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양기화와 함께 가는 인문학여행-이스라엘

본지는 '의사 양기화와 함께 가는 인문학 여행'이라는 코너를 통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양기화 상근평가위원의 해외여행기를 싣는다. 양기화 위원은 그동안 ‘눈초의 블로그‘라는 자신의 블로그에 아내와 함께 한 해외여행기를 실어왔다. 그곳의 느낌이 어떻더라는 신변잡기보다는 그곳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꺼리를 찾아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터키, 발칸,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동유럽에 이어 이번에는 이스라엘-요르단을 찾았다. 이 여행기를 통해 인문학 여행을 떠나보자.<편집자주>

원형경기장과 총독궁 사이에 있는 야외전시장에는 이 지역에서 출토된 로마시대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돌기둥의 첨두(좌) 들보(중) 석관 (우)

원형극장을 나와 총독저택의 유적으로 가는 중간에는 이 지역에서 출토된 로마유적의 파편들이 전시되어 있다. 돌기둥의 첨두를 비롯하여 석관 등, 이 지역에서 출토된 로마시대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무너진 성벽을 지나면 총독궁의 유적이 있다. 기둥만 몇 개 서 있는 정원을 지나면 바닷가에 실내 수영장이 있었다는 총독궁 터 위로는 지중해의 파도가 넘실거린다. 파도소리를 자장가 삼았을 총독의 호사가 부러워진다. 총독궁 터의 정원에 서면 초승달모양으로 휘감아 돌아가는 바닷가 건너로 헤롯이 건설했다는 항구가 보인다. 멀리 지중해를 건너온 파도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몸을 내려놓는 바닷가 위로 전차경기장(hippodrome)이 펼쳐진다. 2세기에 재건되었다는 이 전차경기장에 들어서면 영화처럼 화려한 분위기는 아니지만, 영화 <벤허>에서 열리는 전차경주가 떠오른다.

돌기둥이 몇 개 서 있는 총독궁의 정원과 왼편으로 바닷가에 관저 터가 있다.(좌) 실내 수영장이 있었다는 총독궁터(우) 백사장 위에 있는 전차경기장의 파노라마 뷰(아래)

혹자는 <벤허>의 전차경주 장면을 이곳에서 촬영했다고도 하지만, 로마에 있는 시네스타 스튜디오(Cinecittà Studios)에서 찍었다고 한다.(1) 시네스타 스튜디오의 18에이커나 되는 부지에 터키의 안티옥에 있는 서커스를 모델로 하여 전차경기장을 건설하고 지중해에서 4만톤에 달하는 모래를 퍼다 분위기를 살렸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상대를 죽이면서까지 경주에서 승리하려는 모습으로 그리고 있지만, 로마시대의 전차경주는 그런 식으로 진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어떻든 헤롯왕은 전차경기장에서 5년마다 전차경주를 비롯하여 죄수와 맹수와의 결투, 노예들의 죽음의 검투 경기 등을 열었다.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 하던 것을 이곳에서도 즐긴 것이다. 유혈이 낭자한 검투사의 대결을 지켜보며 흥분하는 로마시민들이 관람석을 채우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검투사들 보다 오히려 그들이 흘리는 피에 흥분했을 관중들의 모습이 더 무서울 것 같다. 원형경기장을 지나면 1251 년 프랑스의 루이 9 세의 하명에 따라 건설한 높은 성벽과 해자 등 성터가 있다. 곳곳에서 복원작업이 한창인데 오히려 복원된 모습이 부자연스러울 것 같다.

십자군시절 만든 성벽(좌) 복원작업이 한창이다(중) 갈멜산에서 물을 끌어온 로마 수도(우-Wikipedia에서 인용함)

가이사랴의 고대 로마 유적을 돌아보고 갈멜산 쪽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바닷가에 위치한 가이샤라에는 수원이 없었기 때문에 외부에서 물을 끌어와야 했다. 당시 가이사랴는 갈멜산과 와디가 강 등을 비롯한 여러 개의 수원을 가지고 있었다. 미나셉산이라고도 하는 갈멜산도 주요 물 공급원이었다. 갈멜산과 가이사랴를 연결하는 19km를 넘는 수로는 표고차를 이용하여 물이 흐르도록 설계되었고, 높이 건설된 수로에 지붕을 씌워 물이 증발되지 않도록 했다.

베드로고기로 알려진 틸라피아 (Wikipedia에서 인용함)

갈멜산으로 이동하는데 보니 곳곳에 양어장이 있다. 성지순례객들이 찾는 베드로 물고기(St. Peter's fish)를 양식한다고 했다. 예수께서 가나움을 지날 때, 통행료를 내라고 하자, 제자인 베드로에게 낚시를 하면 세겔(이스라엘의 화폐)을 얻을 것이라 했고, 베드로가 생선을 낚아 입을 열어보니 과연 그러했다(마 17:24-27)는 데서 유래한다. 베드로 물고기라고 알려진 틸라피아(Tilapia)는 얕은 물줄기, 연못, 강 및 호수에 서식하는 민물고기로 100여 종류가 있으며, 갈릴리 지방에는 3종류 정도가 산다. 호수 환경에 유해한 식물이나 조류를 먹기 때문에 다른 물고기들과 경쟁을 하지 않은 생태종으로 간주된다.(2)

갈멜산으로 가다보면 산 아래로는 팔레스타인사람들이 사는 동네가 있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산위로는 유대인이 사는 산동네가 마주한다. 19세기 시작된 유대인들의 시오니즘이 빛을 보아 유대인들이 가나안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서구열강이 산위 혹은 바닷가 소택지처럼 불모의 땅을 유대인들이 얻을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점심은 아랍식 빵에 튀김 세 쪽 그리고 다양한 야채샐러드였다. 점심을 먹고는 예수가 자란 나사렛으로 이동했다. 도로변에 있는 2,000년 전의 돌무덤이 인상적이다. 나사렛으로 가는 길에 펼쳐지는 널따란 이스르엘 평야는 주로 밀을 심는다고 한다. 이 지역은 고대로부터 교통의 요지였다. 이집트문명과 유프라데스강 유역의 초승달문명의 경계에 끼어 두 세력의 충돌을 감당해야했는데 이를 오히려 기회로 삼기도 했다고 한다.

나사렛은 갈릴리호수에서 서쪽으로 25km를 떨어진 곳에 있는 마을로 사방이 야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로서 평지는 해발 320m이고, 주변의 언덕 꼭대기는 488m에 이른다. 나사렛(Nazareth)이라는 지명의 유래에 대한 몇 가지 설명이 있다.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는 ‘나사렛은 곁가지라는 의미인데 동방박사가 헤롯왕을 찾아가 유대의 왕이 태어났는데 어디냐고 물은 것이 화근이 되어 2살 이하 남자아이를 죽이라는 명을 내렸고 요셉을 비롯한 유대사람들이 피해 달아나온 곳이 이곳이다.’라고 설명했다. 나사렛이 마리아의 고향이고 보면 충분히 가능한 설명일 듯하다. 그런가 하면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예수가 헤롯의 박해를 피해 애굽으로 피난을 갔다고 하는 주장도 있다. 이사야서에 보면 (예세)의 뿌리에서 나온 가지(nezter)는 열매를 맺을 것이다.(이사야 11:1)라 한 것도 설명이 된다. 그런가하면 감시하다 혹은 지키다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나사르(na·ṣar)에서 유래했다는 설명도 있다.(3)

분지 마을인 나사렛으로 들어가는 터널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 아래에 있는데, 이 절벽은 성년이 된 예수가 사역을 위하여 고향으로 돌아오자 나사렛의 유대인들이 예수를 떨어트려 죽이려했던 45척이나 되는 단애라고 한다.(누가 4:29) 2016년 기준으로 나사렛에는 7만6천명이 살고 있고 주변지역까지 포함한 인구는 21만 명으로, 아랍계 5만9천, 유대인 8만5천명이 살고 있다. 아랍인들의 69%는 이슬람교를 믿고, 30%는 기독교를 믿는다. 나사렛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아랍 도시이다.

나사렛은 천사 가브리엘이 다윗의 자손 요셉과 정혼한 처녀 마리아에게 아들을 낳을 것을 계시해 준(누가1:26-38) 곳으로 동네 중심에 수태고지 기념교회가 있다. 같은 울타리 안에 성 요셉 교회가 있고, 수태고지 교회에서 동북쪽으로 약 600m지점에 희랍 정교회 소속의 가브리엘 교회가 있으며, 가브리엘 교회 근처에 마리아의 우물이 있다.

수태고지 기념교회

수태고지 기념교회가 있는 언덕 아래에서 버스를 내려 언덕을 오르다. 교회에 가까워지면서 커다란 회색 깔때기를 엎어 놓은 모양의 교회지붕이 보인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를 잉태하였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는(임신하였다는 것을 알려준) 성모 마리아의 집터 위에 세워진 교회이다. 지금의 교회는 5번째로 지은 것으로 이탈리아의 건축가 조바니 무치오(Giovanni Muzio)의 설계로 1955년 착공하여 1969년 완공되었다. 회색 깔때기 모양의 교회의 지붕은 백합꽃을 닮았는데, 성모 마리아를 상징한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인 헬레나의 요청으로 서기 340년에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수태고지를 했다는 동굴 위에 처음 교회가 세워졌다. 이 교회는 서기 638년 아랍의 침공시 파괴되었다. 서기 1109년 이곳에 진주한 십자군이 새롭게 교회를 지었지만, 이 또한 1187년 힛딤의 뿔(Horns of Hittim) 전투에서 승리한 아랍군에 의하여 손상을 입었다가 1263년 맘룩크의 무슬림군에 의하여 완전히 파괴되었다. 1620년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교회 터를 사들여 1730년 복구하였던 것을 고고학적 발굴 성과 등을 토대로 1955년 지은 것이 지금의 교회이다.(4)

수태고지 기념교회의 남쪽 파사드 위쪽에 수태고지 장면을 새겼고(좌상) 아래쪽에는 4명의 복음사가를 새겼다.(좌하) 현관에 들어서면 청동문에 예수의 일대기를 새겼다(우; 강대출님 제공)

성서학적으로는 수태고지를 받았다는 마리아의 집이나, 마리아와 결혼한 요셉이 살았던 집이 어디인지는 분명치 않다고 한다. 다만 프란체스코 수도회 소속의 고고학자 벨라르미노 바가티 신부가 1954년부터 11년에 걸친 발굴작업을 통하여 수많은 동굴, 물 저장소, 곡식 저장소, 기름틀, 포도즙을 짜내는 틀 뿐만 아니라 비잔틴 시대의 성전 터와 비잔틴 시대의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이 사용했던 3세기경의 시나고그(유대교 회당)의 흔적 등을 발굴 하였다. 특히 시나고그 터의 돌기둥에는 ‘XE MAPIA’라고 새겨져있는데, 이는 그리스어로 "마리아, 찬미 받으소서"라는 뜻으로 마리아에게 봉헌된 성당일 것으로 추정한다는 것이다.(5)

1층 수태고지가 있었던 동굴 앞 제단(좌; 강대출님 제공) 수태고지가 있었던 동굴에 기둥과 제단을 볼 수 있다(중) 우리나라에서 보낸 성모자 그림(우)

교회의 파사드의 위쪽에는 가브리엘천사가 마리아에게 수태사실을 전하는 장면을, 그리고 아래쪽에는 마태오, 마르코, 루가 그리고 요한 등 네 명의 복음사가를 새겼다. 교회당으로 들어서면 전실에 있는 청동문에 예수의 생애를 새겼다. 교회당 안으로 들어서면 조금은 어수선한 느낌이 든다. 발굴된 성전 터를 유지한 채 교회를 짓다보니 그리 된 것 같다. 중앙에 몇 계단 내려가는 공간에 제대가 설치되어 있고, 제대 뒤로는 작은 동굴이 있는데, 그 안에 작은 제대가 놓였다. 이 제대를 성모영보제대, 혹은 마리아 수태고지제대라고 부른다. 제대의 앞면에는 ‘Verbum Caro Hic Factvm Est’ (이곳에서 말씀이 육이 되셨다)라고 적혀 있어 이 장소를 수태장소로 여기는 것 같다. 이 동굴 안에는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커다란 기둥이 두 개가 서 있다. 북쪽에 있는 기둥을 마리아의 기둥이라 하고, 남쪽에 있는 기둥을 가브리엘 천사의 기둥이라고 부른다. 2층에 올라가면 예배당이 있다. 제단 위쪽으로 밖에서 깔대기 모양으로 보였던 첨탑을 통하여 빛이 들어온다. 2층 예배당 벽에는 세계 주요나라에서 보내온 성모그림이 걸려있다. 우리나라에서 보낸 성모 그림은 교회의 마당을 두르고 있는 벽에 걸려있다.

수태고지 기념교회의 2층 예배당(좌상) 제대 앞 깔때기 모양의 돔(좌하) 수태고지 기념교회의 지붕(우; 강대출님 제공)

수태고지 기념교회의 2층 북쪽 문을 나가 조금 가면 요셉교회이다. 요셉교회의 정문에 못 미쳐 가브리엘천사가 마리아에게 수태고지하는 장면을 현대적으로 묘사한 청동상이 서 있다. 가브리엘천사는 마리아의 어깨를 감싸 안을 듯한 자세를 취하는데 반하여, 놀란 마리아는 두 손으로 가슴을 감싸는 모습을 하고 있다. 수태고지장면을 그린 회화에서 통상 볼 수 있는 엄숙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수태고지 기념교회 정원에 있는 마리아와 가브리엘천사의 청동상(좌) 요셉교회 지하에 있는 요셉의 작업실(우상) 곡식을 저장하던 웅덩이(우하)

1914년 벤델린 힌터쿠서 신부에 의해서 건축된 요셉교회는 십자군 시대의 교회 터 위에 옛 모습에 따라 재건된 것이다. 세 개의 반원형 제단을 그대로 활용하여 기초로 활용하였다. 중앙 제대의 벽화는 1952년 델라토르에 의해서 그려졌다. 중앙에 성가정의 모습, 오른쪽에는 요셉의 현몽, 그리고 왼쪽에는 요셉의 임종 장면이다. 지하에는 비잔틴시대의 교회의 유적이 있고, 그 아래로 곡식을 저장한 것으로 보이는 웅덩이와 물웅덩이가 있다. 이런 것들을 종합하여 이 터가 요셉이 살던 곳이라고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는 요셉의 작업실이 있고, 예수에게 목공일을 가르쳤다고 한다.

참고자료:

(1) The Worldwide Guide to Movie Locations: Ben Hur film locations.

(2) Wikipedia. Tilapia.

(3) Wikipedia. Nazareth.

(4) 하은교회 자료실. 나사렛의 마리아 수태고지 교회.

(5) 정양모 이영헌 지음. 이스라엘 성지, 어제와 오늘, 135-139쪽, 생활성서사 펴냄, 19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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