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타 전문직과의 형평성 및 직업윤리면에서 일반 형사범죄시 면허 규제 강화 필요”

법조계가 일반 형사범죄를 저지른 의사에 대한 면허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서 논란이 예상된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의료계와의 논의를 통해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권미혁 의원과 대한변호사협회는 27일 국회 의원회관 제9간담회의실에서 ‘의사의 형사범죄와 면허 규제의 문제점 및 개선방향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참석자들은 현행 의사 면허 규제 범위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의사의 직업 윤리성과 타 전문직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의료법에서는 허위진단서 등의 작성, 위조사문서 등의 행사, 낙태, 업무상비밀누설,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의료비 부당 청구, 면허증 대여, 리베이트 수령 등을 위반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 받은 경우를 의료인 면허 결격사유 및 면허취소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즉, 횡령, 배임, 절도, 강간, 업무상과실치사상 등의 형사범죄나 일반 특별법 위반 등으로 금고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더라도 의사 면허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변협 인권위원회 박호균 위원(법률사무소 히포크라)은 “우리나라 전문직 대부분의 경우 형사적으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 받은 경우 전문직과 관련한 등록이나 자격이 취소되도록 돼 있다"며 "하지만 의료인은 일반 형사범죄나 일반 특별법 위반으로 금고 이상의 처벌을 받더라도 면허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 이에 사체를 유기하거나 성범죄를 저질러도 의사 면허를 취소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가 부족하다. 의사는 만능 직업인가”고 반문했다.

박호균 위원은 “의사가 파산하거나 의도적으로 환자를 살해하더라도 현행법 하에서는 그 자격을 규제할 수 없다”면서 “이같은 법적 공백 상태에 계속 눈을 감는 것은 의료계를 포함한 국민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윤리적이지 못한 의료인에게 생명과 건강이라는 최우선의 가치를 맡길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박 위원은 “의료법 개정을 통한 면허 규제는 의료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의료인을 포함한 모든 국민들이 어떻게 하면 올바른 의료제도를 보유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라며 “일반 형사범죄나 특별법 위반 등으로 형사처벌을 받게 된 의료인에 대해 면허 취소와 같은 행정처분이 가능하도록 의료법을 개정해 의료인의 직업윤리가 바로설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으로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

덧붙여 “일부 의료인들이 면허 규제 강화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가질 수 있으나 향후 의료법 개정으로 면허취소 처분이 가능하게 되더라도, 일정기간 경과 후 면허 재교부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지나친 규제라는 막연한 비판은 옳지 않다”고 했다.

타 전문직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됐다.

채근직 변호사는 “의료인의 윤리성이 변호사나 심지어 공인회계사, 세무사, 법무사 등의 윤리성보다 약해도 괜찮다는 어떠한 근거도 찾을 수 없다”면서 “타 전문직들이 수용하는 결격 사유를 의료인이 수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결격사유에 대해 임의적 면허취소가 아닌 필수적 면허취소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면서 “아무쪼록 의료인들이 스스로를 높게 인식하고 결격사유를 높게 규정하는 게 윤리성을 높이고 자존자대(自尊自大)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직업윤리 측면에서 의료인 면허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변협 인권위 강현철 위원(법률사무소 공명)은 “의료인은 단순한 자영업자가 아닌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구하고 국민의 건강을 증진하는 전문직으로 개인의 건강과 공공의 보건복지에 꼭 필요한 의료를 제공하기에 의료의 독점권이 보장되고 있는 것"이라며 "때문에 다른 전문직 못지않은 직업윤리가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강 위원은 “이는 이미 의사윤리강령 및 의사윤리지침을 통해 의료인에게도 수용돼 있다"며 "따라서 의사들도 타 전문직과 같이 형사범으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 받은 경우 이를 자격의 결격사유 및 등록취소 사유로 규정하도록 의료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강 위원은 “이러한 방향의 의료법 개정안은 윤리라는 이름으로 의료인을 옥죄기 위한 게 아니다”라며 “의료인이 전문가로서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지게 될뿐더러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확보하고 사회로부터 전문가로서 인정받고 존경받는 관계를 형성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면허 규제 강화가 능사는 아니라고 반박했다.

대한소아청년과의사회 임현택 회장은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 이후 의사 잡는 법안만 나오고 있는데 과연 이러한 법안들이 불행한 사고를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단언컨대 만 2년 내에 신생아중환자실에 소청과 의사들이 없어 무수히 많은 미숙아들이 생명 잃게 될 것이다. 그 아이들을 죽게 만든 사람은 의료현장을 모르고 문제만 터지면 처벌하려는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라는 것을 명심해달라”고 했다.

한편 복지부는 면허 규제 강화는 의료계와의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 오성일 서기관은 “오늘 행사의 발제나 토론이 법조계 인사들로 구성됐고 의료계는 여러 사정으로 참여를 하지 않았다”면서 “정부 입장에서는 당사자인 의료계 입장을 정확하게 수렴하지 않아 결론지어 말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다만 “앞으로 공론화 과정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검토해야 할 문제들이 있을 것 같다”면서 “먼저 형사처벌과 행정처분의 연계성을 얼마나 가져야할지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형사처벌과 행정처분의 병과는 가능하지만 어느 범위까지 이를 확대할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의료행위에 대한 특수성도 고려해야 한다”면서 “의사들이 침습행위를 하고 있는데 진료과별로 그 위험도가 다르다. 규제 강화가 자칫 특정 과목에 대한 기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법 개정으로 인한 사회적 이익을 고민해 봐야 한다”면서 “환자 입장에서는 문제를 일으킨 의사들에게 진료를 받지 않을 수 있지만 소극적·방어적 진료, 특정 진료과 기피들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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