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보건의료의 나아갈 방향④ 통일의학센터 신희영 소장 “R&D 결합한 대북 지원·교류가 해법”

얼어있던 남북 관계가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이후 화해 모드로 접어들면서 새 국면을 맞고 있다. 특히 남북경협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며 이산가족상봉 추진과 함께 지난 4일에는 통일농구대회도 열렸다. 보건의료 분야에서의 교류·협력도 조만간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제대로 된 준비없이 이뤄지는 남북간 보건의료 분야 교류·협력은 양국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오랜 기간 단절됐던 남북 간 교류가 본격적으로 재개되기에 앞서 북한의 보건의료 현황과 문제점부터 정확히 진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북의 보건의료가 균형을 맞춰나가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해야하는지 살펴봤다.<편집자주>

북한이 비핵화 선언을 공식화하게 되면 그동안 단절됐던 남북 교류가 본격화 될 전망이다. 하지만 결핵, B형간염 등의 질병은 물론 보건의료 인프라 측면에서도 우리와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는 북한이기에 한반도 건강권 확보를 위해서라도 보건의료분야에 투입돼야 할 비용이 적지 않다. 국제기구 등에서 북한 결핵 퇴치에 사용하는 비용만 해도 연간 70억원에 달한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북한의 보건의료분야 정상화를 위해서는 최소 40조원이 들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에 서울의대 통일의학센터 신희영 소장(연구부총장)은 R&D(Research and Development) 방식을 결합한 새로운 개념의 지원·교류가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제시했다.

서울의대 신희영 연구부총장

세상 어디에도 없는 자원의 보고, 북한

신 소장은 지난 70여년간 고립돼 있었던 북한이 갖고 있는 고유한 질병패턴이 북한을 보건의료분야 ‘자원의 보고’로 만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신 소장은 ”지원·교류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돈이지만 이를 전부 세금으로 부담하려고 한다면 시혜적으로 이뤄지는 대북 지원을 반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며 ”그렇기에 북한의 자원을 R&D에 활용해 거기서 나오는 부가가치를 북한에 재투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세금으로 북한을 도와주려 하지말고 북한이 스스로의 힘으로 잘 살수 있는 기회를 줘야한다는 것.

신 소장은 ”흔히 북한의 보건의료 현황을 남한의 1980년대 수준으로 예상한다“며 ”그러나 결핵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북한을 자원의 보고라고 생각한다. 10여 종류의 결핵균을 모두 검출할 수 있는 나라는 북한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말 귀순한 북한 병사에게서 나온 수십마리의 기생충의 경우도 해외 판매를 통해 수백만불을 벌어들일 방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신 소장은 ”북한은 기생충의 보고다. 북한주민의 43.5%가 기생충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박멸된 기생충이 나오기도 한다"며 "기생충체를 샘플로 만들어 미국, 영국 등지에 팔 수 있다. 또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실체를 못보고 슬라이드를 통해 기생충 등을 배우고 있는데 이를 교육적, 의학적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인건비 등의 문제로 우리나라에서 생산하지 않는 수액줄, 약솜, 주사기 등의 제조시설도 북한에 건설하면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했다.

신 소장은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비용적인 문제로 솜, 주사기 등을 하나도 만들고 있지 않다”며 “이런 공장을 북한에 지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주고 우리나라에 공급하도록 하면 투자를 이익 창출로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다른 저개발국가와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도 했다. 북한의 보건의료 상황은 처음부터 아예 인프라 등이 없었던 저개발국가와 달리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고, 경제적 위기 등으로 붕괴된 것이기에 시설과 물자를 공급해주면 비교적 쉽게 회복이 가능하다는 것.

신 소장은 “아프리카 등과 북한은 전혀 다르다. 북한에는 중앙병원(조선중앙적십자병원)이라는 종합병원이 있으며 일차의료를 담당하는 호담당의사가 역할을 못할 뿐이지 체계는 갖춰져 있다”고 전했다.

또 “사회주의 의학은 예방의학적인 특성을 가지기에 위생개념도 여타 저개발국가에 비해 높은 편이다. 없는 자원을 공급해주면 회복이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김정은 정권이 들어서면서 신 의료기술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고, 의료진의 국제사회 SCI급 논문 투고를 독려하고 있다. 정성제약이라는 약 공장도 만들었다”면서 “지속적으로 외부에서 약품을 지원하려면 끝도 없다. 기술을 지원해 쉬운 약은 자체적으로 생산하도록 하고 일부 수출이익을 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재차 강조되는 현황 파악의 중요성

그렇지만 이에 앞서 정확한 북한 보건의료 현황에 대한 실태 파악이 이뤄져야 한다고 신 소장은 강조했다. 어떤 상황인지를 알아야 그에 맞는 방식의 지원·교류가 가능하다는 것.

신 소장은 “국제기구와 남한의 대북 원조가 시작된 지 20여년이 지났음에도 북한의 보건의료 상황이 여전한 것은 북한의 폐쇄적 특성 때문에 제대로 된 모니터링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라며 “원조의 효과성을 파악하기 힘들기에 대북지원 사업에 대한 전략을 수립하는데 있어 연속성을 가진 전략이 나오기 힘들다”고 말했다.

신 소장은 “북한에서 발표되는 보건지표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신뢰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또 남북 교류가 끊긴 사이 북한 지도부 교체에 따라 북한 사회에서도 변화가 일어났을 것”이라며 “남북 간 지원·교류가 확실한 전략 하에 이뤄지려면 먼저 전반적인 실태조사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를 위해 신 소장은 우리나라에 질병관리본부와 같은 북한의 실태조사를 담당할 팀을 꾸리고 북한 질병 데이터를 수집하고 역학관계를 조사하는 팀과 북한 내에서 제대로된 진단을 내릴 표준검사실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개별적 접근보다는 국가 주도의 컨트롤 타워 필요”

이를 바탕으로 국가 주도하에 대북 지원·교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게 신 소장의 생각이다.

이에 일부 학회들을 중심으로 의료봉사나 학술 교류 등 개별적인 접근이 시도되고 있는 데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표했다.

신 소장은 “북한 보건의료문제는 개별적·산발적으로 해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다”며 “통일부 혹은 복지부가 장기적인 플랜을 가지고 컨트롤 타워가 돼서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소장은 “컨트롤 타워가 중심이 돼 지역적으로도 고르게 지원·교류가 이뤄져야 향후 유지, 보수 등의 관리 또한 쉬워질 것”이라며 “남북이 적극적으로 협력해 북한의 보건의료를 발전시켜 간다면 10년 후에는 질병군이 달라 제약을 받던 왕래도 자유롭게 이뤄질 수 있지 않을까”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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