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제약사 약가협상 줄다기리에 병원들만 발동동…수술 날짜 조정에 애먹기도

국내 주요 병원들에서 간암 수술에 쓰이는 조영제 '리피오돌' 재고가 바닥나면서 간암 환자들의 수술이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본지 취재결과, 서울아산병원은 18일까지 남아있던 7바이알이 모두 소진되면서 19일 현재 리피오돌이 하나도 없는 상태다.

이에 리피오돌이 공급될 때까지 현재로서는 수술을 연기할 수밖에 없다고 보고, 환자들과 상의해서 수술날짜를 연기하고 있다.

고대구로병원도 리피오돌 재고가 바닥을 보인 지 이미 3주 이상 됐다. 다만 18일 긴급히 게르베코리아로부터 10바이알을 공수해 수술이 급한 환자에게만 사용하기로 하고 여유가 있는 환자들의 수술 날짜를 조정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현재 재고가 바닥난 것은 아니지만 잡혀있는 수술일정을 고려했을 때 조만간 떨어질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일부 환자들의 수술날짜를 연기할지 검토하고 있다.

다행히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은 아직은 재고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지만 이들 병원들도 하루 수술 건수를 고려했을 때 여유로운 상황은 아닌 것으로 조사됐다.

이와 관련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현재 Drug-eluting Bead가 적절하지 않은 환자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상태가 많이 심각하지 않다면 수술을 연기하고 있다"면서 "환자들에게 필요한 약제가 들어오지 않는다고 얘기할 수도 없어 답답할 노릇"이라고 호소했다.

리피오돌은 경동맥화학색전술에 쓰이는 의약품이다. 간암 수술 환자의 60% 가량이 경동맥화학색전술을 받고 있는 만큼 간암 환자들에겐 없어선 안될 필수 약제다.

경동맥화학색전술이 아닌 Drug-eluting Bead(약물방출미세구)는 적용할 수 있는 환자가 제한적이다. 또한 Drug-eluting Bead의 경우 경험이 많은 의료진이 많지 않아 종양크기가 크고 간 기능이 저하돼 있어 부작용 염려가 있거나 재발환자인 경우 등에서는 거의 활용되지 않는다.

이에 정부와 게르베코리아와의 약가협상 줄다리기가 이어지면서 결국 환자만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대학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리피오돌 공급부족에 대한 우려가 계속해서 제기됐음에도 불구, 결국 간암수술이 많은 병원들에서 재고가 떨어지게 됐다"면서 "간암치료는 한 두 달만 늦어도 환자들이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다른 소화기내과 교수는 "고가인 항암제와 달리 리피오돌은 가격을 올린다고 해도 10만~20만원, 간암환자가 평생 쓴다고 해도 10바이알을 쓸까 말까 하다"면서 "제약사가 주장한 인상 요구가 합당한지를 떠나 환자 안전에 문제를 가져올 때까지 협상이 되지 않은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번 논란을 다국적 제약사의 횡포로 몰아가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간사랑동우회 윤구현 대표는 "일부에선 현상 비판이 아닌 다국적제약사가 나쁘다는 이념적인 비판만을 하고 있다. 리피오돌이 건강보험 재정에 큰 부담을 준다고 볼 수 없다"면서 "더군다나 특허기간이 남아있는 약도 아니다. 약가인상 요구가 과하고, 또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제네릭을) 만드려는 노력도 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한편 게르베코리아는 해외에서 리피오돌을 공수, 약품이 시급한 병원들에 공급을 하고 있지만 충분한 물량확보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게르베코리아 관계자는 "다른 국가에서 물량을 십시일반으로 가져오고 있지만 전체 수요를 충당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물품 확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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