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과 본문에 ‘severe(중증)’ 단어를 넣어 주십시오.”

본지가 창간한 보건의료 전문 영자 미디어인 ‘KBR(Korea Biomedical Review)'에 최근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요청해온 내용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지난 13일 일본 다케다 제약과 개발 중인 급성췌장염 바이오 신약 ‘SB26’이 미국에서 1상 임상시험을 승인받았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에 KBR에서도 기사를 게재했는데 이에 대한 수정 요청이었다.

SB26의 정확한 적응증은 ‘중증 급성췌장염(severe acute pancreatitis)’이라는 게 이유였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국문 보도자료와 함께 해외 언론을 위한 영문 보도자료도 배포한다.

영문 보도자료에는 SB26의 적응증이 ‘중증 급성췌장염(severe acute pancreatitis)’이라고 표기가 돼있었다.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수정을 요청한 KBR 기사는 ‘급성췌장염(acute pancreatitis)’이라고 표기된 국문 보도자료에 기반해 작성된 기사였다.

즉, 삼성바이오에피스가 배포한 국문과 영문 보도자료가 달랐다는 얘기다.

학계에 따르면 급성췌장염은 장기 부전의 발생 유무와 지속 기간, 국소 합병증 발생 유무 등에 따라 ‘경증(mild), 중등도 중증(moderately severe), 중증(severe)’으로 구분된다.

중증 급성췌장염과 급성췌장염은 환자 수도 크게 다르다. 중증 급성췌장염은 급성췌장염 환자의 10~20%에서 나타난다. 이는 삼성바이오에피스가 배포한 보도자료에도 명시돼 있었다. 다만 국문이 아닌 영문 보도자료에서만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 영문 보도자료를 통해 “경증 급성췌장염은 쉽게 치료가 가능하지만, 급성췌장염 환자들 중 약 20%에서 나타나는 ’중증 급성췌장염‘은 치명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문 보도자료에는 영문 보도자료에 없는 “급성췌장염의 발생 빈도는 미국이 10만명당 24.2명, 영국이 5.4명이다. 우리나라는 10만명당 약 20명 안팎”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영문으로는 정확한 적응증 표기를 위해 ‘severe’를 추가해야 한다면서도, 정작 국문 보도자료에선 이를 생략하고 환자수도 ‘중증 급성췌장염’이 아닌 '급성췌장염' 유병률을 기술한 것이다.

그럼에도 삼성바이오에피스는 국문 기사에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 측은 “국내에선 중증 급성췌장염도 급성췌장염으로 통용되는 것 같다”면서 “국문 기사는 (수정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전했다.

국내 여러 산업 분야에서 한국 소비자에 대한 기업들의 차별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한국 소비자만 ‘봉’이라는 푸념이 이젠 익숙할 정도다.

비단 같은 제품을 비싸게 판매하는 등의 가격정책 뿐 아니라 국내, 해외 소비자를 대하는 ‘서비스’가 다를 경우에도 이같은 비판은 고개를 든다.

제약사의 정확한 정보제공도 소비자(환자), 투자자를 향한 의무이자 ‘서비스’다. 건강권이 달린 의약품 산업에선 더 민감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국내 시장과 해외 시장을 대하는 삼성바이오에피스의 태도에서 씁쓸한 뒷맛이 남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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