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혈당측정기 수입 놓고 법과 현실 괴리…아이 부모들 "그저 평범한 생활만 바랄 뿐"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건 하나도 서운하지 않아요. 관세청에서 이미 한 번 조사를 받아봤고, 현행법 위반은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김미영씨는 최근 1형 당뇨 아이를 위해 해외에서 연속혈당측정기를 구입하고, 스마트폰 블루트스에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는 모듈을 설치했다가 의료기기법을 위반했다며 식약처로부터 검찰에 고발됐다.

이 사연은 여러 언론에 보도되면서 청와대에 국민청원이 이뤄질 정도로 사회적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김미영 씨는 연속된 조사와 이 과정에서 받은 상처로 여전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엄마는 왜 법을 위반해야 했나

김미영 씨는 자신이 현행법을 위반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물론 처음부터 알았던 것은 아니다. 아이를 위해 연속혈당측정기를 해외 구매한 것도, 다른 소아당뇨 아이를 둔 엄마들의 요청으로 해당 제품을 해외에서 직접 구매해 나눠주면서도 법을 위반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지난해 누군가 관세청에 자신이 의료기기 구매를 대행했다며 민원을 넣으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김미영 씨의 초등학생 아들은 소아당뇨다. 정확히는 선천적으로 췌장에서 인슐린을 분비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제1형 당뇨다. 잘 알려진대로 당뇨병은 합병증을 가장 조심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철저한 혈당관리가 필수다.

때문에 음식을 조절해야 하고, 친구들과 뛰어놀 때도 혈당 수치를 걱정해야 한다. 밤사이 혈당이 떨어질까봐 시간이 되면 아이를 깨워 주스를 먹이는 게 소아당뇨 아이를 둔 부모들의 일상이다.

아이가 소아당뇨라는 사실을 알고 난 이후, 혈당관리를 위해 밤낮 없이 매달렸다. 아이 혈당변화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연속혈당측정기가 필요했지만 국내 판매되는 제품은 없었다.

이에 김미영씨는 연속혈당측정기를 판매하는 전 세계 회사에 일일이 이메일을 보내 제품 구매가 가능한지 물었다. 수많은 이메일에 대답을 한 곳은 체코에 있는 한 회사였다.

그렇게 구입한 연속혈당측정기에 혈당 정보를 스마트폰에서 볼 수 있도록 블루투스 전송 모듈을 장착하고, 스마트폰에 해당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어플을 깔았다. 그 뒤로 아이의 혈당 변화를 실시간을 받아보고, 변화를 예측할 수 있게 됐다.

아이 역시 자신이 소아당뇨인 사실을 알리지 않고도 생활할 수 있어 만족해 했다. 김미영씨는 이 정보를 다른 소아당뇨 부모들과도 공유했다. 다른 부모들 역시 해당 의료기기를 사용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체코 회사에서는 개별 배송에 난색을 표했다. 결국 김미영씨가 대표로 의료기기를 구매해서 다른 부모들에게 나눠주기로 하고 2년 간 연속혈당측정기 리시버 47개, 트랜스미터 138개, 센서 1850개를 구매했다.

이를 구매하며 발생한 차익은 90만원 남짓이다. 이마저도 환율 차이로 인해 발생한 비용이다. 2년 간 90만원을 벌기 위해 관세법을 위반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관세청 역시 이같은 상황을 이해했다.

김미영씨가 활동하던 소아당뇨 카페, 제품 구매 내역 등을 모두 조사한 끝에 고의성이 없다는 걸 알아줬다. 인천지방검찰청에서도 기소유예처분을 내렸고, 관세청은 연속혈당측정기 실제 구매자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식약처 고발과 조사과정에서 상처받아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누군가 또 다시 식약처에 김미영씨를 의료기기법 위반으로 민원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이미 끝난 일이라고 생각했던 소아당뇨 부모들에겐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건강과 안전을 관장하는 정부기관이기 때문에 오히려 뭔가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했다.

“법을 위반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고의성이 없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요청하는 자료도 밤새워 작성해서 제출했어요. 그리고 그동안 식약처 관계자도 참석하는 각종 토론회에서 저희들이 연속혈당측정기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하고,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냈었기 때문에 식약처에서도 이를 이해하고 있을 거라고 기대했었어요.”

하지만 3차 조사가 진행되는 석 달간 김미영씨는 몸과 마음이 지쳐버렸다. 큰 배려를 바랐던 건 아니지만 적어도 조사 과정에서 상처를 입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알아요. 현행법을 위반했으니 기소한 것을 문제삼는 게 아니에요. 다만 고발 이후 조사과정이나 대응에 화가났어요. 한 달간 조사하겠다던 기간은 석 달로 늘어났고, 그 기간 동안 저희가 활동하던 카페 한 번 조사하지 않았어요."

모든 자료는 김미영씨가 준비해야 했다. 명확한 조사범위를 알 수도 없었다. 누군가는 의료기기를 수입한 게 문제라고 했고 누군가는 수고비를 받은 게 문제라고 했다. 의료기기법 위반인지 여부에 대해서도 내부에서 의견이 분분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했다. 조사과정에서 상처도 많이 받았다. 그 마음을 SNS에 올린 게 이슈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사연을 알게됐다.

출시계획 없던 혈당기기회사, 국내 시판 준비

김미영씨는 검찰 조사를 다시 받아야 한다. 이미 한 번 겪은 일이지만 결코 편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나마 힘을 낼 수 있는 일들도 있다. 언론에 사연이 보도된 이후 전국에서 같은 소아당뇨 부모들에게 연락을 받고 있다. 같은 소아당뇨 부모들도 힘을 보태주고 있다.

그동안 국내 출시 계획이 없다고 했던 연속혈당측정기 회사는 국내 출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7월 관세청 조사 이후 김미영 씨는 합법적으로 연속혈당측정기를 사용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법을 위반한 사실을 알고도 계속 같은 일을 할 수는 없었고 언제 구매 루트가 차단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법을 위반한 것은 분명히 잘못이죠. 그에 대해 억울하진 않아요. 그래도 조사 받는 과정에서 관세청 직원분께 오히려 위로를 받기도 했거든요. 관세청 조사 이후, 연속혈당측정기를 합법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방법을 찾기 시작했어요.”

김미영 씨와 다른 소아당뇨 아이를 둔 부모들은 연속혈당측정기 회사에 제품을 출시해달라는 내용의 동영상을 제작해 보냈다.

지난해 11월에 개인 치료목적으로 해외에서 의료기기를 구입할 수 있도록 규정이 일부 개선되긴 했지만 그동안 개인이 치료목적으로 의료기기를 들여오는 것은 여러모로 힘든 일이었다. 의료기기법 상 제품을 수입하거나 제조하는 기업이 법 적용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수입신고도 간단하지 않았고, 의료기기를 수입하기 위해서는 사업자등록증까지 내야 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연속혈당측정기가 국내 출시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연속혈당측정기를 김미영 씨에게 판매하던 해외 기업은 한국에 제품을 출시할 계획이 없었다.

“지금은 제도 일부를 변경했다지만 우리나라 제도 상 개인이 의료기기를 해외에서 구입해서 사용하기에 불편한 점이 많아요. 수입신고도 간단한 절차가 아니고, (당시에는)사업자 등록증을 내야 하는지도 몰랐어요. 그래서 연속혈당측정기 회사에 메일을 보내 한국에 출시를 생각해달라고 했지만 한국 출시 계획이 없다고 했죠.”

그러나 김미영씨를 비롯한 엄마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관세청 조사 이후 아이들과 함께 동영상을 만들고, 한국 당뇨시장을 조사한 보고서도 보내줬다. 조금 더 저렴하게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서 중간유통과정을 생략할 수 있는 업체까지 물색해 미팅을 주선했다. 이같은 노력에 결국 해당 업체는 마음을 돌려 국내에 제품을 출시하기로 했다.

이 업체는 한국에 제품을 출시하기 위해 식약처 인허가를 준비 중이다. 모든 게 소아당뇨 아이를 둔 엄마들의 노력 덕분이다.

“누군가는 아이들을 앞세워 감성팔이 한다고 말하기도 해요. 그럴 때마다 마음이 아파요. 하지만 아이를 앞세워 이러고 싶은 엄마가 누가 있겠어요. 우리 아이가 그저 다른 아이처럼 평범하게 지낼 수 있게 하고 싶은 마음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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