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보건의료의 나아갈 방향② 북한의 B형간염 유병률 15%…정확한 실태조사 필요

얼어있던 남북 관계가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이후 화해 모드로 접어들면서 새 국면을 맞고 있다. 특히 남북경협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며 이산가족상봉 추진과 함께 지난 4일에는 통일농구대회도 열렸다. 보건의료 분야에서의 교류·협력도 조만간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제대로 된 준비없이 이뤄지는 남북간 보건의료 분야 교류·협력은 양국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오랜 기간 단절됐던 남북 간 교류가 본격적으로 재개되기에 앞서 북한의 보건의료 현황과 문제점부터 정확히 진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북의 보건의료가 균형을 맞춰나가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해야하는지 살펴봤다.<편집자주>

남북 간 교류가 시작된다는 것은 사람들 간의 왕래가 시작된다는 의미도 있지만 균 또한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난 2015년 우리나라에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감염사고가 발생, 전국이 메르스 공포에 휩싸여 있었지만 북한에서는 먼 나라 이야기였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감염병 실태는 어떨까. 발병률이 높은 북한의 감염병으로는 결핵 이외에도 말라리아, 기생충, 수인성 질환, 홍역 및 기타 감염병 등이 있다. 말라리아의 경우 우리나라는 퇴치 단계이지만 북한은 아직 퇴치 전 단계다. WHO에 따르면 지난 2012년 2만3,537명 정점을 찍었던 북한의 말라리아 감염자 수는 국제기구의 퇴치 노력에 따라 매년 감소하는 추세다.

지난해 말 공동경비구역을 통해 귀순하다 총상을 입었던 북한 병사의 소장에서 수십마리의 기생충이 발견된 것처럼 북한의 기생충 감염률은 우리나라의 70~80년대 수준으로 추정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탈북주민 청소년의 35.5%, 성인의 24.6%가 기생충에 감염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감염질환 중에서도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급성 감염병이 아닌 만성 감염병이라고 입을 모은다. 만성 감염병은 치료가 됐다 하더라도 면역수준이 떨어지거나 노화, 당뇨 등에 의해 언제든지 재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걸리는 순간 평생을 안고 가야 하는 만성 감염병으로는 결핵, B형간염 등이 있다. 대한간학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B형간염 감염률은 3~4%이다. 이중 만성 간염을 앓고 있는 환자는 약 40만명으로 추산된다. 우리도 1980년대에는 10%대의 B형간염 유병률을 보여왔다. 하지만 산모에서 신생아로 감염되는 수직감염을 막기 위해 임산부에 대한 B형간염 예방접종을 시행하고, 1990년도 중반부터 국가예방접종 사업을 통해 출생 후 초기부터 적극적인 예방접종을 실시한 결과, 우리나라의 B형간염 발병률은 지난 2016년 기준 인구 10만명 당 0.7명 수준으로 내려왔다(OECD 통계).

북한의 B형간염 유병률은 공식적으로는 4~5% 수준이다. 지난 2003년 WHO에서 발표한 B형간염 유병률은 4.5%였으며, 2009년 북한 정부가 발표한 자료에서는 4.7%였다. 그러나 지난 2016년 NGO에서 비공식적으로 조사한 북한의 B형간염 유병률은 15%다. 북한의 B형간염 유병률이 공식적이냐 비공식적이냐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은 정확한 실태조사를 할 수가 없어 북한 정부의 공식 발표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북한과 교류가 있었던 시기에 북한에서 ‘혈관 결찰 도구’를 요청했던 점으로 미루어 북한의 B형간염 실태가 예사롭지 못하다고 예상하고 있다.

식도로 이어지는 혈관이 팽창해 출혈이 있는 환자의 경우 즉시 내시경을 통해 혈관을 묶어주지 않으면 사망하게 된다. 이 때 사용하는 게 혈관 결찰 도구다. 전문가들은 북한에서 이를 먼저 요청했다는 점에서 북한의 만성 B형간염 환자가 많고 꽤 심각한 단계에 이른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수직감염, 소모품 재사용 등으로 감염 만연

그렇다면 이처럼 북한에서 B형간염 유병률이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국립암센터 기모란 교수는 그 원인을 ▲모자 수직감염에 의한 신생아 감염자 증가▲주사기 등 일회용 소모품의 재사용 등으로 인한 감염 만연 ▲감염자 치료 및 관리 미흡으로 인한 전파 증가 ▲혈액 제제에 대한 스크리닝 체계 허술로 수혈시 감염 발생 등으로 지적했다.

기 교수는 “모자 수직감염을 막기 위해서는 신생아가 태어나자 마자 단독백신을 맞춰야 하고 만약 산모가 보균자일 경우 백신만 주는게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항체, 이뮤노글로빈(Immunoglobulin)을 같이 줘야 한다”며 “그러나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산모(가 B형간염 보균자인지부터) 검사부터 다 해야하는데 북한은 보건의료시스템 자체가 잘 갖춰져 있지 않아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기 교수는 또 “B형간염이 혈액을 통해 전염이 되는 만큼 수혈에 쓰이는 혈액에 대한 검사가 제대로 이뤄져야 하는데 혈액제제에 대한 스크리닝 체계가 허술해 수혈을 받고 감염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며 “이외에도 주사기 같은 일회용품이 없어 재사용하고 소독약 등이 부족해 소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서 발생하는 감염도 만연하다”고 전했다.

기 교수는 “B형간염에 대한 국가감시체계가 존재한다고는 하나 간염관련 보고서를 일절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또 바이러스성 간염에 대한 국가 차원의 혈청학적인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고 보기도 힘들다”고 분석했다.

실태분석 바탕으로 영유아 감염률 낮춰가야

그렇기에 가장 먼저 북한의 B형간염 실태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게 기 교수의 지적이다.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수직감염을 막을 수 있도록 백신, 이뮤노글로빈 등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 교수는 “B형간염에 걸린 성인의 수를 낮추는 것은 현재 우리나라의 보건의료수준에서도 쉽지 않고 전세계적으로도 사례가 없을 정도”라면서 “신생아 수직감염을 줄여 장기적으로 보균자 수를 줄여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국립중앙의료원 권혁춘(소화기내과) 건강증진센터장은 “일단은 실정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건강검진을 통해 만성질환에 대해 관리를 하고 있다. 이같은 전국민 스크리닝을 통해 감염질환 해결에 대한 실마리를 잡고 유병률 등을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 센터장은 “이를 테면 거점병원이나 보건소에서 검사를 실시하도록 하고 그들을 중심으로 관리를 하도록 하면 기본적인 데이터가 모일 것”이라며 “이를 바탕으로 의료기술이 부족하다면 이를 교육하고 인프라가 부족하다면 지원하는 등 계획을 세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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