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전 가부동수로 합헌 결정…헌법재판관 교체 등으로 전향적 판결 기대 높아져

지난 2012년 이후 6년 만에 다시 헌법재판소 심판대에 오른 낙태죄 위헌 여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최근 미투(Me too)운동 등 여성 인권에 대한 움직임이 활발해짐에 따라 낙태죄를 합헌으로 판단한 헌재 판결이 뒤집어질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낙태죄에 대해 우리나라는 형법 제269조 제1항을 통해 ‘부녀가 약물이나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제270조 1항에서는 임산부의 촉탁이나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의사·조산사 등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다.

다만 모자보건법 제14조에서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이나 준강간에 의해 임신되는 경우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간에 임신된 경우 ▲임신 지속으로 산모의 건강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등을 임신중절(낙태) 허용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가장 최근 낙태죄가 합헌 판결을 받은 건 지난 2012년 8월 23일이다.

이강국 헌재소장을 비롯 재판관 8명의 의견은 찬성과 반대가 각각 4대 4로 동수였다.

당시 사건을 청구한 이는 조산사 A씨로 “조산사 등이 임부의 부탁으로 낙태를 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한 형법 제270조 1항은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헌재 역시 “조산사의 낙태를 처벌하는 게 위헌인지 판단하려면, 임부의 낙태를 처벌하는 제269조 1항부터 심판해야 한다”고 판단, 낙태죄에 대한 위헌 심리를 진행했다.

심리 결과, 재판관들의 의견은 4대 4로 팽팽하게 맞섰고, 위헌 결정 정족수(6명)에 미치지 못해 결국 합헌 판결이 내려졌다.

낙태죄를 합헌으로 판단한 재판관들은 ▲태아의 생명권은 중요하다 ▲낙태를 처벌하지 않으면 생명경시 풍조가 확산될 것이다 ▲불가피한 사정엔 낙태를 허용하므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한다고 볼 수 없다 등의 그 이유를 제시했다.

하지만 헌재의 합헌 판결 이후에도 낙태죄를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는 점차 커졌고 지난 2017년 2월 산부인과 의사 B씨가 5년여 만에 다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B씨는 2013년 11월경부터 2015년 7월까지 69회에 걸쳐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업무상승낙낙태 등)를 했다는 이유로 기소됐다.

B씨는 1심 재판 중 제269조 제1항, 제270조 제1항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하면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으나 이게 기각되자 위헌확인을 구하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지난 5월 24일 헌재에서 열린 공개변론에서도 낙태죄 위헌 여부에 대한 치열한 찬반토론이 전개됐다.

국민청원으로 이어진 낙태죄 위헌 논란

이에 앞서 지난해 9월 청와대 국민 청원게시판에는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미프진) 합법화 및 도입을 부탁드립니다’라는 글이 게재되기도 했다.

청원인은 “원치 않는 출산은 당사자와 태어나는 아이, 국가 모두에게 비극적인 일”이라며 “아이를 키우기 힘든 이 나라에서 원치 않는 임신으로 태어나는 아이들이 과연 이 나라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또 “암암리에 낙태 수술을 받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의료사고가 난다면 어떻게 도움을 받을 수가 있겠냐”면서 “낙태죄를 만들고 낙태약을 불법으로 규정짓는 것은 이 나라 여성들의 안전과 건강은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지적했다.

이 청원에는 23만명이 넘는 국민이 참여해 정부의 공식 답변을 이끌어 냈다.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은 같은 해 10월 26일 “이제는 태아 대 여성, 전면금지 대 전면허용 이런 식의 대립구도를 넘어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단계”라는 입장을 밝혔다.

조 수석은 “현행 법제는 국가와 남성의 책임은 완전히 빠져있으며, 모든 법적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고 있어 문제가 있다”면서 “태아의 생명권은 매우 소중한 권리이지만 처벌강화 위주 정책으로 인해 임신중절 음성화, 불법시술 양산 및 고비용 시술비 부담, 해외원정 시술, 위험시술 등의 부작용이 계속 발생하고 있어 여성의 생명권, 여성의 건강권 침해 가능성 역시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지난달 20일에는 한국여성민우회가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변호사 209명의 의견서를 헌재에 전달했다.

변호사들은 의견서에서 “현행 형법이 여성의 모든 임신중절 행위를 처벌하고 있고, 이는 여성의 재생산권, 자기결정권, 건강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변호사들은 “형법이나 민법에서는 태아가 출생한 경우 또는 진통이 시작된 경우부터 권리의 주체, 인간으로 보는 것이 이미 논란이 없는 이론”이라며 “헌법재판소가 별다른 헌법적 근거도 없이 '태아의 생명권'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

또 “형법상 방조범 규정에 따라 남성이 여성과 함께 병원에 가거나 수술비를 부담하면 남성도 처벌받게 되기에 이를 여성의 문제라고 보기도 어렵다”면서 “낙태죄가 남성의 기본권 역시 침해하고 있다”고도 했다.

낙태 전면 거부 선언한 산부인과의사들

의료계 내에서도 낙태죄 처벌에 대한 불만이 높다. 특히 산부인과계의 경우 불법으로 규정된 인공임신중절(낙태)수술을 전면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지난달 28일 대한의사협회 용신 임시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된 낙태 수술을 전면 거부한다고 밝혔다.

직선제산부인과의사회는 보건복지부가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을 개정해 형법 제270조를 위반한 낙태 수술을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하고 자격정지 1개월 처분을 내리겠다고 한 것 자체가 섣부른 조치였다고 비판했다.

직선제산부인과의사회는 “임신중절수술에 대한 합법화를 주장하는 게 아니다”라며 “낙태죄 처벌에 관한 형법과 관련 모자보건법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어 현실과 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헌재에서 낙태 위헌여부에 대한 헌법소원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정부는 당장의 입법미비 해결에 노력하고 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의사에 대한 행정처분을 유예하는 게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렇듯 낙태죄에 대한 위헌 요구가 커지자, 법조계에서는 헌재가 곧 이에 대한 결정을 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더욱이 9월이 되면 헌법재판관 5명이 퇴임을 맞이하기 때문에 8월 30일에 선고가 날 것이라는 의견에 힘이 더 실렸다.

하지만 이날 선고 목록에 낙태죄 관련 헌법소원은 결국 포함되지 못했고, 지난 19일 헌법재판관 5명이 퇴임했다.

현행 헌법과 법률에 따르면 헌재는 재판관 9명 가운데 3분의 2이상이 출석해야 평의와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최소 7명이 출석해야 정상적으로 운영된다는 의미다.

9월 23일 현재, 헌법재판관은 유남석 헌재소장을 포함 총 6명만 근무하고 있다. 이에 헌재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기까지 아직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문재인 정부 들어 임명되는 재판관이 6명에 달하는 만큼 중요 사건에 대해 전향적 판결이 선고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지난 21일 임명된 이은애 재판관도 국회 청문회에서 “현행법상의 낙태 허용 범위가 좁다”는 입장을 밝혀 이러한 관측에 힘을 실고 있다.

법무법인 세승 조진석 변호사(의사)는 본지와 통화에서 “낙태를 법으로 금지시키기는 했지만 사회적으로 광범위하게 이뤄져 온 게 사실”이라며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최근 사회 분위기로 봐서 (위헌 판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김할머니 사건에서 죽을 수 있는 권리까지 자기결정권의 범위로 인정한 것으로 봤을 때 낙태도 충분히 그 범위에 포함될 것”이라며 “세계적으로도 허용하는 게 추세”라고 설명했다.

다른 변호사는 “지난 판결에서 가부동수로 합헌이 됐지만 이번에는 위헌이 나올 것”이라며 “기존 (헌법)재판관들과 새로 임명된 재판관들의 성향을 고려했을 때 충분히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