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이승우] [특집 좌담회] 지불제도 개편, 포괄수가제만이 정답인가

유럽의 다보험체제와 한국의 단일보험체제 비교 분석

참석자 :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

트라우스 더크 헨케 베를린 공대 보건경제학과 교수

페트릭 제리센 네덜란드 보건복지부 노동·경제·시장 정책 수석책임자

칼립소 차키도 영국 국립임상보건연구원 디렉터

정부는 우리나라의 단일보험체제를 의료 선진국들도 부러워 할 만큼 좋은 제도라고 평가하고 있지만 의료계는 사회주의적 의료보험제도의 정수이며 의사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침해하는 근간이라며 다보험체제로의 회귀를 주장하고 있다.

최근 의료계 전반에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를 위한 지불제도 개편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정부와 의료계가 구체적인 방법론에서 현격한 의견 차를 보임으로써 지불제도 개편 논의가 답보상태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이다.

본지는 이러한 상황에 주목해, 지난 3일부터 4일까지 대한병원협회 주최로 열린 ‘2011 Korea Healthcare Congress’에 연자로 참석한 독일, 네덜란드, 영국, 한국 등의 보건의료전문가들을 초청해 좌담회를 개최하고 그들로부터 다보험체제와 단일보험체제의 장단점, 바람직한 지불제도 개편 방향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정형선(한국)= 한국은 기존 다보험체제에서 단일보험체제로 전환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단일보험체제에 대한 찬반논란에 휩싸여 있다.

특히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는 다보험체제로 다시 회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 한국에서는 다보험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유럽 국가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정형선(한)=현재 네덜란드의 다보험체제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가.

제리센(네덜란드)= 지난 2005년 당시 30여개에 달했던 의료보험사들의 대부분이 4개의 큰 의료보험사로 합병됐고, 이들 회사들이 의료보험 시장의 95%를 나눠 가지고 있다. 나머지 시장은 5∼6개의 작은 보험사들이 점유하고 있다.

정형선(한)= 네덜란드에서 국민들이 보험사를 교체하는 것이 가능한가, 그리고 보험사를 교체할 경우 불이익은 없는가.

제리센(네)= 물론 가능하다. 현재의 의료보험체제가 출범한 첫해만 해도 전체 가입자의 8%가 보험사를 교체했다. 보험사를 교체한다고 해서 불이익을 받지는 않는다.

정형선(한)= 가입자들이 보험사를 교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제리센(네)= 역시 가장 큰 이유는 보험료다. 대부분의 의료보험은 제공하는 서비스 수준이 비슷하기 때문에 보험료가 보험가입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된다. 처음에는 1년 기본 보험료가 60∼70유로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최대 200유로까지 오른 상태이며 계속 오를 전망이다.

정형선(한)= 네덜란드는 지역을 기본으로 한 보험체제를 운영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만약 가입자가 거주지를 이동하면 어떻게 되나.


제리센(네)=법적으로 모든 네덜란드 국민은 모든 의료보험사에 가입할 수 있다. 따라서 지역을 이동할 경우 이동한 지역에서 새로 보험을 가입하면 된다. 특정한 불이익도 없다.

그러나 각 지역 의료보험사가 지정하는 병원 외의 병원을 찾는 가입자가 부담해야 하는 본인부담금은 지정병원을 이용할 때와 다르게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법적 논란이 있다. 지역을 이동한 가입자가 이동 전 지역의 의료보험에서는 지정하고 있지만 이동 후 지역의 의료보험에서는 지정하고 있지 않는 병원을 찾을 경우에 환자가 내야 하는 본인부담금이 크게 올라가기 때문이다. 현재 지역 의료보험의 지정병원 외 병원을 찾는 환자에게는 전체 진료비의 약 20%를 본인부담금으로 청구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 상황이다. 그러나 지정병원을 이용할 경우 본인부담금은 2% 정도다. 따라서 지역 의료보험 지정병원 외 병원을 찾는 경우는 거의 없다.

차키도(영국)= 의료보험 패키지는 어떻게 정하나.

제리센(네)= 의료보험 패키지는 네덜란드 의사협회가 ‘일반적인 치료’라고 정의한 것을 모두 포함한다. 현재 약 3만 4천여 개의 의료서비스 항목이 의료보험 패키지에 포함돼 있다. 원래는 9만개 이상의 의료서비스 항목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소비되는 항목이 3만 4천여 개이기 때문이다.

정형선(한)= 한국에서는 전국 어디서나 어떤 의사라도 선택해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몇 가지 제한이 있기는 하지만 환자가 원하면 1, 2차 의료기관을 건너뛰고 3차 의료기관의 의사에게 바로 진료 받을 수도 있다. 유럽 나라들은 어떤가.

헨케(독일)= 독일에서도 가입자가 원하면 담당의사를 교체할 수 있다.


차키도(영국)= 영국에서도 가능하다. 최근에는 담당의사를 교체하는 과정이 더 쉬워졌다.

헨케(독)= 영국에서는 담당의사를 교체하는데 추가비용이 들지 않나.

차키도(영)= 추가비용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보통은 같은 의료기관 내 다른 의사로 교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헨케(독)= 한국의 경우 환자들이 비슷한 시기에 여러 명의 다른 의사에게 진료 및 처방을 받음으로써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을 텐데.

정형선(한)= 그런 문제가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현재 DUR(Drug Utilization Review)제도를 시험운영하고 있다. 이 제도를 통해서 환자가 같은 기간에 복용했을 때 약품간 충돌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 의사의 처방정보가 자동으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데이터베이스로 전송·저장되고, 병원에서는 이 정보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처방약 충돌로 인한 약화사고나 과다처방을 방지할 수 있다. 단일보험체체의 장점이다.

헨케(독일)= 단일보험체제에 대한 한국의 평가는 어떠한가.

정형선(한)= 개인적으로 한국의 단일보험체제를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몇몇 학자들은 단일보험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만족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많은 인구가 좁은 지역에 밀집해 거주하고 있는 만큼 지역의 차이가 크지 않다. 따라서 단일보험체재를 통해 보다 전문적인 의료서비스를 국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고 본다. 또 단일보험체제이기 때문에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한 체제로 움직일 수 있다는 점, EDI 시스템을 통해 1년에 130억건 이상의 보험청구 정보가 한 곳으로 모여서 처리되기 때문에 수집된 데이터를 이용해 의료보험제도와 의료서비스를 개선할 수 있다는 점 등이 큰 장점이다. 그리고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사간 경쟁을 통해 효율성도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한국 국민들은 다보험체제로 돌아가기를 원치 않는다.

차키도(영)= 한국의 보험체제의 단점은 없나.

정형선(한)= 최근에는 의료비 지출의 급증이 단점으로 꼽힌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한국의 의료비 지출이 많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국인의 의료비는 GDP의 6.9% 수준으로 OECD국가들과 비교해 많은 편이 아니다.


헨케(독)= OECD 통계가 정확히 기억은 나진 않지만, 독일의 작년 의료비 지출 증가폭이 상당히 낮게 나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최근 5년간 의료비 증가폭도 그리 크지 않았다. 의료비 증가측면에서 미국의 의료제도는 매우 비효율적이다. 의료비 증가를 걱정하는 한국에서 미국 의료제도에 관심을 갖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다.

차키도(영)= 나도 그 의견에 동의한다. 미국 의료제도에서 배울게 별로 없을 것으로 보이는데 한국은 미국 의료제도에 관심이 높은 것 같다.

정형선(한)= 그것은 아마 많은 한국 의사들이 미국 의사들의 근무여건이나 급여 등을 동경해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한국의 많은 의사들이 미국에서 공부한 것도 이유일 것이다.

제리센(네)= 미국의 의료제도가 꼭 나쁘지만은 않다. 특히 의료기술과 연구성과 측면에서는 상당히 뛰어나다. 메이요병원이나 클리블랜드병원, 마운트시나이 병원들의 경우를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문제는 그 뛰어난 의료기술과 연구성과를 전국적으로 잘 확산시키지 못한다는데 있다.

유럽의 의료제도의 평균적인 수준이 미국보다 높은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단적인 예로 OECD 통계를 보면, 네덜란드의 평균수명은 최근 10년간 2년 이상(79세에서 81세로) 증가했지만 최근 미국의 평균수명은 정체돼있다.

정형선(한)= 미국의 의료제도가 비효율적이라고 비판받는 이유가 꼭 의료제도 자체의 문제에서 기인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치·사회·경제적인 요인이 더 크다.

차키도(영)= 앞에서 지적한 모든 문제들로 인해, 미국의 예방 가능했던 문제로 사망한 사망자 수가 유럽이나 OECD 국가들보다 높게 나타나는 결과를 초래했다.

헨케(독)=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5천만 명이 넘는다는 것도 큰 문제다.

차키도(영)=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다. 모든 사람은 보험의 혜택을 받아야 한다.

정형선(한)= 미국은 다른 나라와 달리 의료보험에 자유경제체재를 적용하고 있다. 그로 인해 의료비가 급증하고 있지만 정부는 급증하는 의료비를 조절할 수 없기 때문에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다고 본다.

헨케(독)= 이즈음에서 비용(Cost)과 지출(expenditure)의 차이에 대해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비용은 개인이 지불하는 것이고 지출은 정부단위의 문제다. 지출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제리센(네)= 네덜란드의 경우 병원의 지출은 증가하고 있는 반면, 개인이 지불하는 비용 증가는 적다. 때문에 의료분야에 많은 예산이 비축되고 있고 보유예산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헨케(독)= 병원의 지출과 개인의 의료비용 증가 문제는 민간병원인가 아니면 공공병원인가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본다. 민간병원은 공공병원보다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이 뛰어나다. 한국에는 민간병원이 많은가 아니면 공공병원이 많은가.

정형선(한)= 한국 병원들의 약 90% 정도가 민간병원이이고 나머지 10% 정도가 공공병원이다.

제리센(네)= 90%가 민간병원이라니 놀랍다.

헨케(독)= 아주 흥미로운 구조다.

정형선(한)= 한국의 민간병원은 비영리법인으로 되어 있다. 원칙적으로 수익을 영리목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는 뜻이다. 병원에 재투자하는 것만이 허용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영리병원이나 마찬가지로 운영되고 있어, 병원 수익을 소유주가 가져간다. 따라서 보다 높은 수익을 내기 위한 민간병원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또 한국에서는 보험이 적용되는 의료행위 이외에 비급여 행위라는 것이 있어 환자가 의료비를 100% 본인부담하는 의료행위가 허용된다. 병원들은 수익을 늘리기 위해서 비급여 행위 늘려가는 추세다. 반면 국민건강보험공단측은 비급여 행위에 대한 국민부담을 줄이기 위해 비급여 행위를 급여행위에 포함시키기 위해 의료보험 보장성을 늘려가고 있다. 이런 행태가 한국의 건강보험 재정이 계속 늘어나는 근본 원인이다.

헨케(독)= 한국의 보험재정 상태는 어떤가.

정형선(한)= 지난해 말 한국 건강보험 재정의 적자구조에 대한 대처방안에 대해서 논의하는 정책보고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다. 의료보험 관계부처 장관들도 참석한 회의였는데, 나는 회의에서 적자구조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하지 말라는 의견을 개진했다. 적자가 계속되면 보험료를 올리고, 그 반대라면 보험료를 낮추면 되기 때문이다.

차키도(영)= 한국에서 보험료가 세금 형식으로 징수되고 있어 기업체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지적이 있던데.

헨케(독)= 보험료를 고용자와 피고용자가 반반씩 내는 한국의 보험료 징수구조가 특별히 기업들에게 더 손해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러나 보험료가 세금 형식으로 징수되는 구조는 우려스럽다.

제리센(네)= 네덜란드의 보험은 재정적 측면에서 한국과 비슷한 구조다. 고용자와 피고용자보험료를 각각 50%씩 내고, 정부도 일정액을 부담한다. 세금 형식으로 징수한 보험료는 모두 합쳐서 공공재정으로 넣는다.

헨케(독)= 독일은 세금과 연금을 함께 걷어, 그 비율을 조정해서 보험재정으로 쓴다. 65세가 넘어서 퇴직을 하게 되면 고용자가 더 이상 보험을 지불하지 않기 때문에 연금에서 일정 비율의 보험료를 징수한다.

정형선(한)= 한국은 작년에 보험료 징수 기준을 단순 월급 기준에서 확대해 월급 외 수입이나 부동산 등에도 적용하고 있다.

정형선(한)= 유럽과 한국의 건강보험 지불제도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자.

한국 정부는 현재 시행 중인 행위별수가제를 단계적으로 질병군별(DRG) 포괄수가제도로 전환하려고 하고 있으나, 의료계는 협조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질병군별 수가를 높게 잡아 포괄수가제 도입을 장려하려고 하지만, 44개의 3차 진료기관들이 질병군별 포괄수가제를 거부하고 있는 만큼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제리센(네)= 질병군별 수가로는 심각도를 나타낼 수 없기 때문에 의료행위 항목을 늘리다 보니 네덜란드의 현재 급여 대상 의료행위 항목이 3만 4천여 개가 됐다.

헨케(독)= 의료행위 항목이 그렇게 많으면 진단하기 힘들지 않나.

제리센(네)= 그래서 현재는 일종의 인두제를 도입하려고 하고 있다. 보험사와 병원이 협의해서 일정 금액을 내고 그 한도 내에서 환자를 치료하자는 것이다. 즉, 인두제를 도입해서 고정 예산을 통해 영국의 1차 의료체계 같은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인두제를 유지하는 것이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차키고(영)= 영국은 포괄수가제와 유사한, 진단과 상관없는 수가인 HRG(Health Resource Group)을 가지고 있다.

헨케(독)= 독일은 82개 질병군에 대한 포괄수가제를 시행하고 있다.

제리센(네)= 네덜란드에서는 90∼95%의 병원 비용을 위험 조절 시스템을 통해 보험사에게 부담시킬 수 있다. 영국 같이 작은 나라에서는 위험조절 시스템이 필요 없기 때문에 단일보험체제가 알맞다고 생각한다.

정형선(한)= 유럽과 한국의 보건의료학자들이 모여 각자가 체험한 보험체제와 건강보험 지불제도에 대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의견들을 교환할 수 있어서 매우 흥미로웠다. 오늘 간담회를 통해 한국 보험체제와 지불제도 개편에 적용할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다. 바쁜 일정에도 갑작스런 좌담회 요청에 응해줘서 대단히 감사하다.

정리 이승우 기자 potato73@docdocd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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