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병원 이원석 교수, HIPEC 시술로 대장암·난소암 등 복막전이 환자 5년 생존율 높여

"복막전이 환자를 더이상 그대로 두어서는 안된다. 예전에는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환자와 보호자, 의료진이 한마음으로 적극적인 치료를 하면 완치할 수도 있다.”

국내에서 두 번째로 많이 발생한다는 대장암은 최근 항암제 개발로 76.3%라는 다소 높은 생존율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복막으로 암이 전이된 경우라면 예후는 급격히 나빠진다. 복막전이암은 항암제가 암세포에 전달되지 않아 치료효과가 낮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막전이암 중에서 대장암과 같은 암종에서 제한적으로 뛰어난 치료효과를 보이는 시술법이 있다. HIPEC(Hyperthermic intraperitoneal chemotherapy) 시술로, 독일과 미국, 프랑스 등에서 행해지고 있는 이 시술법이 국내 병원에도 도입됐다.

가천대 길병원은 지난해 8월 ‘복막전이/재발암 클리닉’을 개소하고 HIPEC시술로 절망에 빠진 환자들의 생명줄을 놓치지 않고 있다.

가천대 길병원 이원석 외과 교수

HIPEC 시술법을 처음으로 도입한 길병원 외과 이원석 교수는 “앞길이 창창한 30대 남성이 대장암 복막전이로 삶의 희망을 잃어가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지 않냐”면서 “HIPEC 시술은 항암치료와 함께 복합적으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이 시술을 받고 웃고 있는 환자를 다시 만났다. 이런 환자들이 더 많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완치도 가능하다는 HIPEC 시술은 복강내 온열화학요법의 하나다. 전이된 복막에 항암제를 투여한 후 HIPEC 기기를 이용해 약 90분간 병소 부위의 온도를 40~43도까지 높이면, 세포막의 변성과 혈관 투과도가 높아져 약물 농도를 높인다. 복막전이 시 혈관 형성이 잘 안돼 항암제가 잘 투여되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한 치료법이다.

이 시술을 받은 환자의 생존기간은 대조군 12.6개월에서 22.3개월로 연장되고 2년 생존율이 16%에서 43%로 증가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1990년부터 2007년까지 23개의 다기관 연구에서 523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시술 사례를 분석한 결과, 5년 생존율이 27%대를 유지한다는 보고도 나왔다(2009 by American Society of Clinical Oncology).

이원석 교수는 “통계적으로 5년간 생존할 경우 재발을 안 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HIPEC 시술 후 5년 이상 생존자 중 복강내 암이 없는 상태라면 완치도 가능하다는 의미”라며 “선택받은 소수의 환자에게는 이 시술법이 희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교수는 “병원을 찾는 많은 환자들 중에는 적응증이 맞지 않아 시술을 못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현재까지는 대장암, 충수암, 난소암 등에 한해 치료 효과를 보이고 있다. 그 외 선택된 위암환자에게 일부 적용되지만 위암은 예후가 좋지 않아 추천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HIPEC 시술을 받기 위해서는 의료진의 적극적인 상담을 통한 환자 발굴이 중요하고, 높은 수술강도와 수술 전후의 관리도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교수는 이 시술이 더 널리 알려져 국내 대장암 환자 등의 다기관연구를 통해 국내 치료가이드라인이 나올 수 있는 날을 고대하고 있다.

이 교수는 “HIPEC은 시술 준비부터 시술시간까지 4~5시간은 기본으로 소요되며, 평균 10시간이 걸리는 쉽지않은 시술”이라며 “보름 정도 입원해서 잘 치료받으면 그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12년 EPIC(early postoperative intraperitoneal chemotherapy)을 시작으로 지난해 HIPEC 기기를 도입해 HIPEC 시술을 하기까지, 줄곧 복막전이암 환자 치료에 관심을 갖고 매진하게 된 이유는 암을 박멸시키겠다는 그의 사명감과 한우물만 파겠다는 의지 때문이다.

이 교수는 “2015년에 미국 샌디에고 무어스 암센터에서 HIPEC 시술을 연수받았다. 술기자체가 쉽지 않고 아무나할 수는 없는 영역이지만 내가 노력하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그 이전 2012년에는 독일 함브르크에서 HIPEC을 개발한 휴거베이커의 수술을 보면서 선도적으로 치료법을 개발하고 많은 환자를 살린 점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미 미국과 프랑스에는 HIPEC의 가이드라인이 나와있다. 머지 않아 국내에도 유수의 병원들이 치료가능한 환자들을 발굴해 적극적인 치료를 하는데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의 바람대로 최근 대장암연구회 등 관련 학계를 중심으로 이 최신 시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시술법에 대한 정보 공유가 본격화 되고 있다.

그는 “신의료기술이다보니 아직 의료진들도 많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대장암연구회 등 학회에서 관련 세션이 열리는 등 HIPEC 시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직은 국내에서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향후 전향적 연구를 통해 치료가이드라인도 만들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면서 “복막전이 환자가 전체 암환자의 10%라 대규모 연구가 어려운 만큼 다기관 연구를 통해 함께 연구결과를 모아 보다 많은 환자들이 치료받아 웃을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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