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케어’에 대비하라①-의료‧복지‧돌봄, 통합의 시대가 온다

지난해 7월 비급여의 전면급여화를 골자로 한 ‘문재인 케어’가 발표된 이후 의료계 관심은 온통 문재인 케어로 쏠려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비급여의 전면급여화 등 건강보험정책 개편과 함께 보건복지 개편의 한 축으로 그리고 있는 게 ‘커뮤니티 케어(community care)’다. 문재인 케어와 함께 보건복지 분야 대변혁을 가져올 ‘커뮤니티 케어’가 오는 9월 윤곽을 드러낼 예정이다.

‘커뮤니티 케어’는 의료·복지·돌봄을 지역 내에서 모두 제공토록 하는 것으로, 돌봄을 필요로 하는 환자나 주민들이 자택이나 그룹홈 등 지역사회에 거주하면서 개인의 욕구에 맞는 서비스를 누리는 것이 핵심이다.

‘시설에서 지역 중심 서비스’로, ‘국가에서 지역 주도 서비스’로, ‘공급자에서 수요자 선택권 중심 서비스’로 전환을 꾀하기 때문에 의료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지금까지는 찾아오는 환자를 치료해 퇴원시키는 것이 의료기관의 역할이었다면, 커뮤니티 케어에서는 기관이 속한 지역사회 내 커뮤니티가 케어 인프라 중 하나가 돼 유기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커뮤니티 케어 공식화한 복지부…9월 종합계획 발표

보건복지부도 지난 3월 12일 ‘커뮤니티 케어’ 추진 방침을 공식화하고 종합계획 수립에 들어갔다. 아직 구체적인 방안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복지부 박능후 장관과 국민건강보험공단 김용익 이사장이 여러 자리에서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어 8월말 늦어도 9월초에는 커뮤니티 케어의 윤곽이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공개된 커뮤니티 케어의 5가지 핵심 추진과제는 ▲돌봄·복지 등 사회서비스 확충 ▲지역사회 중심 건강관리 체계 강화 ▲돌봄이 필요한 사람의 지역사회 정착 지원 ▲병원·시설의 합리적 이용 유도 ▲지역사회 커뮤니티케어 인프라 강화 및 책임성 제고 등이다.

우선 돌봄 서비스 확충과 관련해서는 장기요양 수급자를 2017년 전체 노인의 8.0%에서 2022년 9.6%로 확대하고 이후 재가서비스를 중심으로 보장성 확대를 추진한다. 통합재가급여 도입(2019년), 신규서비스 개발(이동, 외출 지원, 주거환경 개선) 등 재가서비스도 확층한다.

지역사회 중심 건강관리 체계 강화를 위해서는 장애인 건강주치의제(2018년 5월부터), 중증소아환자 재택의료 시범사업(2018년 9월부터), 동네의원 중심 만성질환 관리 강화, 맞춤형 건강관리 서비스 확대(보건소) 등이 추진된다.

이외에 병원·시설의 합리적 이용 유도를 위해 요양병원에서 만성중증환자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도록 중증환자, 감염예방, 환자안전 등의 수가를 개선하고 경증환자 기준 등 환자분류체계를 개선해 입원 필요성이 낮은 환자에 대한 수가를 조정할 예정이다.

또한 요양병원 적정성 평가에 입원 적정성 지표를 신설, 복지시설 및 장기요양기관평가 등에 지역사회 복귀 및 자립지원 노력을 평가하고, 지역사회 커뮤니티 케어 인프라 확대를 위해 돌봄서비스에 대한 종합적 안내와 연계기능 수행을 위한 돌봄 통합창구를 설치한다.

커뮤니티 케어가 현실화되면 어떻게 될까

커뮤니티 케어의 방향성은 정해졌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방안이 정해지지 않은 만큼 전문가들도 한국형 커뮤니티 케어의 모습을 단언하지는 못한다.

다만 서울연구원 김승연 부연구위원은 지난달 27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커뮤니티 케어와 보건복지서비스의 재편’을 주제로 개최한 콜로키움에서 ‘해외사례와의 비교를 통한 한국형 커뮤니티 케어 추진 방향’을 통해 앞으로 도입될 커뮤니티 케어의 모습을 예상했다.

김 연구위원이 그리는 커뮤니티 케어의 모습은 급성기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가정에서 방문간호나 재활, 맞춤형 건강관리를 받고, 집중적인 돌봄이 필요한 경우 집에서 가까운 시설에 머무르며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외출이 필요하면 가까운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하고 필요에 따라 가사지원도 제공한다. 이웃과 지역주민들이 서로의 안부를 묻고 공동부엌에서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한다.

돌봄이 필요한 사람의 경우 가까운 읍면동사무소를 방문해 서비스를 요청하면 담당공무원이 상태를 파악해 필요한 서비스를 연계해준다. 자신이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어떤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지 찾아다니지 않아도 된다. 기본적·필수적·전문적 서비스는 공공에서 책임져주고, 민간의 다양한 인적·물적 자원으로 차별화된 욕구를 충족시켜 주자는 것이다.

김 연구위원은 “커뮤니티 케어가 도입되면 원하는 곳에 거주하고 직업훈련을 받아서 직장을 다닐 수 있다. 적응기간 동안 잡코치가 근무현장에서 일을 배울 수 있게 도와주고 활동보조인이 이동과 일상생활을 도와주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김 연구위원은 “인공지능이 토론 챔피언과 맞붙어 농담도 하며 청중을 설득해 토론을 이끌어 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가상에서 있을 법한 일이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요즘 이런 커뮤니티 케어는 불가능한 요구가 아니다”며 “토론하는 인공지능보다 커뮤니티 케어가 더 먼저 우리 사회에 정착하길 기대한다”고 했다.

장기요양보험 10년, 공단도 커뮤니티 케어 도입 총력

장기요양보험 도입 10년을 맞는 공단도 복지부와 발맞춰 커뮤니티 케어 도입을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

김용익 이사장의 의지 역시 강하다. 김 이사장은 27일 열린 보사연 콜리키움에 직접 연자로 참석해 ‘커뮤니티 케어와 보건복지서비스의 재편’에 대해 강연했다.

김용익 이사장은 강연에서 “커뮤니티 케어의 주요 전략은 ‘탈 시설화’”라며 ‘시설화 대 탈시설화’, ‘전문가의 이익 대 국민의 이익’의 대결 구도를 강조하기도 했다.

특히 김 이사장은 “문재인 케어, 치매국가책임제 등이 시행되는 정치적 변화,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 등 지금이 커뮤니티 케어를 추진할 기회”라고 강조하며 “문재인 정부에서 커뮤니티 케어의 개념을 설정하고 인력과 조직 전반에 대한 제도화 및 법령 제정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복지부 박능후 장관도 “대형시설 위주로 시행되는 지금의 돌봄서비스 형태를 개선해 개인의 요구에 맞춘, 개인의 생활공간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 케어로 바꿔나가야 한다”면서 “정부도 올해 2월부터 추진본부를 마련해 본격적인 논의를 하고 있다. 올해 종합계획을 마련하고 협의체를 구성해 최대한 많은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커뮤니티 케어, 성공 위한 전제조건은?

하지만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정형선 교수는 공단 주최로 열린 ‘장기요양보험 10주년 심포지엄’에 참석해 보건과 의료가 균형을 맞춘 커뮤니티 케어를 강조했다.

정형선 교수는 “정부가 (보건의료서비스) 제공체계와 공급체계를 바꾸려고 해도 쉽게 변하지 않고 정책 변화에도 현장이 잘 따라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며 “우리보다 사회복지 등에서 수십년을 앞서 있는 일본도 지역별로 사업에 차이가 있다. 이런 점들도 잘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커뮤니티 케어 논의가 너무 복지 쪽에 치우쳤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며 “일본 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커뮤니티 케어의 실제적인 내용은 ‘간호와 의료’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만큼 (복지와 의료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임준 교수도 보사연 주최 콜로키움에서 커뮤니티 케어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일차의료 기반 만성질환관리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임 교수는 “치료중심의 보건의료체계가 한계를 보이는 데다 국민건강권 성장과 지방분권 강화 등이 맞물려 커뮤니티 케어 도입이 요구되고 있다”며 “다만 커뮤니티 케어 체계에서는 일차의료 기반 만성질환관리 모형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복지부 커뮤니티 케어 전문위원회 이건세 위원장(건국의대 예방의학과 교수) 역시 본지와 통화에서 커뮤니티 케어의 성공적 도입을 위해서는 일차의료기관의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지금은 (지역사회 연계와 관련한) 인프라가 보건소 중심이기 때문에 커뮤니티 케어 도입 초기에도 보건소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하지만 보건소만으로 진행하는 환자 케어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일차의료기관과 협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커뮤니티 케어는 의료·복지·돌봄이 통합되는 것이기 때문에 일차의료기관의 참여가 필수적이지만 아직 (일차의료기관의) 준비가 안됐다”고 우려하며 “의료계도 앞으로 커뮤니티 케어 시행에 있어 어떤 역할을 할지 지금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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