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 의사 측 “허위진단서 박모 교수 탄원서 서명 거부로 사직 압박” 주장
노동위도 법원도 “부당한 파면, 복직시켜라” 판단

국민건강보험일산병원에서 10년 넘게 근무한 외과 전문의 배모씨에게 어느 날부터 사직 압박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병원장이 바뀐 2015년 3월부터다. 외과 내에서도 진료수입이나 수술 건수 등 진료실적이 좋았고 병원 차원에서 외부기관에 의뢰해 진행한 진료면담 평가에서도 우수한 점수를 받았던 터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예상한 일이기도 했다. 배씨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사직 압박이 ‘탄원서’ 한 장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사회적으로 공분을 샀던 ‘여대생 청부살인 사건’과 관련된 탄원서였다.

청부살인으로 복역 중인 윤모씨가 형집행정지를 받아 병실생활을 해 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었다. 당시 윤씨에게 허위진단서를 작성해 준 혐의로 연세의대 박모 교수가 구속수사를 받게 되자 2013년 10월 연세의대 외과 동문들은 탄원서를 받기 시작했고 연세의대 출신이 많은 공단일산병원에도 탄원서에 서명해 달라는 요청이 왔다.

연세의대 외과 출신인 배씨에게도 탄원서가 왔지만 배씨는 서명하지 않았다. 며칠 뒤 부원장 측으로부터 서명해 달라는 요청이 왔지만 거절했다. 당시 부원장인 강모 교수는 연세의대 외과 출신으로 2015년 3월 병원장으로 취임했다.

갑작스런 전보 발령→감봉 2개월→정직 1개월→파면

배씨는 강 교수가 병원장으로 취임한 후부터 이해할 수 없는 조치들이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2015년 12월부터 배씨에게는 초진 환자가 배정되지 않았으며 3개월 뒤인 2016년 2월 건강증진센터로 전보됐다. 수술을 하던 외과 전문의를 상담의로 근무시킨 것이다. 같은 해 4월에는 감봉 2개월 처분도 받았다. 블로그에 자신이 수술한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올리면서 개인정보를 노출했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배씨는 파워블로거이기도 하다.

배씨는 병원 측이 부당하게 전보 발령하고 감봉 조치했다며 그해 5월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했다. 경기지방노동위는 2016년 10월 부당전보라며 배씨를 복직시키라고 판단했다. 감봉조치에 대한 이의제기는 기각했다.

공단일산병원은 이같은 판정에 불복해 즉각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했다. 하지만 중앙노동위도 배씨의 손을 들어줬다. 중앙노동위는 2017년 1월 재심신청 자체를 기각했다. 지방노동위 판정대로 배씨는 외과로 복직시키라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달 공단일산병원은 배씨에게 정직 1개월 처분을 내렸다. 배씨가 병원 측에 보고하지 않은 채 방송에 무단 출연했다는 게 이유였다. 그리고 3개월 뒤인 2017년 4월 징계위원회를 열고 배씨에 대한 파면을 결정했다. 공단일산병원 측은 파면 사유에 대해 배씨가 사전에 신고하지 않고 강의를 했으며 병원 직원에서 비방적인 발언을 하고 방송에도 무단 출연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법원 "파면 당할 정도의 비위 행위 없다" 파면 무효 판결

배씨는 부당해고라며 공단일산병원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과정에서 공단일산병원 측은 박모 교수에 대한 탄원서 작성 거부는 파면 결정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병원에서 그와 관련된 아무런 불이익을 준 사실도 없다”고 했다.

법원은 병원이 부당하게 배씨를 파면했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48민사부는 지난달 30일 배씨에 대한 파면처분은 무효라며 공단일산병원에 배씨가 복직할 때까지 월급을 지급하라고 했다.

재판부는 “배씨에 대한 징계사유와 파면 처분 사이에 사회통념상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균형이 존재한다거나 원고에게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의 책임 있는 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합리적인 이유 없이 갑자기 건강증진센터로 전보하는 위법한 처분을 했고 이로 인해 갈등관계가 심화됐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배씨는 일산병원에서 근무하는 동안 방송 출연, 칼럼 기고, 인터뷰 등 여러 활동을 병행했는데 그 과정에서 병원 측으로부터 제지를 받았던 적은 없었다”며 “언론 매체 출연 등 다수의 외부활동을 병행했지만 일산병원 외과 전문의로서 진료 및 수술 업무를 수행하는 데 차질이 발생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재판부는 “배씨는 적법한 절차에 따른 환자의 동의 없이 수술과 관련된 정보를 블로그에 게재했다는 이유로 감봉처분을 받았고 방송 출연과 관련해 정직 1개월 징계를 받았다”며 “이런 종전 징계처분이 징계양정을 가중하는 사유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파면 처분을 정당화할 정도로 비위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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