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종 신드롬’은 계속돼야 한다②…'양'에 치중하다 첫 기회 놓쳐
센터 제 역할 위해 '진짜' 외상전문가 길러야…복지부도 다각도 고심 중

2011년 아주대병원 외상외과 이국종 교수가 석해균 선장을 치료하면서 중증외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이는 권역외상센터 설립으로 이어졌다. 2016년까지 2,000억 이상을 투입, 전국에 17개 권역외상센터를 설치키로 한 것.

권역외상센터 설립 확대가 발표된 후 전문가들은 ‘센터를 채울 전문가가 부족한 상황에서 수만 늘릴 경우 속 빈 강정이 될 것’, ‘한정된 예산을 소수 센터에 집중 지원하지 않고 분산 지원할 경우 역할을 제대로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주대병원 이국종 교수는 22일 북한군 귀순 병사 관련 2차 브리핑을 갖고 현 상태를 설명했다.

결국 2016년 9월 교통사고로 중증외상을 입고도 권역응급의료센터와 권역외상센터를 전전하다 사망한 민건이 사건이 발생하며 우려는 현실이 됐다.

2017년 2월에는 권역외상센터가 없었던 2010년과 설립된 후 2015년 사이 예방가능한 외상사망률에 큰 변화가 없다는 ‘예방가능한 외상사망률 평가 및 외상센터 운영 활성화 보고서’(서울의대 김윤 교수)가 발표되기도 했다.

무분별한 권역외상센터 확충과 제대로 되지 않은 질 관리가 결국 권역외상분야 발전을 위한 첫 번째 기회를 놓치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두 번째 기회가 오다

2017년 북한귀순병사가 판문점을 통해 귀순하다 총상을 입었다. 귀순병사는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로 옮겨 치료를 받았고 이국종 교수는 다시 언론과 국민의 관심을 받았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 교수에 대한 관심이 2011년에는 ‘열악한 외상외과분야 지원’으로 이어졌다면 2017년에는 ‘열악한 권역외상센터 지원’으로 이어지면서 좀 더 구체적이 됐다는 점이다.

국민들이 관심을 표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생겼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도입된 청와대 청원을 통해 ‘권역외상센터(이국종 교수님) 추가적, 제도적, 환경적, 인력 지원(2017년 11월 17일~12년 17일)’이 이슈가 됐고, 이 청원은 20만명을 훌쩍 넘겼다.

이같은 국민 관심에 정치권이 먼저 답했다. 보건복지부는 2018년도 권역외상센터 구축 예산을 2017년보다 8.9%(39억2,000만원) 줄인 400억4,000만원으로 편성해 국회에 제출했지만 여야는 2018년도 예산안 심의를 진행하며 권역외상센터 구축 예산을 212억원이나 증액시켰다.

증액된 예산은 중증외상센터 의료진 처우 개선(192억원), 응급의료종사자 대상 외상 전문 처치술 교육 지원(5억원), 외상종합계획 수립을 위한 연구용역(3억원), 응급의료전용헬기 1대 신규배치(11억원) 등에 사용된다.

복지부도 청와대 청원에 대한 답변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최근에는 박능후 장관이 직접 학회 관계자들을 만나 현장 의견을 청취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이다.

권역외상센터를 필두로 하는 외상외과 분야가 한단계 도약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얼치기 외상외과 전문가들 걷어내야

하지만 외상외과 분야의 발전을 위한 두 번째 기회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는 모양새다. 북한병사 귀순 사건 이후 열악한 인력 문제가 조명되며 인건비 등 의료진 처우개선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속적인 지원과 외상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본지가 직접 찾아가본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는 전문의라고 해서 특별한 일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외상팀을 지휘하면서 환자 이송상황 등을 직접 체크하고 있으며, 인턴이나 전공의가 해야할 일까지 도맡아 한다.

이런 시스템은 이국종 교수가 미국에서 수련할 때 배운 미국 외상센터시스템을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그러나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에서는 이미 수십년간 외상환자 치료에 최적화된 이런 시스템을 두고 ‘한국형 외상센터시스템’을 만든다는 생각을 이해하지 못했다.

특히 외상외과 치료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지적도 나왔다.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권준식 교수는 “외과는 수련을 받아 연차가 올라가고 전임의가 되면 응급실에는 내려오지 않고 수술장에서 세팅된 술기를 배우게 된다. 처음 외상외과를 찾는 전임의들도 이런 생각으로 오는 경우가 많은 편”이라며 “외상외과도 유방외과나 다른 세분전문과처럼 뭔가 특별한 술기를 배운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권 교수는 “외상센터에서 일을 하게 되면 환자 머리부터 발까지 모두 봐야 하고 환자가 오기 전 단계부터 개입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수련 단계에서 인턴·전공의 때 했었던 일까지 해야 한다"면서 "그러다보니 외상에 대한 특수한 기술을 배우려 오는 사람들은 이를 견디지 못하고 나가게 된다”고 덧붙였다.

특히 권 교수는 “타 권역외상센터에서 일하는 의사들 중에도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널렸다. 그렇기 때문에 외상 관련 시스템 개선이 안되는 것”이라며 “(지원을 통한) 인력 충원도 중요하지만 이런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부터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 예산심사 과정에서 늘어난 212억원 중 192억원은 권역외상센터 의료진 처우 개선에 사용된다. 권 교수 지적대로라면 192억원 중 대부분은 중증외상치료시스템도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기관에 지원될 가능성이 크다.

권 교수는 이외에도 늘어나는 예산으로 복지부가 추진할 응급의료종사자 대상 외상 전문 처치술 교육도 내실있게 진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권 교수는 “외상에 대한 한국형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 외상센터에 강의실을 빌리고, 강사 섭외해서 이틀 정도 교육시킨다고 해도 이수자들은이 현장에서 외상환자를 볼 수 없을 것”이라며 “이렇게 하면 얼치기 외상전문가만 늘어날 뿐이다. 정부가 ‘증’ 장사 하는 것 외 남는 것이 없다”고 꼬집었다.

아주대 권역외상센터 구성원도 불안한 ‘미래’ 누가 오나

석 선장 사건이나 북한귀순병사 사건 등을 거칠 때마다 붐이 일고 외상외과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과 별개로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시급히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문종환 교수는 “북한귀순병사 치료로 또 한번 붐이 일었지만 이런 붐은 장기적인 계획보다는 당장 국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지원으로 이어진다”며 “외상분야는 당장 고칠 수 없다. 원래 힘든 분야다. 잠 안자고 대기하고 계획에 없는 수술을 해야 한다. 몇 번의 붐을 거치면서 신비감도 많이 줄어서 이제는 오겠다는 사람도 많이 없다”고 토로했다.

문 교수는 “(지금 버티는 사람들은) 이런 일 하려고 온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일 할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한다”며 “외상을 계속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지금은 외상센터가 있지만 건물은 언제든 용도변경이 된다. 정부에서 지원을 중단하는 순간 매년 30억원 가까이 적자를 보는 과가 될 뿐”이라고 덧붙였다.

병원 전 단계 활성화 지원도 중요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유일의 응급의학과 전문의인 허요 교수는 센터 내에서 응급구조사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수시로 응급구조사들을 만나서 어떤 환자가 외상외과 환자며 그런 환자가 발생하면 어떤 과정을 거쳐 병원으로 이송해야 하는지 설명한다.

허요 교수는 “지역사회와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응급구조사들과 관계를 형성하면 이들이 환자를 적기에 이송해주는 경우가 있다"며 "(탐방한 날)오전에 온 환자도 이미 센터로 몇번 이송한 경험이 있는 응급구조사들이었기 때문에 타 병원을 거치는 과정에서도 빠른 판단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센터에서 외상환자를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없을 때는 이런 식으로 환자를 찾는 노력도 해야 한다”며 “이런 과정을 거치면 응급구조사 사이에서 컨퍼런스 등을 통해 정보 교류도 하는 등 선순환 구조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센터 내에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허 교수는 “인건비 지원 등에 예산을 사용할 것이 아니라 이런 시스템을 만들고 개선하는데 예산을 써야 한다”며 “이런 이야기를 계속 해도 잘 변하지 않는다. 응급의료전용헬기 한대 더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이왕 주려면 ‘통 크게’, 꼭 필요한 것부터 챙겨줘야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살림을 맡고 있는 김지영 외상프로그램 매니저는 권역외상센터를 살리기 위해서는 ‘통 큰’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매니저는 “외상센터를 보는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외상은 원래 환자가 없어도 항상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는 곳이다. 전쟁이 나지 않아도 군대를 유지하는 것과 같다”며 “외상소생실 같은 곳에서 환자가 없을 때 팀원들이 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안된다”고 지적했다.

김 매니저는 “언제 올지 모르는 외상환자를 돌보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도 인정하고 보상해줘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부분이 없다"며 "어떤 부분을 어떻게 지원하겠다가 아니라 손실이 발생하면 이를 모두 보전해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김 매니저는 특히 권역외상센터를 지원하는 것은 구성원이 아닌 환자를 위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김 매니저는 “구성원들은 힘든 일인줄 알고도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힘들기 때문에 지원을 더 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경우 외상환자가 오면 인력과 자원이 우리나라보다 7배 더 투입된다”며 “환자 입장에서는 그렇게 받아야 하는 케어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매니저는 “환자들이 양질의 케어를 받기 위해 지원이 필요한 것이지 구성원들 편하자고 지원해 달라는 것 아니다”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지원도 필요하다. 우리는 헬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구성원 간 소통을 원활하게 해주는 무전기가 더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부에 무전기 지원을 수차례 요구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는 KT에서 기부한 무전기를 사용하고 있는데 북한귀순병사 사건 이후 KT 파워텔은 LTE 무전기 단말기 70개와 3년간의 이용요금(약 1억3,000만원 상당)을 지원하기로 했다.

머리 아픈 복지부, 고민 또 고민

국회에서 212억원이라는 웃돈을 받고 국민들로부터 권역외상센터를 제대로 지원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는 복지부도 머리 아프기는 마찬가지다.

2011년도처럼 지역마다 권역외상센터를 만들어주는 쉬운 지원책을 만들면 후폭풍이 예상되는 만큼 신중하게 지원책을 마련 중이다.

복지부 응급의학과 관계자는 “(권역외상센터 지원 대책이) 언제쯤 발표될 것인지에 대해 확답을 하기 힘들다. 준비 중이다. 되도록 빨리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현황 파악도 하고 있지만 여러 의견이 다양하다. 종합적으로 검토한 대책이 발표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복지부 내부에서도 획일적인 지원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나오고 있다.

복지부 한 고위 관계자는 “권역외상센터를 하겠다고 유치해서 정부만 바라보고 있는 곳도 있고 못하겟다고 버티는 곳도 있다”며 “그렇게 하면 안된다. 예산을 지원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인지에 대해 잘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간 이식 등 장기이식을 보면 팀을 구성해서 성과를 낸다. 중증외상에서도 이처럼 팀을 구성해 성과를 내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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