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갑 사랑의가정의학과원장

“문둥병 환자에게 쓰는 약을 처방해 주세요.”

피부병 치료를 하면서 가끔씩 듣는 말이다.

내가 개인 의원을 연 곳은 인천의 부평으로, 병원 뒤편에 작은 야산이 있다. 이 산의 반대편에는 서로 마주보는 앞산이 있고, 이 둘이 둘러싸고 있는 공간에 허름한 동네하나가 위치한다. 과거 나환자 정착촌인 성계원이 있던 곳이다. 작은 야산만이 있는 평범한 지역이지만 한적한 산중에 존재하는 마을이 연상된다. 지금은 부평 농장이라 불리며 작은 공장지대로 변해 있다. 앞 뒤 산으로 둘러 싸여있고 입구는 양옆으로 길 하나씩 만이 있다. 여기를 오고 가려면 반드시 양쪽의 길 중에 한곳을 통과해야 한다. 산 사이의 좁은 협곡에 저수지 수로와 같이 길이 나 있어 두 길을 모두 차단하면 완전 고립이 되는 곳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흡사 송편과 같은 모양을 취하고 있다. 앞산은 시민들의 등산로로 잘 정비되어 있다.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휴일에 바람을 쐬기 위하여 자주 오른다.

이 문둥이 촌이었던 마을 입구에는 인천에서 유명한 피부과 전문의원이 있다. 잘 낮지 않는 피부병을 고친다고 하여 유명세가 대단한 곳이다. 멀리서 소문 듣고 그곳을 찾아오는 노인들을 가끔 볼 때도 있다. 과거 문둥병환자를 치료하였기 때문에 피부질환을 잘 본다는 이야기가 정설로 되어 있다. 그래서 나에게도 문둥병환자에게 쓰는 약을 써달라고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이 바로 한센 병을 앓았던 한하운 시인이 살다가 세상을 떠난 곳이다.

다른 고장과 같이 철따라 꽃이 피고 새가 울지만 천형이라 불리는 병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고단한 삶을 살았을 장소로 보인다.

봄에는 산의 진달래꽃들이 연분홍 물결이 되어 섬 같은 마을을 둘러싸 파도를 그린다. 시인도 고향 함주의 앞산 진달래꽃을 생각했을 것이다. 이곳으로 걸어 들어가기 위해서는 부평 번화가 앞을 지나야 한다. 길을 걸으며 먹고 살기위해 다방에 모여 있는 문인들에게 시를 팔려 했던 서울 명동에서의 기억을 떠올렸을 것이다. 또한 서울로 통학을 하기위하여 부평역에서 열차를 타고 내리는 여학생들을 만나면, 시인이 문둥병자임을 알면서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일생을 함께 하려했던 북의 여학생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산에 오르면 멀리 구름사이로 영종도를 휘감고 있는 서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수평선을 응시하며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 학교를 다녔던 함흥 바닷가 추억이 되 살아났을 것이다. 시인의 흔적이 여러 곳에 묻어 있을 것으로 보이는 곳이다.

손가락 한 마디

간밤에 얼어서손가락이 한 마디머리를 긁다가 땅 위에 떨어진다.

이 뼈 한 마디 살 한 점옷깃을 찢어서 아깝게 싼다하얀 붕대로 덧싸서 주머니에 넣어둔다.

날이 따스해지면남산 어느 양지터를 가려서깊이 깊이 땅 파고 묻어야겠다.

전라도 가는 길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가는 길

신을 벗으면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 길.

전공의 시절 큰 수술을 앞둔 중년의 여자 환자가 있었다. 수술 날 아침에 남들은 한 번도 안 받는 수술을 자신은 왜 여러 번 해야 하느냐며 엉엉 울면서 수술실로 들어갔다. 남과 비교하여 자신만이 불행을 당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자신의 신체 일부가 없어지는 기막힌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글로 승화시킨 시인의 마음에 고개가 숙여진다. 또한 힘든 질병을 짊어졌을 뿐 아니라 가족과 친구,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도 고립되어야 했다. 사회적으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은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지만, 문둥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는 수모와 질시를 견뎌야 했을 것이다. 그래도 삶에 대한 사랑을 간직하고 있어 몸으로 표현되는 언어를 사용하여 최고의 작품을 탄생시켰다. 긍정적인 사고의 영향 때문인지 오랜 시간 후에 한센병 음성 판정을 받아 사업도 하였지만 안타깝게 간 경변으로 56세의 생을 마감하게 된다.

내가 지금의 이곳에서 터를 잡고 환자를 진료하면서 처음에는 나를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에게 똑 같이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시간이 지나자 초심이 많이 흐려진 것 같다. 환자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위주로 변형시켜 판단을 하고 있지는 않나 돌아볼 때가 있다.

가끔씩 불치의 병으로 힘겹게 사는 모습들을 접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도 호전되지 않고 고통만 받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며 회의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인과 같이 살아 있는 한 인생무대의 주인공 역할은 진행 중이다. 확률이 적든 많든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는 것 같다. 생명으로서의 신비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마을 입구에서 반대출구까지 타원형으로 마을 전체를 감싸는 길은 시인이 외롭고 고된 삶을 살며 걸었던 곳으로 생각된다. 그의 발자국이 있는 길을 가 본다. 지금은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포장으로 되어 있지만 시인이 밟고 지나갔을 길은 황토 길이었을 것이다. 앞산의 그늘로 인해 눈이 녹지 않아 늦게 까지 빙판이었을 것이고, 여름에 비라도 오면 질퍽거리는 척박한 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마을버스가 다니고 있지만 당시에는 차량이 있을 리가 만무하고, 근처까지 오는 일반 버스라도 타면 문둥이라 하여 발길질을 당하고 강제로 끌어 내려졌을 것이다. 차를 탈수 없었기에 불편한 몸으로 먼 길을 걸어 다녔을 것으로 생각된다.

걸음을 멈추고 둘러보니 길가에 야생화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갈라진 콘크리트 틈을 비집고 나와 꽃을 피워 바람에 가만 가만 흔들거리고 있는 것이다. 다가가서 살며시 작은 꽃잎 하나를 잡아본다.

강에서 살던 물고기 하나가 어느 날 메디칼이라는 큰 바다를 만나게 됐다.
기대와 설레 임으로 첫걸음을 시작했다. 서로를 만나서 부딪치고, 즐거워하며 보람을 느꼈지만 힘들고 아쉬운 일들도 겪게 되었다. 나름대로 의미를 찾고 자기완성을 이루기 위해 조그마한 노력도 기울였다. 그러면서 계절이 바뀌었다. 정신없이 지내다 어느 날 물결과 같은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되었다. 그동안의 소중했던 작은 발자국들을 기억 속에 저장해두고 싶은 충동이 왔다. 그래서 찾아 낸 것이 글을 쓰는 것이었다.
수필은 삶의 고백이라고 한다. 사람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한다면 이미 글의 출발 선상에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런 사람의 눈을 통해 들어오는 세상과 느낌 자체가 글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피아노 독주회에서는 피아니스트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하고, 오케스트라 연주회에서는 지휘자의 호흡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들 한다. 더불어 같이 사는 사람들의 숨소리를 듣고 느끼기를 희망해본다. 그리하여 몸으로 부딪히는 소중한 모든 것들을 글에 담아 보고 싶다. 이 자리가 있게 해주신 많은 분들에게 깊이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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