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처벌 두고 “직업 수행의 자유 침해” VS “의사는 태아생명 보호해야 할 의무 있어”

6년만에 다시 헌법재판소 심판대에 오른 낙태죄 위헌 여부에 대해 청구인과 이해관계인 간 치열한 공방이 펼쳐졌다.

특히 낙태를 시행한 의사의 처벌을 두고 청구인 측은 의사의 직업 수행 자유를 침해한다는 입장인데 반해 이해관계인인 법무부는 의사의 낙태 시술이 일반인보다 비난가능성 더 크기에 법 조항 유지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헌재는 지난 24일 오후 2시부터 대심판정에서 형법 제269조 제1항 등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공개변론을 진행했다.

이 사건을 청구한 산부인과 의사 A씨는 2013년 11월경부터 2015년 7월까지 69회에 걸쳐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업무상승낙낙태 등)를 했다는 이유로 기소됐다.

A씨는 1심 재판 중 제269조 제1항, 제270조 제1항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하면서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했으나 그 신청이 기각되자 지난해 2월 8일 위헌확인을 구하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이날 공개변론의 쟁점은 부녀의 낙태를 처벌하는 자기낙태죄 조항(형법 제269조 제1항) 및 의사 등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한 동의낙태죄 조항(형법 제270조 제1항)이 각각 임부의 자기결정권, 의사의 직업 수행의 자유 등을 침해하는지 여부였다.

A씨 측 법률대리인은 “태아는 그 생존과 성장을 전적으로 모체에 의존하므로 모와 별개의 생명체로서 동등한 수준의 생명이라고 볼 수 없다”면서 “또 자기낙태죄 조항은 여성이 임신·출산을 할 것인지 여부와 그 시기 등을 결정할 자유를 제한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낙태죄가 여성의 자기결정권 뿐 아니라 건강권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A씨 측 법률대리인은 “세계보건기구 2015년 자료에 따르면 낙태의 원칙적 금지가 모성사망률을 높이는 반면 낙태에 대한 접근이 용이해지면 모성사망률이 감소된다”면서 “이는 안전한 시술이 가능한 의료기관에서 의사에 의해 수술을 받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의사의 처벌을 규정한 동의낙태죄와 관련해선 “일반인에 의한 낙태는 의사에 의한 낙태보다 더 위험하고 불법성이 큼에도 불구하고 의사에 의한 낙태를 가중처벌하는 의사낙태죄 조항은 평등원칙에 위반되고 의사의 직업 수행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위헌 결정을 해 달라”고 했다.

청구인 측 참고인으로 출석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고경심 이사도 낙태로 인한 처벌의 부당함을 지적하며, 낙태 비범죄화를 통한 여성 건강 및 모성 보호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고 이사는 “낙태의 처벌은 낙태를 근절하는 효과는 없고 오히려 안전하지 않은 낙태로 이어져 여성에게 건강상의 문제를 발생시킬 위험이 있다”면서 “낙태를 처벌함에 따라 낙태에 대한 올바른 정보가 제공되지 않고 적절한 의료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아, 특히 10대 청소년 여성, 장애인 여성, 경제 취약계층 여성 등 사회적 약자에게 건강상의 위해 및 존엄성에 위협을 줄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태아는 산모와 별개의 생명체이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므로 태아에게도 생명권이 인정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법무부는 “태아의 생명보호는 매우 중요한 공익이고, 낙태의 급격한 증가를 막기 위해서는 형사처벌이 불가피하다”며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모자보건법에 따라 예외적으로 낙태시술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법무부는 이어 “낙태를 어느 범위에서 예외적으로 허용할 것인지는 우리 사회 전체가 합의를 도출해야하는 문제로서 입법 재량이 인정되는 영역”이라며 “의학의 발전으로 모체를 떠나 태아의 생존 가능성이 증가하고 있으므로 임신 초기의 낙태를 전면 허용하는 것은 부당하고,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낙태를 허용한다면 이는 사실상 낙태를 허용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에 이 역시 부당하다”고 했다.

법무부는 동의낙태죄에 대해서도 ‘유지가 합당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낙태 시술의 대부분을 의사 등이 행하고 있고 태아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자가 낙태 시술을 하는 경우 비난가능성이 일반인보다 더 크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의사낙태죄 조항 역시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낙태죄에 대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위헌이라는 주장은 서로 다른 문제”라며 “오늘의 공개변론이 낙태 문제에 대한 더 올바른 방향으로의 논의의 시작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법무부 측 참고인인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정현미 교수는 낙태죄 자체를 위헌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을 표했다.

정 교수는 “낙태 자체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거의 모든 입법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면서 “헌법과 형법에서 생명권을 중요한 법익으로 보고 있기에 낙태를 처벌하는 자기낙태죄 조항 자체를 위헌이라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낙태의 예외적인 허용한계를 규정하고 있는 모자보건법은 그 허용범위가 너무 좁으므로 사회적·경제적 적응사유를 추가하거나 임신 초기(임신 12주 이내)의 낙태를 허용하는 등 허용한계의 확대가 필요하다”면서 “의사들에 대한 처벌 문제도 모자보건법이 개정돼야 해결이 가능하다”고 했다.

한편 지난 2011년 11월 헌재는 해당 조항과 관련해 공개변론을 진행했으며, 2012년 8월 헌법재판관 4대4 의견으로 합헌 판결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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