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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공포·좌절감 팽배한 응급실…“20년 전에도 이랬다”응급의학회 긴급 공청회에서 나온 현장의 목소리
  • 송수연 기자
  • 승인 2018.07.12 06:00
  • 최종 수정 2018.07.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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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이나 20년 전에도 병원 응급실은 이랬다. 달라진 걸 느끼지 못하겠다.’

전북 익산 응급실 폭행 사건을 접한 응급의학과 전문의, 응급실 간호사·응급구조사들은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익산 응급실 폭행 가해자가 뒤늦게 구속되고 경찰이나 정부가 엄중 처벌을 강조하고 있지만 응급의료현장의 기대감은 낮다.

대한응급의학회가 지난 11일 백범김구기념관에서 ‘현장의 소리, 응급실 폭행’을 주제로 개최한 긴급 공청회는 폭언과 폭행에 무방비로 노출된 응급의료진의 현실을 보여줬다.

충남의대 응급의학과 유인술 교수는 “후배들도 이런 문제에 노출되게 만들어 선배로서 부끄럽고 미안하다. 노력했지만 안됐다”며 흰 가운을 입고 헬멧에 방탄조끼까지 입은 의사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줬다. 그러면서 “앞으로 ‘때리지 마세요, 욕하지 마세요’라고 붙인 방탄조끼를 입고 진료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고려대구로병원 응급의학과 이형민 교수는 “2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도 달라진 걸 느끼지 못하겠다. 현장에서 느끼는 불안과 공포, 좌절감이 시간이 지나면 해결돼야 하는데 일선에서는 그렇게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익산 응급실 폭행 사건은 바로 오늘 밤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충남의대 응급의학과 유인술 교수는 지난 11일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대한응급의학회 긴급 공청회'에서 응급실에서 폭언과 폭행이 사라지지 않으면 미래에는 의사들이 헬멧과 방탄조끼를 입고 환자를 진료할 수도 있다고 했다.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사람 때문에 응급실은 흡사 전쟁터와 같다는 하소연도 쏟아졌다.

한 중소병원 응급의료센터장은 “음주단속에서 걸린 사람은 병원으로 와서 채혈을 하는데 시비를 걸고 진료를 방해하는 주취자들이 많다”며 “폭행으로 고소하면 그걸 취하해 달라고 스토킹처럼 쫓아다니기도 한다. 신문지에 싼 칼을 응급실 책상 위에 올려놓는 환자도 있다”고 했다.

‘주취자응급의료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서울 한 공공병원 응급의학과장은 “경찰이 주취자들을 무조건 우리 병원으로 데리고 와서 두고 간다. 응급의료센터에 경찰관이 있으면 뭐하느냐. 경찰이 보는 앞에서 여자 인턴이 주먹으로 얼굴을 맞았는데도 112에 신고하라고만 하더라”고 분개했다. 그는 “아무리 민원을 넣어도 변화가 없더니 최근 익산 응급실 폭행 사건이 터지고 나서 갑자기 열심히 한다”며 허탈해 하기도 했다.

고대구로병원 이형민 교수가 이날 공개한 응급실 종사자 대상 긴급 설문조사 중간 결과에도 이같은 응급의료현장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번 조사에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514명, 전공의 375명, 간호사 632명, 응급구조사 119명 등 총 1,642명(응답없음 2명)이 참여했다(관련 기사: 응급실이 불안한 의사·간호사·응급구조사…67%가 폭행 경험).

응급실을 찾은 환자나 보호자, 혹은 주취자에게 폭언을 듣고 폭행을 당했을 때 이들은 억울함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설문에 참여한 의사, 간호사, 응급구조사의 목소리다.

“몇 년 전 보호자에게 뺨을 맞은 후 경찰에 신고했는데 법원에서 고작 10만원 벌금형을 내렸다. 다시 이의 제기했지만 40만원 벌금형에 그쳤다. 한번 폭행을 당하면 후유증이 크다. 강력한 경찰 개입과 법원 판결이 필요하다.”

“세상의 욕은 다 들어 본 것 같다. 녹음할 수 있도록 해 달라.”

“폭행에 비해 폭언에 대한 처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료진도 누군가의 가족이다.”

“얼마 전 응급실에서 환자에게 뺨을 맞고 경찰에 신고했더니 합의하라는 얘기만 들었다.”

“성추행하는 주취 환자를 경찰에 3번이나 신고했는데 3번 다 경찰이 와서는 환자 치료하라며 그냥 갔다.”

“오늘도 응급실 돌고 새벽에 욕먹고 왔다. 여의사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냥 욕하고 반말한다. 그래도 ‘죄송해요, 곧 봐 드릴게요’라고 밖에 못 하는 게 현실이다.”

“경찰에 신고한 환자가 바로 풀려나 응급실에 보복하겠다며 찾아왔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동네 술집에서 난 싸움 보듯 하더라. 눈앞에서 폭력 행위가 일어났는데도 피해자인 의료진에게 신고할 거냐고 묻는 게 다였다.”

“구속수사가 필요하며 (가해자에 대해서는) 응급상황이 아니면 진료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의사도 사람이다.”

“경찰에 신고하고 싶어도 그 과정이 너무 힘들다. 폭행 가해자를 무조건 처벌해 달라는 것도 아니다. 처벌 이전에 경찰이 와서 상황을 정리하고 통제했으면 좋겠다.”

“보복이 목적이 아니다. 의료진과 환자 모두를 위한 일이다. 폭력 사건 한 번 일어나면 의사도 사람인지라 추후 환자 진료에도 큰 차질이 생긴다.”

송수연 기자  soo331@docdocd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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