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복지부 면허정지 처분 위법…규칙 미비를 의사 책임으로 돌려선 안돼”

환자 진료정보를 누설해 면허정지 처분을 받은 의사가 법원서 구제 받았다.

서울고등법원은 의사 A씨가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제기한 의사면허자격정지처분취소 소송 항소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원고 승소 판결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 2014년 2월부터 2015년 3월까지 자신이 운영하는 의원의 환자관리시스템에 접속할 수 있는 권한을 B사에 부여하고 환자의 이름 및 내원 경위, 수술일자, 수술부위 등의 정보로 병원 광고 효과 분석 등을 하도록 했다.

이러한 사실을 적발한 경찰은 복지부에 행정처분을 의뢰했고, 2017년 6월 복지부는 의사면허 자격 15일 정지처분을 내렸다.

이에 A씨는 “B사에게 환자관리시스템에 접속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은 맞지만 해당 정보는 환자 이름, 내원 경위, 수술일자, 수술부위 등으로 비의료인이 작성한 기록에 불과하다”며 “또 구 의료법 제21조 제1항에 규정된 것처럼 이 시스템에 저장된 정보를 B사가 ‘열람하거나 사본발급하는 방법’으로 내용을 확인하게 한 적이 없고, 검찰로부터 해당 사건에 대해 불기소처분을 받은 점을 고려했을 때 복지부 처분은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 법원은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복지부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A씨가 B사에 제공한 환자 이름, 내원 경위, 수술일자, 수술부위 등의 정보는 진료기록부에 기록해야 하는 환자의 건강과 관련된 내밀한 사항으로 구 의료법 제21조 제1항에서 정한 환자에 관한 기록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해당 조항은 의료인이 환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환자에 관한 기록을 열람하게 하거나 사본을 내주는 등 내용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금지한다”면서 “A씨가 주장하는 것과 같이 환자에 관한 기록을 열람하게 하거나 그 사본을 내주는 것으로 처벌대상을 한정하고 있지 않다”고 판시했다.

또 “면허정지 처분은 유죄 판결을 받거나 피해자가 특정되는 것과는 무관하게 B사에게 환자 진료기록을 접속할 수 있게 한 A씨의 행위 자체로 요건이 충족된다”면서 “복지부의 면허정지 처분에는 위법사유가 없다”고 했다.

판결에 불복한 A씨는 항소했고, 항소법원은 A씨 주장을 일부 인용, 복지부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구 의료법 제21조 제1항은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종사자가 환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환자에 관한 기록을 열람하게 하거나 사본을 내주는 등의 내용을 확인하는 것을 금지한다”면서 “이는 개인정보인 환자 진료 관련 정보가 본인 동의 없이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지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A씨가 B사에 제공한 정보는 구 의료법 제21조 제1항의 ‘환자에 관한 기록’에 해당하고 B사 직원은 ‘환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 해당한다”면서 “이에 A씨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다만 “해당 조항을 친고죄로 규정한 입법취지는 법 위반으로 기소돼 사회에 알려지면 그 과정에서 오히려 환자가 비밀로 유지하자고 하는 진료기록 등 은밀한 정보가 누설돼 수치심을 일으키거나 명예를 손상케 할 염려가 크기 때문에 환자의 의사나 감정 등을 존중하기 위함”이라며 “행정처분 역시 고소가 없음에도 그 제재를 강행할 경우 환자의 비밀이 더 널리 누설될 염려가 있기 때문에 행정처분을 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또 “만약 복지부가 제21조 제1항 위반행위에 대해 고소 유무와 관계없이 행정처분을 하려고 했다면 지금까지 복지부령에 불과한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의 별표를 개정하는 게 충분했을 것인데 이와 같은 규칙의 미비를 행정처분을 받는 자의 불이익으로 돌리는 것은 온당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특히 “복지부는 지난 20년간 제21조 제1항 위반행위에 대해 고소처분이 없음에도 행정처분을 했다는 아무런 자료를 제시하지 못했다”면서 “이러한 상황에서 B씨에 대해서만 처분을 내리는 것은 자기구속 원칙에도 반한다”고 했다.

이에 “복지부가 A씨에게 내린 면허정지 처분은 재량권 일탈과 남용으로 위법하다”면서 “A씨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복지부의 면허정지 처분을 취소한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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