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표 광주광역시의사회 명예회장

‘깊은 숲속의 지초와 난초는 사람이 없어도 향기가 없지 않다. 군자가 도를 닦고 덕을 세우는데 곤궁할지라도 절개를 버리지 않는다’는 공자가어의 구절은 난초 그림에 단골로 등장한다.

전통적으로 돈이 행복이 아니며, 돈을 탐내지 말라는 격언들이 금과옥조였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대처리즘과 레이노믹스로 시작된 신자유주의는 돈을 가치의 으뜸으로 올려놓았다. 선비가 고상하게 굶고 있으면 존경은 해주되 따라서 할 짓은 못된다. 무능하다고 업신여기지만 안 해도 다행이다.

따지고 보면 옛날도 마찬가지였다. ‘돈은 악이나 저주가 아니고 사람을 축복하는 것’이라는 탈무드와 ‘사랑은 달콤하지만 빵이 수반할 경우에만 그렇다’고 하는 격언은 유태인을 부자로 만들었다.

로스쿨이 생길 무렵 향엄지한의 시를 읊으며 변호사들이 한탄했다. ‘작년 가난은 가난이 아니었네, 금년 가난이 진짜 가난일세, 작년엔 송곳 꽂을 땅이 없더니, 금년엔 꽂을 송곳조차 없구나.’ 경제학자들이 지난 몇 세기 동안의 저널을 뒤져보니 호황이라는 말은 거의 없고 해마다 어렵다는 기사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베이비부머의 부모들은 훨씬 잔혹한 빈곤을 겪었으나 지금은 상대적 빈곤으로 아기조차 낳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계속 어려울 때보다는 살만하다가 어려워질 때 반란과 폭동이 발생했다고 한다.

북한도 고난의 행군으로 죽어 갈 때는 반정부 운동을 생각조차 못했다. 앞으로 먹고 살만해진 후에 요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사정이 달라질 거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밥그릇이 비어가면 세상이 무서워진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은 먹고살기 위해서라면 범죄도 불사한다는 의미이다. 버틀러는 돈에 관한 욕심은 모든 악의 근원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돈이 없는 것도 이 점에서는 똑같다고 했다.

뒤르켐에 의하면 인술이라는 공통된 가치관이 붕괴되고 사회적 존경이 사라져가는 의사들이 금전적 보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가치가 상실되면 무기력, 목적의식의 결여, 공허함과 절망을 경험하면서 혼돈 상태에 이르고 결국 신경증, 비행, 범죄, 자살 등 사회 병리현상인 아노미가 나타난다고 한다. 보험사기, 사무장, 대리수술 그리고 자살에 관한 기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마르크스의 유물론에는 사회의 경제적 구조 즉, 생산 관계의 총체인 하부구조가 이념, 사상, 정치, 문화와 같은 사회의 상부구조를 변화시킨다고 했다. 돈 버는 일이 핵심이라는 생각은 자본주의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과거에 의협은 각종 의료정책에 있어 수가를 들먹이면 집단이기로 비난받는다고 돈 이야기를 주저했다.

그러나 이제는 사회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인지의 문제가 남아있지만 떳떳하게 수가를 말해야 한다고들 한다. 측천무후는 딸을 죽여 황후가 되고 두 아들을 죽여 중국 유일의 여성 황제가 됐다. 공포정치와 음탕함으로 회자되는 그녀를 바라보는 민중의 입장은 다르다. 수 만 명의 목숨을 끊어버린 숙청은 백성과 무관한 기득권의 권력다툼이고 오히려 관직이 개방돼 출세의 길이 열렸다. 세금과 부역을 덜어주니 경제가 활성화되고 인구가 늘고 태평성대가 되었다.

백성들에게는 등 따뜻하고 배부르면 으뜸이다. 최대집 회장이 어떤 공약과 지지세력을 통해 집권하였든지 민초의사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돈과 관련된 회무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의사가 존경과 신뢰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안정된 수입을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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