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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법정까지 가게 된 교과서 대리집필 의혹대학 연구진실성위는 제자 손 들어줬지만 해당 교수 재심 신청
홍성태 간행이사 “최종본에 들어간 표·도표만 만든 사람도 authorship 인정해야”
  • 송수연 기자
  • 승인 2018.03.22 12:32
  • 최종 수정 2018.03.22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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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 대학병원 성형외과가 교과서 대리집필 논란으로 시끄럽다. 제자가 교수 대신 교과서 내용의 상당 부분을 썼지만 저자로 이름을 올리지는 못했다는 게 논란의 핵심이다. 문제의 교과서는 미국 성형외과 교과서(Plastic Surgery third edition by Peter C. Neligan)로, 국내 성형외과 전문의 자격시험에도 활용된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성형외과 교과서이기도 하다. 교과서 내용 중 손 성형 관련 한 챕터(총 19장)를 이 대학병원 성형외과 A교수가 집필했다는 사실이 국내에도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었다.

하지만 뒤늦게 교과서 집필에 상당한 기여를 했음에도 저자에서 누락됐다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일었다. 바로 A교수 밑에서 전공의와 전임의 과정을 거쳐 현재 같은 대학병원 부교수로 있는 B씨다. B교수는 A교수가 부당하게 저자를 표시했다며 지난해 7월 4일 대학 연구진실성위원회에 제보했다. 연구진실성위는 B교수의 손을 들어줬다. B교수가 교과서 집필에 상당한 기여를 했는데도 저자에서 누락됐다는 판단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A교수가 반발했다. 연구진실성위가 판단의 근거로 삼은 초본 자체가 자신이 쓴 것으로 B교수는 교과서 집필 과정에서 자료 취합 정도만 했다는 주장이다. A교수는 지난 5일 연구진실성위에 재심을 요청했다. 그리고 B교수와 대리집필 의혹을 처음 보도한 기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A교수는 7년이나 지난 일을 지금에 와서 문제 삼는 건 다른 의도가 있다고 주장했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

미국 성형외과 교과서 집필을 의뢰받은 건 A교수다. 허혈성 수부질환 분야에서 명의로 알려진 A교수에게 Neligan‘s Plastic Surgery 편집인이 집필을 의뢰한 건 지난 2009년이다. A교수는 2009년 11월부터 집필에 들어갔고 이 과정에서 당시 전임의였던 B교수의 ’도움‘을 받았다. 여기까지는 둘 사이 이견이 없다. 하지만 B교수의 ’도움‘이 어느 정도 수준이었느냐를 두고 양 측의 의견이 극명하게 갈린다.

미국 성형외과 교과서(Plastic Surgery third edition by Peter C. Neligan) 중 손 성형 관련 내용을 한국 모 대학병원 성형외과 교수가 써서 화제가 됐다. 하지만 뒤늦게 교과서 집필에 기여했는데도 저자에서 누락됐다는 문제 제기가 나왔다.

"1년 동안 들인 노력 인정해 달라"…대학 연구진실성위는 저자 인정

B교수는 2009년 11월부터 2010년 2월까지 4개월 동안 초안을 완성했고 그 이후 A교수와 함께 내용을 첨삭해 2010년 11월 교과서 집필을 끝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참고한 문헌만 120개다.

B교수는 “구성은 A교수가 했지만 내용을 채우는 건 내 몫이었다. 참고문헌 120개를 정리해서 내용을 채웠다. 당시 전임의 신분이어서 마땅한 연구실이 없었다. 그래서 성형외과 의국에서 교과서를 쓰는 일을 했다”며 “그 과정을 모두 봤던 동료 4명이 내가 교과서를 썼다는 진술서를 작성해줘서 연구진실성위에 제출했다”고 말했다.

B교수는 “교과서를 쓰면서 A교수와 주고받은 이메일도 연구진실성위에 제출했다. A교수가 보낸 이메일 중에는 ‘교과서 수정 일이 너무 많지’라는 내용도 있다”며 “A교수가 아무것도 안했다는 게 아니다. 내가 1년여 동안 들인 노력을 인정해 달라는 거다”라고 했다.

뒤늦게 문제제기를 한 이유에 대해서는 Neligan‘s Plastic Surgery 4판에는 공동저자로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었다고 했다. B교수는 “새판(fourth edition)이 2017년 9월 15일 나왔는데 배포되기 전 미리 확인해보니 거기에도 내 이름을 빠져 있었다. 그걸 확인하고 연구진실성위에 제보했다”며 “상실감이 너무 컸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교과서를 집필하는데 참여할 수 있는 건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영광이기에 열심히 했다. 그리고 당연히 공동저자로 이름이 들어갈 줄 알았다”고 했다.

B교수는 Neligan‘s Plastic Surgery 3판에 참여한 저자 총 438명 중 전임의는 22명, 전공의는 30명이라며 “전임의나 전공의가 교과서 집필 의뢰를 직접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집필에 어느 정도 기여했기에 공저자로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외국에서는 authorship(저자됨)을 지켜서 편찬하는데 왜 유독 한국만 이런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B교수는 A교수를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고소해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이다.

대학 연구진실성위는 B교수의 주장이 근거 있다고 판단했다. 연구진실성위는 “예비조사위원회와 본조사위원회의 조사 내용과 피조사자, 제보자 제출자료 및 답변서를 검토한 결과, 제보자(B교수)의 당시 신분이 교과서 저자로서의 자격 요건을 결여한 것으로 볼 수 없으며 저작과정에서 해당 내용 대부분을 집필한 제보자가 저자에서 누락된 사실을 확인했다”며 “이는 연구윤리규정 제31조 1항 4호(부당저자표시)에 해당하는 연구부정행위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연구진실성위는 이같은 심의 결과를 지난 2월 19일 A교수와 B교수에게 각각 전달했다.

“내가 쓴 초안으로 비교…실추된 명예 회복하겠다”

연구진실성위의 판단에 A교수는 반발했다. 교과서 집필 과정에서 B교수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자료 정리 수준이었다는 게 A교수의 주장이다. 연구진실성위가 교과서 내용 대부분을 B교수가 집필했다고 판단한 초안도 본인이 작성했다며 비교 대상 자체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A교수는 “B교수가 썼다고 제출한 교과서 초안을 카피킬러(논문 표절 검사)에 돌려보니 최종본과 66% 정도 일치한다고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B교수가 연구진실성위에 제출한 초안은 2010년 11월 30일 내가 써서 B교수에게 보낸 원고”라며 “B교수는 교과서 집필을 시작할 때 필요한 자료를 정리해서 요약해준 것밖에 없어서 저자 요건을 갖추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지난 5일 연구진실성위에 재심을 요청한 A교수는 논문 표절 검사인 카피킬러를 사용해 B교수가 2009년 11월 보내준 참고자료 요약본을 최종본과 비교해 본 결과, 일치율이 18%였다고 했다. B교수가 연구진실성위에 초안이라고 해서 보낸 원고도 본인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2010년 11월 30일 B교수에게 참고문헌 순서를 바꿔달라고 요청하기 위해 보냈다고 했다.

A교수는 “연구논문이라면 단순 조력이라도 저자에 이름을 넣어주겠지만 이 교과서는 임의로 내가 저자 이름을 넣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미국에서 나를 지목해서 교과서 집필을 의뢰한 것”이라며 “저자를 넣고 말고 할 권한이 나에게 없는데 부당저자표시라니 말도 안된다”고 억울해 했다.

A교수는 “연구진실성위는 본문 텍스트만 갖고 판단했는데 텍스트 말고도 임상사례 사진과 그림, 수술 비디오 등도 들어가 있다. 모두 내 자료를 갖고 한 것으로 B교수는 기여한 게 하나도 없다”며 “교과서 집필을 처음 시작할 때 자료를 요약해줬을 뿐”이라고 말했다. A교수는 “연구진실성위가 B교수의 거짓 주장에 ‘진실’이라는 증명서를 떼어준 꼴이 됐다.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가겠다”며 변호사를 선임했다고 밝혔다.

인식차 큰 authorship…“최종본의 10%만 썼어도 저자로 인정해줘야”

스승과 제자 간 법적 다툼으로까지 번진 이번 논란은 결국 authorship에 대한 인식차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국제의학학술지편집인위원회(International Committee of Medical Journal Editors, ICMJE)는 저자 기준으로 ▲연구 주제 선정과 상당한 지적 기여, 연구결과 직접 생산 ▲논문 작성 또는 수정 ▲최종 원고 검토 및 투고 동의 ▲전체 연구 내용에 대한 공동 책임을 제시한다.

대한의학회 간행이사인 홍성태 서울의대 교수(기생충학)는 ICMJE 기준에 따라 교과서나 논문의 일부 내용을 쓴 사람, 표나 도표를 만든 사람은 저자로 인정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자료만 정리했다면 authorship을 주장하기 어렵다. 하지만 자료를 정리하면서 만든 표나 그림이 최종본에 그대로 들어갔다면 저자로 인정해야 한다”며 “최종본의 10%라도 쓴 사람도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리는 게 맞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교과서나 논문 모두 저자 기준은 같다. 내용을 실제로 썼는지, 표나 도표를 생산했는지가 핵심”이라며 “집필 과정에 기여한 것은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 최종본에 반영된 기여분이 얼마나 되는지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Authorship을 둘러싼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꾸준한 교육으로 인식을 개선하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했다.

홍 교수는 “욕심에 기인한 문제들이 많기 때문에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authorship에 대해 꾸준히 교육하는 방법 밖에 없다”며 “이런 문제로 시간과 에너지가 낭비되고 당사자들 간 상처를 내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홍 교수는 “우리나라는 저자를 빼는 것보다 기여하지도 않은 사람을 저자로 넣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저자실명제를 도입해서 기여한 사람만 저자로 이름을 올리도록 해야 한다”고도 했다.

송수연 기자  soo331@docdocd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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