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의학기사단의 <환자혁명> 비판

암은 어려워서 그렇다 치고 누구나 걸리는 감기는 좀 알고 썼을까요? 역시 조한경씨,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감기에 대해서도 미신과 근거 없는 비약으로 공상 과학과 엽기 코미디 장르를 넘나듭니다.

편도가 체온을 조절한다고, 언제부터?

‘열이 지나치게 오를 경우, 두뇌에 손상을 주지 않도록 편도가 열을 차단한다. 편도선이 붓는 것이다…41.5도가 넘어가면 뇌에 영향을 끼치지만 대부분의 경우 41도를 넘지 않는다.’ (환자혁명 p298-299)

‘편도가 열을 차단한다’는 애매모호한 기술은 도대체 무슨 뜻인가요? 체온을 조절한다는 건가요, 아니면 절연체나 냉매 같은 걸로 돼있어서 열전도를 막는다는 건가요?

체온은 뇌 속에 있는 시상하부의 체온조절중추에서 감지하고 조절합니다. 체온의 변동을 감지하고 혈액 분포, 땀의 양, 체액의 양, 행동 등을 조절하여 설정 온도(set point)를 유지합니다.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침입했을 때 열이 나는 것은 다양한 신호를 통해 설정 온도가 상승하기 때문입니다. 조한경씨는 ‘열이 오를 때는 미온수에 적신 수건으로 몸을 닦아주면 해열제만큼이나 효과가 좋다’고 합니다. 한 번도 자기 손으로 아기를 돌본 적이 없는 사람이나 저런 소리를 하지요. 열이 날 때 시상하부의 설정 온도를 그대로 둔 채 옷을 벗기고 미온수로 닦아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 몸은 어떻게든 설정 온도로 맞추려고 하기 때문에 체온을 올리기 위해 더 심하게 떨리고 엄청난 오한에 시달리게 되죠. 죽도록 고생만 하고 열은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럼 높아진 설정 온도를 낮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설정 온도를 낮추는 약이 바로 해열제입니다.

지나친 고열을 막는 것 역시 편도가 아니라 체온조절중추입니다. 체온조절중추가 제대로 기능을 한다면 극히 예외적인 상황(악성 고열, 갑상선중독 등)이 아닌 한 치명적인 온도(41-42℃)까지 체온이 상승하지 않습니다. 편도는 우리 몸의 수많은 림프기관(림프절, 비장, 흉선 등) 중 하나일 뿐입니다. ‘체온 상승을 막는’ 것이 아니라, 항체 매개 면역을 유도하고 항체 생산을 조절하여 감염에 맞서는 기능을 합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편도에게 지나친 역할을 부여한 까닭은 뭘까요? 무지하거나 부도덕한 의사들이 ‘편도는 불필요하니 잘라버린다.’ (환자혁명 p298)고 비난하고 싶었던 게지요. 조한경씨, 충수돌기절제술, 즉 맹장수술은 왜 하지요? 의사들이 무지하고 부도덕해서 맹장을 잘라버리는 건가요? 그게 아니라 그대로 두면 복막염이 되고 사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자르는 거지요? 편도절제술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 8세 이후에 편도의 크기가 자연스럽게 작아지기 때문에 그전에는 수술을 하지 않습니다. 그 이후에도 심한 편도 감염이 반복되거나, 편도가 너무 커서 수면을 방해할 때처럼 꼭 필요한 경우에만 제거합니다. 편도를 제거하더라도 감기에 더 잘 걸리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편도가 감염원인 경우 감염 빈도를 낮추는 효과도 있습니다. ‘열을 차단하는 편도’를 제거하면 심한 고열에 시달릴까요?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편도가 체온을 조절한다고요? 그런 말은 어디에 나오나요? 그리스 신화? 정말이지, 자궁이 몸 속을 돌아다니는 바람에 히스테리가 생긴다는 말만큼이나 미신적인 소리네요.

해열제가 건강에 찬물을 끼얹는다고?

‘바이러스들이 일단 몸 안으로 들어오면…인체의 대사 기능을 활성화하여 저항력을 키우려 하는 것이 발열이다. 감기 바이러스는 열에 약하다. 반면, 감기 바이러스와 맞서 싸우는 백혈구에게 유리한 환경이다…치료랍시고 해열제를 먹여…감기와 싸우려는 우리 몸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 (환자혁명 p298)

앞에서 얘기했죠? 일단 해열제를 먹지 않으면 열이 잘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체온 상승이 우리 몸의 방어 작용이라면 억지로 열을 낮추는 게 몸에 해롭지 않을까요? 왜 의사들은 해열제 복용을 권하는 걸까요? 발열이 몸에 부담을 주기 때문입니다. 열이 나면 우리 몸의 산소 소비, 이산화탄소 생성, 심박출량(체온 1도 상승 시 심장 박동수 10회 증가), 수분 손실(1도 상승 시 불감 수분 손실 12% 증가)이 증가합니다. 쉽게 말해 호흡이 빨라지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탈수가 쉽게 온다는 겁니다. 열이 나는 아이를 곁에서 지켜본 적이 있다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해열제를 먹이는 목적은 열이 나면서 동반되는 고통을 덜어주는 것입니다. 통증을 줄여주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요.

해열제를 먹는다고 병의 경과가 단축되지는 않지만 크게 악화되는 것도 아닙니다. 한 연구에서는 바이러스 감염으로 열이 나는 200여명의 어린이를 두 집단으로 나눠 한 집단에게는 해열제를 주고, 다른 집단에게는 해열제를 주지 않았습니다. 누가 해열제를 먹었는지는 모르는 상태로 진행된 연구입니다. 두 집단의 발열과 기타 증상의 지속 기간에는 유의한 차이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해열제를 투여한 경우 발열에 의한 증상이 하나 이상 호전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해열제가 병의 경과는 악화시키지 않으면서 열에 의한 증상을 호전시키는 효과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물론 열이 날 때 무조건 해열제를 복용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열이 나도 컨디션이 좋고 수분을 충분히 섭취한다면 지켜봐도 됩니다. 하지만 열로 힘들어 하는 아이에게 해열제를 주지 않고 버틸 이유는 없습니다. 더욱이 ‘면역력을 약화’시킨다는 건 아무런 근거가 없는 괴담일 뿐입니다.

해열제 얘기를 하면 자꾸 부작용을 지적하는데 아세트아미노펜(타이레놀)의 간독성과 NSAID(부루펜 등)의 위염/위궤양은 과량을 복용하지 않는 한 거의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요즘 화제가 되는 스티븐스-존슨 증후군은 적정량을 복용해도 나타날 수 있지만 극히 드물고, 항상 치명적인 것도 아닙니다. 심지어 비타민을 먹은 사람에서 나타났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적절한 용량과 용법을 지켜 복용하는 해열제가 삶과 건강에 도움을 주는 것이 분명한 가운데,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위험과 이익을 저울질하여 판단하는 것이 의료인의 역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열제 복용이 건강을 위협하거나 면역을 약화시키는 것처럼 왜곡하는 건 근거 없는 비약에 불과합니다. 약물과 백신에 대해 근거 없는 공포감을 조성하며 아이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자신의 이익을 꾀한다면 ‘안아키’와 다를 바가 무엇일까요?

참고 자료

1. Nelson Textbook of Pediatrics 20th edition, Elsevier (2016)
2. 홍창의 소아과학 제11판, 미래앤 (2016)
3. Fever and Antipyretic Use in Children (2011)
4. Clinical Practice Guideline: Tonsillectomy in Children (2011)
5. The effect of tonsillectomy on the immune system: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2015)
6. Evaluation of long-term impacts of tonsillectomy on immune functions of children: A follow-up study (2009)
7. Tonsillectomy vs. Watchful Waiting for Recurrent Throat Infection: A Systematic Review (2017)
8. Antipyretic Therapy: Physiologic Rationale, Diagnostic Implications, and Clinical Consequences (2000)
9. Risks and benefits of paracetamol antipyresis in young children with fever of presumed viral origin (1991)
10. Effect of Antipyretic Therapy on the Duration of Illness in Experimental Influenza A, Shigella sonnei, and Rickettsia rickettsii Infections (2000)
11. Does the Use of Antipyretics in Children Who Have Acute Infections Prolong Febrile Illness?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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