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양기화와 함께 가는 인문학여행-이스라엘

본지는 '의사 양기화와 함께 가는 인문학 여행'이라는 코너를 통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양기화 상근평가위원의 해외여행기를 싣는다. 양기화 위원은 그동안 ‘눈초의 블로그‘라는 자신의 블로그에 아내와 함께 한 해외여행기를 실어왔다. 그곳의 느낌이 어떻더라는 신변잡기보다는 그곳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꺼리를 찾아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터키, 발칸,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동유럽에 이어 이번에는 이스라엘-요르단을 찾았다. 이 여행기를 통해 인문학 여행을 떠나보자.<편집자주>

요셉교회까지 구경하고 돌아서려는데 어디선가 이슬람 기도시간을 알리는 아잔이 유장하게 들린다. 둘러보니 요셉교회 위쪽으로 이슬람 사원이 있다. 근처에 유대교의 회당인 시나고그와 그리스정교 소속의 가브리엘교회도 있다고 하니, 나사렛에서는 적어도 종교 간의 갈등은 없어 보인다. 언덕길을 오가는 사람들이나 가게를 지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평범해 보인다. 적어도 여행자의 눈으로 보기에는 이 사람들 사이에서 긴장감 같은 것은 느낄 수 없었다.

나사렛에 있는 마리아의 우물

버스를 타고 갈릴리호수를 향하여 조금 가다보니 마리아의 샘이 나타난다. 가이드 말로는 버스를 세울만한 장소가 없어 지나가면서 구경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큰길가에 있는 마리아의 우물(Mary’s well)은 ‘처녀의 샘’이라고도 하는데, 서기 1862년 오스만제국 시절 술탄의 명으로 지었다. 이곳에서 나오는 물은 100m 북쪽에 있는 그리스정교 소속의 가브리엘 교회 안에 있는 샘에서 공급되던 것인데, 지금은 수위가 낮아져서 공급이 끊겼다고 한다. 요셉과 마리아 시절, 200여명이 살던 나사렛에서는 유일한 샘이었으므로 마리아 역시 이 샘에서 물을 길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마리아의 샘이라고 부른다. 가브리엘교회는 서기 1767년에 건설되었는데, 비잔틴시대의 교회 자리에 지었다고 한다. 이곳에 교회를 처음 세운 사람들은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난 것은 그녀의 집이 아니라 이 우물이었을 것으로 믿었다는 것이다.

나사렛에서 갈릴리호수가의 티베리아스까지는 버스로 1시간 정도 걸린다. 갈릴리(Galilee)호수는 이스라엘의 북쪽에 있는 담수호로 호수의 둘레는 약 53km인데, 남북으로 21km, 동서로 11km이며 면적은 166km² 가량이다. 흥미로운 것은 갈릴리호수의 수면은 해수면보다 209-215m나 낮다. 중동전쟁 이전에는 시리아의 영토였던 골란고원과 이스라엘의 북쪽 갈릴지 지방 사이에 있는 갈릴리호수는 아프리카 판과 아라비아 판이 만나 함몰된 요르단 리프트계곡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과거 이 지역은 지진과 화산활동이 활발했다. 호수 북쪽에 있는 헤르몬산에 쌓인 눈이 녹아내리는 물과 세 곳에 있는 샘에서 시작하는 물길이 북요단강을 따라 흘러 들어오고, 호수의 남쪽으로 열리는 남요단강을 통하여 사해로 흘러간다. 갈릴리호수는 이스라엘이 사용하는 물의 3분의 1을 공급하는 생명줄이라고 할 수원이다.

갈릴리호수는 갈릴리바다(Sea of Galilee)라고도 부른다. 고대 히브리어에는 호수와 바다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얌(yam)이라고 했는데, 이는 바다를 의미했다. 지중해를 큰 바다라고 하고, 나머지는 작은 바다라고 불렀다. 갈릴리는 ‘둥글다’는 의미가 있다. 높은 곳에서 호수를 내려다보면 둥그스름한데, 그 모습이 마치 다윗왕이 즐겨 연주하던 수금(히브리어로 ‘키노르’라고 한다)을 닮았다. 그래서 성경에 최초로 나오는 갈릴리호수의 이름을 키네렛(Kinneret)호수라고 했나보다. 그밖에도 게네사렛(Gennesaret)호수, 티베리아스(Tiberias)호수라고도 부른다.

티베리아스의 거리에 서 있는 십자군의 성곽 유물(좌), 갈릴리호수가의 유람선 선착장(중), 태극기의 게양식이 엄숙하게 거행되었다(우)

티베리아스에 가까워지자 도로 아래 저만치 호수가 보인다. 평탄한 길을 달려온 버스가 경사를 따라 계곡 아래로 내려간다. 우리는 바다수면보다 낮은 지역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나름 번잡한 티베리아스에 들어서자 십자군들이 세운 성채의 잔해가 곳곳에 남아 있다. 이윽고 버스가 주차장에 도착하고 우리는 호수가로 이동한다. 이곳에서 우리는 선택관광으로 유람선을 타기로 했다. 갈릴리호수를 40분 정도 돌아보는 일정이다. 배는 전세라도 낸 듯 우리 일행뿐이었다. 배가 출항하고 이어서 일행들이 도열한 가운데 국기게양식이 열렸다. 선장이 선머리에 있는 게양대에 태극기를 거는 동안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인솔자가 일행을 대표해서 애국가를 불렀다. 특히 외국에서 애국가를 듣는 것이 처음이라서 울컥하는 무엇이 있었다.

갈릴리호수 북쪽 호안. 멀리 헤르몬산의 그림자가 운무 속에 묻혀있다.

호수에는 여러 척의 유람선의 오가고 있는데, 고깃배는 볼 수 없어 궁금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고기는 주로 새벽녘에 잡는다는 것이다. 항구를 떠나 골란고원 방향을 잡아 나아가다가 북쪽 헤르몬산 쪽으로 선회하여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항로였다. 호수 북쪽으로는 헤르몬산이 뿌연 운무에 숨어 가물거린다. 그 아래로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구릉이 낮게 이어지는데, 예수는 특히 이쪽 지역을 중심으로 사역을 펼쳤다. 처음으로 제자를 들인 것도 이곳이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비롯한 수많은 치유의 기적을 행하였다. 예수가 자란 나사렛이 이곳에서 멀지 않은데다, 갈릴리지방은 토질이 좋아 채소와 과일 농사가 잘되었고, 호수에서 고기를 낚는 등 경제활동이 활발한 곳이었다. 뿐만 아니라 지중해의 해안을 따라온 도로가 호수의 북쪽을 지나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를 거쳐 멀리는 메소포타미아로 이어지는 중요한 통로였기 때문에 갈릴리호수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 선교의 대상이 많았던 셈이다.

갈릴리호수 북쪽의 카파르나움 부근에 있는 팔복교회 (Wikipedia에서 인용함)

호수 북쪽에서 조금 서쪽편에 있는 카파르나움(Capernaum) 부근에는 예수가 산상수훈을 전한 구릉이 있고, 구릉 위에는 이를 기념하는 팔복교회(Church of the Beatitudes)가 있다. 4세기경 비잔틴제국시대에 처음 교회를 세웠지만, 614년 페르시아에 의하여 파괴되었고, 지금 교회는 1938년 무솔리니의 지원을 받은 프란체스코 수녀회가 유명한 이탈리아의 건축가 안토니오 바를루치(Antonio Barluzzi)의 설계로 지었다. 산상수훈에서 전한 여덟 가지의 복을 상징하는 팔각형으로 된 교회에 올린 둥근 돔은 금빛 모자이크로 장식되었고, 여덟 방향으로 나있는 창문에는 여덟 가지의 복에 대한 라틴어 성경구절이 적혀있다.

예수가 산상수훈에서 전한 여덟 가지 복은 이렇다. 1. 심령(心靈)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2.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3.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4. 의(義)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5.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6.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7.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8. 의(義)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전날 가에사라에서 보았던 원형경기장의 음향효과에 대하여 설명한 것처럼, 예수 역시 자연이 베푸는 음향효과를 잘 알았던 가보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은 천지를 달구기 마련인데, 호수 위의 공기는 땅위의 공기보다는 천천히 달궈진다. 뜨거워진 공기가 상승하는 곳으로 찬 공기가 이동하는 대류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따라서 낮에는 호수에서 육지로 바람이 불고, 밤에는 육지에서 호수로 불어간다. 갈릴리 호수는 해수면보다 낮지만, 갈릴리호수의 동편에 있는 골란고원은 평균 해발이 1,300m나 된다. 골란고원에서 갈릴리호수로 쏟아져 내린 바람은 호수에 돌풍을 만들기도 하지만, 호수 북쪽의 움푹 파인 곳을 따라 빠져나가면서는 세력이 약해져 낮은 곳에 서서 전하는 예수의 말을 언덕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카파르나움 서쪽의 다브가에 있는 오병이어교회의 바닥에 새겨진 오병이의 모자이크(Wikipedia에서 인용함)

카파르나움에서 조금 더 서쪽으로 가면 오병이어 교회가 있는 다브가(Tabgha)다. 1930 년대 초 독일의 고고학 발굴팀은 4세기 무렵 건축된 교회의 유적을 발굴했다. 교회는 350년경에 지어졌지만, 419년 지진으로 파괴되어 보수를 하였지만, 551년에 다시 대지진으로 파괴되었고, 614년의 페르시안군과 637년 회교도의 침략시 완전히 폐허가 되고 말았다. 이후 교회는 1,000 년이 넘도록 땅속에 묻혀 있었다. 교회 바닥에는 두 마리의 물고기 사이에 놓인 둥근 떡들이 모자이크로 새겨져 있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형상화한 모자이크였다. 독일의 가톨릭교회가 이를 기념하고 보호하기 위하여 그 위에 지은 교회가 오병이어 교회이다. 하지만 복음사가에 따르면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한 곳은 이곳이 아니라 갈릴리호수의 북쪽 호안의 서쪽이 아니라 동쪽 어디라고 한다. 다만 초창기 그리스도교인들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한 성지가 험지라서 찾아갈 수 없었기 때문에 이곳에 기념교회를 지었다는 것이다.

티베리아스 뒤편 구릉 너머로 해가 지고(좌) 호수 동쪽 골란고원의 언덕은 붉게 물든다(우)

성지순례자들은 아니라도 팔복교회나 오병이어 교회를 돌아보는 것도 좋았을 터이나, 정해지지 않은 일정은 하지 않은 것이 단체관광여행인지라 아쉬움을 남겨야했다. 배가 선착장으로 돌아올 무렵 마침 해가 서산을 넘어가기 시작했다. 서산에 걸린 해를 후광이 둘러싸고 있는지라 저녁노을이 생기지는 않았다. 다만 서쪽으로 넘어가는 해가 아쉬움을 담아 뿌리는 붉은 햇살을 받아 붉게 물어가는 호수 동쪽의 골란고원 비탈이 매혹적이다. 선착장이 저만치 보일 무렵 배에서 내려 물위를 걸어가는 기적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믿음이 크면 가능할까?

마태복음 8장 24절에는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둘레가 겨우 53km 밖에 되지 않는 호수에 큰 놀이 생긴다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 그런데 갈릴리호수에서는 바다에서나 볼 수 있는 큰 파도가 인다. 갈릴리호수의 서쪽이 와디 하맘(Wadi Hamam)과 벧 네토파(Beit Netopha) 계곡으로 열려있기 때문이다. 한 여름 오후에는 호수가 데워지면서 주변 산위의 높은 지역 상공의 찬 공기가 계곡을 타고 호수 위로 흘러가는 강한 서풍을 만드는데, 바람은 순식간에 2m가 넘는 파도가 생길 수 있다고 한다. 성서의 기록은 틀림이 없다.

갈릴리호수에 어둠이 내리는 모습을 구경하다가 숙소로 이동했는데, 마침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하지만 호수는 이미 어둠에 숨어 가늠이 되지 않는다. 식사를 마치고 방에 돌아오니 7시반이다. 이렇게 일찍 숙소에 들어본 기억이 없어 묘하다. 씻고, 짐정리를 마친 것이 9시를 조금 넘은 시간인데 잠자리에 들었다. 인천을 출발해서 제대로 눈을 붙여보지 못한 탓이다.

참고자료:

(1) 정양모 이영헌 지음. 이스라엘 성지, 어제와 오늘, 135-139쪽, 생활성서사 펴냄, 1988년

(2) Wikipedia. Sea of Galilee.

(3) 하은교회 자료실. 갈릴리바다.

(4) 성경의 산상수훈(山上垂訓)과 김교신의 팔복(八福) 해설.

(5) 하은교회 자료실. 팔복 교회(The Church of Mount of Beatitudes)

(6) 정양모 이영헌 지음. 이스라엘 성지, 어제와 오늘, 144-148쪽, 생활성서사 펴냄, 19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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