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성종호 이사 “환자 특성 및 질환 예방‧교육에 관한 수가 개발 필요”
이길연 교수 “개인에 책임 돌릴수록 방어기재 작동…의사에 법적책임 강조 안돼”

고질적인 저수가와 불합리한 의료제도가 의료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대한의사협회 성종호 정책이사는 지난 21일 대한의사협회 의료배상공제조합이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개최한 ‘의료분쟁 기저에 법과 제도 점검과 개선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의료사고를 유발하는 제도적 의료행위 제한 행태를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성 이사는 먼저 의료사고를 유발하는 제도적 의료행위 제한 행태를 ▲급여항목 ▲급여기준 ▲저수가 ▲비급여 등 4가지로 분류했다.

급여항목의 문제점은 의료행위 설명에 소용되는 시간에 대한 급여가 인정되지 않고 의사행위와 환자안전과 관련된 병원관리 수가가 분리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성 이사의 지적이다.

또 급여 의료행위가 포지티브 리스트로 정해져 의료행위의 축소를 조장하고 있으며 신의료기술에 대한 급여화 속도가 미진하다고 주장했다.

모호한 급여기준으로 과도한 삭감이 초래되고 있으며 정부의 보장성 강화 정책으로 인해 환자와의 사적 계약을 인정하지 않아 충분한 의료행위가 불가능해지는 것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저수가와 관련해선 의료인의 업무강도가 OECD 평균의 3배에 달하는 등 중노동에 노출돼 있고 이 중노동으로 인해 환자에 대한 주의가 감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정부가 비급여를 급여화하는 과정에서 보상을 하고 있지만 단순 의료기관의 손해만 보전해 주는 정도이며 의료인의 중노동에 대한 보상은 없다는 게 성 이사의 지적이다.

또 저수가로 인해 의료기관 경영자들은 수익이 나는 곳에만 투자를 하고 중증, 필수의료에 대한 투자 동인이 상실돼 의료왜곡이 심화되고 있으며 ▲의료인력 충원 불가능 ▲PA 고용 증가와 합법화 기도 ▲필수과 전공의 선발의 어려움 등도 의료사고를 유발하는 저수가의 문제점으로 제시했다.

비급여와 관련해선 기준비급여를 가장 큰 문제로 지적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1월 발표한 기준비급여 389개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약 83%인 324개가 기준비급여로 적용, 의사들의 의료행위가 제한된다고 했다.

성 이사는 “환자를 오래 볼수록 의료소송이 적다는 연구가 있다”면서 “의료소송의 원인 중 하나인 설명의무 위반이 의료인의 윤리 문제인지, 저수가로 인해 의사에게 충분한 진료시간이 주어지지 못해 생긴 문제인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백내장 수술 위험도 비용을 예로 들며 “정부가 수술 1,000건 시 550만원의 위험도 비용보상을 하고 있지만 실제는 수술 후 실명했을 경우 그보다 10배 이상인 5,000만원에서 1억원 가량의 손해배상 책임이 발생한다”면서 “향후 상대가치 개정 시 교과서적인 합병증 유발률과 실제 보상비용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고 이에 적절한 보상을 요구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성 이사는 특히 “환자안전과 관련된 부분은 국가 및 지자체가 시스템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면서 “환자의 특성 반영한 수가체계 및 질환의 예방과 교육에 관한 수가체계 개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의료사고에 대한 의사의 책임이 중해질수록 방어진료가 늘어나 결국 환자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경희의대 외과학교실 이길연 교수는 “신해철법이 시행되고 의료사고 소송에서 수억대 배상 판결이 나왔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외과의사들은 참담하면서 한쪽으로는 두렵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이대목동병원 의료진 얼굴이 공개된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사회적 여론이나 검사 생각은 구속하기 충분하다고 보는 것 같다. 심리 방어기재가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 교수는 이어 “미국과 영국의 연구에서도 오진으로 인한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더 많은 검사를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비용을 낮추고 싶으면 의사들에 대한 법적 책임을 강조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또 “법적으로 무언가를 한다는 건 외과계 의사들에게 큰 위협”이라며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건 환자 안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실수를 숨기지 말고 들어낼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법조계에서도 요양급여기준을 준수했을 경우 의료사고에 대한 과실 책임을 경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백인합동법률사무소 전병남 변호사는 “요양급여기준과 최선의 진료기준이 서로 비슷하거나 요양급여기준이 최선의 진료기준보다 높으면 문제가 없지만 최선의 진료의무 기준이 요양급여기준보다 높으면 의사들은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면서 “요양급여기준은 최선을 다 했는지는 묻지 않고 그 진료가 효과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등 경제성을 우선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법원은 의사 과실을 판단하는데 있어 의료환경 및 조건, 당시 의료 수준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면서 “아무리 경제성을 가지고 진료했다고 하더라도 최선의 진료가 아니라면 의사의 과실을 인정한다. 이것이 갈등 유발의 씨앗”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요양급여기준과 최선의 진료기준을 무작정 맞출 수 없는 게 현실.

요양급여기준을 최선의 진료기준으로 높이면 건강보험 재정의 부담이 커지고 의사의 주의의무 수준을 요양급여기준 수준으로 낮추면 환자의 생명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전 변호사는 임의비급여 확대 및 요양급여기준 준수 시 의사의 과실 책임을 제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전 변호사는 “요양급여기준과 최선의 진료기준 사이의 간극을 임의비급여로 메워야 한다”면서 “현재는 법원이 임의비급여를 예외적으로 인정하고 있지만 이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 변호사는 이어 “요양급여기준 및 이에 대한 준수는 의사가 처한 진료환경”이라며 “의사가 이를 준수한 것은 당시의 진료환경에 따른 것이다. 그러므로 의사의 책임은 제한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또 “요양급여기준 준수는 의사가 공단에 지는 의무”라며 “의사가 공단에 대한 의무를 모두 이행했다면 책임제한사유로 참작, 구상권 행사 역시 제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의사가 전문가적 양심에 따라 최선의 진료를 다한 경우에는 그에 따른 정당한 대가를 받고 또한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안정적인 진료환경이 조성되길 바란다”면서 “그래야 환자도 만족할 수 있는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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