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학교육연합회 안덕선 부회장(한국의학교육평가원장)이 본 다나의원 사태

다나의원 C형간염 집단 발생 사건을 계기로 의사 면허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협의체를 구성해 내년 2월까지 면허관리 강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기도 했다.

이같은 움직임에 의료계는 불편한 시선을 보이고 있다. 정부 주도로 또 다른 규제가 마련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한의사협회는 면허신고제를 강화하는 것보다는 자율징계를 통해 정화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의협은 연수교육(보수교육) 강화 방안을 마련해 2016년부터 적용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자율징계권만으로 ‘문제 의사’를 걸러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많다. 이 때문에 면허관리기구 설립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의학교육연합회 부회장인 안덕선 한국의학교육평가원장(고대안암병원 인문의학교실)은 최근 본지와 인터뷰에서 우리나라도 독립된 면허관리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법정단체이면서 이익단체인 의협에 대한 역할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했다.

- 다나의원 사건 이후 복지부가 ‘의료인 면허신고제 개선 협의체’를 구성해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협의체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전문직 내에서 치고받고 싸워서 만들어내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다나의원과 같은 사건은 앞으로도 계속 터질 것이다. 의료기술이 발전하면서 고도의 위험성이 따르는 것도 많다. 적당한 규제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관이 주도하는 때는 지났다. 지금까지는 정부가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해 끌어왔지만 이제는 한계가 있다.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사람들이 주도해 나가야 한다. 정부가 모든 것을 도맡아 하겠다고 하면 사회적인 역량이 크지질 못한다. 선진국 대부분은 독립된 면허관리기구가 있다.

- 대표적인 면허관리기구가 영국의 GMC(General Medical Council)다. 어떻게 탄생하게 됐나.

영국은 15세기 ‘컬리지 오브 런던(Colleague of London)’을 설립했다. 런던 지역 의사들이 정식 교육을 받지 않고 의사로 활동하는 사람들을 배타적으로 구분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영국 전역으로 확대돼 BMA(British Medical Association)로 발전했다. 하지만 이익단체에서 누군가를 징계하는 게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별도 기구를 독립시키기로 했다. 결국 의사 내부에서 독립된 면허관리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와 지난 1858년 GMC가 설립된 것이다. 영국은 19세기 말에 의사단체를 이익단체와 공적인 면허관리기구로 이원화시켰다.

- BMA와 GMC의 위상이 다르다는 말인가.

BMA는 법정단체가 아니다. 의사들을 위한 이익단체로 의사들의 가입률이 의대생을 포함해 60% 정도다. 반면 GMC는 법정단체로 대학평가, 면허, 징계 등의 업무를 하는 독립기구다. GMC는 보건당국 산하도 아니고 왕실 추밀원에만 보고하는 자율기구다. GMC가 추밀원에 보고한 것도 1894년이 마지막이다. GMC 위에 추밀원이 있지만 간섭하지 않는다.

- GMC 이사회는 의사와 일반인이 동률로 참여하고 있다고 들었다.

처음에는 의사 대 일반인 비율이 3대 7이었다가 1대 1이 된 것이다. 외부인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없다. 오히려 외부인이 들어와서 GMC에서 일하는 의사들을 보면 지지자가 된다. 의사들이 좀 더 강력한 처벌을 원하고 일반인이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한다. 어떨 때 보면 너무 가혹하다고 느낄 정도로 철저히 한다.

우리도 무엇이 회원 보호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회원의 죄를 덮어주는 게 보호인지, 아니면 그 회원 때문에 선량한 다른 회원들이 피해를 압는 것을 막아주는 게 회원 보호인지.

- 미국은 어떤가.

미국은 더 철저하다. 미국은 주마다 의사면허국(Medical Board)를 두고 있다. 주 특성에 따라 설립하기 때문에 지역이 넓은 곳은 의사면허국을 2개 설립하기도 한다. 그래서 현재 70개 정도가 설립돼 있다. 주지사가 의사면허국의 장을 임명하기도 하지만 그게 끝이다. 재정도 독립돼 있고 운영도 독립돼 있는 철저한 자율기구다. 전직 경찰관과 검사도 참여하고 있다. 의료 분야는 법원에서 판단 내릴 수 없는 것들이 많다. 문제 있는 의사에 대한 신고가 들어오면 자체적으로 조사해 낭비적인 법정다툼을 줄일 수 있도록 전문가적인 판단도 내린다.

- 면허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면허갱신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면허갱신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지 않다. 현재도 3년마다 면허를 갱신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일부에서는 면허갱신제를 말하면서 재시험을 봐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렇지 않다. 우선 우리나라처럼 의사면허를 따기 위해 국가고시를 보는 나라가 적다. 재시험을 보는 것도 난센스다. 의사들마다 프랙티스(practice) 양상이 다르고 보는 환자들도 다르다. 획일적으로 재시험을 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재시험은 미국 전문의 자격시험 때문에 나온 것 같다. 미국 전문의는 10년 동안만 자격이 주어서 10년마다 재시험을 봐야 한다. 하지만 면허갱신이라는 것은 보수교육 평점을 채우고 나쁜 일을 한 게 없으면 자동으로 되는 것인데 왜 두려워하는가.

영국이나 미국 등에서 면허신고를 할 때 아픈 곳이나 처벌 받은 내용 등에 대해 쓰라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걸러지지 않는다. 그래서 면허관리기구는 환자 등으로부터 문제되는 의사나 의료행위 등에 대한 신고를 받고 조사하는 역할도 한다. 그 과정에서 다나의원 같은 사례가 발각되는 것이다.

- 면허관리기구 설립을 추진한다고 해도 그 형태를 두고 이견이 많을 것 같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영국처럼 법정단체로 만들어서 전문직이 주도해서 갈 수도 있다. 미국의 경우 주마다 모델이 다르다. 하지만 면허관리기구를 통해 철저하게 관리해 왔기 때문에 의사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살아 있다. 우리도 면허관리기구를 설립한다면 어떤 형태로 설립할지 논의해 봐야 한다.

하지만 복지부 산하로 설립하는 것은 반대다. 그렇게 되면 면허관리와는 상관없는 사람을 장으로 앉힐 것이 뻔하다. 대통령 산하에 있는 것도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면허관리기구는 임용이나 운영에 대해 정부가 간섭해서는 안된다. 미국의 경우 의사면허국의 장을 주지사가 임명하는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은 전문가를 임명하는 게 당연하다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 의협은 자율징계권을 주면 내부적으로 정화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의협은 법정단체지만 이익단체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자율징계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은 레귤레이터(regulator)가 되겠다는 것인데 현재 의협의 위치는 어중간하다. 선진국에서 법정단체는 이익단체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부분 의학협회와 의사회로 갈라져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분화가 덜 됐다.

3년마다 선거를 통해 회장을 새로 뽑는 의협이 법정단체로서 레귤레이터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선거에 당선된 회장은 이익을 쟁취하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을 외친다. 또한 하나의 이슈가 터지면 거기에만 집중하는 구조다. 자율징계도 하고 보수교육도 평가하면서 의사들의 이익을 위해 싸우겠다고 하니까 갈 지(之)자로 갈 수밖에 없다. 한국의학교육평가원도 1년에 200회가 넘는 회의를 하는데 의협은 연수교육평가를 위해 얼마나 자주 회의를 하고 있는가.

- 우리도 의사회와 학회가 따로 존재하지 않나.

그 구분도 애매하다. 우리나라 학회는 이익단체의 역할도 하고 있다. 의협이 보수교육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하니까 반발하기도 했다. 영국도 이익단체만으로 자율정화가 어렵다고 판단해 법정단체를 따로 만든 것이다. 물론 철저히 의사들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도 필요하다.

- 의협도 이익단체로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의사협회(AMA, American Medical Association)를 벤치마킹해 KMA Policy를 수립하고 있다.

AMA는 대표적인 조합(trade-union)으로 이익단체다. 윤리위원회도 있지만 의사면허에는 손대지 않는다. 또한 가입과 탈퇴가 자유롭다보니 전체 의사의 25% 정도만 가입돼 있다. 그리고 법정단체도 아니다. 하지만 의협은 법정단체다. 의협이 AMA를 벤치마킹하려고 하는데 우리의 상황과 맞지 않을 수도 있다.

- 의협이 면허관리 업무를 담당할 역량이 안된다고 생각하나.

의협 내 면허관리기구를 설립해 운영할 역량이 있는지 의문이다. 대정부 투쟁도 해야 하고 메르스 사태 같은 일이 터지면 핫라인을 구성해 대응하겠다고도 한다. 뻔뻔하다고 느껴질 만큼 회원들을 위해 일하는 이익단체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의협은 이도 저도 아니다. 명확한 역할 정립이 필요하다.

이번 다나의원 사건을 통해 내부적으로 면허관리 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길 바란다.

- 필요하다고는 했지만 면허관리기구 설립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먼 것 같다.

지금 당장 만들자고 해서 만들 수 있는 기관이 아니다. 이번 기회에 차근차근 준비했으면 한다. 정부는 예산을 확보해서 면허관리기구가 무엇인지 교육을 시킬 필요가 있다. 선진국에 직접 가서 배우는 것도 필요하다. 면허관리기구의 역할에 대해 충분히 공부한 전문가가 10명 정도 모이면 그때 준비위원회를 구성해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논의해야 한다. 서두르지 말고 10년 계획을 세워서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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