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반우 정혜승 변호사

'문재인 케어’의 취지는 건강보험 보장성을 높여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덜자는 것으로, 취지 자체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가 국가의 모든 구성원으로부터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건강보험제도 및 의료정책 시행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을 직시하고 원칙에 따라 수정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본 연재에서는 그간 문제가 되었던 사례들을 중심으로, 문재인케어 시대에 법률적 정비가 필요한 부분들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의료법인은 의료법을 근거로 의료업을 수행하기 위해 설립된 법인이다. 즉, 의료법인이 의료기관을 개설해서 운영하는 것은 의료법에 의해 당연하다. 그런데 최근 의료법인이 설립한 병원들에 대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현지조사에 나서고 ‘사무장병원’이라는 이유로 고발하는 사례들이 발생하고 있다. 어떤 경우는 유죄판결을 받아 대법원에서 심리중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지난달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사례가 있다.

법무법인 반우 정혜승 변호사

의료법인이 병원을 하는 것은 의료인이 병원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대체 왜 사무장병원이라는 것인지 의아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들에 대해 현지조사를 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의료법위반 및 사기죄(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위반)로 기소하는 검찰의 견해에 따르면 의사 자격이 없는 자들이 단지 형식적으로 의료법인 설립을 가장하여 의료기관을 운영했기 때문에 ‘사무장병원’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보건복지부가 2017년 펴낸 의료기관 개설 및 의료법인 설립 운영 편람에 따르면 버젓하게 ‘법인형 사무장병원’이라는 개념을 상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의료인 자격이 없는 일반인이 자금을 투자하고, 표면상 의료법인을 개설하여 요양기관의 운영과 손익 등을 법인이 아닌 일반인에게도 귀속되도록 한 경우, 의료법인의 불법적 설립과정 이후 요양기관 운영과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무장병원’으로 판단, 의료기관 개설허가 취소 및 폐쇄명령까지도 가능하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의료법인은 의료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재산을 출연하여 설립할 수 있다. 의료법인은 주무관청에서 설립허가를 해야만 탄생하기 때문에 ‘표면상’ 의료법인이 개설된 경우가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그리고 의료법인은 비영리법인의 속성을 지니기 때문에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일반인에게 손익을 귀속시킬 수 없다.

만약 비영리법인의 이익이 법인 외부로 유출됐다면 그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법인 이사진의 횡령 및 배임행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익 유출 행위는 형사상 매우 중하게 처벌이 가능하며, 의료법인은 횡령 및 배임한 자들에게 그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도 있다. 요양기관의 운영과정에서 개별 불법행위가 있다면 그 불법행위에 따라 처단하면 된다. 이렇게 각각의 비위행위별로 규제할 방법이 있음에도 주무관청의 허가를 받아 설립된 의료법인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기 위해서는 의료법인이 그야말로 껍질에 불과할 정도로 실체가 없어져야만 할 것이다.

이번 무죄판결에서 법원은 바로 이 점을 지적했다. 문제가 된 의료법인은 의료인이 아닌 사람들이 재산을 출연하여 설립했다. 운영 과정에서 다소 부적절한 행위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 사실만으로 그 의료기관이 사무장병원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의료법에는 의료법인의 임원 자격을 의료인으로 제한하거나, 의료법인의 의료기관 운영 과정에서 비의료인을 배제하도록 규정한 바 없으며, 의료법인이 근거법령에 의하여 적법하게 설립되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의료기관을 개설한 후 주무관청의 관리감독을 받으며 의료기관을 실질적으로 운영하여 왔다면, 비의료인이 의료기관을 개설하여 운영한 것과 마찬가지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법원은 일부 임원의 배임이나 횡령 사실이 있다 하더라도 개별적인 위법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은 별론이며, 곧바로 의료법인의 법인격이 사라지거나 비의료인이 처음부터 의료법인의 명의를 빌려 의료기관을 개설한 것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이 판례가 의료법인의 비위행위 일체를 정당화시켜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처벌해야 할 불법행위와 의료법인 개설 의료기관의 정당성은 구분된다는 점을 명확히 밝혀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환자들의 불편을 덜어 주었다.

의료법인제도는 연혁적으로 안정적인 의료의 수급이 필요하지만 공급자(의료인)가 부족한 경우 활용돼 왔다. 따라서 많은 의료법인의 임원진은 비의료인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비영리법인이라는 제도에 익숙하지 않은 임원진이 운영상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고 불법행위를 저지르기도 한다.

그러나 단지 이 이유만으로 ‘의료법인’이라는 존재 자체를 지우고 이들이 시행한 일체의 진료행위를 무(無)로 돌려 지급된 요양급여비용 전액을 환수하고 미래의 요양급여비용 지급을 보류하는 행위는 잘못된 방향의 징벌적 처분이다.

의료법인제도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의료법인에 대한 제대로 된 관리감독의 방향을 세우는 것이 이들이 개설한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환자를 보호하고 안정적으로 의료의 수급을 조절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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