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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회 한미수필문학상 장려상]다리를 찾아주세요을지대병원 외과 문윤수 교수
  • 청년의사
  • 승인 2018.02.12 06:00
  • 최종 수정 2018.02.12 06:00
  • 댓글 1

1.

“몇 일전 잘려나간 아버지의 두 다리를 찾아주세요.”

두 아들과 할머니는 두 눈에 눈물을 머금고 말한다.

“왜 그러시는데요? 며칠 전 다리 절단 수술을 할 때 이미 폐기물 처리되어서 아마도 찾기 힘들 겁니다.”

“꼭 찾아주세요. 아버지께서 잘못되시면 저 세상 가시는 길 두 다리로 가실 수 있도록 해드려야 할 것 같아서….”

말끝을 흐리는 아들과 듣는 나,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잘려나간 다리를 찾을 필요 없습니다. 할아버지를 반드시 살리겠습니다.’

동시에 주황색 의료용 폐기물 봉지에 덩그러니 담긴 두 다리를 뒤로하고 상반신과 대퇴부만 달린 할아버지가 수술실로 급하게 들어가던 그 날의 긴박했던 상황이 머리에 그려진다.

2.

멀리서 구급차 소리가 들린다. 그날따라 왠지 구급차 사이렌이 너무 크게 들렸다. 인근 병원에서 다리에 심한 개방성 골절이라는 연락이 온 환자가 벌써 도착했다.

양쪽 다리에는 붕대로 얼기설기 감겨 있으나 밖으로는 새빨갛게 새어나오는 피가 보이고 이미 대량 출혈이 되었는지 전신은 창백해 보였다.

그러나 문제는 환자가 응급실의 외상소생술에 내린 직후 혈압이 잡히지 않았다. 곧바로 심폐소생술을 하는 동시에 몸의 굵은 정맥관들이 꽂아지고 대량 수혈과 약물이 투입되기 시작됐다. 할아버지와 나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미약하게 뛰는 심장, 몸에 있는 피가 잘린 양 다리를 통해 너무 많이 빠져나가 혈압은 잡히지 않고 있고, 마음속으로는 병원에 있는 모든 피를 다 가져오라는 소리를 치고 싶은 나의 심정이었다.

그러나 침착해야한다.

환자의 상태가 심각할수록, 제 아무리 피가 솟구쳐도 환자를 최종적으로 담당하는 외상외과의사야 말로 침착. 그 두 단어를 마음에 새겨야한다.

78세의 건장한 시골 할아버지.

경운기를 몰고 가다가 승용차와의 추돌 후 우여곡절 끝에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이곳에 와서 나와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응급의학과, 정형외과, 흉부외과 선생님들 모두 함께 환자 옆에서 침착하고 정확한 처치. 치료가 시작됐다. 어느 누구 하나라도 지체하고 주저하는 것만으로도 이 사람은 살 기회를 잃을 수 있다. 단호해야 한다.

새빨간 피를 양쪽의 굵은 정맥관을 통해서 쏟아 부으니 조금씩 혈압이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혈압이 조금씩 오르면서 붕대로 감아놓은 다리 사이에서 피가 수도꼭지처럼 줄줄 새어나왔다. 다리에 심각한 골절로 인하여 양측 동맥이 절단된 것이 분명했다.

최종 책임자인 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결정을 해야 한다. 할아버지의 목숨이냐? 할아버지의 다리를 살리느냐?’

다시 말해 목숨과 다리를 모두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적으나 할아버지의 두 다리를 살리려고 한번 노력하느냐? 두 다리를 포기하고 할아버지가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게 한번 가느냐?

응급실 내 선생님들과 아주 잠시 상의를 하고 할아버지의 상태를 다시 한 번 냉정히 바라보았다. 곧바로 외상소생실 밖의 보호자들을 모두 불렀다. 아들 둘과 여러 가족들, 아무 말도 없이 눈물만 줄줄 흘리며,

“살려주세요, 저희 아버지 무조건 살려주세요. 너무 고생만 많이 하신 분입니다. 이렇게 가시면 안 됩니다. 제발 무조건 살려주세요”라는 말만 반복했다.

냉정히, 침착하게 이를 꽉 깨물고 말했다.

“네! 최선을 다하여 아버님을 살려드리려고 노력을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미 심정지가 온 상황이고 다리에 워낙 많은 출혈이 나기에 살아나실 가망성 매우 적으십니다. 지금 상황은 두 다리를 걱정할 것이 아니라 목숨이 더욱 중요한 상황입니다. 최선을 다해 살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 말을 뒤로 한 채 나는 다시 할아버지에게로 갔다.

나의 뒤로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라는 가족들의 눈물가득한 소리, 그리고 가족들의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만 들렸다.

할아버지의 몸에 달린 여러 개의 굵은 관을 통해서 쏟아 붇는 피와 다리를 통해서 쏟아져 나오는 피, 둘 중 어느 누가 많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무릎 근처에서 거의 잘려진 양측 다리에는 선홍색의 피가 줄줄 흘러내리며 가까스로 짜주는 혈액으로 할아버지의 혈압의 헐떡거리며 유지하고 있다. X-ray 상에서 여기저기 뼛조각이 분리된 사진을 보면 마치 파편에 맞아 분쇄된 모양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러한 무릎 주위의 조각들 사이에 살점들과 굵은 혈관, 신경 등이 멀쩡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사치이다.

이제 정말 시간이 없다. 결정을 해야 한다. 눈을 지그시 잠시 감으며 마음속으로 방금 전 보호자들의 하염없는 눈물을 떠오르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살자. 살리자. 환자를 살리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이 순간부터 할아버지에게는 두 다리는 없다. 하지만 목숨은 반드시 살리자.’

“지금 여기서 다리 혈관을 잡아버리겠습니다. 다들 준비하세요! “

나의 한마디에 외상소생술의 모든 사람들은 준비를 한다. 그 자리에서 다리에 감긴 붕대를 풀자 처참하게 파괴돼 버린 뼈와 근육들 사이로 잘리고 피가 솟구치는 혈관들이 드러났다. 대퇴부를 압박하며 동시에 상처부위의 벌리고 혈관을 잡고 묶을 여러 기구, 실들을 준비했다. 무릎근처의 대퇴골과 아래다리 뼈들과 근육과 신경과 혈관이 분쇄되어 터져서 마치 곤죽과도 같았다. 양쪽 잘려진 다리, 부서진 뼛조각, 근육 사이사이를 헤치며 가까스로 잘려진 대퇴동맥의 분지들을 찾아 가까스로 묶었다. 하지만, 그 순간 이미 할아버지의 양 다리는 잘려져 나갔다. 아주 작은 부분의 피부와 근육조직이 연결되었지만 이미 의미가 없었다.

잠시 전까지 피가 솟구치던 잘려진 굵은 혈관들을 잡고 나니 덩그러니 잘려나간 할아버지의 양쪽 다리가 왜 그리 슬프게 보이던지. 할아버지는 그 두 다리를 이용해서 80평생을 땅을 굳건히 디디고 일하면서 밖에서 통곡하고 있는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뛴 다리이다. 그러나 이제는 가족들의 몫이다. 나를 비롯한 의료진들이 환자를 살리기 위해 수술과 중환자실에서의 싸움도 있지만 가족들 모두의 간절함과 기도, 모두가 모여 할아버지의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무릎아래의 다리는 덩그러니 잘려 나가 누군가 이미 주황색 의료용 폐기물 봉지에 주섬주섬 넣는 사이에 할아버지의 혈압이 서서히 정상 혈압을 향해 야금야금 오르고 있었다. 이제 할아버지는 남은 생을 앉은뱅이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마지막 선택으로 수술실로 올라가는 일이 남았다. 수술실에서 정식으로 무릎의 절단 수술을 시행했다. 하지만 이미 근육 괴사와 뼛조각이 분쇄되어서 정상적인 다리 절단술이 아닌 임시 절단술이 됐다. 할아버지의 생명을 위한 선택이었다.

임시 다리 절단술을 마치고 할아버지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몸에 달린 여러 관들을 통해서 주렁주렁 피와 여러 승압제 등을 달고 있으며 모니터에 보이는 빨간 숫자는 이리저리 요동쳤다. 나를 비롯한 외상팀 모두와 할아버지의 가족, 그리고 할아버지의 긴 싸움이 시작되었다. 대량출혈과 범발성 응고장애, 전신의 패혈증, 간부전, 폐렴 중환자실이 중증외상환자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씩 생겼다. 하나씩이 아니라 한꺼번에 모두 발생했다. 더욱 문제는 임시로 다리 절단술 한 양 하지의 상태가 출혈과 피부 괴사가 시작됐다.

또 다시 결정의 순간이다. 환자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마취과에서 마취를 걸어줄지가 미지수였다. 하지만, 다시 한 번 가족의 기도, 간절함과 외상팀의 모든 의료진의 힘이 하나로 되어 병원에 온지 열흘 뒤 할아버지의 2차 수술이 진행됐다. 첫 수술에서 무릎 주위에서 절단술을 시행하였으나 이번에는 피부 및 근육 괴사 등으로 피치 못하게 대퇴골의 중간부위까지 양 하지를 절단했다. 할아버지의 양다리는 대퇴골의 절반만 남은 사람이 되었다.

‘나중에 걷는 것? 정상적인 사람? 의족이 가능할지?’ 모든 것이 지금은 상상 속, 꿈속의 일이다. 지금은 오로지 살 수 있을까의 문제다.

감염과 간부전, 전신의 패혈증, 폐렴, 급성 담낭염이 순차적으로 나타나고 이어서 수술 이후에 뇌경색까지 나타났다. 중증외상환자, 중환자에게 모두 나타날 수 있는 모든 합병증과의 싸움이다. 하지만 이 싸움의 진정한 승자는 가족의 사랑을 받고 있는 할아버지였다.

3.

입안의 기도삽관을 목의 기관절개술로 옮기고 할아버지에게 들어가는 모든 승압제가 없어지고 안정제까지 끊었다. 지난 몇 주간 말 그대로 사경을 헤매던, 심장마비가 몇 번이 일어나고 수많은 피와 약물들이 들어가며 온 가족의 눈물을 다 빼놓았던 그 할아버지가 그 사실을 아는지 안정제와 수면제를 끊고 나서 의식을 되찾아 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기적과 같은 일이다.

처음 응급실에서 다리를 자르자는 결정을 하고 과연 할아버지가 살아난다는 상상을 했던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할아버지가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한 뇌경색으로 우측이 약간 불편하지만 이제 의식도 어느 정도 돌아오고 가족들도 알아보면서 주위 사람들을 보면 온화한 웃음을 보여주신다. 잘려나간 다리의 상처 소독을 할 때마다 할아버지는 눈물을 찔끔 흘리시곤 한다. 하지만 조금 지나면 언제 그랬나는 것처럼 다시 온화한 웃음을 보여주신다.

할아버지의 상태가 처음부터 좋지 않았던 만큼 처음 만남에서부터 중간에 여러 번 고비가 있을 때마다 몇 번이고 가족들을 불러 상태를 설명했다. ‘사망’이라는 말이 내 입 앞까지 나왔다 들어가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차마 안 좋은 말 보다는 최선을 다해서 치료하겠다는 말과 함께 혀를 꽉 깨물며 깊은 한숨으로 상태의 심각성을 말하기를 반복했다. 아직 목에 달린 기관절개관과 다리 상처가 조금 남아있지만 지금 가족의 품에서 일반병실에서 치료하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희망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할아버지가 많이 회복이 되고 목에 달린 기관절개관을 막고 스스로의 의사표현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 즈음 할아버지도 본인의 무릎부터 아래까지의 두 다리가 모두 잘려나간 것을 조금씩 인지를 할 시점이었다. 어느 날 할아버지는 기관절개관을 손가락으로 막고 나에게 말을 했다.

“의사 양반! 내 다리 찾아줘. 어디다 숨겨 놓지 말고 이제 찾아줘. 나 이제 다 나아서 내 다리로 집에 가야여.”

순간 나는 말문이 막혔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하고 이 상황을 피해야 할지.

할아버지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나의 입을 똑 바로 쳐다보며 내가 지금이라도 바로 당신의 두 다리를 가져다준다는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할아버지를 옆을 지키고 있던 할머니는 어느새 눈가에 눈물이 가득 맺혀 있었다. 순간 창밖을 보니 할머니의 눈물방울들이 어느새 눈꽃으로 변했는지 하얀 함박눈이 흩날리고 있었다.

“영감, 주책이셔. 이 의사양반 바쁘셔, 또 중환자실 얼른 내려가서 상태 안 좋은 다른 영감 치료해주러 가야 혀…. 어서 가셔 의사 양반!”

할머니 덕분에 난 간신히 그 병실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왠지 모른 서글픔과 안타까움에 나도 모르게 울컥.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물이 고였다. 안타까움에, 할아버지의 두 다리를 지켜드리지 못한 미안함에….

며칠 뒤 할아버지의 상태는 점차 좋아지고 있었다. 그날 따라 할아버지의 병실이 북적였다. 눈물방울로 기억되는 두 아들을 비롯하여 손자 손녀까지 정말 대가족이 모여서 몇 십 개나 되는 초를 켠 커다란 케이크를 가운데 두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있는 힘을 다하여 한 번에 모든 초를 힘차게 불어 껐다. 순간 내가 본 것은 두 다리가 모두 따뜻한 이불 속에 가지런히 있으며 온 가족에 둘러싸여 너무나 기쁜 표정의 할아버지다.

<수상소감-을지대병원 외과 문윤수> 또 하나의 즐거움, 글쓰기

유난히도 다사다난하고 바쁘게 달려왔던 한해의 막바지에 오랜 기간 마음속에 간직한 환자를 또박또박 기록하는 것으로, 또 그 기록의 결과를 기다리는 것으로 2017년을 마무리 했다.

기다리던 기쁜 수상의 소식을 들으니 5년 전 첫 수상의 순간이 기억이 난다. 당시 의사면허증을 받고 2년 밖에 안 된 초짜 의사인 나의 손을 기억해주는 환자, 전공의로서 보았던 환자, 하지만 아쉽게 불가항력인 암이라는 죽음의 문턱을 넘지 못한 할아버지 이야기였다.

이번도 역시 할아버지 환자의 이야기였으나, 내 머릿속에 뚜렷이 기억에 남는 그 할아버지의 다리, 담당의사에 '문윤수'라는 이름표가 걸려있었고 환자의 모든 것을 전적으로 담당한 의사로서의 기록이다. 다리는 없지만 살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고 그 기회를 잡고 살아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환자의 이야기이다.

길다면 길고, 짧으면 짧은 기간 동안의 의사라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살아가는 나에게는 환자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나와 가족의 밥줄이자 동시에 나에게는 인생의 또 다른 것을 가르쳐 주는 스승이다. 내 인생의 다른 길을 가르쳐주는 스승들의 기억들을 한 글자 한 글자 적어가는 것이 어느 순간 나에게 취미이자 또 다른 즐거움으로 자리 잡았다.

가르침을 배우고 그것을 취미로 즐기면서, 운이 좋아 수상의 영광까지 얻고 아내와 아들, 딸 모두 기쁨을 함께 하니 이 또한 나에게는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아빠가 집에서 책을 집어 들면 본인도 옆에서 같이 책을 들고 앉는 아들, 이제 글자를 하나 둘씩 관심을 가지고 배우고 싶어 책을 들고 와서 읽어달라는 딸에게, 앞으로 살아가는 앞날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동시에 그 일을 통해 또 다른 것을 배우고, 일 속에서 즐거움을 찾아가며 기쁨을 누리기를 바래본다.

언제나 힘이 되어주시고 사랑과 격려를 해주시는 부모님과 장인, 장모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항상 병원과 환자에게 아빠, 남편을 빼앗겨 기다리느라 고생하는 중에도 틈틈이 남편의 취미인 글을 읽어주고 남편이 자주 틀리는 맞춤법을 슬그머니 고쳐주는 아내, 아빠가 글을 써서 상을 탔다고 가장 기뻐해주었던 상후, 리후에게 마음 깊은 사랑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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