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18.10.17 수 10:36
상단여백
HOME 기획·특집 제17회 한미수필문학상 제17회 한미수필문학상
[제17회 한미수필문학상 대상] 제자리분당서울대병원 외과 오흥권 교수
  • 청년의사
  • 승인 2018.01.01 06:00
  • 최종 수정 2018.01.01 06:00
  • 댓글 2

외과의사는 수술한 환자의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속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그녀의 처음 상태를 종이에 그렸다면 배 안이 종양으로 두텁게 겹쳐서 정상 조직의 밑그림이 거의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2년 전 그녀는 복통으로 응급실에 왔다. 대장은 꽉 막혀 대변을 볼 수 없었고, 막힌 대장의 상부는 팽창하여 터지기 직전이었다. 골반에 큰 종양이 발견되었다. 종양의 범위가 너무 커서 종양이 처음 생긴 부위를 특정하기 어려웠지만, 생긴 위치로 볼 때 대장암 혹은 난소암일 것으로 추정하였다. 두 가지 종양은 완전히 절제하지 못하더라도 가능한 많이 절제하는 것이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고, 환자의 경우에는 종양으로 인해 장이 막혀있었기 때문에 수술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산부인과 선생님과 상의하여 개복을 하고 보니, 대장과 난소, 자궁 등이 종양으로 한 데 뒤엉켜 있었고, 소장과 간, 횡격막에도 암의 전이가 심각하였다. 대략 여섯 시간 동안, 큰 종양을 힘들게 절제하고는 수술을 마무리하려고 피곤함이 가득한 채로 대기실에 보호자를 만나러 갔다.

환자의 남편은 우리의 노력을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다. 마치 뒤에서 수술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큰 병소 뿐 아니라 복강 안에 퍼져있는 암도 남김없이 없애주기를 원했다. 그는 단지 아내의 복통이 호전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암이 생기기 전의 건강한 상태로 되돌려주기를 바라는 듯했다. 오후 4시부터 시작한 수술이 벌써 밤 10시로 향해가는데, 남편은 간절했고 그래서 막무가내였다. 어쩔 수 없이 무언가에 떠밀리듯 그로부터 몇 시간 수술을 더하면서도, 이런다고 병을 깨끗이 낫게 할 수는 없다는 무력감도 더해갔다.

파종’이라는 말은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는 광경을 일컫는데, 악성종양이 씨를 뿌리듯 배 안에 퍼져있는 것도 ‘복막파종’이라고 부른다. 이런 경우 눈에 보이는 종양을 제거하더라도 얼마 못 가서는 눈에 보이지 않던 종양의 씨들이 다시 자라서 거의 재발한다. 그래서 대장을 전부 자르고 난 후 항문과 섣불리 연결하지 못하고 배꼽 아래에 구멍을 내어 장루를 만들어서 수술을 마무리했다. 장루는 장을 배 앞으로 빼놓는 수술방법으로 그곳에 주머니를 붙여 대변을 받아내야 한다. 사람은 남 앞에 자기가 가진 아름다운 것들을 맨 앞에 두고 싶고, 불편하고 숨기고 싶은 것은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래서 장루를 가진 환자들은 부자연스럽고 비밀스런 고통을 겪는다.

그녀는 수술이 끝나고 입원 기간 동안 회복에 큰 의지를 보였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입맛이 없는 와중에도 식사를 억지로 했다. 수술 후 닷새 정도가 지나서 금요일 회진을 할 때, 토요일 날 중요한 일이 있어서 하루 외출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 몸으로 무슨 외출을 하느냐고 묻자, 내일이 아들 결혼식이라고 몇 분 정도는 서있을 수 있으니 꼭 참석해야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차마 말릴 수 없는 일이라, 허락을 하고 절대 무리하지 마시라고 당부를 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병원으로 돌아온 환자는 난소암으로 최종 진단되어 산부인과로 옮겨갔다. 삶이 얼마 남지 않아 보였던 환자는 항암치료를 잘 견뎌냈다고 했다.

그런 후 2년이 지나, 그녀에 대한 기억이 거의 사라져가던 즈음, 장루를 배 안으로 복원해달라고 다시 나타났다. 처음에는 그녀를 잘 알아보지 못했다. 컨디션도 많이 좋아져서 체중도 늘었고, 많이 편해 보였다. 그녀는 배 안의 종양들이 항암치료에 반응이 좋아 다 없어졌다고 희망에 찬 순진무구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부부는 첫 수술 후 결혼 시킨 아들의 아들을 보는 낙으로 산다고 했고, 이런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은 다 내 덕분이라고 과분하게 고마워했다. 나는 부부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면서 처참했던 환자의 뱃속이 증강현실처럼 떠올라 괴로운 얼굴이 되었다. 왜냐하면 장루를 복원하는 수술은 물기가 마른 가래떡처럼 자기들끼리 단단하게 붙어있는 장을 손상 없이 분리해가며 배 속을 헤치고 들어가서 배속의 깊은 곳의 장과 배 밖에 나와있던 장을 다시 연결해야 하는 매우 어려운 수술이기 때문이다. 눈 쌓인 후 얼어붙은 길을 발로 헤치며 걷는 일과도 같다. 마음 같아서는 다른 선생님께 부탁 드리고 싶었지만, 그래도 내가 처음 수술의 집도의였기에 복원 수술을 회피할 수는 없었다. 남편은 결자해지라는 말로 2년전 그 밤처럼 나를 다시 수술장으로 떠밀었다.

걱정 때문에 준비를 많이 한 일은 뜻밖에 순순히 풀리는 경우가 많다. 복원 수술은 생각보다 잘 진행되어 환자의 소원대로 장을 다시 연결해서 장루를 없앨 수 있었다. 환자 몸에 칼을 대기 전까지는 치료법을 가진 의사가 ‘갑’, 병을 가진 환자가 ‘을’이다. 이 관계는 병의 중증도와 응급여부에 따라 과장되고 확대된다. 이후 수술이 끝난 후 결과를 알 수 없는 며칠간의 깜깜한 터널을 지나는 동안은 환자가 ‘갑’, 의사가 ‘을’로 일시적인 역전이 생긴다. 솜씨가 아무리 빼어나고 큰소리치는 의사라도 수술 후 이 불안한 시기를 지나는 기간에는 예측 불가능한 여러 가지 변수들 때문에 ‘수동공격형 을’일 뿐이다. 하지만 이 관계는 환자가 별다른 문제없이 회복하여 의사가 퇴원 날을 당당하게 통보하는 시점에서 완전하게 처음으로 돌아간다. 이 퇴원 날을 환자나 보호자가 ‘함부로’ 정하는 것을 외과의사들이 싫어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수술 후 며칠은 경과도 좋았다. 수술 후 일주일 정도 지나서 퇴원까지 생각했으나, 그날 저녁 복통과 발열을 동반한 복막염 증세가 나타났다. 장을 연결한 부위의 파열이 생겼던 것이다. 환자는 장 안에만 있어야 하는 변과 세균이 장의 파열된 부위를 통해 배 안으로 유입되어 심하게 오염된 복막염과 그로 인한 패혈증을 겪고 있었다. 환자를 다시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재수술뿐이었다. 항문이 거의 남지 않았던 이 환자에게서 재수술은 장루를 다시 빼는 것을 의미했다. 합병증이 생겨서 하는 재수술은 환자로서도 괴롭지만, 외과의사로서도 자신의 실패와 마주해야 하는 일이다. 싸움터가 내 몸 안이 아닐 뿐이다. 그래도 의사의 실패라 봐야 환자가 육체와 정신으로 받는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른다. 재수술을 괴롭게 결정하고는 수술실 입구에서 남편을 다시 만났다. 터진 부위를 잘 꿰매서 낫게만 해달라며, 장루는 절대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나를 붙잡고 통곡을 했다.

“장루를 집어넣는 날만 보고 2년을 견뎠는데, 그것을 다시 보는 날에는 저 사람은 뛰어 내릴지도 모릅니다.”

터진 부분을 몇 바늘 꿰맨다고 해결될 합병증이면 애초에 복막염이라고 부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확실한 해결책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해결책은 다시는 내 실패와 마주하는 일이 없는 방법이어야 했다. 나는 원래 계획대로 다시 냉정해지기로 했다. 뒤돌아서는 나를 향해 남편은 한마디 푸념을 했는데, 그 말은 내 귓가에 메아리로 반복해서 들렸다.

“배를 3번을 째고 다시 제자리네요!”

회진은 만나서 반가운 환자에서 시작해서 문제가 있는 환자로 끝난다. 내가 내 주도로 회진을 돌 수 있는 직급이 되면서 나름대로 정한 원칙이다. 그래야 경과가 좋은 환자들로부터 받은 긍정의 에너지를 중환자에게 나눠줄 수가 있다. 보다 솔직히 말하자면, 합병증이 생긴 환자를 보러 가는 길은 나의 무능과 대면하는 길이라 발걸음이 쉬 향하지 않는다. 될 수 있으면 무탈한 환자들을 다 살피고, 맨 마지막에 문제의 병실에 가고 싶게 된다. 수술이 잘 됐고, 별 문제없이 회복하는 환자들에게 가는 길은 시험에 합격하고 고향 가는 길처럼 즐겁고 뿌듯하며 당당하다. 그 환자들 앞에서는 큰소리도 치고 농담도 건네고 여유를 부릴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에게는 모든 것이 조심스럽기만 하다. 합병증으로 고생하는 환자의 주변에는 불신으로 자욱한 검은 안개 같은 것이 보인다. 이 안개는 전염력이 강해 병실과 복도까지 자욱하게 퍼져간다. 나와 상관없는 주변의 환자들에게도 ‘저 사람 실력 없어’라는 조롱의 표정이 역력해 보인다. 전공의들 보기도, 간호사들 보기도 심지어 병동을 청소해주시는 아주머니들에게도 무능한 사람으로 소문이 난 것만 같다. 외과 병동의 회진은 수술이 끝난 환자를 북돋아주는 일인데, 의심의 안개가 짙을 때는 시작부터 어려운 일이 된다. 합병증이 없는 외과의사는 아예 수술을 하지 않거나, 완벽하게 감추는 두 부류뿐이라는 말로 애써 위로를 해보지만, 검은 안개를 헤치는 일은 괴롭기만 하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영업사원의 마인드다. 물건을 안 사주더라도 자꾸 얼굴을 비추고, 필요할 때 그 사람이 우선 생각나게 하는. 문제와 마주하지 않고서는 어떤 문제도 풀 수가 없다. 거만하고 바쁜 척하던 의사가 어느 날부터 사랑에 빠진 듯 밝은 표정으로 환자 앞에서 시간을 오래 쓰고 하루에 두 번 이상 회진을 돌고 있다면, 그 환자는 합병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서, 장루를 달게 된 그녀도 수술일로부터 꽤 긴 시간을 입원해야 했다. 나도 꽤 긴 시간을 실망한 환자와 보내야 했다. 시간이 지나자 겉의 상처도 아물고, 내면의 상처도 많이 회복되었다. 회복이라기 보다는 새로운 소망 없는 불행의 상태를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어느덧 퇴원할 날이 되었다. 나는 환자를 위해 장애진단서를 써주기로 했다. 진단서의 장애유형에 ‘장루장애’라고 쓰고, 장애 발생일은 마지막 수술일로 적었다. 결국 내 손이 그 환자의 장애를 만들었다고 흰 종이 위에 내 손으로 자백을 하고 있었다. 비고란에는 ‘질병의 특성과 임상경과로 볼 때, 복원이 불가능하여 영구적 장애로 판단됩니다’라고 덧붙였다. ‘판단됩니다’라는 말은 ‘판단합니다’라는 말에 얕은 목적을 가지고 객관성을 가미하고자 한 불필요한 수사다. 의사로서의 실패의 괴로움은 겨우 이 정도에 불과하다. 이날까지 남편이 걱정하던 끔찍하고 절망스런 일은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다. 무언가와 싸워야 하는 이유가 살아야 할 이유가 되는 사람도 있다. 지구별은 절망으로 가득 차 있다는 말은 틀렸다.

<수상소감-오흥권 분당서울대병원 외과 교수>

글을 써서 상을 받는 일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수상 소식을 듣고 너무 놀라서 투고한 글을 다시 보니 역시 상을 받을 만한 글이 아니라 몹시 부끄럽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의 기억이 납니다. 국어 숙제로 작문을 별 성의 없이 써냈는데, 선생님께서 칭찬의 말을 써주셨습니다. 잘한다는 말을 더 듣기 위해, 다음 숙제에는 공을 들여서 잘 써냈는데, 답은 뜻밖에도 ‘쓰기 싫은 글은 쓰지 말아라’였습니다. 그 때의 트라우마로 지금도 공들여 쓰는 일에는 자신감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끔 쓰는 논문과 연구계획서들은 다반사로 퇴짜를 맞는 것 같습니다.

투고한 글도 삼일 밤낮에 걸쳐 쓰고 고친 글입니다. 이번에는 심사위원님들이 틀렸는지 국어선생님을 찾아가 묻고 싶습니다(하하). 조지 오웰의 말처럼 글을 쓰는 첫 번째 이유는 잘난척하고 싶은 순전한 이기심일 것입니다. 저의 선생님께서는 아마도 당시에 저에게 그런 점을 일깨워주신 것이 아닌가 합니다.

본과 3학년 때 블로그라는 것을 처음 시작했는데, 진료과별 실습을 돌고 받은 느낌을 그때 그때 몇 자씩 썼습니다. 생각이 정리돼서 글을 쓴다기보다는 글을 쓰면서 생각이 정리됐던 것 같습니다. 스스로에게 솔직한 글을 못쓰고 남 보기에 좋은 가식적인 글을 썼어도, 그 글을 다시 만나면 나를 거기에 다시 맞추려고 애쓰는 경험을 하곤 했습니다.

글이 그것을 쓰는 이에게 주는 축복 중의 하나는 스스로를 북돋고 가다듬게 해주는 일입니다. 내뱉으면 흩어지는 말과는 다르게 글은 형태를 가진 활자로 남겨집니다. 어디서 누가 볼지 모르는 글은, 그래서 그런 부담감으로 늘 어렵게 써지고 힘들게 고쳐지는가 봅니다.

저의 소망 중에 하나는 제가 쓴 잡글들을 모아 책을 한 권 내서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일입니다. 어려운 일이겠지만, 이번에 받은 상이 정신적 용기와 금전적 발판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고마움을 전할 분들이 참 많습니다. 우선 저를 나무로 만들어주신 부모님, 잘 깎아서 연필로 만들어주신 선생님들, 쓸모 있는 연필이 되게 해주시는 저의 환자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부족한 사람에게 용기를 주는 동료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투고에 아낌없는 조언과 응원을 해주신 선배 수상자 오승원 선배님, 이근만 선생님, 이수영 선생님과 현실과 쏘셜 속 친구분들께도 감사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저를 바른 길로 이끄는데 회초리를 아끼지 않는 14년차 입주 가정교사 설리반 고 여사님과 맑은 행동과 예쁜 말로 저를 돌아보게 만드는 딸 연제에게는 사랑한다는 말을 전합니다. 긴 글 읽어주신 여러분 모두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청년의사  webmaster@docdocdoc.co.kr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청년의사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 댓글 2
전체보기
  • 이광용 2018-03-01 21:27:27

    오흥권교수님의'제자리'대상작을읽고 가슴이뭉클해지네요.저도 1년10개월전에 오흥권교수님께 대장암수술을 받은환자입니다.9시간이라는 긴수술하시고 수술후 회진돌때도 항상웃으시며 반갑게 맞아주시던 교수님 얼굴이 내머리속에 맴돕니다.지금도 대장암4기로 3개월마다 교수님을 뵙고 있지만 진료받을때 마다 웃음 잊지않고 반겨주시는 교수님이 너무고맙고 감사합니다.   삭제

    • pop 2018-01-04 16:56:30

      재밌글 잘 읽었습니다. 수술을 하는 저도 공감되는 부분이 참 많습니다. 자신 뿐 아니라, 읽는 저에게도 자신을 맞추려고 노력하게 하는 좋은 글입니다. 개인적으로 친하지 않은 후배였는데, 담에 만나면 좀 더 반갑게 대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축하드립니다.   삭제

      여백
      여백
      카드뉴스
      • [카드뉴스]전이성 유방암 환자에게도 핑크빛 희망을
      • [카드뉴스]난임 환자에게 희망을 만드는 '고날에프'
      • [카드뉴스] 치매 예방과 관리, 약물치료만이 답일까?
      여백
      쇼피알 / 라디오
      • 1
      • 2
      • 3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