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점수 기준, 성적→자기만족도…국시 합격률 98.6%로 절대평가 우려 불식
허성택 군 “'경쟁' 아닌 '함께' 알게 해…성취 기준을 ‘자신’에게 맞추는 제도”

“'경쟁'보다 더 나아가게 해줄 '함께'를 알게 하고, 발전과 성취의 기준을 ‘자신’에게 맞추는 제도다.”

지난 22일 연세대 에비슨의생명연구센터에서 열린 ‘의과대학 학생평가제도 혁신을 위한 심포지엄’에서 연세의대 본과 4학년 허성택 군이 지난 2013년 도입한 절대평가제도에 대한 경험담을 발표하며 한 말이다.

허성택 군은 “처음에 발표를 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만약 잘못 발표하면 어떡하나 고민스러웠다. 하지만 우리가 경험한 절대평가제도에 대해 이야기 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했다.

절대평가를 경험한 학생의 발표에 심포지엄에 참석한 교수들도 귀를 기울였다.

연세의대는 지난 2014년 절대평가제를 도입했다. 1등부터 꼴등까지 줄을 세우는 상대평가와 달리 절대평가는 해당 과목을 제대로 학습했는지 확인하고 ‘pass'와 'Non-pass'를 결정한다. 과목을 pass 하지 못한다면 재학습을 통해 해당 과목을 통과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절대평가제도 도입은 쉽지 않은 일이다. 연세의대 역시 도입 초기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올해 의사국가고시 합격률 98.6%를 기록하며 절대평가에 대한 우려를 불식했다. 현재 연세의대 뒤를 이어 인제의대 역시 2016년에 절대평가제도를 도입한 상태다.

허 군은 “전교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100명이 넘게 응답했는데 학생들과 교수님들 간에 절대평가에 대한 인식 차이도 있었고, 느낀 점도 많았다”며 “학생들은 C등급 정도만 받아서 통과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교수님들은 모든 학생을 A등급으로 만들고 싶어하셨기 때문에 재학습은 물론이고 유급도 있었다”고 했다.

재학습과 유급이 존재했지만 학생들은 서로를 경쟁자로 보지 않았다는 게 허 군의 설명이다.

허 군은 “경쟁이 없다보니 옆에 있는 사람에게 아주 편하게 물어보고, 답변해줬다. 또한 (내용을)모르면 같이 찾아보면서 경쟁자보다는 협력관계라는 인식이 커졌다. 그러다보니 시험점수의 기준이 성적이 아닌 자기만족도로 바뀌었다”고 했다.

1, 2학년을 거쳐 3학년이 되면서 학생들은 남는 여유시간에 무엇을 하느냐를 고민하게 됐다고도 했다.

허 군은 “많은 학생들이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것을 찾겠다고 하더라. 연구를 하겠다는 친구들이 가장 많았고, 인턴, 복습, 봉사활동, 공부 등도 나왔다. 이외에 진로준비, 소모임 구성, 디자인외주, 공모전 등을 택한 친구들도 있었다”고 했다.

실제로 고등학교 때 피아노를 전공하다가 의대에 입학한 한 학생은 피아노앨범을 제작했으며, 또 다른 학생은 전국 의대에 공문을 보내 오케스트라를 구성하고 지휘를 맡았다. 인공지능 딥러닝을 공부하며 프로그래밍을 하는 학생, 의학용 그림을 그리면서 돈벌이를 하거나 만화를 그려 책으로 출간한 학생도 있었다고.

허 군은 “저 역시 뮤지컬에 출연했다. 많은 친구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내서 경험했다. 요즘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는 친구들이 많은데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찾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며 “학습에 도움이 안된다고 하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우리는 평생 의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알면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실제 학생들은 설문조사에서 절대평가에 대해 ▲함께 성장하는 학업문화 ▲학교가 학생을 믿는다는 생각이 되는 제도 ▲성적뿐 아니라 삶에 있어 행복과 무엇이 중요한지 알게해주는 제도 ▲발전과 성취의 기준을 자신에게 맞추도록 하는 제도라는 평가를 내렸다.

허 군은 “(절대평가는)'경쟁'보다 더 나아가게 해줄 '함께'를 알게하고, 발전과 성취의 기준을 ‘자신’에게 맞추는 제도다. '연세대 오길 잘했다'는 학생들은 절대평가제도를 그렇게 평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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