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양기화와 함께 가는 인문학여행-이스라엘

본지는 '의사 양기화와 함께 가는 인문학 여행'이라는 코너를 통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양기화 상근평가위원의 해외여행기를 싣는다. 양기화 위원은 그동안 ‘눈초의 블로그‘라는 자신의 블로그에 아내와 함께 한 해외여행기를 실어왔다. 그곳의 느낌이 어떻더라는 신변잡기보다는 그곳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꺼리를 찾아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터키, 발칸,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동유럽에 이어 이번에는 이스라엘-요르단을 찾았다. 이 여행기를 통해 인문학 여행을 떠나보자.<편집자주>

이번에도 순서를 조금 바꾸어서 지난 10월 연휴에 다녀온 이스라엘-요르단 여행길을 먼저 소개한다. 열흘이나 쉬는 황금연휴였던 탓에 비용 문제 등 여행일정을 잡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세상사가 다 인연 따라 흘러가는 법인가 보다. 지난봄에 다녀온 아프리카여행팀에서 우연히 이야기가 나와 세 가족이 다시 뭉치게 되었다.

12월 6일 트럼프 미국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인하고 텔아비브에 있는 이스라엘 주재 미국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할 것이라고 선언하면서 중동사태가 꼬이고 있다. 불안한 가운데 평온을 유지하던 이스라엘은 다시 전투상황에 휩싸였다. 가자지구를 통치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로켓포를 발사하고 이스라엘은 전투기를 동원하여 보복공습을 가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1) 만약 우리가 여행을 떠날 무렵에 이런 상황이었다면 이스라엘-요르단 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뒤에 다시 설명할 기회가 있겠지만, 예루살렘은 유대교의 성지일 뿐 아니라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성지이기도 하다. 예루살렘은 그야말로 한 지붕 세 가족의 성지인 셈이다. 세 종교의 뿌리는 같다. 다만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있으며, 이슬람은 무함마드를 선지자로 믿고, 유대교에서는 이들이 그저 예언자일 뿐이다. 뿌리가 같은 세 종교가 대립하는 모습은 국외자가 보기에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그동안 돌아보았던 곳에서 벌어졌던 문명충돌의 씨앗은 바로 이곳 예루살렘에서 발아해서 퍼져나간 것으로 이해해야 하겠다. 뿐만 아니라 이곳에서는 그 갈등이 현재진행형이다.

저녁 9시45분 출발예정이고 공항에서 인솔자를 만나는 시간이 6시였기 때문에 오후까지 일을 하고 조퇴를 했다. 일은 밀려있지만 연휴기간이라서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퇴근을 해서 전날 챙겨둔 짐을 끌고 집을 나섰는데, 이날도 횡단보도에서 파란불을 기다리는 동안 공항버스가 지나가는 바람에 16분을 더 기다려야했다. 하늘은 잔뜩 찌푸리고 있지만 비는 내리지 않아 다행이다. 아침에 출근할 때 제법 굵은 빗방울이 떨어져 걱정했지만 이번 여행도 날씨는 문제가 없을 모양이다. 문제는 퇴근시간의 강남대로였다. 예상했던 것처럼 차는 밀리고 있는데 버스가 신사역에 도착할 때까지 승객을 태우는 바람에 시간을 잡아먹었다. 설상가상으로 88도로는 여의도를 지나서까지도 밀리고 있었다.

해질 무렵에 공항에 나가는 것은 처음인지라 분위기가 또 다르다. 어둠을 맞을 준비를 하는 둔치가 한가롭다. 서쪽 하늘부터 구름이 걷히면서 산으로 넘어가는 해가 뿌리는 마지막 햇살을 볼 수 있었다. 인천대교를 건널 무렵에는 영종도의 야트막한 산을 넘어가는 해가 하늘가를 붉게 물들이는 모습이 환상적이다. 결국 30분 늦었다. 약속장소에 갔더니 인솔자는 벌써 일행을 이끌고 발권하러 갔단다. 서둘러 발권카운터로 갔는데 마침 발권수속을 하려고 여권을 거두고 있었다. 한숨을 돌리고 나서 아프리카 여행에서 만난 강회장님과 모사장님 가족들과 인사를 했다. 탑승권을 받아 짐을 부치고는 출국수속을 한 뒤 탑승동으로 이동해서 간단하게 저녁을 먹었다.

이스라엘ㅡ요르단을 묶는 여행은 주로 교회에서 성지여행 목적으로 많이 간다고 한다. 특히 가톨릭에서는 예수의 고난을 직접 체험해본다고 해서 아주 힘든 일정을 소화한다는 것이다. 그런 단체에 끼여 여행을 했던 비신자들이 여정이 힘들다고 소문을 내면서 이스라엘-요르단 여행에 나서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어떻든 이번 여행에 참여한 분들의 면면을 보면 신자가 아닌 분들이 적지 않은 듯 특별히 힘든 일정을 보내지 않아도 되었다.

반갑다. 우즈벡항공(좌) 인천에서 타슈켄트까지(우)

우즈벡항공은 처음 타본다. 출발30분전 탑승을 시작했는데 느지막하게 탑승했더니 아내와 나는 창가자리에 앞뒤로 배정되어 있어 바꿔 달라는 얘기도 못 꺼내고 말았다. 항공사에 따라서는 여행사의 단체여행객들에게 일행끼리의 좌석편의를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9시55분 비행기가 10분 늦게 탑승구를 떠났다. 타슈켄트까지는 4,848Km이고 7시간 12분 소요될 예정이다. 이륙에 앞서 비상상황에 대한 안내방송이 나오는데 처음 우즈베키스탄어로 시작한 안내방송은, 짧은 한국말 환영인사로 이어졌다가 다음에는 러시아로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영어로 비상상황 대처요령을 설명한다. 잘 아는 내용이지만 외계어처럼 귀에서 겉돈다.

인천공항의 밤풍경도 멋있다. (좌) 영종도 많이 커졌네(우)

이윽고 비행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오르는데 보니 공항주변에 불빛이 많이 늘었다. 영종도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비행기가 활주로로 나가는 사이에 물을 한 잔 주더니 끝인가 보다. 비행고도에 도착했는데도 실내등을 줄이고 승무원도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다. 기내에 준비되어 있는 영화나 음악 등도 러시아 혹은 우즈베키스탄 것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허리우드영화는커녕 유럽영화도 없다. 그저 이름이라도 익숙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곡을 들으면서 잠을 청한다. 퇴근까지 집중해서 일하고, 공항 가는 길이 막혀 노심초사하는 등 피곤이 쌓인 탓인지 졸린다.

이륙 후 1시간이 지났을까 불이 들어오더니 땅콩 한 봉지와 정체를 알 수 없는 봉지 하나 그리고 오렌지주스를 준다. 그리고 저녁식사가 나왔다. 닭고기를 골랐지만 서울로 치면 야참일 터라 적당히 남기고 훈제연어가 한 점 들어앉은 샐러드와 후식 케익은 모두 먹었다. 많이 먹지 않았는데도 속이 더부룩한 게 불편하다. 저녁을 먹고 나서 다시 실내등이 꺼지고 취침모드에 들어간다. 하지만 잠이 깊지 못한 탓에 자꾸 깨게 된다. 이륙하고 4시간이 지났을까 우즈벡어에 이어 영어로 의사를 찾는 모양이다. 환자가 생겼나보다. 잠이 들어 듣지 못한 척하다. 큰 도움을 줄 수 없으니 말이다. 착한 사마리아인 되기를 포기한 셈이다.

이번에는 실내등이 환하게 켜지는 바람에 놀라 눈을 뜨려고 해보지만 이미 어둠에 익숙해진 탓인지 한참을 지나서야 밝음에 익숙해지다. 벌써 5시간 반이 지났다. 시간을 따져보니 자정 무렵이다. 이륙하고서 먹은 것이 저녁식사이고, 지금 나온 것은 야참인가보다. 그 야참은 우리말이 적힌 참치 마요네즈 삼각김밥 하나가 전부다. 저녁으로 먹은 것도 여전히 더부룩해서 먹기를 미루다. 하지만 이어서 재미있게 생긴 컵에 담은 커피는 설탕에 프림까지 듬뿍 뿌려서 마셨다. 속이 조금 차분해진다.

서울시간 5시25분 현지 시간으로는 오전1시25분 타슈켄트에 도착한다. 지난번 아프리카에 갈 때 거쳐간 홍콩에 이어 한밤중에 공항에 내리는 경험을 더 하게 된다. 타슈켄트국제공항에 접근하는데 보니 도시를 밝히는 불빛은 그리 휘황하지 않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내려 속도를 줄이자 작은 박수가 인다. 기장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리라. 남미를 여행할 때, 아르헨티나에서 보고는 오랜만에 다시 보는 풍경이다. 그때 움베르토 에코가 소개한 ‘봉가인들의 박수’를 인용한 바 있다. “예전에 봉가인들은 두 가지 이유에서 박수를 쳤다. 좋은 연기를 보고 기분이 좋았을 때와 위대한 공적을 남긴 사람을 찬양하고자 할 때. 박수를 치는 시간의 장단에 따라서 대상자가 어느 정도의 평가를 받으며 얼마만한 사랑을 받고 있는지 선명하게 드러났다.(2)” 인천에서 타슈켄트까지 안전하게 비행해온 기장과 승무원들의 노고에 대한 작은 성의표시라고 생각하면 그들의 순수한 마음이 이해될 듯도 하다.

비행기가 탑승구에 도착해서 탑승권 재발급을 포함해서 환승수속을 밟는데 1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나서 다음 비행기를 타기까지 4시간 정도를 기다려야했다. 타슈겐트공항은 탑승구가 10개 내외로 단촐하다. 이곳 사람들은 줄을 대충 서기는 하는데 끼어들기를 예사로 한다.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표정이 없는 것으로 보아 감정표현을 잘 안하는 것 같다. 지상근무 요원은 물론 승무원까지도 사무적이고, 서비스를 받는 사람의 의사를 제대로 묻지 않는 경우도 있다. 우리 일행이 도착할 무렵 탑승장은 한가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맨 바닥에 자리를 펴는 사람까지 생겨났다. 기내에서 잠자리가 불편했던지 대부분 옹색하나마 의자에 옹송그린 자세로 눈을 붙이는 모습이다. 이윽고 이스라엘의 텔아비브로 향하는 비행기의 탑승수속이 시작되고, 새치기가 난무하는 가운데 줄을 서고 탑승수속을 마쳤다.

타슈켄트에서 텔아비브까지 항로.(좌)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텔아비브. 도로가 반듯하게 나있는 계획도시라는 인상을 받는다(중) 벤구리온 국제공항의 안내창구(우)

비행기는 정시보다 조금 늦은 6시 10분 게이트를 물러났다. 활주로로 향하는데 하늘이 조금씩 엷어진다. 이스라엘의 텔아비브공항까지는 3,234km로 5 시간이 걸릴 예정이다. 흥미로운 점은 테헤란ㅡ바그다드ㅡ텔아비브를 연결하는 직선항로가 아니라 타슈겐트를 떠난 비행기는 카스피해를 건너 터키의 엘라지그(Elazig)까지 서쪽으로 쭉 간 다음, 기수를 30도를 남쪽으로 꺾어 아다나(Adana)까지 가고, 여기서 정남향으로 꺾어 공해로 나가 시리아ㅡ레바논의 앞바다를 지나 텔아비브로 가는 거다. IS때문인가? 비행기가 이륙하고는 조금 지나 구름 위로 해가 올라온다. 구름 위의 일출은 특별한 느낌을 준다. 이륙하고 2시간쯤 지나 식사가 나왔는데 양이 장난이 아니다. 닭고기 한 점 얹은 쌀밥에 고기파이와 빵을 곁들이고 오이와 토마토 통조림 파인애플 소시지가 두 종류 치즈 케찹 등으로 상이 넘쳐난다. 결국은 다 먹지 못하고 남겼다. 우즈벡사람들은 엄청나게 먹는 먹보인가 보다.

이윽고 비행기가 텔아비브의 벤구리온공항에 접근한다. 구름이 깔려 있어 걱정했지만 하늘을 온통 덮은 것은 아니다. 구름 사이로 드러난 텔아비브의 시가는 반듯하지는 않지만 지형을 살려 구획되어 있고 곳곳에는 판으로 찍은 듯한 가옥들이 들어서 있어 계획도시라는 인상을 준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도착한 시간은 8시28분이다. 탑승구에서 내려 입국신고를 하는데 내가 첫 번째가 되었다. 텔아비브 국제공항의 입국 수속에 대한 높은 악명을 들었던 터라 인솔자의 안내가 있기를 기다려 뒤에 선 3명에서 순서를 양보한 것이 실수였다. 몇 사람을 앞에 두었던 가이드와 다른 일행이 수속을 마치는 동안에도 내가 양보했던 세 명의 입국수속이 길어지더니, 나에게도 역시 왜 왔느냐? 무엇을 볼거냐? 언제까지 머물거냐? 등 질문이 이어졌다. 그래도 입국 거부를 당하지 않은 것은 다행한 일이다. 여권에 이스라엘 입국 스탬프가 찍히면 아랍국가에 입국할 때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입국스탬프를 찍은 작은 쪽지를 내준다.

참고자료:

(1) 연합뉴스 2017년 12월 9일자 기사. “이스라엘-팔 무장정파 교전…트럼프 선언 후 유혈사태 격화(종합)”

(2) 움베르토 에코 지음, ‘TV사회자가 되는 방법’, 연어와 함께 여행하기 68쪽, 열린책들,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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