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의학기사단의 <환자혁명> 비판

근골격계 통증은 누구나 겪는 질환입니다. 특히 퇴행성 관절염은 아주 흔하죠. 우리나라 65세 이상에서 퇴행성 골관절염의 유병율은 37.8%이고, 특히 여성은 50.1%입니다(ref. 슬관절학회와 함께하는 퇴행성 관절염 가이드북). 병원에 오지 않는 숫자를 합하면 더 많겠지요. 피부에 주름이 생기듯, 관절이 노화되면서 생기는 병입니다. 노화 현상이므로 완치가 안 됩니다. 그래서 대체요법이 난무하지요. 그럴듯한 이야기로 사람들을 속입니다. <환자혁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과학적인 체하지만, 옳은 얘기가 거의 없습니다.

몸에서 일어나는 일은 항상 옳은가?

"…몸을 보호하고 치유하는 장치가 염증이다…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항상 어떤 목적 아래 일어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대증요법이 의료의 대세가 되었다…증상의 원인이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에 증상을 억누르는 치료 효과가 끝나는 동시에 더 큰 증상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환자혁명, 192-193p)

몸에서 일어나는 일은 항상 옳은가요? 암도 옳고, 뇌졸중도 옳고, 나이 들어 생기는 백내장도 옳은가요? 염증반응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을 보호하고 치유하기 위해 생기지만 때때로 몸에 해가 되며 통증을 유발합니다. 신경병성 통증이 그 예입니다. 통증이 오래 지속되면 신경에 2차적인 변화가 생겨 만성 통증의 원인이 되지요. 병의 원인도 중요하지만 통증 역시 조기에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합니다. 원인 치료? 물론 중요하죠. 하지만, 근골격계 통증은 대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습니다. 소염진통제는 그 사이에 통증을 줄여줄뿐더러, 염증 자체가 악순환을 일으켜 문제가 되는 질환에서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주어 치료 자체가 되기도 합니다.

어떤 의사가 진통제만 줘서 증상만 억누르나요? 왜 아픈지 그 이유를 찾지요. 그 과정을 진단이라 합니다. 의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요. 하긴 조한경씨는 카이로프랙터도 의사라고 하니 그런 사람만 보이는 모양이지요? 일단 대부분의 근골격계 질환은 적절한 휴식만 취해도 호전됩니다. 따라서 소염진통제를 이용해 통증을 줄여줘도 치료가 됩니다. 1주 정도 지나면 낫는 단순 허리 근육통에 굳이 약을 먹지 않고 1주일 내내 이를 악 물고 통증을 참는 건 미련한 짓입니다.

소염진통제는 하루 용량이 정해져 있고, 내성 같은 건 없습니다. 정해진 용량 이상을 쓰면 부작용만 심해질 뿐 그 이상의 진통 효과는 없습니다. 뭘 알고 얘기하는지 몰라도 조한경씨는 진통제에 중독성이 있다고 하는데, 그건 아편 계통의 진통제가 그렇습니다. 아편 계통은 보통 소염진통제에 비해 부작용이 많아 암환자나 수술 후 환자에서 통증을 줄여주기 위해 쓸 뿐, 근골격계 통증 환자에게 1차적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자칭 ‘18년이나 의료계에 종사한 전문가’가 이런 소리를 하는 건 거짓말이거나 무식하거나 둘 중 하나겠지요.

혈압약이 관절염을 유발하고, 황이 관절염에 도움이 된다고?

"고혈압약을 장기 복용한 환자들에게 관절염이 흔하다혈압약을 장기 복용하면 약물을 해독하느라 간에 무리가 간다. 간을 해독하는 데 필요한 성분이 황(sulfate)이다. 체내에 황이 충분하지 않을 때 간을 보호하기 위해 관절에 있는 황을 우선 가져다 쓴다식이유황(MSM)이 관절염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이유다.” (환자혁명, 192-193p)

<환자혁명>은 굳이 장르를 따지자면 공상과학소설입니다. 고혈압약을 장기 복용한 환자에게 관절염이 흔하다는 보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혈압약을 간에서 해독한다고요? 밥도 간에서 ‘해독’하나요? 음식이 몸에 들어가 변하는 건 ‘소화’라고 하고, 약이 몸에 들어가 변하는 건 ‘대사’라고 하죠. 가장 흔히 사용되는 amlodipine이라는 혈압약이 간에서 대사되지만 이때 황이 필요하지도 않고, 장기 복용해도 관절의 부작용은 없습니다. 관절에 도움이 된다는 식이유황(MSM)도 2017년 발표된 메타분석에 따르면 단기간 운동능력 향상은 있을 수 있으나 글루코사민과 마찬가지로 큰 효과는 없었습니다(Dietary supplements for treating osteoarthritis: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2017). 현재까지 나온 어떤 약도 퇴행성 관절염을 거꾸로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조한경씨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근본적인 치료’와는 아무 상관 없죠. 게다가 통증을 줄여주지도 못합니다. 효과가 확실한 약을 제쳐두고 이런 약을 먼저 권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 있죠. “약장사”입니다.

마지막으로, 조한경씨는 진통제를 먹으면 심장마비가 올 수도 있다고 경고합니다. ‘관상동맥증후군’이나 ‘심근경색’이란 말 대신 의도적으로 ‘심장마비’란 워딩을 썼네요. 독자들에게 겁을 주려는 거지요. 심근경색 같은 심혈관질환 환자는 소염진통제를 장기 복용하면 기존 질환이 악화되거나 뇌졸중이 생길 수 있다는 보고들이 있어 주의해야 합니다(약학정보원, NSAIDs의 심혈관계 부작용, 2015). 역시 의사들이 잘 아는 내용이지요. 따라서 심혈관질환 환자에게 진통제를 장기적으로 사용할 때는 아세트아미노펜(타이레놀)이나 트라마돌처럼 장기간 복용해도 문제가 없는 약을 처방합니다. 의사들은 조한경 씨가 주장하는 것처럼 바보가 아니에요. 오히려 부작용에 대한 많은 경험과 지식이 있어 더 조심하죠.

퇴행성 관절염이 연골의 문제가 아니라고?

"병원에서 듣는 설명은 "연골이 닳아 뼈끼리 부딪쳐서 무릎이 아프다"고 한다…실은 다 틀린 말이다…연골이 다 닳아 없어지는 경우는 없다…뼈끼리 닿는다 하더라도 통증을 느낄 수는 없다…무릎이 아픈 이유는 염증 반응 때문이다. 엑스레이에 안 나타나기 때문에 모를 뿐이다…계속해서 염증을 일으키는 음식을 먹고 생활한다면 통증은 더 빨리 돌아온다. “ (환자혁명, 194-196p)

이게 다 틀린 말이지요. 퇴행성 관절염은 연골이 닳아 부피가 감소하면서 관절 내 조직들이 손상되는 병입니다. 특히 연골 아래 뼈가 노출되면 관절 사이 공간이 줄면서 2차적으로 새로운 뼈가 생기는데, 이를 보고 관절염의 진행 정도를 파악합니다. X-ray 상 골관절염이 심하지 않은데 통증이 있다면 근처의 인대, 건, 근육, 점액낭 등에 문제가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관절염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다른 질환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X-ray를 찍는다는 뜻입니다. ‘무릎 퇴행성 관절염 환자 중에는 무릎 연골이 멀쩡한 경우가 많다. 훨씬 많다(환자혁명 195p)’라고 하는데 뭘 보고 멀쩡하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무릎 연골이 멀쩡하다면 퇴행성 관절염이 아니라 다른 병이죠. 카이로프랙터라고 해서 뼈나 관절은 좀 아는 줄 알았더니 기본도 안 되어 있네요. 어디서 뭘 배웠는지…

다시 말하지만 퇴행성 관절염은 한번 진행되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재발을 하는 질환이 아니에요. 컨디션에 따라 증상이 좋아졌다 나빠졌다 할 수 있지만 결국 증상이 심해져 일상생활이 안 되는 수준까지 진행됩니다. 그래서 인공관절 수술을 하는 겁니다. 일반인도 아는 ‘상식’ 이죠. 인공관절 자체에 수명(10~15년)이 있으므로 최대한 늦게 수술해야 재수술의 부담을 덜 수 있습니다. 수술 시기를 늦추려면 통증을 줄여주는 보존적 치료를 오래 유지해야 합니다. 물론 체중감량, 무릎 주변 근력강화 등 생활습관 교정이 중요하지만, 노인 환자에게 ‘운동 열심히 하셔서 처녀총각 때 체중만큼 빼시면 약 안 먹어도 돼요’라고 해보세요. 젊은 사람도 빼기 힘든 살을 어르신들이 뺄 수 있을까요? 이런 말 했다 혼나지나 않으면 다행이죠. 그래서 약물 치료가 중요한 겁니다.

무릎 인공관절 수술 후 통증이 생기는 환자가 남아있는 염증 때문에 아프다고요?(환자혁명 196p) 보통 수술 후 재활 과정에서 생기는 통증이 많고, 이후 통증이 계속된다면 생체 역학적인 문제 등 다른 문제이지 무릎 관절염이 재발하는 게 아닙니다. 염증을 유발하던 관절을 제거하고 인공관절을 넣었는데 염증이 도대체 어디 있다는 건가요? 수술 후 감염 등으로 염증이 생길 순 있지만, 저자가 말하듯 탄수화물이나 당류(같은 말이지만), 음식이나 생활습관이 염증을 일으켜 통증을 유발하진 않습니다. 물론 체중이 늘면 관절에 좋지 않지만, 그건 다른 문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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