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가초과의약품 제도개선협의체' 7번 회의 중 2번만 참석…'방관적' 지적 나와
2년여전 오프라벨 확대 고시안 좌초 재현 우려도…식약처 “오프라벨은 복지부 소관”

의약품 허가사항 외 사용(오프라벨 처방) 확대 요구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주무부처 중 한 곳인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방관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와 논란이 예상된다.

정부가 지난해 면역항암제 건강보험 등재 과정에서 오프라벨 처방을 제한하자 암 환자단체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일었다.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다양한 암 치료의 가능성을 가진 면역항암제를 자가 부담으로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건 부당하다는 게 암 환자단체들의 지적이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소아 및 희귀질환 약제 등 허가초과 의약품에 대한 처방권 보장 및 허가범위 확대 논의를 위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식약처,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암학회, 내과학회, 환자단체 등이 참여한 '허가초과의약품 제도개선협의체'를 구성해 7차례에 걸쳐 회의를 진행했다.

하지만 복수의 협의체 참석자들에 따르면 7차례에 걸친 회의에도 오프라벨 처방에 진척이 없었다. 특히 참석자들은 그 배경으로 의약품의 안전성·유효성 허가를 담당하는 식약처의 요지부동한 태도를 꼽았다.

참석자들은 식약처가 약사법 개정이 우선돼야 한다는 원론을 고수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참석자들은 지난 2016년 복지부가 추진했던 ‘허가 또는 신고 범위 초과 약제 비급여 사용 승인에 관한 기준 및 절차 일부 개정안’과 같은 일이 또다시 일어나지는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당시 고시안은 ‘심평원장이 임상적으로 보편적 사용이 필요하다고 공고하는 약제는 약사법상 지정된 의약품임상실험 실시기관이 아닌 요양기관에서도 비급여 사용 승인을 신청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식약처 등이 고시개정이 아닌 약사법으로 허가초과 사용을 허용해야 한다며 반대해 고시안은 결국 좌초된 바 있다.

이후 국내에선 여전히 ‘의약품 허가사항=급여기준’이라는 공식이 유지되며, 허가초과 의약품 사용 시 사전 및 사후 승인을 거치도록 하는 등 제한적으로만 허용되고 있다.

일반약제는 IRB를 설치한 기관에서, 항암제는 다학제적위원회를 구성한 기관에서만 오프라벨 처방이 가능하다.

그러자 의학계는 해외에서의 사용 실태 등을 근거로 일부 약제들에 대한 사용 확대 및 급여적용 요구를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복지부도 이같은 지적을 수용하며 임상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오프라벨 처방 약제에 대해서는 사례별로 급여를 인정하는 고시를 발표하고 있다.

삼환계 항우울제 Trazodone HCI과 Amitriptyline HCI, Nortriptyline HCI 등을 기존 허가사항을 초과해 신경병증성 통증 투여, 편두통 예방 목적으로 투여해도 급여로 인정하고, 항전간제인 Clonazepam 경구제와 Primidone 경구제, 부정맥용제 propranolol HCI 등에 대한 오프라벨 급여인정 범위를 신설 또는 확대한 것 등이 바로 대표적인 사례이다.

수십년간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그 효과를 인정받은 적응증이니, 이에 대한 오프라벨 사용 또한 인정해 달라던 의료 현장의 다년간의 요구가 최근에야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을 통한 오프라벨 인정건수는 100여개 의약품에 그치고 있으며, 이마저도 보편적으로 사용한 약제가 우선이다. 소아 및 희귀질환 약제, 고가항암제 등은 환자들과 전문의들의 요구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식약처 7차례 회의 중 2번 참석…개선 의지는?

이에 허가초과의약품 제도개선협의체 회의에선 현재의 일반약제 사후승인, 항암제의 사전승인 제도 등에 대한 승인제 폐지와 IBR 심의 요건을 완화한 의료진의 처방권 보장, 미등재 약제에 대한 허가초과 사용 관리 방안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여기에 허가초과 의약품의 사용에 대한 관리를 위한 모니터링 및 보고 의무화, 소아 및 노인, 희귀질환자에 대한 임상시험을 의무화하는 등 제약사의 역할을 강화해 허가범위를 확대할 수 있는 기전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식약처는 회의에 2번만 참석하고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는 등 수동적인 태도만 보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협의체 한 관계자는 “의약품의 사용을 허가하는 기관인 식약처가 있는 만큼, 임의로 적용범위를 풀기는 어렵다”며 “관련 기관들이 모여 회의를 하지만 식약처는 회의에 단 2번만 참석했고 그마저도 신청에 따라 의약품 사용을 허가할 뿐이라는 같은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의료계도 반발하고 있다.

협의체에 참여한 의료계 관계자는 “고시로 허가초과약제를 급여화하는 것도 좋지만 (임상 현장) 요구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며 “식약처 허가사항이 진료현장에서 의약품을 사용하는데 절대적이어서는 안된다. 의료진의 판단하에 필요한 경우 근거있는 의약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제약사의 신청에 의한 허가범위 확대가 아닌, 심평원 내에 분야별 전문가인 의사들이 참여한 협의체를 구성해 허가초과약제에 대한 인정여부를 논의해야 한다”면서 “식약처 허가범위 외 사용에 대한 관련 기관 및 의사들의 책임에서도 벗어나 전문가에 의한 사용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식약처 관계자는 “오프라벨 사용은 복지부 소관”이라며 “왜 (오프라벨 문제를) 식약처에 물어보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편, 복지부는 오프라벨 사용 의약품을 급여권으로 끌어들이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원칙적으로는 허가범위 내 사용이지만 의학적으로 필요성이 있고 타당하다면 허가 외라도 사용할 수 있다”며 “소아나 희귀질환 약제의 경우 임상시험의 한계가 있을 수 있으니 학회 등에서 의견을 주면 허가 외 범위라도 필요한 경우 급여 가능토록 검토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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