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토론회서 형사처벌 배제, 전산시스템 개선, 서식 단순화 등 개선 지적 쏟아져

연명의료결정법(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이 시행된 지 40여일이 지났지만 의료현장의 혼란은 여전하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16일 자유한국당 박인숙 의원이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개최한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한 달, 제도정착을 위한 앞으로의 과제는?’이란 제목의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지난달 28일 이뤄진 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개선할 점이 여전히 많다고 지적했다.

단국의대 박형욱 교수는 “성격이 다른 치료를 여전히 연명의료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어 규정하는 것이 합당한 것인지 논의가 필요하다”면서 “예를 들어 항암제 투여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과 비교해 긴급성 등에서 상당히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의식이 없는 응급환자에 대해 긴급하게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거나 인공호흡기를 연결해야 하는 경우는 판단하기 쉽지만 긴급하게 항암제를 투여해야 하는 경우는 단정하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처벌조항을 엄격히 적용하면 심지어 뇌사 환자의 경우에도 환자 가족이 연명의료 지속을 요구하면 의사는 이를 받아들여야만 한다”면서 “의사가 이를 거절하면 연명의료법 위반이나 형법상 살인죄로 수사와 재판을 받을 수 있다. 이런 부분들은 조금 더 손을 봐야 한다”고 했다.

연명의료를 결정할 수 있는 가족의 범위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연명의료법 제17조는 환자가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경우 환자 가족 2명 이상의 일치하는 진술을 요구하고 있으며, 그 범위를 배우자, 직계비속, 직계존속, 형제자매라고 규정하고 있다. 18조는 환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으면 환자 가족 전원의 합의를 요구하고 있다.

박 교수는 대습상속과 유사한 규정이 없는 연명의료결정법은 직계비속의 범위가 너무 넓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민법상 직계는 방계에 대비되는 용어인데 손자, 손녀는 외손자, 외손녀라 할지라도 직계비속에 해당한다”면서 “만일 환자에게 딸이 5명이 있다면 딸의 가족관계까지 파악해 외손자, 외손녀의 수십 명 전원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의사가) 해석하지 못할 수 있다. 따라서 환자에게 자녀와 손·자녀가 있다면 합의를 요구하는 직계비속은 자녀에 제한된다는 명확한 규정을 도입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현장에 있는 의사들은 환자 상태를 고려하지 않는 일률적인 절차 적용과 복잡한 서식 등에 여전히 불만을 토로했다.

대한응급의학회 류현욱 법제이사(경북대병원)는 “사실 응급실 환자들은 말 그대로 급성기 상태의 환자들”이라며 “대부분 응급 상황의 발생, 또는 말기 환자의 경우 질병의 악화 상태를 미리 예상하지 못한 경우이며, 따라서 연명의료의 중단 등 결정에 대해 미리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고, 이들은 연명 치료의 중단보다는 연명 치료의 시행 유보에 대한 판단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류 이사는 “현행 법률에서는 연명의료의 중단과 유보에 대해 동일한 절차를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어 현실적으로 연명의료 시행의 유보가 필요한 경우에서 이 법의 입법 취지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면서 “특히 연명의료에 해당하는 네 가지 치료 중 심폐소생술 시행의 경우 이러한 문제점이 더욱 부각된다“고 했다.

류 이사는 “병원에서 각기 사용하고 있던 DNAR(Do not attempt Resuscitation: 심폐소생술 금지) 서식을 규격화해 법안 내용에 포함시킴으로써 심폐소생술 유보 과정을 좀 더 단순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응급 상황에서 특히 연명의료 시행 유보의 경우 환자의 의학적 상태가 대부분 자신의 의사를 밝힐 수 없는 상태이고, 설령 환자의 의식이 남아 있는 상황이라고 해도 힘들어 하는 환자에게 연명의료에 대한 의사를 확인하는 것은 윤리적인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현행 법률에서 환자가 직접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의학적 상태의 경우에만 환자 가족의 진술과 합의를 통해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한 내용은 수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전산 시스템에 대한 불만도 제기됐다.

대한중환자의학회 윤리법제위원회 문재영 간사(충남대병원 호흡기내과)는 “현재 등록사이트는 법 적용과 의료기관 전담 근무자들의 가장 큰 걸림돌이자 고충”이라며 “의료현장에서 일사들이 일하는 동선과 방식을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문 간사는 “의사 두 명 이상의 확인·서명이 필요하지만 한 자리에 모이는 게 쉽지 않고 테블릿 PC 사용 역시 과정이 복잡해 어려움이 많다”면서 “의료기관 EMR 개편을 위해서는 1년 이상의 시간과 비용이 필요한데 현재 등록사이트는 현장의 의견 반영 없이 적은 예산으로 졸속으로 구축됐다. 재구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형사처벌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김대균 기획이사(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는 “이 법은 연명의료 중단을 원하지 않는 환자의 의사를 고의로 무시하고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의사와 가족의 범죄를 막기 위해 제정됐던 법이 아니다”라며 “이러한 악행은 기존의 법률로 처벌로 가능하다. 의사들이 연명의료제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선 처벌조항이 삭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이사는 “우리 사회에서 잘 이해되지 못하고 있는 서구적 자기결정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게 오히려 혼란과 불안의 원인이 되고 있다”면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어느 정도 정착된 후 전면시행하고 그 전에는 중단에 대해서만 적용하고 연명의료 유보는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법조계도 형사처벌 규정보다는 면책 규정을 포함시키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법무법인 세승 김선욱 변호사는 “이 법이 만들어진 이유 중 하나는 가족의 의사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이 계속해서 진료를 하는 일을 막기 위함”이라며 “의료진 처벌을 규정하기 보다는 어떤 경우 처벌받지 않는지 면책 규정을 법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프로세서를 지키지 않은 부분은 형사처벌이 아니라 행정처분으로 수준을 낮추는 것도 고려해 볼만하다”면서 “의료진이 환자 의사 결정에 따른 임종에 잘 대처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처벌 강화는 선진 법규와 맞지 않다”고 했다.

보건복지부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참고해 지속적인 개선 작업에 나서겠다고 했다.

복지부 박미라 과장

복지부 박미라 생명윤리정책과장은 “법이 시행된 지 한 달이 지났는데 그 동안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시스템도 쉽게 오픈하지 못했다”면서 “그나마 의료진 도움으로 시행되고 있는 것 같다. ‘현장의 의견을 많이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은데 이를 참고해 제도 개선에 나설 방침”이라고 말했다.

박 과장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이 활성화되면 의료기관 부담이 적어질 수 있지만 아직 인프라가 충분하지 못하다”면서 “준비가 덜 된 기관도 많고 예산이나 인력도 부족하다. 인프라 확충과 예산 및 인력 확보를 통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활성화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또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을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국민이 많다”면서 “가용 예산 안에서 캠페인이나 브로셔 배포 등 대국민 홍보에 나서고 차후 예산을 더 확보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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