈전지혈학회 방수미 총무이사(서울의대 혈액종양내과)

김양기 - 동맥(심장에서 피를 내보내는 혈관) 혈압은 120/80 mmHg 정도의 압력이 나오는 반면, 정맥(심장으로 피가 돌아오는 혈관) 혈압은 5/10 mmHg 정도에 불과하다. 즉, 평상시 다리 부근의 혈액은 적은 압력의 도움만으로 중력을 이기고 심장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뜻이다. 때문에 정맥은 혈류의 속도가 느려져 원활한 순환이 되지 않는 경우 혈전이 잘 생긴다. 정맥 혈류가 보다 원활하기 위해선 다리 근육의 힘이 필요한데, 그 이유가 정맥 혈류는 근육이 수축할 때의 힘으로 순환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방수미 – 수술이나 입원 등으로 장기적으로 부동 상태가 원인이 경우가 전체 혈전의 절반이상이다. 25% 환자는 활동성 암으로 인해 혈전 생성기전이 활성화하여 발생한다. 8%에서는 유전성 소인이나 후천성 자가항체의 활성화로 발생한다. 많게는 1/3 환자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다. 환자가 아닌 일반인의 부동 상태 (다리 근육을 쓰지 않는) 대표적인 경우가 ‘이코노미 클래스 신드롬’이다. 8시간 이상 비행 시 앉아만 있을 경우, 다리 정맥의 혈류 흐름이 원활하지 못해 정맥혈전이 생길 수도 있다. 장기 비행시에는 중간 중간 10분 정도 서서 까치발을 하고 종아리 근육을 조였다가 풀었다가 함으로써 혈류를 호전시켜 다리에 혈전이 생기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이는 일반적인 경우이고, 고위험 환자는 미리 약물(항응고제)을 투여해 장기 비행 시 정맥혈전을 예방한다.

김양기 - 장기간 앉아 있어야 하는 경우, 앉아서 발을 쭉 피고 발가락을 몸쪽으로 당기는 동작도 정맥혈전 예방에 도움이 된다.

Q. 건강한 사람도 정맥혈전이 생기나?

김양기 - 유명 테니스 스타인 세레나 윌리엄스는 유리를 밟고 깁스를 한 후,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면서 정맥혈전이 생겼고, 이 혈전이 폐동맥으로 떨어져 나가 폐색전증에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세레나 윌리엄스 같은 최고의 운동신경을 가진 사람도 정맥혈전이 생길 수 있다. ‘나는 건강한데 설마…’라고 간과해선 안된다. 또 윌리엄스는 이후 치료와 재활을 통해 세계적 테니스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즉, 정맥혈전은 제 때 진단, 치료를 받으면 얼마든지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질환이다.

방수미 - 맞다. 유전적 요인이나 암으로 인해 불가피하고 급작스럽게 발병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다리를 못 움직이거나, 병상에 누워 있어야 하는 환자 등에서 발생한다. 때문에 중환자실의 환자 등 장기 부동(不動) 환자의 경우, 혈전을 예방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예방법으론 기계적 압박법과 약물치료 등이 있는데, 기계적 압박법은 압박스타킹을 착용하는 것과 기기를 이용한 공기압박법이 있다. 고위험군에선 항응고 약물을 사용해 혈전을 예방 및 치료한다.

한국혈전지혈학회 김진석 학술이사(연세의대 혈액내과

김진석 - 정맥혈전은 짧은 시간 내 폐색전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때문에 무엇보다 적절한 시기에 정확한 진단이 필수다. 조치가 늦어질 경우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정맥혈전 의심 증상이 있을 경우 병원을 찾아 의료진의 권고를 잘 따라야 한다.

Q. 어떤 증상이 있을 때 정맥혈전을 의심해야 하나?

김진석 -한쪽 다리에 부종이 생겨 비대칭이 되거나 (양측 종아리부위 둘레가 3cm 이상 차이가 나는 경우) 원인을 알 수 없는 호흡 곤란이 발생할 경우 정맥혈전을 의심해야 한다.

김양기 - 원인을 알 수 없는 호흡곤란이 뭔지 잘 모르겠다면, 일상적으로 다니던 길을 떠올리길 추천한다. 예컨대 매일 가는 슈퍼마켓인데 어느 날 갑자기 숨이 차서 한 번 쉰다던가 하면 원인미상 호흡을 의심해야 한다. 2~3일 이상 반복적으로 나타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증상을 간과하거나 애매하게 미루다가 치료시기를 놓쳐 응급실로 오는 경우가 적잖다.

방수미 - 의료진들 또한 정맥혈전에 대한 인지도를 높여야 한다. 산모 등 고위험군이 설명하지 못한 호흡곤란을 호소하고, 저혈압 있는데 흉부엑스레이 촬영이 정상이면 바로 CT를 촬영해야 한다. 이러한 응급실 지침을 지켜야 치명적인 상황을 피할 수 있다.

Q. 정맥혈전을 특히 주의해야 할 군을 꼽는다면?

김양기 - 일단 정맥혈전 발생률만 놓고 보면 ‘입원 환자’, ‘암 환자’, ‘정형외과 수술 환자’ 이 세 군이 특히 높다. 또 산모의 경우 발생률이 낮지만, 막상 정맥혈전이 발병하면 위험률이 높아 특히 주의가 요구된다. 이러한 고위험군은 적극적으로 혈전 예방이 필요하다.

Q. 일상에서 정맥혈전 발생을 주의해야 할 경우는?

김진석 -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피임약을 쓰는 경우에도 정맥혈전 발생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피임약은 대개 호르몬 치료제인 경우가 많은데, 이를 사용할 경우 정맥혈전을 유발하기도 한다.

방수미 - 호르몬 치료도 정맥혈전 유발인자 중 하나지만, 위험도는 중등도로 분류된다. 또 복용 시 정맥혈전 발생률도 (암 환자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

김양기 - 맞다. 다만 호르몬 치료제를 사용해 정맥혈전이 발생한 환자들이 병원을 늦게 찾는 경향이 많다는 점은 문제다. 호르몬 치료를 받다가 정맥혈전이 발생해 우리 병원을 찾은 13명의 환자를 진료했는데, 이 중 세 명은 급하게 혈전용해제를 써야 했을 정도로 위중했다. 이밖에 여드름 치료 시에도 호르몬 성분의 치료제를 쓰기도 하는데, 이 경우에도 정맥혈전이 발생하기도 한다.

Q. ‘정맥혈전’에 대해 잘못 알려진 상식이 있다면?

한국혈전지혈학회 김양기 무임소이사(순천향의대 호흡기내과)

방수미 - 많은 이들이 동맥혈전과 정맥혈전을 오인한다. 예컨대 다리에 혈전이 생겼다고 하면, 많은 환자들이 “다리가 썩나요?”라고 반문한다. 동맥혈전은 합병증으로 다리 괴사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정맥혈전은 울혈 등으로 인한 문제인데 이를 헷갈려 한다. 또 정맥혈전의 유형 중 ‘폐동맥혈전’이 있는데, 여기에도 동맥이란 명칭이 붙어 있어서인지 환자들이 합병증으로 중풍 등을 묻기도 하는데 이는 잘못된 상식이다. 폐동맥은 정맥혈을 받아 폐에서 산소 교환을 하는데, 기능상 정맥혈전이 맞다. 해부학적 명칭 때문에 동맥혈전과 오인된다. 다리에서 떨어져 나온 혈전이 심장을 거쳐 폐로 가는데 여기서 걸린 것이 폐동맥색전이다.

김양기 - 동맥혈전은 ‘삼겹살’을, 정맥혈전은 ‘움직이지 않는 것’·‘’수술‘을 각각 연상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폐색전증 진단을 받은 환자에게 약물 치료를 해야 한다고 말하면, 식단 조절부터 준비 해온다. 특히 “채소나 청국장을 먹으면 안되냐”는 말을 제일 많이 한다. 이는 70여년 전 개발된 와파린의 주의사항이다. 하지만 최근 새로운 항응고제들이 나오면서, 이러한 불편함이 십분 개선되어 자유로운 식단 선택이 가능해졌다.

Q. 최근 정맥 순환 장애를 개선한다는 일반의약품들이 많이 나와 있는데, 이 제품들이 정맥혈전 예방이나 치료에 도움이 되나.

김진석 - 이러한 제품들의 정맥혈전의 예방이나 치료에 대한 효과에 대한 근거는 매우 미약하다. 오히려 그런 약을 먹고 있다가 실제 정맥혈전이 발생하였는데 적절한 진단과 조치가 늦어지는 경우가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방수미 - (정맥 순환 관련) 일반의약품은 정맥혈전 예방이 아닌 정맥혈전 치료 후 보조요법 정도라고 보면 될 듯싶다. 정맥혈전을 예방하기 위한 약물요법은 항혈전 효과가 입증돼 출시된 약의 용량을 줄여서 쓰는 정도다. 정맥혈전 예방과 치료의 중요한 포인트는, 발생 환자 5%에 해당하는 치명적 상황을 막는 것이다. 즉, 100명 중 5명 정도는 다리에 생긴 정맥혈전이 폐동맥으로 떨어져 나가 심각할 경우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재차 강조하지만. 혈전으로 혈관이 막혀서 부은 다리에 이러한 일반의약품을 쓰는 건 절대 도움이 안 된다.

Q. 정맥혈전 인식 개선을 위해 조언한다면?

김양기 - 정맥혈전은 CT나 다리 초음파검사를 통해 간단하고 신속하게 진단할 수 있는 질환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맥혈전증을 언제든 의심해 보아야 진단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검사법으로는 진단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의료진은 언제든 의심을 해야 CT나 다리 초음파검사를 처방할 수 있고 환자는 설명되지 않는 호흡곤란이나 한쪽 다리가 붓는 증상이 2-3일 이상 지속되면 병원 방문을 하는 것이 좋다. 효과적인 치료방법이 잘 알려져 있지만 너무 많이 진행된 상태에서 병원방문을 하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병임을 명심해야 한다.

김진석 - 뇌경색이나 심근경색증과 같은 동맥혈전과 마찬가지로 정맥혈전도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인식이 일반인들이나 의사들 사이에 충분히 전달이 되어야 할 것 같다. 고위험군에서는 적절한 예방적 치료가 중요하며 실제 정맥혈전이 발생한 경우 적절한 진단과 치료로 치명적인 결과를 사전에 막을 수 있으므로 전문가와의 협의 진료와 상담이 필수적이다.

방수미 – 정맥혈전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50% 환자에서 예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입원하거나, 수술/분만을 앞둔 환자에서 위험요인 (암, 유전병, 이전의 정맥혈전 병력)이 있다면 출혈위험도를 고려하여 약물 혹은 기계적 예방요법을 시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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