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카드는 당분간 사용금지, 일부는 손편지 작성에 힘쏟아

공정경쟁규약 강화, 리베이트 쌍벌제 도입 그리고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하 김영란법)까지. 수년전부터 시행돼 온 이러한 제도들로 인해 제약업계 불법 리베이트 관행이 자리할 공간은 없다. 여기에 올해 경제적이익 지출보고서, 이른바 '선샤인액트'까지 시행된다. 의료진에게 제공하는 경제적 이익에 관한 내용을 항상 준비하고 관계당국의 요청이 있을 경우 언제든 전달해야 한다.

이에 제약사들은 자체적으로 공정거래자율준수프로그램(CP)을 도입 운영하면서 내부 단속에 힘을 쏟고 있다. 올해 주요 제약사들 시무식에서 내부 조직강화와 리베이트 근절이 빠지지 않았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실제 영업사원들은 달라진 환경에서 어떻게 영업을 하고 있을까. 새해가 시작되고 두번째 영업일을 맞은 3일, 모 다국적제약사 영업사원 A씨의 하루를 따라가 봤다.

독일제 수입차를 타는 영업사원 A씨. 1년에 약 3만km 이상 주행하고 있다.

사라진 '콜' 문화와 지저분한 조수석

"태블릿PC를 회사에서 지급했지만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출근보고는 보통 유선으로 하고 오늘 돌아볼 지역에 대한 언급만 살짝 합니다. 팀장도 자세한 내용을 묻지는 않습니다."

A씨는 오전 8시쯤 집을 나서며 팀장에게 유선으로 출근보고를 했다. 한 때 제약업계에서 논란이 됐던, 자신의 위치를 PDA나 태블릿PC로 보고하는 이른바 '콜'은 없었다. 가벼운 출근보고 이후 차로 향했다. 차량은 1년이 되지 않은 독일제 고급 세단이다. 5년차 영업사원이자 30대 초반인 A씨에겐 다소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유가 있었다.

A씨는 신입 시절부터 고가의 수입차를 몰았단다. 선배들이 고객(의료진)들과 동행하는 경우가 많다며 고급 수입차를 권했다고, 때문에 최근 이직을 하면서 차를 바꿀 때도 비슷한 등급의 차로 구입했다. 하지만 현재의 차 옆자리에 의료진을 태우고 이동한 경험은 0건이라고 했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담당 의료진이 차에 타겠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A씨는 전했다. 동석한 상황에서 미안한 말이지만, A씨의 조수석과 뒷자리는 누군가를 태우기 어려울 정도로 정리가 안 된 상황이기도 했다.

환자가 많이 없는 시간이 A씨에겐 최고의 시간이다.

거래처 방문, 그는 ‘빈손’이었다

오전 9시가 조금 안된 시각. A씨는 첫 거래처(의원급)를 방문했다. 업무 시간은 9시 30분부터로 아직 의사는 출근하지 않았다. A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간호사, 행정직원들과 인사하고 담소를 나눴다.

환자가 많지 않은 이 시간대가 가장 영업하기 좋은 시간이며, 이들에게서 나오는 정보도 꽤 쏠쏠하다고 A씨는 귀띔했다.

국내 제약사 시절부터 거래처였던 이곳에 과거에는 의료진과 직원들 수만큼 커피를 들고 방문했었지만, 지금은 직원들부터 부담스러워한다. 지금은 오히려 병원 직원들이 내준 주전부리를 함께 먹는다며 과거와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병원 직원들과 새해 인사를 나누고 나온 A씨는 걸음을 재촉해 인근 또 다른 의원에 들렸다. 역시 빈손으로 들어가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원장에게도 가벼운 새해인사를 전하고 나왔다. 이곳에서 소요된 시간은 대략 3분이었다.

11시 또다른 거래처인 모 종합병원으로 이동하는 도중 A씨는 신기할 정도로 전화가 한통도 오지 않는다며 고개를 갸웃했다. 통상 11시면 간식이나 커피를 요구했던 거래처가 있었다면서.

판촉물, A씨의 부담을 덜어주다

그의 트렁크는 각종 판촉물로 가득했다.

종합병원에 들어선 A씨의 미션은 6명의 의사를 만나는 것이다. 올해 초 있을 학술대회에 초청하기 위해서다. 연자는 이미 회사에서 섭외를 마쳤고, 참가자 모집만 남았다. 이번엔 그의 손에 무엇인가가 들려있다. 회사에서 제공된 판촉물이다. 1만원 이하의 판촉물은 그가 유일하게 사용하는 영업도구다. 이번 판촉물은 손난로였다.

그의 트렁크는 각종 판촉물로 가득했다.

이 판촉물이 그나마 A씨에게는 숨통을 트여준단다. A씨가 몸담고 있는 회사는 법적 제한이 없는 1만원 이하의 판촉물을 적극 활용토록 권장한다고. 과거 판촉물과 달리 실용적인 것들 위주지만, 빈손 영업의 허전함을 달래주기 충분하다고 했다.

의사들을 만나기 위해 종합병원 곳곳을 움직이다보니 점심시간이 됐다. 하지만 A씨는 이때가 가장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시간이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 시간이 대기 환자가 없어 외래를 보는 의사를 만나기 수월하고, 연구실에 있는 교수들과 약제과 담당자들도 점심시간 전 약간의 휴식이 주어지는 이 때를 노려야 한단다.

오후 1시 40분이 넘어섰다. A씨는 목표했던 6명의 의사들을 만나 새해 인사와 판촉물 그리고 학술대회를 홍보했다. A씨의 표정은 밝았다. 만난 의사들 중 학술대회에 관심을 보인 사람이 한명 있었기 때문이다.

"학술대회를 관심있게 물어보는 경우는 드뭅니다. 참석을 하겠다는 분들은 오히려 아무것도 묻지 않는데 고민하는 분들은 질문이 많이 하죠. 오늘은 한분이 연자를 듣더니 이것저것 구체적으로 물어봤어요. 이런 분은 실제 참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요."

A씨와 점심식사. 요즘은 같이 밥먹자는 거래처가 없다는게 A씨의 반응이다.

점심시간, 기자가 있어 다행이다?

"뭐 드실래요? 오늘은 그래도 기자님 계셔서 다행입니다. 안그러면 혼자 먹거든요. 이제 밥을 먹자고 하시는 선생님들은 없어요. 회사 규정도 그렇고 본인들도 부담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오후 3시 경 A씨와 병원 인근 식당에서 때 함께 점심식사를 했다. A씨는 과거와 달리 놀라울 정도로 같이 밥먹자는 거래처 연락이 없다고 했다.

국내 제약사에 있던 시절에는 한정식, 초밥, 회 등 점심시간을 화려하게(?) 보냈단다. 간식도 마찬가지였다고. 고급 쿠키나 브랜드 커피 등 양손은 항상 묵직했고, 병원도 이를 마다하지 않았단다.

A씨와 보쌈과 김치찌개로 점심을 해결하고 커피숍으로 향했다. 오전에 업무를 보면서 필요했던 서류작업을 하는 시간이란다. 노트북으로 정산과 주문을 요청하고 일지를 작성했다.

그때 커피숍으로 정장을 입은 사람이 들어왔다. 그는 식탁에 카드를 한가득 펼쳐놓고 일일이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A씨는 그를 힐끗 보더니 제약사 영업사원이라고 장담했다. 편지를 써서 자신과 회사를 알리는 거라면서, 최근 영업사원들이 의사를 만나기 힘들어 각종 방법을 짜내고 있다고 했다. A씨와 기자가 나갈 때까지 그는 손에 쥐가 날 정도로 카드 쓰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후 A씨는 인근에 있는 병원 주력 도매업체 일명 에치칼 도매업체를 찾아 임직원등과 새해 인사를 한 후, 또다른 거래처인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이 병원에서도 마찬가지로 5명 정도의 의사를 만나고 학술대회 개최사실을 알려야해 바쁘다는 말과 함께 자동차 속도도 올라갔다.

A씨는 5년만에 저녁있는 삶을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5년만의 저녁이 있는 삶

오후 6시 드디어 하루 일과가 끝났다. 그는 오전에 목표했던 13명 정도를 모두 만나는데 성공했다고 뿌듯해 했다.

하지만 헤어지기 아쉬웠다. 솔직히 지출보고서를 작성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지출보고서는 전산으로 처리하고 부서장, CP팀, 재경팀 결재가 있어야 승인이 납니다. 개인카드도 안되고 오롯이 법인카드를 사용해야 하지요."

이어 A씨는 당분간 회사에서 '법인카드 사용 금지' 지시가 떨어졌는데, 그 이유가 선샤인액트 제도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괜히 법인카드 사용으로 선샤인액트 제도의 불미스런 첫 사례가 되지 않기 위해 내려진 조치라고 했다. 때문에 현재 부장급들도 법인카드를 쓰지 않고 있으며, 다른 제약사 영업사원들도 같은 처지라고 덧붙였다.

5년차 영업사원인 A씨는 영업환경이 변했음을 몸으로 느낀다고 했다. 이제야 평일, 저녁이 있는 삶을 경험한단다.

신입사원 시절에는 저녁 접대는 당연했고, 주말에는 운전기사가 됐다고 했다. TV나 영화 속에서 보던 영업사원의 고된 하루를 실제로 경험했고, 밤에도 울려대는 전화로 전화기를 원망할 때도 있었단다.

"아직 경력이 짧지만 변화를 느끼기엔 충분한 거 같아요. 저녁 있는 삶을 보낼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거든요. 다만, (영업)현장에서는 아직 의견이 좀 분분해요. 이러한 생활은 잠깐일 뿐이며, 시간이 지나면 다시 과거로 돌아갈 거라고. 설사 당분간이라도 지금은 저녁을 즐길 수 있으니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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