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호 학장 ”의학 지식만으로는 환자 볼 수 없어…AI 시대 대비도 게을리해선 안돼“

연세의대가 국내 의과대학 최초로 절대평가제도를 도입해 소기의 성과를 이뤄낸 가운데, 성균관의대가 두 번째로 절대평가제도를 도입한다. 다만 절대평가제도만으로는 부족, AI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인성기반 절대평가제'를 시행하겠다는 게 성균관의대 최연호 학장의 포부다.

지난 1월 취임한 최 학장은 인성을 기반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를 위해 수년 전부터 인성평가를 위한 데이터를 축적해왔다. 또한 올바른 인성교육을 이끌어 나가고자 ‘의료인문학교실’을 신설했다.

성균관의대가 추구하는 인재상과 이에 맞는 인재를 길러내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 최 학장에게 들었다.

- 학장에 임명된 지 어느덧 10개월이 지났다. 성균관의대를 어떻게 이끌어갈지 궁금하다.

성균관대의 교시는 ‘인의예지(仁義禮智)‘다. 성균관대 교시인 인의예지를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의학으로 구현하고자 한다. 병원 외애 혹은 병실에서 실습을 돌고 있는 의대생들에게 줄곧 해주는 말이 있다. 바로 '의학지식만으로 환자를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성균관의대는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배움을 가르친다. 배움은 사람이 살아가는 기본이다. 예를 들어 환자가 토한다고 항구토제만 처방하는 의사를 만들지 않겠다. 환자가 구토를 하는 것은 위장관 문제가 아니라 뇌 혹은 심리적 압박 때문일 수도 있다. 환자를 볼 때 증상만 보지 않고 환자, 보호자와 소통하고 주변 환경과 변화에 대해서 물어보며 환자를 둘러싼 모든 이야기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의사가 되도록 가르치고자 한다.

- 미래 한국 의학을 이끌어갈 의대생들은 어떤 역량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보는가. 이들의 역량을 어떻게 키워줄 수 있을까?

의사는 지식만 가르친다고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타인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마음이론(Theory of Mind)에서 시작하는 의료인문학, 그리고 인성의 근본인 윤리가 강조되는 이유다.

또 다가오는 AI시대에 미래에 대한 대비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깊어져 가는 머신 러닝(machine learning)이 의사의 역할을 대체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지만 인공지능은 휴머니즘과 같이 가야 한다. 그렇기에 미래에는 의학자라는 직업이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는 교육이 절실하다. 이에 의대 교육도 이러한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이를 위해 어떤 계획을 갖고 있으며 취임 후 새롭게 추진하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없었던 한 가지를 해보고자 한다. 연세의대는 우리나라 의대 최초로 절대평가제를 도입,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성균관의대는 이에 더해 ‘인성기반의 절대평가제’를 시행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인성을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있나'라는 질문에 부딪히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이에 어느 정도 답을 제시할만한 데이터를 축적해왔다.

- 축적해온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생들의 인성을 평가할 방법이 궁금하다.

교수는 모르더라도 친구들끼리는 서로의 인성을 잘 안다. 그들에게 평가의 몫을 맡기려 한다. 대학교 때 누구나 이른바 팀플(조과제)를 해봤을 것이다. 거기에는 성실히 참여하는 학생도 있고 말 그대로 남들에게 업혀가는 학생들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그들에게 같은 점수를 부여해왔다. 그렇기에 교수가 모든 학생의 인성을 다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조원들, 동료끼리는 누가 free rider(무임승차자)인지 알고 있다. 인간의 무의식은 언제나 드러난다. 다만 본인만 그것을 모를 뿐이다. 의대 교육 과정에서 덮어준 무임승차 행위는 결국 의사가 된 후에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이에게 불행으로 귀결될 수 있다. 똑똑한 의대생에게 필요한 것은 통찰(insight)이다. 이들에 인성을 가르치고 통찰력을 배양함으로써 자신을 성찰(reflection)하게 하고자 한다.

성균관의대 로비 모습

지난 8월 일원역에 새단장한 성균관의대 임상실습공간에도 '우리의 모든 것이 살아있는 그대로 보여지도록 하겠다'는 이런 최 학장의 교육관이 잘 녹아있다. 이에 따라 학생들이 모두 들어갈 수 있는 대형 강의실, 그룹 학습이 가능한 작은 강의실도 모두 밖에서 안이 들여다 보이도록 유리벽면으로 만들어졌다.

또한 성균관의대의 강점인 소그룹 학습과 PBL(문제중심학습, Problem-Based Learning)이 가능하도록 토론과 그룹스터디가 가능한 강의실, 쉼터 등이 곳곳에 배치됐다. 이곳에서는 학생들이 함께 토론하고 공부하며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 가게 된다.

- 의료인문학교실도 인성기반의 절대평가제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을 것 같다. 개설 계기가 궁금하다.

인성을 평가하는 만큼 의대생들을 올바른 인성교육으로 이끌어 가고자 의료인문학교실을 개설했다. 10여년 전 의과대학 교육부학장보를 시작으로 교육부학장, 교무부학장을 맡으면서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이 의료인문학의 전파였다. 세상의 이치는 어디에 가도 똑같다. 의료는 세상의 이치를 모른 채, 삶의 기본을 모르며 실행할 수 있는 학문이 아니다.

인의예지를 교시로 삼은 성균관의대에서 오히려 개설이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미국 대법원에서 유명한 판결이 있었다. 어느 대법관이 포르노에 대한 정의를 내려야만 하는 상황에 이르자 그 대법관은 포르노를 이렇게 정의했다. ‘포르노는 보면 안다’. 좋은 의사가 무엇인지도 마찬가지다. 좋은 의사에 대한 정의를 따로 내릴 필요는 없다. 사람들은 좋은 의사를 바로 알 수 있다. 성균관의대는 의료인문학교실을 통해 기본을 갖춘 의사를 키워내고자 한다. 의사가 갖춰야할 기본은 바로 인성이다.

- 기본적으로 배울 것이 산더미 같은 의대생들에 따로 의료인문학을 가르칠 시간이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성균관의대에서는 타 대학과 달리 히든 커리큘럼과 엑스트라 커리큘럼을 도입하고 있다. 인문학을 학생에게 강의로도 전달하지만 강의 외적인 부분에서 전달하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고 좋은 의사가 되는데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여러 단계의 평가 과정에서 학생 스스로 어떻게 평가 받고 있는지 깨닫게 하고(히든커리큘럼) 강의 외의 시간에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전하면(엑스트라커리큘럼) 이런 통찰이 쌓여 문화가 될 것이라 본다. 이를 통해 성균관의대의 문화유전자(meme)를 탄생시키려 한다. 공부로 일등을 해도 인성이 떨어진다면 삼성서울병원 인턴으로 나아갈 수 없게 할 것이다. 우리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인성이 최우선이다.

- 최근 대리수술 등 문제가 불거지며 의료윤리에 대한 부분이 특히 강조되고 있다. 의료인문학교실이 향후 이런 현안 해결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 보는지.

의료윤리와 의료인문학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분야다. 둘 다 기저에는 휴머니즘이 자리하고 있다. 같은 맥락으로 의료와 윤리도 분리할 수 없는 분야다. 개인적으로 의학을 가르치고 따로 윤리를 가르치고 더해 인문학을 가르치는 것에 반대한다.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주창한 통섭(consilience)은 과학과 인문학의 통합을 의미하는데 사실상 이 통섭이 핵심인 학문은 바로 의학이다. 의대에 입학하면서 의대생들은 암기라고 지칭되는 지식의 향연에 빠지고 만다. 이제는 이를 종결하고 인성을 기반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필요해졌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바른 인성은 의사 자신을 발전시키고 환자를 행복하게 하며 나아가 이 사회에 의료 혜택의 풍요로움을 전달한다. 의사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책무성은 바로 개인의 인성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학계와 정부 모두 의대생의 인성 교육에 힘을 모아주었으면 한다. 이는 결국 국민의 이득으로 돌아올 것이다. 개인적으로 힘이 닿는 한 이러한 가치를 전파하는 것에도 최선을 다하겠다. 이와 관련해 대외적인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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