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의료원 이상계 시설국장, 21일 'HiPex 2018'서 밀양세종과 대비 이룰 수 있던 비결 공개

병원은 항상 공사 중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병원 규모를 키우기 위한 신축이나 증축만 있는 게 아니다. 병원 내부 리모델링 공사가 더 흔하다. 정부 정책 등 외부적인 요인에 의한 공사도 있지만 환자나 의료진 등 사용자 중심으로 개선하려는 내부적인 요인도 많다.

병원은 설계부터 일반 건물과는 달라야 한다. 리모델링 공사도 마찬가지다. 시대 변화를 읽어내고 정부 정책에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 치료 경향이 바뀌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장비가 들어오기도 하고 전문 클리닉을 신설하기도 한다.

근시안적인 접근으로는 ‘돈만 날리기 십상’이다. 병원 내 건축이나 시설 전문가가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그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는 병원이 많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시설 부서 직원을 100명 넘게 둔 연세의료원은 관련 분야 전문가의 중요성을 일찍 깨달은 편이다. 시설국장이 있는 병원도 흔치 않다. 연세의료원 이상계 시설국장은 1992년 세브란스병원 시설기획팀에 입사해 27년 동안 의료원 산하 병원의 건축과 시설을 총괄해 왔다. 세브란스병원 본관, 에비슨의생명연구센터(ABMRC), 연세암병원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쳤으며 용인세브란스병원 신축 업무도 맡고 있다.

청년의사와 만난 이 국장은 정부 정책에 따라 병원 건물은 수시로 변할 수밖에 없다며 병원의 경쟁력은 소프트웨어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하드웨어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국장은 청년의사 주최로 오는 20일부터 22일까지 경기도 고양시 일산 명지병원에서 열리는 ‘HiPex 2018 컨퍼런스(Hospital Innovation and Patient Experience Conference 2018, 하이펙스)’에 연자로 선다. 이 국장은 하이펙스 둘째 날인 21일 ‘세브란스, 과감한 시설 투자로 화재를 이기다 ’란 주제로 병원 건축에 관해 이야기한다.

연세의료원 이상계 시설국장은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27년간 실무에서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병원 건축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시설 분야 전문인력 양성 필요성을 강조했다.

13년 전 시설 투자가 세브란스병원 화재 참사 막았다

지난 2월 세브란스병원에서 화재가 발생했지만 단 한 명의 사상자 없이 무사히 진화될 수 있었던 것도, ‘기본’을 지킬 수 있도록 과감히 투자했기 때문이라는 게 이 국장의 설명이다. 세브란스병원 화재는 그보다 한 달 전 발생한 밀양 세종병원 화재 사건과 극명한 대비를 이뤘다.

연세의료원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여파로 어렵던 지난 2000년 새 병원(현 세브란스병원 본관) 착공에 들어갔고 2005년 준공했다. 세브란스병원 본관은 당시 단일 병원 건물로는 국내 최대 규모였다.

이 국장은 “새 병원 건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IMF 사태가 발생해 착공 여부를 두고 내부에서 논란이 많았다. 어렵게 착공에 들어갔고 2005년 준공했다. 결과적으로는 신의 한 수였다”며 “특히 소화시설과 화재감지시설에 많은 투자를 했다. 다른 병원들과 비교해도 전국 상위권에 들어갈 정도로 소방시설 공사에 많은 투자를 했다”고 말했다.

최근 발생한 세브란스병원 화재에서 빛을 발한 스프링클러 외에도 새병원 건립 당시에는 고가여서 선호하지 않던 주소형 화재감지기를 설치했다. 당시 많이 설치하던 아날로그식 감지기는 화재가 발생한 위치를 정확히 알려주지 않고 인접한 범위까지만 알 수 있다. 하지만 주소형 감지기는 화재가 발생한 위치를 정확히 알려준다.

이 국장은 “세브란스병원 본관을 새로 지을 때 당시에는 일반적으로 쓰지 않던 주소형 감지기를 썼다. 당시 아날로그식 감지기는 1개당 1만원 이하였지만 주소형 감지기는 1개당 18만원 정도였다”며 “비싸더라도 안전한 건물로 짓자는 게 경영진의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과감한 투자에서 경쟁력이 생긴다”

이 국장은 편의시설에서 발생한 이번 화재로 또 한 번 안전을 되새기고 배우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소방시설에 투자를 많이 했지만 사각지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병원 측은 화재를 복구하면서 일정 온도 이상 올라가면 작동하는 정온식 화재 감지기를 덕트 안에 설치했다. 또 가스 소화설비도 갖췄다.

이 국장은 “편의시설 천장에 설치된 덕트(duct) 속에서 불이 난 것으로 기존과는 다른 양상이었다. 병원 시설에는 전문가지만 식당 같은 편의시설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것”이라며 “덕트 안에서 불이 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는데 이번 화재로 알게 됐다. 새로운 걸 배우게 됐고 관리 매뉴얼도 다시 만들었다. 1년에 2번씩은 덕트 안을 청소해야 한다는 내용도 넣었다”고 말했다.

이 국장은 “우리 병원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서 다른 병원들도 편의시설을 점검해야 한다. 병원에서 일반적으로 쓰는 화구 정도로는 이번과 같은 화재가 발생하지는 않겠지만 점검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화재에 대비한 소방시설을 미리 갖춰 큰 화를 피할 수 있었던 것처럼 병원의 경쟁력은 과감한 투자에서 나온다는 게 이 국장의 지론이다.

이 국장은 “연세의료원의 경쟁력은 투자에서 나온다. 과감한 투자로 경쟁력이 생긴다는 걸 경영진이 알고 있다”며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하드웨어에도 과감하게 투자해 결과를 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연세의료원 사무처 건축팀이 발간한 '세브란스 건축 TALK 1'과 '세브란스 건축 TALK 2'.

병원 건축 역사를 쓰다…“병원 내 시설 전문가 역할 중요”

하지만 투자를 많이 한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적재적소에 제대로 투자하지 않으면 오히려 재정만 낭비하고 퇴보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의료현장을 잘 아는 실무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는 게 이 국장의 지적이다. 그래서 의료기관 대부분이 시설 관련 업무를 외부 용역으로 넘기는 현상이 안타깝다고 했다.

이 국장은 전체 공사 기간을 좌우하는 습식공사 기간을 줄이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지난 2013년 방수공법을 개발해 특허까지 냈다.

“병원과 일반 건물 건축은 다르다. 간호사가 어떤 의료행위를 하는지 알아야 동선에 따라 방을 설계할 수 있다. 수술실에는 어떤 장비들이 들어가는지도 알아야 한다. ‘메디컬 플래너’가 그런 역할을 한다. 하지만 설계와 시공은 또 다른 얘기다. 설계대로 시공하다 보면 수정해야 할 사항들이 생긴다. 그래서 병원 내 이 두 분야를 모두 아는 시설 전문 인력이 있어야 한다. 설계와 시공, 감리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생겼을 때 이를 조정하고 협업할 수 있도록 이끄는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 하드웨어가 받쳐주지 않으면 의사도 제대로 환자를 진료하기 힘들다. 의료진이 쾌적한 환경에서 진료할 수 있도록 만드는 역할을 우리 같은 시설 전문가들이 한다.”

“건물이 곧 그 병원의 역사”라고 말하는 이 국장은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지난 2013년 2월 완공된 에비슨의생명연구센터를 신축하면서 일어난 일들을 담은 ‘세브란스 건축 TALK 1’(2014년 3월)과 2014년 2월 완공된 연세암병원 건축 에피소드를 담은 ‘세브란스 건축 TALK 2’(2015년 12월)를 부서원들과 함께 발간했다.

“연세의료원은 병원 건축을 가장 많이 한 곳 중 하나다. 그래서 병원 건축 역사의 장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앞으로도 세브란스 건축에 대한 토크를 이어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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