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체험기] 강남 등 비만치료 의원들서 손쉽게 처방…'약물에 기대지 마라' 조언도

볼룩 나온 배를 매만지며 ‘삭센다나 맞아볼까’ 했던 생각이 씨앗이 된 체험기다.

요즘 비만치료제 시장 화두는 단연 노보노디스크제약이 올해 3월 국내 출시, 여름 품절대란을 일으킨 ‘삭센다’다.

삭센다 성분인 ‘리라글루티드’는 2010년 당뇨병치료제 ‘빅토자’로 이미 허가를 받았던 약물이다. 노보노디스크는 임상시험 중 체중감량 효과를 확인하고, 비만치료에 적용한 임상을 거쳐 이 성분을 비만치료제로도 출시했다.

(기자는 이보다는 날씬함)

리라글루티드는 장기간 안전성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는데다가, 효과에 있어서도 비만치료제 중 체중감량 효과가 2위(국제 학술지 JAMA에 실린 메타연구, 1위로 평가된 큐시미아도 국내 출시를 앞두고 있다)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삭센다 인기 배경은 뭐니 뭐니 해도 ‘입소문’이 컸다.

제약사 마케팅인지 병원 마케팅인지 어쩐진 몰라도, 다이어트로 고민하는 주변인과의 실제 대화에서도 삭센다는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물론 꾸준한 음주로 3년간 몸무게가 8~10kg 불었다고 고민하는 기자에게 동질감을 느낀 이들이 “사실 삭센다를 맞기 시작했다”며 저마다 똑같은 얘기를 비밀스럽게 털어놓은 탓도 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의약 분야 출입 기자들과 제약사 직원. 이들이라면 일반인보단 뭘 좀 더 알고(?) 결정한 게 아닐까. 그래서 생각했다. “나도 맞아볼까?”

정보수집 단계

"좀 싸게 처방해주는 데 없나"

삭센다는 자가 펜 주사제(3mg/ml)로 일일 0.6mg에서 시작해 3mg까지 투여용량을 서서히 늘리는 용법이다. 한 펜이 한 달 분량이라고도 알려져있지만, 증량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한 펜으로 한 달을 채우지 못할 수도 있다.

삭센다 가격은 펜당 부가세 포함 15만원 정도가 일반적이지만, 주변에선 이보다 몇 만원 더 싸게 처방받는 '능력자'들이 있었다.

능력자가 되기 위해 알아봤다.

"삭센다를 저렴하게 구매하는 것은 5개들이 1패키지를 55만원(개당 11만원, 부가세 포함)에 사는 방법이 있다. 중국인들도 와서 10개씩 사가기도 한다. 8월에 물량이 들어왔지만 보름도 못돼 품절됐다. 8월 말경에서야 물량이 들어왔다. 요즘 물량이 딸려서 병원마다 경쟁도 심한데 15~17만원하던 가격이 11만원으로 내려간 것도 이 때문이다. 제약사에선 이보다 낮은 가격으로 판매하면 물량을 주지 않겠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서대문 지역 의사-

강남 일부 의원들은 성분이 같은 빅토자를 삭센다 출시 이전부터 비만에 처방해왔다는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강남에선 비만특효약이라고 병원마다 칵테일을 제조해서 처방하기도 한다. 여기엔 빅토자도 있다. 일부 유흥업소 종사자나 연예인들이 이 주사를 맞아왔다는 건 알만 한 사람은 다 안다. 비싸지 않고 믿을만한 병원을 소개해줄 수는 있지만, 삭센다는 대기를 좀 해야 된다. 대신 빅토자는 대기 없이 가능하다." -강남지역 담당 영업사원-

미용성형에 대한 한국인의 관심은 따로 부연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이런 뜨거운 관심 속에 국내 의료진들도 세계최고 수준의 실력을 키웠다. 정부가 가능성을 엿보고 육성에 나선 해외환자 유치에 있어서도 미용성형 부문이 상당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면에는 무분별한 시술로 인한 부작용 문제도 존재한다.

이같은 상황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국내 상륙한 비만치료제는 어떤 모습일까. 불시착(?)한 장소가 미용성형의 메카인 강남이라면? 또 당뇨병이 없는 환자에 당뇨병약을 처방하는 것은 문제가 없는 걸까?

기타 등등에 대한 실태를 반드시 파악해 봐야한다고 회사에 둘러댄 후, 업무시간을 활용해 살을 빼보고자 강남으로 향했다.

실행 단계

무작정 강남역으로 왔다. 결론부터 말하면, 비만치료제는 예상보다 쉽게 처방이 가능했다.

'강남역 병원' 검색화면(네이버)

빅토자를 처방해주는 병원은 세 번의 발품을 팔은 후에 찾을 수 있었다. 세 곳 중 한 곳은 삭센다와 함께 다른 시술도 함께 받을 것을 권했고 또다른 한 곳은 삭센다가 내게 맞지 않는다면서 처방해주지 않았다.

1. 강남 OO 클리닉(원장, 일반의)

진료 접수에서부터 용기가 필요했다. 접수대 간호사부터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 모두 여자였다.

모기만한 목소리로 비만치료제를 처방받고 싶어 왔다고 말하고, 죄지은 사람마냥 고개를 숙이고 앉아 진료를 기다렸다.

'내가 당당하지 못한 건 노력 없이 약물에 의지하려는 마음에 비롯된...'

그저 아무(여자)하고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자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할 무렵, 진료순서가 됐다.

"비만약 처방을 원한다고... 한 달에 얼마나 쓸 수 있어요?"

삭센다 소문을 듣고 왔다고 말하기가 무섭게 의사는 삭센다와 함께 받을 수 있는 시술부터 소개했다. 의사는 먼저 "셀룰라이트(부분비만)가 해결돼야 혈액순환이 된다"면서 셀룰라이트 치료를 함께 받을 것을 권했다.

비용부담이 된다면 지방을 녹이는 주사(지방분해주사)를 맞으라고 했다. 삭센다만 맞는 것은 그 다음 차선책이라고 했다.

한 달에 얼마나 쓸 수 있냐는 질문에 "15만원"이라고 답하면서 삭센다만 처방하는 것으로 진료는 끝이 났다. 몸무게도 묻지 않고 앓고 있는 다른 질환 등도 묻지 않은 채 빈약한 재정상태를 파악하자마자 그렇게 순식간에 끝났다.

"삭센다 처방을 위한 검사는 없나요?"

"없어요"

삭센다는 초기 체질량지수(BMI)가 30kg/㎡ 이상인 비만 환자. 또는 한 가지 이상 체중 관련 동반질환(이상혈당증이나 고혈압)이 있으면서 BMI가 27~30kg/㎡ 미만인 과체중 환자를 위한 체중감량 보조제다.

특히 3.0mg 용량으로 12주간 투여한 후에도 체중의 5% 이상이 감량되지 않은 경우에는 투여를 중단하도록 돼 있다.

적절한 처방을 위해선 적어도 환자의 BMI는 알아야 한단 얘기다.

강남역으로 출발 전 계산해본 기자의 BMI(체중/키의 제곱)는 24.91로 '과체중'이다. 0.5kg만 더 나갔어도 25.09로 '비만'이 된다.(휴)

서양에선 BMI 30부터 비만으로 보지만 국내선 25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때문에 24.9에서 삭센다를 처방 받는 것이 안 될 것도 없지만, 반드시 처방이 필요한 대상이라고 볼 수도 없다.(물론 진료시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했으니 확실치는 않다)

"삭센다가 비만이 아닌 미용목적의 사람들에게도 투여가 많이 이뤄질 거라고 본다. 주사제인 만큼 무분별한 처방은 의도치 않은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처방 전 비만이 맞는지 신체계측을 하는 것은 기본이다. 아울러 복부비만이나 혈당, 콜레스테롤 등 비만 관련 대사적 요인에 대한 검사를 하기도 한다. 비만치료는 과정은 무시하고 결과론적인 접근만 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환자에 대한 교육뿐 아니라 의사에 대한 교육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모 대학병원 비만센터 교수-

2. 강남 OO 가정의학과(전문의)

진료 접수란에 '비만상담'이라고 사유를 적었다.

간호사의 눈치를 보며 다른 대기 환자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 크기를 가다듬고 있는데, 간호사는 예상과 달리 익숙한 듯 신속히 진료접수를 해줬다.

'일차의료 중심 만성질환관리 사업 만세!'

(실제보다 뚱뚱하게 나왔다)

이어진 진료에서 의사는 체중과 키, 다른 질환 여부 등을 모두 물어봤다. 혈압도 재고 검사를 위한 혈액채취도 했다. "술은?"

"다 술살이에요"

그리고 빅토자를 처방해 줄 수 있냐고 묻자, 검사결과와 상관없이 "바로 처방해줄 수 있다"고 했다. 당뇨가 없어도 삭센다와 똑같고 비보험 약이어서 괜찮다고 했다.

빅토자를 비만치료제로 처방하는 것은 의료법상 불법적인 행위라곤 보기 어렵다. 빅토자 성분이 임상을 통해 비만치료제로서 효과를 입증했기 때문이다. 다만 제약사가 이 허가받지 않은 적응증을 광고하면 약사법 위반이다.

원칙적으로는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범위 내에서 의약품을 처방해야하지만, 진료현장에선 의사가 의학적 근거를 토대로 허가범위를 초과해 처방하기도 한다. 논문이나 학술연구를 통해 효능이 입증된 경우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개별 사안에 따라 학문적으로 인정되지 않은 진료행위, 의료인 품위손상 등에 해당될 수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

삭센다 일부 수요를 빅토자가 메웠다는 것을 제약사는 알고 있을까. 또 의약품 이상사례에 대한 제약사의 안전성정보 수집에 있어서도 역학관계 분석에 왜곡이 생기진 않을지도 궁금했다.

회사에선 적응증 외 처방을 절대 권하지 않는다. 안전성정보수집에서도 각 이상사례에 대해 그런 상황(적응증 외 처방)을 포함한 모든 부분을 기록하고 보관한다. -노보노디스크제약 관계자-

어쨌든 삭센다와 빅토자는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런데 다음은 만만치 않았다.

3. 강남 OO 성형외과(전문의, 前대학병원 조교수)

"여기 비만치료제 삭센다 처방하세요?"

한층 자신감이 붙었다.

의사는 몸무게와 키, 생활패턴, 주로 먹는 음식 등을 모두 자세히 물어봤다.

의사는 "삭센다는 기적의 약이 아니에요"라고 운을 뗐다. 밥이나 간식문제가 아닌, 잦은 음주와 이로 인한 과식이 문제라면 삭센다는 효과가 없을 수 있단 설명이다.

"술 먹고 싶은 생각을 억제해주는 약이 아니라 말 그대로 포만감으로 식욕을 억제하는 약이에요. 처방해줄 수도 있지만, 본인한테는 헛돈 쓰는 거에요."

음주를 제외하면 삭센다를 먹을 만큼 과식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라고도 했다.

"지금 식욕억제제가 필요한 만큼 상태(배를 봤다)가 심각한 것도 아니에요"(감사합니다.)

술 마시는 습관을 비롯해 생활패턴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조언이 이어졌다.

그래도 내심 요행을 바랬던 걸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삭센다는 내장지방부터 빠진다는데..."

"내장지방만 골라서 빼는 약은 없어요. 삭센다가 이미 몸에 있는 지방을 없애주는 것도 아니고, 콜레스테롤을 낮춰준다고도 하는데 지방이 없어지면 콜레스테롤은 원래 낮아져요. 마케팅을 잘한 거야. 그 마케팅은 여기(강남) 병원들이 증폭시키는 거죠, 병원 자주 오게 해서 다른 것도 같이 시키려는 목적도 있고요."

"그럼 뭐 다른 약은 없을까요?"

"정 약을 처방을 받고 싶으면 차라리 지방흡수를 억제하는 약(지방흡수억제제)이 나을 수 있어요. 한 알에 천원 꼴이니까 열흘을 매일 먹어도 만원이 조금 넘어요. 삭센다보단 훨씬 저렴한거죠. 위에서 음식을 만나서 (변으로) 나가는 거라 몸 대사에 영향도 덜해요. 삭센다를 처방하기도 하지만 그건 맞는 사람한테 줘야죠. 간식을 손에 달고 사는 사람들한테는 삭센다가 드라마틱한 효과를 낼 수도 있거든요."

그리고 하루 한 시간만 걸으라고 했다. 이미 출퇴근과 여차저차 걷는 양이 최소 30분이니 엘리베이터 이용만 덜해도 1시간은 채울 수 있을 거라고 의사는 조언했다.

그럼에도 끝까지 '약물의 힘'을 포기할 순 없었다. "그럼 지방흡수억제제는 삭센다랑 같이 먹어도 되는 건가요?" 그러자 의사가 심금을 울렸다.

"살이 안 빠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마다 삭센다를 처방해주겠다는 병원 건물로 가요. 그리고 계단으로 걸어 올라갔다가 그냥 내려와요. 그러면 좀 도움이 될 거에요"

물론 대규모 임상을 진행해 확인한 삭센다의 효과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미국 FDA(식품의약국)도 삭센다의 안전성 및 유효성을 인정, 2014년 비만치료제로 허가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3년 장기 안전성 유효성 데이터를 허가사항에 반영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이를 적절히 잘 사용하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삭센다는 기적의 약이 아닌 체중관리를 위한 보조제다. 폭발적인 인기 이면에 일부 왜곡된 원인도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는 없을까?

‘삭센다는 이렇게 잘 나가는데’ 인슐린 주사제에 대한 환자들의 인식은 어떤지, 한 교수의 답변으로 체험기를 마친다.

체중감량을 위해선 뭐든 하네요(웃음). 인슐린 치료시기를 앞당겨야 한다는 데에 대한 환자들의 거부감은 여전해요. 성분도 같고 주사바늘도 같지만, 아마 당뇨병에 쓰라고 줬으면 주사제라며 거부했을 겁니다. -아주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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