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종희 교수 "유전자 기술 발달로 진단 가능성 높아져…각 지역 아우를 컨트롤 타워 필요"

# 지난달 14일 서울 강남 한독빌딩 지하에 위치한 한 강의실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어떤 이는 유모차를 끌고, 어떤 이는 다소 불편해 보이는 몸을 이끌고 빈 자리를 채웠다. 강의가 시작되자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눈과 귀는 연단으로 향했다. 간간히 아이들의 칭얼댐과 울음소리가 들렸지만 눈살을 찌푸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그저 강의에 집중할 뿐이었다. 1시간여의 강의가 끝나자, 청중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질의응답이 강의시간 만큼 길어졌지만, 연자는 힘든 내색 없이 청중들의 질문에 일일이 친절하게 답을 해주고, 청중은 누구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이는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채종희 교수가 ‘희귀질환 척수성근위축증의 발견과 치료’라는 주제로 진행한 강연의 모습이다.

척수성 근위축증은 척수와 뇌간의 운동신경세포 손상으로 인해 근육이 점차 위축되는 신경근육계 유전질환으로, 10만명 중 1~2명 발병하는 질환이다. 인지는 정상이지만 신체의 근육 긴장성이 저하되고 근육이 약해지며, 혀 근육 수축 등이 일어나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희귀난치성 질환이다. 국내에는 환자수조차 정확히 집계된 바가 없다. 병원 진료를 받는 이들을 고려할 때 대략 200~300명 정도의 환자가 있지 않을까 추정될 뿐이다.

국내에 환자 수가 많지 않음에도 강연에 40~50명이나 자리한 이유는 간단하다. 정보에 목말라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 척수성근위축증 치료제가 국내 허가를 받으면서 이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보호자들이 모이게 된 것이다.

척수성근위축증 가족이라고 밝힌 한 청중은 기자에게 “(척수성 근위축증에 대한) 정보를 전문가들로부터 들을 수 있는 자리가 흔치 않다. 이에 강의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만사를 제치고 왔다”고 말했다.

이에 이날 강연에 나선 채종희 교수를 만나 희귀질환 환자들의 현실과 최근 치료제가 등장해 해당 환자들의 관심이 높은 척수성 근위축증 치료 등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서울대 어린이병원 소아청소년과 채종희 교수

- 최근 희귀질환 유전자 검사 기술들이 발전하면서 관심도 높아졌다.
분자유전학 등 과거보다 (희귀질환) 진단 기술이 크게 향상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아직 ‘미진단 희귀질환’의 영역이 남아있다. 국내에서 희귀질환 관련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도 2008년 정도다. 이후 10년 간 많은 노력과 연구를 통해 희귀질환 진단 분야가 크게 발전했지만, 아직도 ‘unmet needs’로 남아있는 사각지대가 미진단 희귀질환이다. 2012년 미진단 희귀질환 관련 국제학회(International Rare Disease Research Consortium, IRDiRC)가 만들어졌고, 한국도 여기에 참여하고 있다.

- 희귀질환 진단 가이드라인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맞다. 때문에 국내 희귀질환 환자들은 경험이 많은 의료진을 찾아가는 편이다. 최근에는 국내 희귀질환 의료진 간 네트워크가 활발해져 정확한 진단을 위해 서로의 병원에 환자를 보내 함께 진단하기도 한다. 서울대 어린이병원의 경우, 작년부터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이 화상회의를 통해 환자의 동영상 등을 함께 검토하며 논의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진료에 활용하고 있다.

- 희귀질환 진단이 특히 어려운 이유는.
희귀질환은 증상이 복잡하고, 환아 성장에 따라 증상이 변한다. 따라서 환자가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질환을 진단하는 마음으로 진료를 해야 한다. 환자를 지속적으로 관찰하면서 의심되는 질환이 뚜렷해지면 적절한 유전자 검사를 해야 진단이 이뤄지는 것이다.
그러나 환자들이 바로 진단이 안 되면 병원을 옮겨 동일하거나 불필요한 고가 검사를 중복으로 받는 경향이 있다. 운 좋게 다른 병원에서 빠르게 진단을 받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 계속 병원을 옮기면 정확히 진단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점점 낮아진다. 희귀질환을 가장 빠르게 진단 받는 방법은 의료진을 믿고 2~3년간 계속 한 병원을 다니는 것이다. 미진단 희귀질환 진단 기술도 많이 발전했고, 대다수 국내 3차 병원의 (진단) 수준도 비슷해졌다.

- 미진단 희귀질환 진단 시스템도 필요해 보인다.
미국은 국립보건원(NIH)을 하버드 의학대학원을 미진단 희귀질환 컨트롤 타워로 지정하고, NIH가 여러 지역 우수한 병원들과 MOU를 맺어 관리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도 올해 처음으로 미진단 희귀질환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연구사업을 진행한다. 이 사업을 맡게 됐는데, 미국과 같은 시스템이 국내에 정착될 수 있도록 틀을 마련하고 싶다.
진단이 어려운 희귀질환 환자를 컨트롤 타워로 보내 여러 의사가 함께 고민해 진단하고, 바로 진단이 어려울 경우 연구팀의 도움을 받아 질환을 찾아내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종류의 희귀질환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의료진이 환자 한 명을 진료하는 시간이 길어져야 하고, 충분한 보상도 이뤄져야 한다.

- 미진단 희귀질환의 진단율을 높이기 위한 시스템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한다.
앞서 언급한 연구사업이 진행되는 3년 간 각 지역 여러 의료기관의 희귀질환 전문가들에게 미진단 희귀질환 진단 프로그램을 홍보하고, 상호 신뢰를 구축하는 작업을 하려고 한다.
과거 이런 연구사업은 물론 연구비 지원도 없었기 때문에 미진단 희귀질환 환자를 지방에서 서울로 보내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의료진이 많았다. 서울이나 더 큰 병원에 보내도 결국 진단을 못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유전자 진단 기술이 상당히 보편화돼 지방에서도 희귀질환을 진단할 수 있지만, 미진단 희귀질환의 경우 기존 진단 기술의 한계를 넘어 R&D가 필요한 경우도 분명히 존재한다. 진단이 어려운 환자가 있으면 의료진 혼자 고민하기보다 환자를 다른 병원에 직접 보내거나, 혈액 샘플이나 환자 검사지 등을 보내 서로 협력할 필요가 있다.

인프라 부족으로 진단이 어려운 환자들은 컨트롤 타워로 보내주고, 컨트롤 타워도 환자를 진단한 뒤 원래 병원에서 치료할 수 있도록 돌려보낸다는 신뢰관계 구축이 필요하다. 컨트롤 타워 혼자 희귀질환 연구 자산을 독식하는 것이 아니라 전 지역과 나눈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환자를 빼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진단 후 치료는 기존 병원에 맡기는 신뢰를 쌓아야 한다.

이러한 시스템이 잘 구축되려면 국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연구비 지원과 인력도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 지역 병원에 편지 한 장 쓰는 작은 일도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다. 현재 부족한 희귀질환 전문 인력이 더 늘어나 환자도 열심히 치료하고 연구도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

- 희귀질환은 진단이 어렵다 보니 안타까운 상황도 많이 목격했을 것 같다.
희귀질환 환자들은 산정특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미진단 희귀질환 환자들은 아직 희귀질환으로 진단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산정특례 혜택 적용 대상이 아니다. (환자가) 희귀질환인 것은 모두가 알지만, 진단명이 없기에 발생하는 사각지대인 것이다. 그래서 고가의 검사비용과 치료비용을 모두 환자가 부담한다. 희귀질환 전문의가 ‘미진단 희귀질환’으로 진단하면 이 환자들도 희귀질환 산정특례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면 좋겠다.

- 희귀질환은 치료제가 나와도 고가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급여 적용이 쉽지 않다고 들었다.
희귀질환 치료제가 일반 신약 대비 급여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인 것은 맞다. 그러나 보건당국이 과거보다는 급여에 우호적인 입장으로 변한 것도 사실이라 굉장히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다만, 급여 심사 과정에 있어 심평원 등이 합리적인 기준을 적용해 판단하고 있는지는 한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 희귀질환 환자는 오프라벨 처방이 많다고도 들었다.
희귀질환 치료제의 개발은 처음부터 새로운 치료제를 개발하는 경우와 다른 질환의 치료제로 사용되던 약의 적응증을 확대하는 두 가지로 이뤄진다. 두 번째 경우 기존 치료제를 검토해 다른 적응증이 밝혀지는 경우인데, ‘drug repositioning’이라고 부른다. 새롭게 발견된 적응증에 대한 의학적 증거가 충분하면 의료진은 오프라벨로 처방을 하는데 대부분 심평원에 의해 삭감되고 삭감의 기준 또한 일정하지 않다. 오프라벨 처방이다 보니 환자의 비용 부담도 당연히 매우 클 수밖에 없다.

오프라벨 처방 시 심평원의 삭감을 줄이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서류작업이 수반돼야 한다. 충분한 의학적 증거가 이미 존재해 의료 전문가들 사이에 합의가 이뤄졌음에도 의미 없는 문서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도 최근 5년 간 불편하고 복잡한 서류작업을 통해 지금까지 2개 치료제의 급여 기준을 바꿔냈다.

심평원 내 소수의 전문가가 희귀질환의 진단과 치료에 대해 일괄 심사하는 지금의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희귀질환 전문의지만 내 분야가 아니면 모르는 경우도 많고, 치료의 목표와 가이드라인 또한 매우 빠르게 변한다. 이 모든 것을 심평원 내 한 두 명의 전문가가 모두 파악하고 있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프라벨 처방에 대한 삭감 기준 또한 들쑥날쑥 한 것이다. 비전문가인 심평원을 설득하기 위해 삭감에 대한 반박자료를 6개월 넘게 정리해 보내면서 화가 나는 순간들도 정말 많았다.

- 현재 유일한 척수성 근위축증 치료제 스핀라자가 국내에도 허가됐다. 치료제 개발 전 척수성 근위축증 환자들은 어떻게 치료 받았는가?
기존 척수성 근위축증의 치료는 질병에 대한 치료가 아니라, 합병증으로 인해 사망하는 케이스를 줄여보고자 합병증을 ‘관리’하는 개념이었다. 스핀라자는 척수성 근위축증을 ‘치료’하는 약물이다. 척수성 근위축증은 질환의 원인이 되는 부위가 지엽적이고, 머리나 심장에는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발병 부위에 직접 투여할 수 있는 약물까지 개발된 삼박자가 갖춰진 질환이다. 약물은 발병 부위에만 작용하도록 직접 투약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데, 그런 면에서 척수성 근위축증과 스핀라자의 개발은 치료에 있어 매우 효과적이고 이상적이다. 스핀라자를 잘 사용하게 되면 척수성 근위축증은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질병이 될 것이다.

- 국내에서 스핀라자의 임상시험을 담당하고 있다고 들었다.
현재 국내에서 스핀라자 임상에 참여하고 있는 환자는 총 3명이다. 아직 진행 중인 임상이기 때문에 결과를 자세하게 공개하는 것은 어렵지만, 치료 후 눈에 띄게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 운동기능도 많이 개선되었고, 생존율도 약 2배 가까이 늘어났다.
스핀라자 치료로 척수성 근위축증을 단번에 완치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증상이 심각한 1형 환자들의 상태를 다소 증상이 가벼운 2형, 3형 정도로 개선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 스핀라자 역시 고가의 약제라는 점에서 환자들의 부담이 적잖을 것 같다.
스핀라자가 워낙 고가(미국 내 약값만 연 7억~8억원)이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급여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정부에서는 우선 사전 승인을 하고, 사후 평가를 통해 치료제의 유효성을 계속해서 추적할 필요가 있다. 최대한 많은 환자가 치료 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논의하되, 급여기준을 명확하게 세우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그렇게 해야 스핀라자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환아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스핀라자는 척수성 근위축증 환자가 꼭 써야만 하는 이상적이고 유일한 치료제이다. 이 치료제의 효과가 여러 국가에서 입증되면 비슷한 방식으로 연구개발을 하는 다른 척수성 근위축증 치료제도 출시될 수 있다. 제약사 또한 더 많은 환자들이 스핀라자를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현재 스핀라자가 직면하고 있는 약가 관련 이슈도 조금 나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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