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케어디자인학회 학술대회서 하소연 쏟아져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 ‘문재인 케어’는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로 다가오는 모습이다.

정부는 적정 수가 보장을 약속했지만 병원 수익의 기반이었던 비급여가 전면 급여화되면 경영에 직격타를 맞을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대형병원 환자 쏠림 현상 등 왜곡된 의료전달체계도 이런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한국헬스케어디자인학회가 ‘문재인 케어 시대, 병원환경과 디자인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란 주제로 지난 17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최한 춘계학술대회에는 문재인 케어를 바라보는 병원들의 불안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서울의대 김윤 교수는 이날 기조 강연에서 문재인 케어에 대해 “비급여 진료를 적게 하고 그 비용을 적정하게 책정해 온 의료기관에 유리한 정책이라고 해석해도 된다”며 적정 수가 보장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특히 의료전달체계와 진료비 심사체계 개편을 문재인 케어 성공의 전제조건으로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의료전달체계 개편 없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는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다. 보장률 70%는 현 체계를 유지해도 가능하지만 그 다음 정부에서 80%로 보장성을 강화하려면 돈이 너무 많이 들어 현 체계로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또 “비급여가 급여로 전환되면 나중에 건강보험 재정 위기가 왔을 때 진료비 심사로 대량 삭감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 그런 현상이 일어나면 병원들은 비급여 진료를 다시 할 수밖에 없다”며 “진료비 심사체계를 개편하지 않으면 문재인 케어는 실패한다. 전문가 중심으로 검토하고 지원해야 하며 진료형태 변화를 유도하는 근거 기반의 심사방안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궁극적으로 의료시스템을 양적 보상에서 가치에 대한 보상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가격에 대한 통제와 심사 삭감의 악순환 고리를 풀기 어렵다”며 “박리다매 구조를 적정 이용, 적정 수가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한국헬스케어디자인학회는 지난 17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문재인 케어 시대, 병원환경과 디자인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란 주제로 춘계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대로면 5년 뒤 중소병원 절반 사라질 것”

그러나 현장에서 느끼는 불안감은 공포에 가까웠다. 적정 수가 보장도, 의료전달체계 개편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앞날이 불투명하다는 하소연이 쏟아졌다.

대한전문병원협회 총무이사인 김진호 예손병원장은 2017년 기준 예손병원 전체 진료비에서 비급여가 차지하는 비율이 35%라며 “제때 수가가 인상된다면 병원을 유지할 수 있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경영적으로 상당히 힘든 상황이 닥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예손병원은 수지접합 전문병원으로 정형외과 전문의 15명이 근무하고 있다.

김 원장은 “비급여의 급여화가 좋은 면도 있지만 3차 병원 환자 쏠림 현상이 심각하다. 의료전달체계가 개선돼 (2차병원으로 오는) 환자가 증가하지 않으면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중소병원들은 문재인 케어가 시행되고 5년 뒤에도 진료량이나 의료전달체계에 변화가 없으면 절반 정도는 존립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문재인 케어 시행을 위해 사회적 합의 없이 의료계만 압박하는 방식도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김 원장은 “의료전달체계를 개선하려면 의료를 이용하는 국민의 사회적 합의가 더 중요하다. 메르스 사태의 원인 중 하나가 빅5병원 환자 쏠림 현상이었는데 해결은 응급의료센터에 격리병상 등 하드웨어를 설치하는 것으로 끝났다”며 “문재인 케어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려면 국민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 정부와 의료계의 다툼이 아닌 국민도 함께 설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김효선 PI팀장은 “선택진료비가 폐지되고 나서 올해 20억~30억원 정도 손실이 날 것으로 예상된다. 인건비는 너무 비싸서 인력 확보를 하기 어려운데 정부 정책은 많은 인력이 필요한 쪽으로 가고 있다”며 “문재인 케어라는 밥을 급하게 짓지 말고 슬로우 쿠킹을 했으면 한다. 우선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만족했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손덕현 이손요양병원장은 문재인 케어에서 요양병원이 소외돼 있다며 “요양병원 패싱(passing)”이라고 비판했다. 손 원장은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의료의 한 축을 요양병원이 맡고 있지만 정부의 정책적 지원은 없다. 문재인 케어가 실행되면 오히려 요양병원은 환자 부담이 커질 것”이라며 “요양병원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이번 정책은 요양병원 패싱으로 요양병원은 재정 절감 대상으로만 보는 듯하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문재인 케어 추진 계획을 밝힌 후 병원들이 투자에 신중해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삼정 KPMG 헬스케어본부 박경수 이사는 “최근 병원에서 의뢰한 컨설팅을 보면 병원 신축을 계획했지만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거나 수익률이 어느 정도까지 떨어질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내용이 많다”며 “시설이나 인력 등 자원에 대한 투자도 신중해지고 고민을 많이 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문재인 케어로 가장 위협을 느끼는 부분은 의료인력 문제라는 주장도 나왔다.

헬스케어디자인학회 이왕준 이사장은 “한국 의료가 저수가로 유지될 수 있었던 건 저임금으로 의료인력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사들 월급이 낮지 않다고 하는 건 그만큼 노동 강도가 엄청 높다는 의미”라며 “적정 수가로 가려면 의료인력에 대해서도 적정한 보상을 해줘야 한다. 환자 대비 의료인력이 선진국 수준으로 가려면 현재 의료수가보다 200% 상승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문재인 케어의 가장 위협적인 요소는 의료인력 문제다. 문재인 케어로 파생되는 의료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조만간 인력 대란이 벌어질 것”이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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