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보다 많은 환자 진료해야 하는 응급실

추석 연휴가 시작됐지만 응급실에 근무하는 의사나 간호사, 응급구조사 등에게는 남의 이야기다. 평소보다 연휴에 더 바쁜 곳이 응급실이다. 연휴에는 의료기관 대부분이 쉬기 때문에 환자들이 응급실로 몰리는 탓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추석 연휴 3일 동안(10월 3~5일) 병원 외래를 방문한 환자는 총 74만명으로, 일평균 외래 환자 243만명의 30.4%다. 하지만 이들 환자 대부분은 응급실에서 진료를 받았다.

평소보다 많은 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응급실은 비상진료체계로 운영된다. 때문에 응급의료인력도 평일보다 1.5배 많다. 응급의학과 의사, 간호사, 응급구조사들은 추석 연휴에도 병원에 나와야 한다는 의미다.

고려대구로병원 응급의학과 이형민 교수는 “추석 같은 명절에 가족과 함께 보내는 걸 포기한 지 20년은 됐다. 응급실은 오히려 명절에 더 바쁘기 때문에 특별 근무를 해야 한다”며 “응급실 종사자들은 명절 연휴는 포기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메디플렉스 세종병원 응급의학과 김순용 과장도 마찬가지다. 22일부터 응급실 당직을 서는 김 과장은 “응급실은 명절에 더 바빠서 근무하는 인력도 는다. 명절이라고 고향에 간다거나 하는 건 못한다”며 “주변 병원들이 쉬니까 환자들이 응급실로 몰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대구의료원은 추석 연휴 기간 진료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응급실을 중심으로 비상진료체계를 유지한다고 21일 밝혔다(사진 제공: 대구의료원).

“환자도 많은데 주취자 폭력 사건 등은 없길…”

추석 연휴를 응급실에서 바쁘게 보내야 하는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평소보다 주취자 폭력 사건이 적게 발생하기를 바랄 뿐이다. 주취자 한명이 난동을 부리거나 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평소보다 더 환자들이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한 중소병원 응급실에 근무하는 의사는 “작은 병원들 중에는 보안요원을 따로 두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리 병원도 경비 아저씨들 밖에 없는데 그분들이 연세가 좀 있으셔서 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오히려 우리가 보호해야 한다”며 “어제 낮에도 고주망태가 된 사람이 응급실로 실려 왔다. 그런 주취자 한 명이 오면 진료 시간도 더 길어지고 혹시 난동은 부리지 않을까 예의주시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청 차원에서 응급실 폭력 사건에 대해 무관용 원칙으로 엄정 대응하겠다고 했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달라진 게 없다”며 “경각심을 갖기 위해서는 더 큰 사건이 터져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고 했다.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응급실 내 폭력 사건이 명절에 오히려 더 많은 것 같다. 주취자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를 받아 예민해진 환자들이 많기 때문”이라며 “이번 추석 연휴에는 그런 일이 없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응급의학회 ‘폭력 없는 응급실 서명운동’에 8천명 참여

대한응급의학회 이경원 섭외이사(인제대 서울백병원)는 “얼마 전에도 응급실에서 근무하던 여성 전공의가 환자에게 맞는 일이 발생했듯이 응급실 내 폭력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연휴에는 평일보다 많은 환자를 봐야 한다. 이번 추석 연휴에는 불미스러운 일 없이 환자들을 진료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했다.

이 이사는 “응급실 의료진 폭행을 근절해야 한다는 여론이 어느 정도 형성됐는데 추석 연휴 이후 관심이 사라질까봐 걱정”이라며 “국회에서 응급실 폭력 사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 응급의료법 개정안을 이번 회기 안에 꼭 처리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 이사는 응급의학회가 전국 403개 응급의료기관에 근무하는 응급의료 종사자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폭력 없는 안전한 응급의료 환경 조성을 위한 전국 서명운동’에 21일 기준 8,000여명이 참여했다고 전하며 그만큼 응급실 내 폭력이 심각하다는 반증이라고 했다.

이 이사는 “지난 8월 9일부터 시작된 서명 운동에 8,000여명이나 참여했다. 지방 중소병원 응급실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며 “그만큼 응급실 종사자들이 폭력적인 상황에 많이 노출되고 시달려 왔다는 의미다. 이번에야 말고 응급실 폭력이 근절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