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제·희귀약 '허가-평가연계제도' 활용 전무…시장 상황 따라 자진 취하하기도

다국적제약사들이 항암제 및 희귀의약품 등에 대한 환자의 접근성 향상을 외치며 신속한 급여등재를 위해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작 등재기간을 앞당길 수 있는 '의약품 허가-보험약가 평가 연계 제도'는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의약품 허가-보험약가 평가 연계 제도'란 제약사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 이전에 안전성·유효성 심사결과를 근거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약제 요양급여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식약처 품목허가와 요양급여를 위한 심평원 평가가 동시에 이뤄질 수 있기 때문에 제품 출시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제약사들이 약가 산정을 위한 정확한 근거를 함께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다국적제약사들이 제품 출시 및 급여가 되기까지 소요기간을 단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항암제 등에 대해서는 의약품 허가-보험약가 평가 연계 제도를 활용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보건복지부 곽명섭 보험약제과장은 최근 다국적제약사 출입 기자모임과의 간담회에서 “제도적으로는 허가와 동시에 급여신청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지만 제약사들이 전략적으로 이를 활용하지 않고 식약처의 허가 후 급여 신청을 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심평원과 복지부가 신속하게 약제 급여등재를 위한 심사를 하지 않는 것처럼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꼬집었다.

복지부에 따르면, 급여등재 소요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지난 2014년 9월 시행된 ‘의약품-허가 보험약가 평가 연계제도’에서 항암제나 희귀의약품의 신청건수는 단 한건도 없다.

또한 보험등재 절차에서 자료를 보완하는 과정에서도 심사기간을 고의로 늘리거나 전략적 판단에 따라 자진 취하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제약사들이 보다 높은 약가를 받기 위해 급여시기를 저울질하거나 다른 제품과의 경쟁을 고려해 적응증을 조율하기도 한다는 게 복지부의 지적이다.

뿐만 아니라 복지부는 다국적제약사들이 국내 약가가 OECD나 A7(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등 외국의 비교대상국가의 약가보다 크게 낮다고 주장하고 있음에도 이를 뒷받침할 명확한 근거는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6년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는 '제약산업발전과 환자접근성 향상을 위한 약가제도 개선방안'을 통해 국내 약가가 OECD 평균가격의 45% 수준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외국은 이중가격제도 등 한국과 상이한 제도로 실제약가를 파악할 수 없는 만큼 외국의 실제약가는 밝히지 않은 채 이들보다 약가가 낮다는 업계의 주장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고려대 약학대학 최상은 교수도 지난해 심평원이 발주한 ‘제외국과의 약가수준 비교 평가 및 지침 개발 연구 결과보고서'를 통해 항암제 등 고가 협상 대상 약제는 가격의 불확실성이 커 실제 가격 파악이 불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복지부 곽명섭 과장은 "외국의 약가와 비교해 국내 약가가 지나치게 낮은 수준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제약사에서 해외(고시가가 아닌) 실제약가를 공개하고 협상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며 "정부에서도 외국의 정확한 약가를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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