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종 신드롬'은 계속돼야 한다①…환자 이송부터 수술까지 '시스템화'
외상센터의 '표준'을 만드는 아주대병원…그러나 시스템도 '의사'가 있어야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탐방에 나선 날은 오전부터 눈이 내렸다. 이천에서 중증의 응급환자가 발생했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이날 내린 눈 때문에 헬기는 끝내 출동하지 못했다.

센터에 도착해 탐방을 도와줄 허요 진료조교수(응급의학과)를 만났을 때는 헬기가 아닌 119구급차를 통해 환자가 이송되는 상황이었고, 센터 내 ‘외상소생실’에서는 이송환자 치료를 위한 준비가 시작되고 있었다.

아주대병원 응급실 구역 모습. 왼쪽은 권역응급의료센터, 오른쪽은 권역외상센터 입구다. 환자 상태에 따라 처음부터 응급환자와 외상환자로 나뉘어 들어가게 되는 구조다.

외상소생실은 센터의 핵심구역으로, 센터로 이송된 증증외상환자와 외상팀이 처음으로 조우하는 공간이며, 여기서부터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만의 시스템이 적용된다.

소생실에 환자가 도착하면 도착과 동시에 처치가 시작되는데, 보통 의사와 간호사 등 7~8명이 동시에 투입돼 각자의 역할을 한다.

아주대병원은 2016년 6월 권역외상센터를 신축했다. 지하 2층, 지상 5층으로 구성된 센터에는 중증외상환자 진료에 필요한 여러 시설이 들어있다. 1층에는 센터의 핵심 중 핵심으로 꼽히는 2개의 외상소생실과 외상관찰구역 6병상, A중환자실 10병상이, 2층에는 B중환자실 16병상과, C중환자실 14병상이, 3층에는 외상수술실 3곳이, 4층과 5층에는 각각 외상병동 40병상과 20병상이 있다. 2개의 외상소생실, 외상관찰구역 6병상, 중환자실 40병상, 수술실 3곳, 외상병동 60병상이 있는 것이다. 중환자실을 A, B, C로 나눈 것이 특이한데, 한번에 여러명의 중증외상환자가 오더라도 소생과정을 거치고 한번에 중환자실로 올렸을 때, 서로 다른 중환자실팀이 담당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센터에는 총 289명이 일하고 있다. 이 중 의사는 외과 8명, 정형외과 4명, 신경외과 2명, 흉부외과 1명, 응급의학과 1명, 마취통증의학과 1명, 영상의학과 1명 등 총 18명이며, 간호사 192명과 이들을 제외한 응급구조사, 방사선사 등이 79명이다.

이날 첫 환자를 아주대 권역외상팀이 진료하고 있는 모습. 해당 환자는 60대 남성으로 머리에 쇠파이프가 떨어져서 이천바른병원에서 구급차를 타고 9시 38분에 도착했다. 원래는 헬기를 통해 이송할 예정이었지만 이날 오전에 눈이 와서 헬기가 뜨지 못했다.

이날 이송돼 온 환자는 쇠파이프가 머리에 떨어진 60대 남자였다. 이천을 출발한 지 한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9시 38분 소생실에 들어왔다. 순식간에 외상팀이 붙어 환자 상황을 체크했으며 눈에 보이는 부분부터 처치를 시작했다.

누군가는 옷을 자르고, 누군가는 기도를 확보했다. 소생실 침대에서 바로 찍을 수 있는 초음파도 촬영 준비를 시작했다.

그렇게 눈에 보이는 처치를 마친 후 약 15분 정도가 지나서야 환자를 돌려 응급차에서 환자를 옮길 때 사용했던 간이 침대를 치울 수 있었다. 간이 침대를 치우는 것보다 눈에 보이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었던 것이다.

흉부에서 피를 빼기도 하는 등 슬쩍 봐도 중상인 환자를 처치하는 모습이었지만 물 흐르듯 진행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긴박한 상황에도 소생실에서는 큰소리 한번 나오지 않았다. 팀원들은 서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호자에 맞춘 중환자실 회진

환자 진료 모습을 지켜본 후 오전 회진 시간인 10시경에 맞춰 2층 B중환자실로 향했다. A, B, C로 나눠진 중환자실 중 B중환자실은 중증도가 가장 높은 곳이라고 했다.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에서는 회진시간을 보호자 면회시간에 맞춘다. 중환자실 특성상 보호자 면회시간이 제한돼 있는데, 이 시간을 이용해 환자 옆에서 환자상태를 보호자에게 직접 전달하기 위해서다.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이국종 교수가 중환자실을 회진하는 모습. 센터에서는 환자 보호자 면담시간에 맞춰 회진을 하면서 보호자에게 환자상태에 대한 설명도 같이 하는 등 보호자에 맞춘 회진을 한다.

국내 중증외상계의 아이콘이 된 이국종 교수도 같은 시간 중환자실로 들어섰고 담당환자 곁에서 보호자에게 환자 상태를 설명했다. 다른 의사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B중환자실을 맡고 있는 김보형 수간호사는 “이곳의 간호사만 34명이다. 하지만 그래도 인력이 부족하다. 외상환자 자체가 중증인 것은 물론 수술을 위해 여러과로 다니다보니 더 손이 많이 간다”면서 “지금은 간호사 한명이 2~3명의 환자를 보는데, 기본적으로 환자 대 간호사 비율이 1:1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간호사는 “12월 1일자로 신입 간호사 3명이 들어왔지만 1주가 지나고 한명, 2주가 지나서 또한명이 나가 지금은 한명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라며 “예전보다 간호사들이 힘든 일을 견디지 못하기도 하지만 복잡한 외상환자 진료 시스템을 배울 수 있는 여건이 부족한 부분도 있다”고 덧붙였다.

12시, 식사를 겸한 스텝회의

환자가 많을 때는 오전에도 3~4명의 환자가 몰려오지만 이날은 다행히 오전 환자가 한명 뿐이어서 12시로 예정된 스텝회의에는 6명이 참석했다. 이들 앞에는 1회용 용기에 담긴 쌀국수와 볶음밥 등이 사람 수에 맞춰 놓여있었다.

식사와 함께 진행된 회의에서는 입원환자 상태를 체크하는 것을 시작으로, 관련 논문을 리뷰하기도 하고 진료 외 센터 업무와 관련한 논의가 이뤄졌다.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소속 스텝들의 회의 모습. 12시에 진행된 회의는 식사와 함께 진행됐으며 환자 경과와 논문 리뷰, 센터 관련 업무 처리 등으로 진행됐다.

밥 먹는 시간조차 회의하는 데 내줘야 하는 이들에게 회의 시작 전 짬을 내서 인터뷰하는 게 미안했지만 조자윤 진료조교수(외과)는 짧은 인터뷰를 통해 현재 가장 힘든 점은 전공의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조 교수는 “전공의가 없어서 매우 힘들다. 이틀에 한번 배가 열린 환자의 드레싱을 하고 있는데, 2~3주 후면 피부이식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계속 드레싱을 해줘야 한다. 드레싱이라고 말하면 쉬운 것 같은데, 한번 드레싱 할 때마다 6~7시간을 해야 한다. 아침 6시에 시작하면 12시에 끝난다”고 말했다.

석해균 선장에 이어 북한 귀순병사로 ‘이국종 신드롬’을 다시한번 일으키며 정부로부터 중증외상센터에 대한 지원책을 이끌어내고, 기업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받은 아주대병원이지만 외과를 기피하는 젊은 의사들의 마음을 잡는 데는 실패했다. 아주대병원은 지난 4일부터 5일까지 2018년도 전공의 추가모집에 나섰지만 4명을 모집하는 외과에 단한명도 지원하지 않았다. 지난 2017년에 이어 올해도 1년차 전공의 모집에 실패하면서 아주대병원 외과에 소속돼 있는 전공의는 3년차 4명이 전부다.

조 교수는 “직분은 교수지만 사실상 전공의가 하는 역할을 한다. 외상팀 교수로서 모든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하지만 (전공의가 있다면) 연구나 교육 등 하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동환 진료조교수(외과)는 어차피 권역외상센터로 보낼 환자라면 최대한 빨리 보냈으면 한다고 했다.

최 교수는 “어차피 환자가 올거면 빨리 오는 것이 낫다. 지체하다 환자 상태가 나빠지면 더 힘들어진다. 환자가 나빠질 때까지 검사 등을 하지 말고 그냥 보내달라. 그런 상황에 처하면 전원한 의료기관 의료진들에게 실망감이 들 때도 있다”고 토로했다.

오후 1시 35분, 두 번째 환자 오다

오후 1시 35분, 이날 두 번째 환자가 이송됐다. 환자는 시흥시 정왕동 집에서 과도에 찔린 환자였다. 인터뷰 중 환자 상태를 보고 받은 권준식 진료조교수가 센터 이송을 결정했고 12시 38분 이송이 시작됐다.

환자가 센터에 도착한 시간은 약 한시간 정도 시간이 지난 오후 1시 35분. 오전 환자보다는 상태가 괜찮아 보였지만 소생과정은 똑같았다.

이날 이송된 두번째 환자. 다리 쪽에 과도로 1센티미터 정도 자상을 입은 환자였으며, 외관상으로는 중증외상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계속된 출혈로 혈압이 90mmHg까지 떨어지는 등 쇼크가능성이 있어 일반 응급실에서 시간을 지체했으면 사망할 가능성이 높았다.

권 교수는 “과도로 1㎝ 정도 찔린 환자인데, 응급실에 갔으면 외과나 정형외과에서 보고 꿰맸을 가능성이 크다"며 "하지만 이 환자 혈압이 90mmHg이어서 쇼크 가능성이 있었다. 사소해 보이는 외상환자라도 전문적으로 보지 않으면 사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이날 센터에 이송된 환자는 두명이었다. 그러나 평균적으로 하루(오전 8시를 기준으로 24시간)에 4~5명의 환자가 이송되는 게 보통이고 10명을 넘는 날도 적지않단다. 이에 센터에서는 언제든 중증외상환자를 이송하거나 치료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다.

환자가 없는 시간 ‘준비’는 계속된다

그러던 차에 1층에 마련된 ‘외상통제실’이 궁금했다. 외상통제실은 헬기출동을 준비하는 공간으로 내부에는 헬기출동 시 사용하는 응급키트와 복장 등이 정리돼 있다.

내부로 들어서면 전면에 큰 모니터 세개가 달려있는데, 좌측 모니터는 헬기장을 비추는 CCTV화면이 있고, 중간 모니터는 실시간 뉴스채널에 고정돼 있다. 센터에서는 YTN 뉴스를 틀어놓고 있는데, 사고 속보가 가장 빠르기 때문이다. 우측 모니터에서는 실시간 기상정보가 표시된다.

오후 4시경 헬기출동 준비 모습. 평택에서 발생한 환자를 이송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지만 타 병원으로의 이송이 결정되면서 취소됐다.

탐방 중 헬기출동 모습을 직접 볼 순 없었지만 준비하는 모습만으로도 긴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던 헬기담당 간호사는 핸드폰에 출동 문자가 뜨자마자 벌떡 일어나 1층으로 향했다.

1층 외상소생실에 들러 마약성 진통제 등을 수령하고 다시 외상통제실로 향했다. 그 사이 3~4명의 사람이 복장을 갖추고 무전기를 켠 채 출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허요 교수도 어디선가 나타나 복장을 착용했다.

하지만 곧바로 환자가 다른 곳으로 이송됐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상황은 해제됐다. 그 와중에도 출동 문자를 받은 지원인력들이 속속 외상통제실로 들어섰다. 출동은 취소됐지만 곧바로 하던 일로 복귀하는 모습을 보니 출동과 취소를 반복하는 것이 한두번 있는 일이 아닌 듯 했다.

센터 살림을 담당하는 김지영 외상프로그램 매니저(간호사)가 준비하는 시간도 일하는 시간으로 보고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모두들 제각각 일을 하러 가고 더 이상 환자도 오지 않는 센터는 한산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조용했다. 오후 5시가 넘은 시간 탐방을 마치며 나오는 길에 탐방을 도운 허요 교수가 말했다.

“우리는 국내 외상시스템을 이끌어간다는 생각으로 일한다. 다른 센터에서도 우리를 주목한다는 것을 안다. 때문에 우리가 잘하는 것이 국내 외상시스템을 발전시킨다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다.”

허 교수의 말에서 ‘국내 외상외과분야에서는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가 최고’라는 자부심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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