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 제1사단 신병교육대대 군의관

HD #1 (hospital day : 입원 1일째)

“선생님! 헤모리지 환자 왔습니다!” (헤모리지 : 뇌출혈 환자를 말한다.)

응급실 인턴이 마침 응급실에 있던 신경외과 2년차인 나를 다급하게 불렀다.

“33세 남자환자로 그... 하다가 갑자기 의식불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네? 무슨 소리에요?”

“네. 그... 복상사로...”

“뭐라고 복상사? 인턴 선생님! 환자가 죽었어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에요. 그냥 성관계라고 하면 되잖아요.”

이렇게 희한한 노티가 유성민 환자와 그 아내인 윤아와의 첫 만남이었기에 나에게는 더 기억에 남는 환자와 보호자였다.

그는 모야모야혈관에 뇌내출혈이 있었던 환자로 처음 내원 당시 의식 상태가 좋지 않아 예후가 매우 안 좋은 상황이었다.

(모야모야혈관 : 혈관 기형의 종류)

곧바로 옆에 있던 아내에게 수술 동의서에 서명을 받고 수술에 들어갔었다.

수술은 순조롭게 잘 끝났지만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수술이 끝나고 나니 아내라며 수술동의서에 사인을 했던 윤아가 알고 보니 환자와 이혼한 사이라는 것이다.

우리 전공의들은 어떻게 된 일이냐며 그녀를 다그쳤고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이야기 했다.

“제가 이혼했다고 하면 수술을 안 해줄까봐 그랬어요. 그리고 내일 다시 혼인 신고 하려고 했단 말이에요.”

어떻게 된 사정인지는 알 수는 없었지만 그녀의 눈에서 떨어지는 커다란 물방울을 본 우리는 더 이상 그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결국 내가 책임지고 친 보호자에게 수술동의서에 서명을 받기로 했고 나는 환자의 친형에게 전화했다.

“네, 제수씨한테 연락 받았어요. 동생들이 오늘은 못 간다고 하니 아마 내일이나 병원에 갈 겁니다. 저는 바쁘니깐 다시는 전화 하지 마세요.” 딸깍!

이렇게 전화는 끊어 졌고 그 다음 전화는 받지 않았다.

POD #1 (postoperative day : 수술 후 1일째)

유성민 환자의 동공 크기는 돌아왔으나 의식은 그대로였고, 중환자실 앞에서 윤아는 계속 눈물로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오늘 온다던 친 보호자는 오지 않았고 수술동의서를 받아야 하는 나의 마음은 더 타들어갔다.

POD #2

아침부터 원내 방송이 크게 울렸다.

코드블루! NICU! 코드블루! NICU!

(코드블루 :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뜻)

(NICU : neurointensive care unit, 신경계 중환자실)

다급하게 들리는 방송과 함께 사람들이 어수선해지고 중환자실 안으로 의료진들이 달려 들어간다.

유성민 환자는 다행히 5분 정도 심폐소생술 한 후에 돌아왔지만 이렇게 수술 뒤에 혈압이 떨어지는 경우는 대개 예후가 좋지 않았다.

언제 다시 혈압이 떨어질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 속에 드디어 세 명의 누나가 중환자실에 나타났다.

그들은 병원에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복장과 큼지막한 보석과 비싼 가방, 그리고 두꺼운 다리로 병원을 쿵쿵 울리면서 나타났다.

나는 누나들에게 방금 전 있었던 심폐소생술과 그동안의 치료 경과를 설명 하며 친 보호자 연락이 되지 않아 그동안의 치료를 진행했음을 설명했다.

그들은 내 얘기를 듣자마자 수술동의서에 서명하고 더 이상의 치료를 중단해 줄 것을 요구했다.

나는 귀를 의심하며 어려운 상황이지만 충분히 살 수 있다고 설명 했으나 그들은 더 이상 돈을 낼 수 없다며 계속 치료 중단만 요구했다.

“그리고 여기 병문안 온 손님들이 찾아와서 돈 봉투 주면 당신이 좀 받아줘요.”

“네?”

나는 계속 되는 황당함에 말문이 막혔다.

“밖에 저 여자가 아내라고 하고 대신 받을 수도 있잖아요. 우리가 여기서 감시할 수가 없어서 그래.”

나는 이런 황당한 얘기들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아니 저는 그런 건 안하니깐 밖에 아내분이랑 얘기 하세요. 그리고 DNR 서명은 전체 보호자들이 동의가 돼야 하니깐 상의 해보시고 전체 동의 되시면 알려주세요.”

(DNR : do not resuscitate, 심폐소생술 거부)

그리고 그날 저녁. 누나들은 중환자실에 와서 전체 보호자들의 동의가 됐다는 말과 함께 DNR 용지에 서명을 했다. 그리고 중환자실 앞에 울고 있는 윤아를 보고 그녀의 머리칼을 잡고 휘젓는 큰 소동을 벌였다. 결국 병원 보안요원들이 출동 하고서야 상황은 정리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윤아는 그런 상황보다도 환자가 죽어가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에 더 슬퍼하는 것처럼 보였다.

POD #3

“선생님 유성민 환자 혈압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애타는 간호사의 목소리에 나도 발을 동동 구르다가 다시 한 번 성민의 큰 형에게 전화했다.

“유성민씨 첫째 형님이시죠? 병원입니다. 현재 혈압이 떨어지고 있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DNR 사인 하셨다고 들었는데 현재 동생분이 굉장히 위중한 상태지만 약을 쓰면 아직 가능성이 있습니다.”

“확률이 얼마나 되는데요?”

“네?”

“그 약 쓰면 살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되냐고요.”

“제가...그건 장담할 수 없지만...”

“의사 선생님이 제 동생 위해서 애쓰는 건 저희가 알고 있습니다. 동생 편안하게 가게 놔두시고요. 죽으면 연락하세요.” 뚝.

전화가 끊어지고 중환자실에는 침묵이 흘렀다. 옆에 듣고 있던 간호사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중환자실 문이 열리면서 의외의 인물들이 구세주처럼 나타났다. 바로 환자의 세 누나들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발을 쿵쾅 거리면서 걸어오며 갑자기 모든 치료를 다 해달라며 요청했다.

갑자기 바빠지는 중환자실이다. 간호사들의 손은 기다렸다는 듯이 빠르게 움직였다.

약을 쓰자 다행히 성민의 혈압이 정상 범위로 돌아왔다.

“근데 왜 갑자기 생각이 바뀌셨어요?”

성민의 혈압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나는 호기심이 일었다.

그녀들은 돌아가자마자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남긴 유산 중 성민에게 있는 유산을 확인 했고 성민도 모르게 묵혀 있던 땅이 30억 정도로 올랐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성민이 죽게 되면 아내가 없는 지금 그 돈은 전부 큰형에게 가도록 되어 있어 곧바로 달려왔다고 한다.

“여기 큰오빠 온 적 있어요? 근데 그 돈을 큰오빠 혼자 다 먹는다는 게 말이나 되요? 우리 성민이 좋은 약들 다 써서 여기서 오래오래 계속 살려 주세요.”

뭐 듣고 싶은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어찌 됐든 환자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이 소식을 이제는 얼굴에 눈물자국 밖에 보이지 않는 윤아에게 바로 전해 주었다. 이제 의식 불명의 성민의 곁에는 윤아 밖에 남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

“선생님 저 절대 포기 하지 않을 거에요. 이미 직장도 그만 뒀어요. 그리고 제가 수술비랑 모든 병원비 다 냈어요. 앞으로도 다 낼 거니까. 선생님도 포기 하지 말아주세요.”

면회시간에도 항상 성민의 손을 붙잡고 울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감동한 것일까. 교수님과 전공의들은 항상 무슨 변화가 있을 때마다 윤아에게 소식을 전했고, 조그만 변화에도 그녀는 희망을 갖고 기뻐했다.

POD #7

내가 중환자실에 들어가려 할 때, 윤아의 어머님이 나를 붙잡았다.

“선생님! 아이고 우리 윤아 좀 말려주세요. 여기서 이러고만 있으니 이러다 큰 일 나겠어요.”

우리 전공의들도 벌써 일주일째 항상 날을 새며 이곳을 지키는 그녀를 보며 같은 걱정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들은 잠 안주무세요? 제가 여기 일주일째 밤새 있는데 선생님들도 안주무시고 항상 보이시네요. 괜찮으세요?”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우리를 걱정 해주었다. 나는 이곳에서 이렇게 우리의 고생을 알아준다고 생각하니 감동 했다.

그날 밤 유성민 환자는 일반 병실로 옮기기로 했고 우리는 그날 밤 성민과 윤아에게 있었던 일들을 들을 수 있었다. 큰 병원에는 그녀의 차분한 목소리만 울리고 있었다.

윤아의 이야기

외동딸로 자란 그녀와 칠남매 중 막내로 자란 성민은 제멋대로이고 불같은 성격 때문에 불꽃같은 사랑을 하면서도 자주 폭탄이 터지듯 싸웠다고 한다. 얼마나 싸웠던지 항상 싸움은 헤어짐으로 끝이 났고 서로를 그리워 하다가 성민의 사과로 다시 만났다. 그들이 몇 번을 헤어졌는지 셀 수 없었을 때 그들은 서로를 엮고 있는 운명의 끈을 볼 수 있었고, 결혼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성민의 부모님 반대는 생각보다 강했다. 성민의 부모님은 성민이 다른 남매들처럼 부모님이 정해준 사람과 결혼하기를 바라셨다. 성민의 부모님이 얼마나 부유한지 윤아는 모르지만 할아버지 때부터 부동산 사업을 통해 쌓은 부가 어마어마하다고 들었다고 한다.

결국 성민의 부모님 허락 없이 독립해서 그들은 결혼 했고, 언젠가 손주가 생기면 성민의 부모님도 마음이 누그러져 그들의 결혼을 인정해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삶은 항상 뜻대로 흐르는 건 아니었다.

아기는 쉽게 생기지 않았다. 성민은 둘이 행복하니깐 괜찮다며 웃음을 짓곤 했지만 윤아는 성민의 부모님 인정을 빨리 받고 싶은 마음에 조급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다. 성민의 부모님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도, 성민의 집에서는 이 사실을 성민에게 알리지 않았고, 그들은 이 소식을 우연히 다른 곳에서 들을 수 있었다. 그것도 일 년이 지나서야. 성민은 그 소식에 망연자실했고 어디에 이 슬픔을 풀어야 할지 몰랐던 것 같다.

그날 결혼 후 처음으로 큰 싸움이 벌어졌고, 윤아는 그 날 무슨 말이 오고 갔는지 정확한 상황과 말들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성민이 했던 그 말만은 확실히 기억난다고 했다.

“네가 문제라서 아직 애가 없는 거 아니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윤아도 해서는 안 될 말을 해버렸다고 한다.

“너랑은 더 못 살겠어 우리 이혼해!”

결국 둘의 불같은 성격은 혼인증서를 태워버렸고, 이혼 절차를 마무리한 윤아는 서울에 있는 친정으로 갔다고 한다. 하루하루 마음이 탔지만 화해하고 다시 만날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늦가을 칼바람에 오들오들 떨면서 피어나는 불안한 마음은 갑자기 뒤에서 들린 남편의 사과에 사라졌고, 결국 마지막 사과도 성민이 했다고 한다.

그날 밤. 그들은 다음날 아침 동사무소에 가서 다시 재혼인 신고를 하든지 이혼을 취소하든지 해서 같이 살기로 하고, 그 뒤로는 싸우더라도 다시는 이혼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기로 맹세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성민은 잠깐 방안의 열기를 피해 베란다 밖으로 나갔고 ‘억’하는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고 한다. 그렇게 꿈은 끝이 났다.

POD #14

이제 눈을 뜨기 시작한 성민은 적극적인 재활치료를 위해 재활의학과로 전과되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항상 윤아가 간병을 하고 있었다.

POD #52

나는 재활 병동에서 우연찮게 윤아를 만났다. 성민은 이제 손가락 정도는 움직일 수 있었지만 아직도 윤아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정도는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윤아는 미소로 맞아주기는 했지만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아 보였다.

“괜찮으세요? 안색이 별로 안 좋으신 거 같은데.”

나의 말에 주변에 있는 간병인들이 한마디 한다.

“선생님 요즘 윤아씨 밥을 너무 안 먹어요. 저러다 쓰러지겠어요.”

“아니에요. 저 괜찮아요. 요즘 속이 좀 안 좋아서.”

윤아는 이 말을 남기고 인상을 쓰더니 갑자기 배를 움켜잡고 쓰러졌다.

그 모습에 나와 주변사람들은 너무 놀랐고, 윤아는 쓰러진 상태에서 힘든 표정으로 배를 잡고 간신히 말을 하였다.

“배가 좀 안 좋은 것 같아요.”

“일단 응급실에 가서 진료 보시죠.”

그리고 나는 직접 윤아를 침대에 태워 응급실로 갔다.

나는 응급의학과 3년차 선생님에게 잘 봐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쌓인 일을 처리하러 갔다.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부디 그녀의 불행이 그만 하기를 바랐다.

얼마 후 나는 윤아가 궁금하여 다시 응급실로 내려갔고 응급의학과 전공의에게 마치 보호자인 것처럼 윤아의 상태에 대해 물었다.

“김윤아 환자 어때요? 검사결과랑은 괜찮죠? 특별한 건 없죠?”

“네 특별한 건 없던데요? 아마 요즘 잘 못 먹고 지쳐서 그런 것 같아요.”

“그쵸. 그럴 것 같더라고요.”

그는 안심하며 웃는 나에게 전혀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참, 근데 요 임신검사에서 양성반응이 나와서 산부인과 선생님 불러서 초음파 하고 있어요. 본인은 몰랐다고 하더라고요.”

“네? 뭐라고요? 임신?”

“한번 보세요.”

모니터에는 그녀의 요 임신 반응에 양성반응이라고 나와 있었다.

나는 곧바로 윤아가 누워 있는 침대로 뛰어갔다.

그곳에는 윤아가 누워있었고 산부인과 레지던트가 복부에 초음파를 대고 있었다.

“어때요?”

“응. 임신 맞네.”

“어머나~”

윤아가 놀라 감탄사를 한다. 그리고 윤아의 얼굴에서 다시 물방울이 눈물이 되어 떨어지기 시작한다.

“선생님 지나고 나면 과거의 고통은 순간이라는 말이 사실인가 봐요.”

이건 윤아에게 무슨 눈물이었을까 그동안의 고생에 하늘이 준 보상이라고 생각했을까. 왜 이제 생겼을까 하는 아쉬움의 눈물이었을까. 그게 어떤 것이든 지금까지 병원에서 흘린 눈물과는 다를 것이다.

나는 지금도 가끔 그녀를 생각하면 이 말이 항상 떠오른다.

“부디”

정말 부족하고 남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운 글이지만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일 년 전 겨울. 아내가 뜬금없이 저에게 휴대폰 화면을 보여 주며 한미수필문학상에 응모해보라고 권유했습니다. 제 글이라고는 연애편지 밖에 본 적 없는 아내의 말에 당시에는 그냥 웃고 넘겼지만 그 뒤로 계속되는 아내의 권유와 격려에 저는 용기를 얻어 한 편의 글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수상 소식을 듣고 정말 받을 줄은 몰랐다며 아내도 깜짝 놀라네요. 남편의 꿈을 응원해준 아내와 수상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저에게 꼭 물어 보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뒷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응급실에서 윤아(가명)의 임신을 확인 한 이후의 이야기는 모릅니다. 윤아가 무사히 출산을 했는지, 환자가 그 뒤로 깨어났는지 전혀 모릅니다. 신경외과 레지던트 때에는 너무 바쁘고 잠도 부족했기 때문에 환자가 전과한 이후에 그들의 소식을 알아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매일을 약간 덜 깬 상태로 지냈던 시절이었기에 돌아서면 잊어버리기 일쑤였고 때문에 저는 특이한 케이스를 경험하면 잊지 않기 위해 꼭 기록을 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수련을 마치고 난 지금, 신경외과에서 경험했던 케이스를 적어놓은 기록들을 보는 것이 저의 큰 즐거움이자 자산이 되었습니다. 만약 기회가 된다면 제 기록에 있는 다른 이야기들도 수필로 풀어내고 싶습니다.

이 이야기의 제목인 ‘부디’는 심규선과 에피톤 프로젝트의 노래 ‘부디’에서 따왔습니다. 저는 그 노래의 가사를 들을 때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환자의 아내가 생각이 났습니다. 특히 재활의학과로 전과하기 전, 눈도 잘 못 뜨는 환자를 보며 앞으로 긴 시간 보호자가 힘들 것이라는 제 말을 듣고 아내가 눈물을 흘리면서 했던 말 때문에 더욱더 그런 것 같습니다.

“선생님. 저는 제 남편이 살아만 있으면 평생 이렇게 누워 있어도 괜찮아요. 제가 돌보면 되죠. 저는 그냥 남편이 눈을 떠서 저를 알아볼 수만 있으면 소원이 없겠어요.”

부디, 그들이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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