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소비자연구소 조윤미 대표

의료전달체계 개선 협의는 메르스 사태에서 드러난 우리나라의 오랜 의료이용 왜곡을 시정해 나가고자 시작됐다. 결과적으로 지난 2016년 1월 15일부터 14차례의 전체 회의, 2차례의 워크샵, 5차례의 소위원회 회의까지 총 21차에 걸친 민, 관 협의는 결국 협의체 권고문 채택 불발로 끝났지만 의료계의 합의나 참여와 관계없이 의료전달체계 개선은 멈출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다.

인구 노령화 등 인구학적 사회구조의 변화로 인한 의료소비자의 요구변화, 생활습관병의 증가와 같은 질병양상의 변화로 인한 의료서비스 컨텐츠의 개선 필요성, 의료기관 이용의 비효율성이 초래한 병·의원의 경영위기로 인한 산업 내 구조조정의 필요성, 이 모든 상황이 지금의 의료이용 방식으로는 효율성을 높이고 국민건강 증진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어려운 한계에 도달했다는 공감이 의료전달체계 개선협의에 참여한 가입자단체(소비자, 환자, 노동조합)와 공급자단체(의협, 병협, 중소병원협 등), 학회, 전문가, 정부 및 관련기관 등 광범한 이해당사자에게 존재했다고 생각한다.

협의체 권고문 채택은 민관이 함께 모여 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정부에 권고하며, 정부는 이를 받아 구체안을 마련해 나가는 과정의 시작이다. 실제 권고안을 실행 해 나가는 과정에서 세부적인 사항은 권고문의 원칙에 근거하여 끊임없이 보완, 변경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권고문에 포함되어 있듯이 일차의료전달체계의 상시적인 추진체계 마련을 위해 보건복지부 내 권고문 이행추진단을 상설하기로 한 것이 바로 이같은 실행화 단계에서의 정책설계와 집행, 이해관계조정을 위한 것이다.

일차의료기능을 수행하는 기관과 의사(필자는 이를 지역사회 일차의료전담의라고 부르겠다), 그리고 간호인력을 포함한 일차의료기능 수행 지원 인력을 개발하고 시스템화 하기 위해서는 많은 추가적인 연구와 시도, 사회적 비용이 필요하다. 또한 고착화 되어 있는 의료소비자의 의료행태를 바꾸어 내기 위해서는 의료기관 선택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정보제공과 합리적인 의료이용에 따른 인센티브가 반드시 필요하다. 의료전달체계 개선 협의는 의료계에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투자를 전제로 한 논의였으며, 기본적으로 매우 장기적인 로드맵의 제시이다.

권고문 채택을 불발시킨 외과계 의원의 입원실 폐쇄와 개방병원 형태의 입원으로의 전환은 의료전달체계 개선에서 주요 내용은 아니다. 의료전달체계 개선 논의와 관계없이 환자안전을 위해서라도 입원실에서의 안전시설 보완, 야간의 안전요원 배치 등 인력의 대폭적인 강화, 강력하고 상시적인 안전수준 점검 등 행정 강화 등은 즉각 시행되어야 할 과제이다. 단 한명이라도 입원이 있는 기관이라면 중증도와 관계없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안전수준을 대폭 높여야 한다.

의료전달체계 개선 논의 과정에서 대두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은 '기능중심 재편'이라는 것이다.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일차의료를 이야기 하지만 정확히 한국적 상황에서 일차의료가 해내야 하는 의료시스템 내에서의 기능이 무엇인가는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다른 꿈을 꾸면서 일차의료라는 같은 단어를 쓰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니 일차의료가 제대로 안되는 것이다. 기능중심 재편은 우리 현실에 맞는 제대로된 일차의료 기능을 재설정하고 이 기능이 실질적으로 역할 할 수 있도록 교육프로그램과 컨텐츠 개발, 지역사회 인프라와 네트워크 강화, 그리고 서비스 제공자인 의사와 이용자인 환자에 대한 명확하고 과감한 인센티브의 제공을 말한다.

기능중심의 일차의료 재설정은 기존의 종별 구분과는 다른 것이다. 의원, 병원, 종합병원 등 시설과 병상수 등으로 구분되어 있는 종별구분에서 벗어나 일차의료가 갖추어야 할 새로운 인프라 즉, 교육과 상담을 위한 인력과 컨텐츠, 지역사회에서 건강유지와 증진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시설과 프로그램 정보구축, 의료이용을 적절한 시기에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네비게이션과 같은 기능 유지를 위한 기관과 환자간 정보체계 구축 등을 갖추는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능력을 갖춘 일차의료기능 수행 기관과 인력을 육성해 나가자는 것이다.

이번 일차의료전달체계 개선 협의체의 논의과정과 권고문 채택 불발 상황을 지켜본 마음은 씁쓸하기 그지없다. 의료계 내 현재의 이익을 넘어 장기적인 비젼을 공유할 리더십이 부재하다는 현실을 다시 한번 직시하면서 국민들의 의료이용을 자기 직역의 경제적 이익만으로 계산하는 의사라는 직종에게 국민건강의 절대적, 배타적 권한을 부여해야 하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일차의료 기능의 상당부분은 의사 외 보건인력의 개발과 육성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도 많이 있다. 보건소의 직접 의료서비스 기능을 대폭 강화하고 여기에 과감한 사회적 투자를 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의료계가 작은 이익에 매몰되어 의료소비자의 요구와 시대가 필요로 하는 변화에 부응하는 정책파트너로서 위치를 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결과적으로 의약분업 때처럼 소탐대실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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