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의료연구소 “식약처, 면피성 대응으로 일관…발암물질 검출 천연물신약도 조치해야”

발암물질 함유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중국산 발사르탄 성분 고혈압치료제 사태로 큰 사회적 파장이 일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무능한 대처와 불합리한 제도가 혼란을 야기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바른의료연구소는 12일 성명을 통해 “환자들이 복용하는 의약품에서 발암 가능성이 있는 불순물이 검출된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면서 “하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런 위기상황에서 국민들의 마음까지 헤아리지 않고 오로지 면피성 대응만을 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위기대응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식약처는 지난 7일 유럽의약품안전청(EMA)이 고혈압 치료제의 원료의약품 중 중국산 발사르탄(Valsartan)에서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Nitrosodimethylamine, NDMA)’라는 불순물이 확인돼 제품 회수 중임을 발표함에 따라 해당 원료를 사용한 국내 제품에 대해서도 잠정적인 판매중지 및 제조·수입 중지 조치를 한다고 밝혔다.

또 NDMA는 국제암연구소가 사람에게 발암물질로 작용할 가능성 있는 물질(2A 등급)로 분류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EMA는 화하이사의 보고를 통해 이번 사태를 인지한 반면 식약처는 EMA 보도자료를 통해 이를 확인한 것이다.

바른의료연구소는 “제조소 관리규정에 원료의약품의 품질에 심각한 하자가 있을 시 바로 식약처에 보고하도록 하는 규정이 없다면, 이는 식약처의 심각한 직무유기에 해당한다”면서 “만약 규정이 있음에도 제조소가 보고하지 않았다면, 제조소에 강력한 처분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한 외국 언론이 ‘화하이가 상하이 주식시장에 제출한 기업공시에는 새롭게 도입한 제조공정에 대해 이전에 관련국의 동의를 받았고, 검출된 NDMA 양은 극미량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는데 그렇다면 이는 식약처도 화하이의 제조공정 변경에 동의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면서 “만약 식약처가 제조공정 변경에 동의했다면, 어떠한 과정과 근거를 가지고 동의했는지를 밝혀야 한다”고도 했다.

제대로 된 확인 과정 없이 ‘잠정 판매중지 및 제조중지 의약품 제품 목록’을 공개한 부분도 비판했다.

바른의료연구소는 “식약처는 EMA 보도자료를 접하자마자 제약사에 해당 원료의약품을 사용하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전격적으로 ‘잠정 판매중지 및 제조중지 의약품 제품 목록’을 공개했다”면서 “이후 현장조사를 시행, 9일 해당 원료를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된 104개 품목에 대해 판매 및 제조 중지를 해제했는데 그동안 의료기관들은 처음에 약을 교체했다가 나중에 번복하는 곤란을 겪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바른의료연구소는 “이번 사안이 아주 심각하기는 하지만 정부가 각 제품별로 사실 여부를 확인한 후 발표했어도 늦지 않았을 것”이라며 “왜 대부분 의료기관이 문을 닫은 토요일에 이런 내용을 발표했나. 덕분에 고혈압 환자들은 자신이 복용하는 약이 문제의 약에 해당하는지를 확인할 수 없어 주말 내내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고 꼬집었다.

특히 식약처의 이번 대응이 천연물신약의 경우와 대조적인 부분도 문제 삼았다.

식약처는 지난 2013년 한약재를 추출해 만든 천연물신약에서 1급 발암물질인 벤조피렌과 포름알데히드가 검출되자 ‘발암물질의 검출량은 인체에 무해하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후 국회 감사청구 의결에 따라 시행된 감사원 감사에 ‘천연물신약의 벤조피렌 저감화 조치를 취하라’고 식약처에 권고했다. 그리고 지난해 9월 확인 결과, 이전보다 검출량은 감소하긴 했지만 여전히 벤조피렌이 0.5~2.9ppb 검출되고 있었다.

결국 식약처가 1급 발암물질이 검출된 천연물신약에 대해 판매 및 제조중지 처분을 내리지 않고 지금도 환자들이 이를 복용하도록 하고 있다는 게 바른의료연구소의 지적이다.

바른의료연구소는 정부가 싼 외국 원료로 복제약을 제조해도 비싼 약가를 책정해주는 정책도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바른의료연구소는 “약가를 결정하는 보건복지부가 복제약에 원가보다 훨씬 높은 약가를, 심지어 특허 만료된 오리지널약보다 더 높은 약가를 책정해주고 있다”면서 “복지부의 엉터리 복제약 약가정책이 이번 사태를 불러온 근본 원인 중의 하나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약가우대, R&D 우대, 세제지원, 정책자금 융자 등 전폭적인 정부지원을 받는 31개 혁신형 제약기업 중 9개사가 판매정지 대상업체에 포함됐다”며 “이는 복지부 제약산업 육성정책이 신약개발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제약사가 더 많은 수익을 올리는 도구로만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바른의료연구소는 향후 이와 같은 불행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여러 제도와 정책들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바른의료연구소는 “이번 중국산 발사르탄 사태는 원료의약품 제조소인 화하이사의 책임이 제일 크다”면서 “하지만 중국 업체가 발사르탄 제조공정을 변경하고 발사르탄에서 NDMA 물질이 검출되는 과정에서 식약처가 해당 업체에 대한 관리감독을 철저히 했더라면, 사전에 예방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평했다.

바른의료연구소는 “식약처는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위기대응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이번에 문제가 된 제품 이외에도 전체 의약품에서의 불순물, 발암물질 등을 조사하여 다시는 이와 같은 충격적인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이번 사건을 계기로 현재도 1급 발암물질인 벤조피렌과 포름알데히드가 검출되는 천연물신약에 대해 정부가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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