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신의 New York Times 읽기

<나도 이별이 서툴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Final Exam: A Surgeon’s Reflections on Mortality의 저자인 닥터 폴린 첸이 최근 뉴욕타임스에 병원문화, 병원의 조직문화에 대한 글을 기고했다.

그녀는 회상하기를 90년대에 자신이 외과수련을 받을 때만 해도 병원은 변화에 대한 저항이 엄청났다고 한다. 단적인 예로 “The Hernia List”를 소개했다. 4쪽 분량의 헤르니아 수술 대기환자 목록으로 비공식적 문서였다. 수술 합병증 문제가 빈발해서 환자 한 명 한 명이 수술실에 들어가게 되기까지 끝없이 검사를 받고 전문의 진찰을 받아야 했다. 아무 문제가 없어질 때까지 수개월을 대기했다고 한다. 통상적인 수술을 받으려고 환자가 마냥 대기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 과정에서 수련의들은 아무런 힘이 없어서 아주 구식인 이 병원규정에 문제 제기를 할 수도 없었다고 회상한다.

그 당시 동료 한 명이 대기환자 명부를 휙휙 넘기다가, “야, 이 병원은 아주 코끼리야, 코끼리. 저리 가라면 저리 가야하고, 이리 가라면 이리 가야만 하잖아”라던 말이 최근에 다시 떠오른 것은 저널을 읽을 때였다. 최근 BMJ Quality and Safety지에 병원도 바뀔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좀 더 개방적이고 평등한 조직분위기의 병원문화 덕분에 환자 아웃컴도 실제로 더 좋아진다는 실증적 사실을 담은 논문을 읽으면서였다.

사실 오래전부터 환자 아웃컴과 병원의 조직 문화 연관성이라든지, 병원 내에서 직원들이 자신의 역할이나 다른 이들과의 상호작용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가 환자 아웃컴과 연관된다고 알려져 있었다. 병원의 전문가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어려운 문제는 미국의 의료정글에서 이 커다란 코끼리 조직을 변화시킬 방법이나 실제로 문화의 변화를 측정하는 방법, 그리고 과연 이 조직문화의 변화 때문에 환자 아웃컴이 달라졌다는 판단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이다. 의료기관들도 사실은 여기저기 지원을 받거나 정부의 압력을 받아서 산발적으로는 조직의 변화를 모색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많은 경우는 응급의학과 단위에서 문화의 변화를 모색하거나 정맥주사와 관련된 감염률 정도의 환자 아웃컴을 측정하는 데에 그쳤었다.

그런데 2010년대에 들어와서 예일대 보건대학원의 보건정책 및 관리 분야의 레슬리 커리(Leslie Curry) 교수를 위시해서 일단의 연구자들이 병원의 조직 문화를 표적으로 삼고 구체적인 변화 전략은 물론이고, 이런 전략의 변화를 측정하는 신뢰성 있는 방법을 발견했다. 이 전략의 수행을 ‘Leadership Saves Lives’라고 불렀는데, 이를 위해서 2년 동안 실험에 참여한 미국전역에서 선발한 10개 병원에서는 ‘Guiding Coalition’이라는 그룹을 구성해야 한다. 전체 의료기관을 직역별로 위계별로 아우르는 실행 조직이다. 병원기능을 개선하기 위해 정기적 워크샵과 토론, 포럼 등의 방법을 개발하고 이것을 임상현장에 적용하는 것이다. 2018년 발표 논문에서는 개입의 효과를 몇 개 임상과가 협진하는 급성심근경색 환자들에게서 측정했다. 다른 변수에 의한 위험도를 표준화한 사망률을 변화 조직과 그렇지 않은 조직, 그리고 전국평균사이에서 비교했다.

이 연구에서 병원 조직문화를 대별하는 지표로 사용한 5개 도메인은 1) 학습 환경 (예, 새로운 시도와 실험을 독려하고 보상하는 분위기), 2) 심리적 안전감 (예, 조직 내 대인관계에서나 조직 내에서 진실을 말해도 벌 받지 않을 거라는 공유된 믿음), 3) 상급 경영진의 지지 (예, 변화를 위한 목적과 비젼의 공유를 권장하는 분위기, 일선의 리더들에게 비전을 실험해 보도록 위임해주는 분위기), 4) 조직에 대한 헌신 (예, 다른 이유보다도, 조직원으로서의 정체성과 조직에 대한 애착 때문에 조직에서 계속 일하고 싶어하는 분위기), 5) 개선 노력을 위한 시간을 충분히 부여하기 (예, 기획하고 반성하고 피드백 하는 데에 들어가는 시간 여유를 주는 분위기) 등이다.

실제로 문화를 현저히 변화시킨 병원은 6개 병원이었는데 병원 스탭들에게 심층인터뷰를 한 결과로 변화의 일례를 들자면, 이 전에는 “내가 말했잖아”라는 식이었다면 이제는 “왜 그래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분위기라고 했다. 기존에 정립된 진료지침을 매 환자에게서 그대로 따르는 분위기가 아니라, 그런 지침이 실제로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데이터를 공유하는 것이 더 중요해지는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했다. 윗선의 관리자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고, 지지 받는다는 인식을 실제로 조직원들이 갖게 되었다고 했다. 지위에 관계없이 보다 평등한 역할 속에서 자신의 의견을 목소리로 낼 수 있는 자유도 새로 생겼다고 했다. 반면에, 변화를 끌어내지 못한 조직은 지위에 따른 권위에 대한 무조건적인 존경을 여전히 기대하고 몇 명을 집어 비난하는 경향도 달라지지 않았고 업무환경도 각자가 마치 박스에 틀어박힌 듯이 일하고 다른 데에서는 뭘 어떻게 하는지 관심도 없는 방식이 그대로 남아있다고 했다.

예의 미국 실험의 결과를 담은 BMJ Quality and Safety에 올해 게재된 논문의 공저자는 아닌데, 바로 이 Leadership Saves Lives에 기초한 사업을 영구 NHS에서 선도하고 있는 이가 있다. 영국의 앵글리아 러스킨 대학교의 닥터 패트릭 지오게건(Patrick Geoghegan)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 실험이 특징은 이런 문화의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과 실제로 환자의 생명을 더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연구에 계속 참여했던 닥터 엘리자베스 브래들리(Elizabeth H Bradley)는 Guiding Coalition이 “진실을 말해도 되는 대화의 공간, 심리적으로 편안하고 믿을 만한 공간”에서 의견을 모아 만들어낸 실천전략을 윗선에서 적극적으로 포용하여 개선의 의지를 보인다면, 병원조직 내의 이런 인간관계와 문화적인 변화가 “개선 노력 자체의 지속가능성을 추동시키기도 한다”고 말했다. 닥터 브래들리는 또, “이런 노력은 조직 내의 사람들을 한데 모아주고, 위계의 어느 위치에서나 맡을 수 있는 역할이 리더십이라고, 리더십 자체를 재정의하게 됩니다”라고 덧붙여 말했다. “그동안 우리는 최고의 의사를 데려오면 다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환자 입장에서는 스탭끼리 어떻게 대하는지 보면, 그들이 나를 어떻게 치료하고 어떻게 대할지 보여주는 하나의 강력한 시그널이 됩니다.”

Pauline W. Chen (May 31, 2018). A More Egalitarian Hospital Culture Is Better for Everyone. The New York Times.

Leslie A Curry, Marie A Brault, Erika L Linnander, et al. (2018). Influencing organizational culture to improve hospital performance in care of patients with acute myocardial infarction: a mixed-methods intervention study. BMJ Qual Saf.

Leslie A Curry, Erika L. Linnander, et al. (2015). Organizational culture in US hospitals: a mixed methods longitudinal intervention study. Implementation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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