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학회 연속인터뷰④] 소아소화기영양학회 최병호 회장 "어린이 생존권 인프라 턱없이 부족"

저출산 시대를 맞아 임신·출산 등에 대한 각종 대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임신·출산 장려 못잖게 태어난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의 정책들이 산발적이고 일시적이란 지적이다. 이에 본지는 ‘소아’ 관련 학회 대표 인터뷰를 통해, 소아 건강 문제 및 정책 등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짚어봤다.

최근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은 신생아, 미숙아를 케어할 수 있는 의료 인프라에 대한 경종을 울렸다. 상급종합병원에서 발생한 일인 만큼 사회적 충격이 컸던 탓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신생아 환자를 위한 의료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게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게 대한소아소화기·영양학회 최병호 회장(경북의대 소아과학교실)의 지적이다.

신생아 및 소아집중치료실은 외상센터처럼 병원 입장에서 적자가 발생하는 곳이다보니 인력이나 시설이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신생아를 포함한 소아중환자 의료시스템과 인프라를 국가 주도로 강화해야 그마나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최 회장은 “초저출산 시대를 맞아 정부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출산 장려나 보육 지원 등 복지 정책에 당연히 찬성이다. 하지만 선진국과 비교해 우리나라는 신생아집중치료시실, 소아집중치료실, 소아응급실 인력과 시설 장비 등 어린이 생존권과 관련된 의료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일침했다.

또한 최근 10년 사이 크게 증가한 소아비만 해결을 위한 노력과 소외된 소아희귀난치질환에 대한 정부의 해결책 역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가파르게 증가하는 소아비만은 물론이고, 희귀난치질환으로 인해 크게 늘어나는 보호자의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학회도 적극 나서는 동시에 정부가 보다 많은 정책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선 대한소아소화기영양학회에 대한 설명 부탁드린다.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았으며 소아청소년의 소화기와 영양질환의 진료와 연구를 통해 소아청소년의 미래를 책임진다는 미션을 가지고 있다. 현재 정회원 650명, 전체 회원 1660 여명의 중견학회다. 지난 2009년 아시아-범태평양 소아소화기영양학회(APPSPGHAN)를 서울에서 성공적으로 개최했으며, 공식학술지인 PGHN(Pediatric Gastroenterology, Hepatology and Nutrition)은 PubMed, SCOPUS, eSCI에 잇달아 등재됐다.

-최근 신생아나 미숙아를 치료하는 NICU(neonatal intensive care unit) 또는 소아집중치료실인 PICU (pediatric intensive care unit)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저출산시대에 이들을 제대로 건강하게 치료하는 게 중요하다고 보는데, 이에 대한 정부 지원이나 정책에 대해 제언을 한다면.
선진국과 비교해 턱없이 부족한 어린이병원과 신생아집중치료실, 소아집중치료실, 소아 응급실의 인력과 시설 장비 등 어린이의 생존권과 안전에 해당하는 인프라에 먼저 관심과 과감한 지원을 요청한다.

또한 중증 환자를 담당해야 할 상급종합병원과 어린이병원에 경증 환자가 몰리는 구조가 개편되지 않는다면 현재 일어나는 문제가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 어린이병원이나 상급종합병원의 소아진료는 성인과 달리 박리다매로 운영할 수 없다. 만약 이들 병원이 박리다매로 운영하면 결국 1, 2차 의료기관과 경쟁하는 것이고, 살릴 수 있는 중증 환자 치료는 방치하게 된다는 의미다.

또한 현재 시스템에서는 비록 규정에 어긋나지만 살릴 수 있는 소아환자에게 의학적 임의비급여나 삭감을 무릅쓰고 실시한 치료가 비보험의 보험 전환 이후 무차별 삭감이 되는 것도 우려된다. 비보험 부문이 보험으로 전환되면 본인부담이 줄어들면서경증환자의 의료쇼핑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경증환자의 의료쇼핑이 증가된다면, 중증 소아환자에게 돌아갈 재정이 바닥날 수도 있다. 이로 인해 중증 소아환자 치료가 무차별 삭감으로 연결돼 중증 소아환자에게 악순환이 일어날 개연성이 있다.

여기에 총액수가제 도입 등으로 향후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까지 일어난다면 담당 소아과 의사는 양심과 제도 사이에 자책하게 될 것이 우려된다. 물론, 학회는 상황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고유의 역할에 충실히 할 것이다.

-최근 국내 소아청소년은 ‘영양 과다’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소아비만이 늘었고 우려가 크다. 이에 대해 진단한다면.
국내 소아·청소년의 비만은 최근 10년 사이에 두 배로 증가했다.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증가 속도다. 미국 카이저 연구센터에서는 비만 때문에 어린이의 평균 수명이 부모 세대보다 20년이 짧아질 수도 있다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 국내 소아·청소년의 대사증후군 환자가 미국의 소아·청소년보다 더 많아졌다는 연구도 있다.

이대로 방치하면 우리나라도 10~20년 후, 소아인구의 절반이 비만이 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도 장애아와 저소득층의 비만율은 더욱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소아기 비만은 절반 이상이 성인 비만으로 이어지고 고혈압, 당뇨병, 심장질환, 뇌졸중, 이상지혈증, 동맥경화, 지방간염 등의 질환이 조기에 급증하고 중증이 될 수 있다.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소아 비만 관리는 지금도 늦었다. 국가적으로 비만 예방 캠페인과 공익광고를 활성화해야 한다. 건강에 해로운 식품은 소아, 청소년을 대상으로 광고하지 못하도록 규제해야 한다. 시·도교육청과 시·도의사회가 협력해 학생 비만 예방 교육을 정기적으로 실시하거나 학교 체육 활동을 강화하고 학교 구역 안에서는 영양적으로 균형 잡힌 식품만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다.

-해외에서는 소아비만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많은 선진국들이 현재 국가 보건 의료비용의 7% 정도를 비만과 관련해 지출하고 있으며 비만 인구가 많은 미국의 경우 전체 보건의료비 가운데 비만 관련 비용이 25% 이상을 차지한다. 유럽 각국에서도 정크푸드의 TV 광고를 금지하고 탄산음료에 비만세를 도입하는 등 전 세계가 비만에 의한 경제 위기를 막기 위한 노력 중이다.

-국내 소아비만 정책에 대한 조언을 했는데, 이 외 미숙아나 신생아, 소아 질환 치료에 있어 개선책이 필요한 부분이 많을 것 같다.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인가.
소아 희귀난치성 질환은 여전히 정부 건강보험정책에서 소외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위장궤양이나 출혈은 신생아나 영아에게는 매우 드물지만, 생명을 위협하는 응급상황인 경우가 훨씬 많다. 하지만 단순히 진단명 때문에 경증으로 분류되고, 보호자의 부담도 엄청나게 증가한다.

비보험의 보험 적용도 원칙적으로는 고무적인 정책이다. 하지만 의료전달체계와 질병의 경중을 연령별로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으면 도덕적 해이가 생겨 보험 재정이 감당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또한 정책에서 소아는 후순위가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신생아와 영아에게 시행하는 내시경은 선천 기형인 경우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시술인 경우가 많지만 안전시술을 위한 재정지원은 없다.

또한 소아 청소년의 크론병은 중증인 경우가 성인에 비해 훨씬 많다. 보험 제도권 사각지대에 놓인 단장증후군도 문제다. 소장이식이 필요 없는 경우라면 수년 간 가정에서 총정맥영양을 받다가 스스로 먹을 수 있게 해 생존하게 하는 게 치료 목표다. 하지만 'home TPN(Total Parenteral Nutrition)'을 위해서는 병원 옆으로 이사를 해야 하는 실정이며,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수년간 입원해서 치료 받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소아단장증후군은 희귀난치병으로 분류돼 있지 않다.

-학회 차원에서 정부와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게 필요해 보이는데, 계획은 없는가.
학회는 우리 사회에서 소외받고 어려움을 겪는 중증 환자를 비롯하여, 간이식과 소장 이식의 대상이 되는 희귀난치성 환자를 위한 제도 개선에도 앞장서 나갈 계획이다. 또한 모유 수유 강화, 소아 중환자 영양지원, 비만 및 소아청소년 대사증후군 관련 정책의 개선을 위해 유관 기관과 협력해 꾸준히 노력을 할 것이다.

-소아의 소화기 및 영양을 위해 노력 중인데 올해 학회에서 특별히 주목하는 이슈가 있다면 무엇인가.
소아소화기질환의 질병 패턴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전문의에 대한 심층 교육프로그램을 다양하게 개발해 일차 진료 역량을 강화하겠다. 이번 임원진 임기 중에는 신진 및 중견연구자의 연구역량을 더욱 지원하고 국제 공동 연구와 국내 다기관연구를 더욱 활성화시켜 명실상부한 세계 수준의 학회로 도약하고자 한다.
국내외 학회와 학문적 네트워크를 갖고 공동연구를 통해 학회 공식학술지인 PGHN의 SCIE등재를 위한 만반의 준비도 하는 중이다.

-마지막으로 올해 학회 활동 계획이 궁금하다.
유럽, 북미주, 아시아 소아소화기영양학회와의 교류뿐만 아니라 병원 환자 영양집중지원과 관련된 국내외 영양학회와의 협력을 지속해 나갈 것이다. 국내 진료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1,2차 의료기관의 진료에 실질적인 도움도 줄 예정이다. 환자 건강을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하는 게 공익성을 지향하는 게 전문학회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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