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 “사법정의 실종된 여론 재판이자 마녀 사냥”…학회‧의사회 등 비판 성명
“이 나라에서 의사를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며 회의감 토로하기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과 관련해 법원이 의료진을 구속하자 의료계가 큰 충격에 빠졌다.

서울남부지방법원은 4일 새벽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받고 있는 이대목동병원 소아청소년과 조수진 교수와 박은애 교수, 수간호사 A씨에 대해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6년차 간호사 B씨에 대해선 “증거 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없다”며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법원의 이같은 결정에 의료계는 증거 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없는 의료진을 구속한 것은 부당한 처사라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추무진 회장은 “(법원의 결정이) 너무 안타깝다”면서 “이번 사건에 대해 협회는 회원들의 억울한 피해가 없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인수위원회 방상혁 대변인은 본지와 통화에서 “의사도 인권을 가진 국민인데 이번 결정은 죄형법정주의를 무시한 처사”라면서 “증거 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전혀 없는 의료진을 구속한 이번 재판은 사법 정의가 실종된 여론 재판이자 마녀 사냥이다. 대한의학회와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등과 대책을 논의 중”이라고 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안치현 회장은 “충격적이다. 그저 생명을 살리는 의사가 되고 싶어 수련 받는 동료 전공의들에게 앞으로 어떤 의사가 되자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이 사건의 진짜 원인에 대해 합당한 책임을 묻고 문제를 고쳐달라는 당연한 요구와 현실과의 괴리에 좌절스러울 뿐”이라고 말했다.

대한소아과학회와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이번 결정으로 발생하게 될 의료공백에 대해 책임을 사법당국이 져야한다고 주장했다.

소아과학회는 4일 성명을 통해 “우리 학회는 수사 당국과 보건 당국이 앞으로 이러한 비극적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믿고 기다려 왔다”면서 “하지만 수사 초기부터 의료인의 신분을 노출시켜 인권을 심히 훼손했으며, 도주와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는 상태에서 의료진들을 구속했다. 이는 과잉 수사의 행태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소아과학회는 “이러한 수사 행태로 중환자 의료의 공백이 발생한다면 이는 모두 수사 당국과 보건 당국의 책임”이라며 “더 이상 이런 불행한 사건이 반복되지 않도록 지금부터라도 정확한 감염 경로를 밝히고, 이 번 슬픈 경험을 바탕으로 중환자 의료 체계 및 감염 관리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 몇 명의 의료진 처벌로 사건을 종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소청과의사회는 “사건의 명확한 원인에 대한 인과관계를 전혀 밝히지 못했음에도 수사당국과 보건당국이 자신들의 책임을 면피하기 위해서 변명으로 일관하고 오히려 생명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 의료진에게만 책임을 뒤집어 씌웠다”면서 “이는 선진국으로 불리는 우리나라의 사법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 예”라고 했다.

구조적인 문제로 발생한 사건의 책임을 의료진 탓으로 돌려선 안 된다는 지적도 줄을 이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긴급 성명을 통해 “신생아 4명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혐의만으로 도주나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는 의료진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한 서울남부지법 영장 전담 부장판사의 결정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도대체 어떤 이유로 구속영장이 발부됐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산부인과의사회는 “이번 사건은 저수가 건강보험제도가 빚어낸 열악한 신생아 중환자실 의료환경이 그 근본 원인”이라며 “비상식적인 의료 정책을 개선하려는 노력 대신 신생아실 의료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법원의 비상식적 법 집행을 다시 한 번 강력히 규탄한다”고 했다.

충북대병원 한정호 교수는 “필요한 인력을 안 뽑아준 병원과 충원을 못하는 구조를 만든 정부는 책임을 안지고 개인에게만 책임을 묻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는 배를 운항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저수가 주고 알아서 돌리다 사고가 나면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데 어쩌겠는가”라고 한탄했다.

불합리한 의료 구조를 만든 정부와 병원 재단이 이번 사고의 근본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교수협의회는 “정부가 그 동안 적정한 의료전달체계를 마련하지 않아 대학병원으로의 환자 집중현상을 야기했고, 공공의료조차 대부분의 민간의료기관에 의존하면서도 불합리한 의료수가를 유지하기 위해 상급종합병원 의료기관 평가 등을 통해 줄세우기를 해 왔다”면서 “이러한 제도를 지렛대로 민간 대형병원의 생존을 겨우겨우 보전해주면서 의료를 통제하고 책임을 회피했다”고 비판했다.

즉, 무책임에 바탕을 둔 대한민국 보험제도의 태생적 모순이 이번 신생아 참사를 야기했다는 게 교수협의회의 지적이다.

또 “신생아중환자실에 대한 의료 인력 부족을 지속적으로 호소했지만, 돈벌이에 급급한 나머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환자를 치료하도록 강제한 병원장과 재단 이사장이 형사처벌의 대상”이라며 “(사법당국과 정부는) 의료진 구속을 철회하고 감염관리 체계의 근원적 문제 해결과 재발 방지를 위해 의료계와 함께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불가항력적 사고까지 의사에게 책임을 묻는 사회 시스템에 의사가 된 것에 회의를 느낀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한 개원의는 “허탈하다. 의사도 인간인데 우리가 아프게 한 것도 아니고 책임을 의사에게만 다 떠넘긴다”면서 “도망가지도 않을 사람을 구속시킨다는 건 유치장에 넣겠다는 게 목적인 것 같다. 의사들 길들이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 사건으로 구속한 적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

그는 “형사재판에 무혐의가 돼도 민사에서 배상해야 하는데 환자 본 죄 하나로 위로금까지 주는 것은 아닌 것 같다”면서 “이 나라에서 의사를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젊은 사람들은 힘을 내서 할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이대목동병원이 초기 대처를 잘못해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도 있었다.

종합병원에서 근무 중인 A교수는 “법원 결정에 대해 뭐라고 할 순 없지만 이대목동병원이 (대처를) 잘못했다”면서 “유족을 충분히 위로하고 사과하면서 책임감 있게 사실을 규명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면 유족도 저렇게 반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A교수는 “(유족이) 책임을 묻고 싶은데 그 누구도 책임지려고 하지 않으니 문제가 커진 것”이라며 “충분히 사과하지 않은 상황에서 (구속에 대해) 반발하다보니 의료계가 염치없는 사람들이 됐다. 유족의 분노만 조장하게 됐다”고 했다.

간호계도 법원의 의료진 구속 결정을 강력 비판했다.

대한간호협회는 “입건된 간호사들이 그동안 수사에 성실히 임해왔고 증거인멸의 시도도 전혀 없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수간호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은 법에서 정한 불구속수사의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 이는 매우 부당하다”고 성토했다.

간협은 이어 “향후 입건된 간호사들이 정당하고 합법적으로 수사와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협회 차원에서 적극 대처하겠다”면서 “또 최근 이 사건과 관련해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유포되는 것에 대해서도 엄중하게 대응하겠다”고 했다.

한편, 구속영장이 발부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의사들 사이에서는 '근조, 대한민국 중환자실'이 씌여 있는 검은 리본이 퍼지고 있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