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의학기사단의 <환자혁명> 비판

조한경씨는 “나의 소중한 메시지를 잘못 이해해서 병원을 멀리하라는 말로 이해하는 독자가 없길 바란다. (환자혁명, 253p)”라고 하지만 사실은 현대의학의 암 표준치료를 철저히 부정합니다. 우선 암에 대한 저자의 주장을 보겠습니다.

  1. 암은 그 자체로 병이 아니고 면역력이 약해졌다는 일종의 경고 신호일 뿐이다.
  2. 따라서 암 자체에 대한 치료는 부수적이고, 면역력 회복이 주가 되어야 한다. 긍정적인 성격, 스트레스 관리, 깨끗한 음식과 충분한 영양으로 면역력을 회복시킬 수 있다.
  3. 건강검진으로 발견된 초기 암을 바로 수술로 제거하는 것은 과잉 치료고, 진행된 암 환자에게 시행하는 항암 치료는 환자의 면역력을 망가뜨리는 완전히 잘못된 치료다.

일단 암에 대한 기본 지식부터 정리해보죠. 대부분의 암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1) 정상 세포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사멸하는데 암세포는 이 기전을 억제하여 계속 살아있게 되고, 2) 정상 세포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분열하면서 스스로를 끝없이 복제하며, 3) 더 많은 영양분을 공급받기 위해 주변에 신생 혈관들을 만들고, 4) 면역계를 교란시켜 면역 세포의 공격을 방어합니다. 항암제는 이러한 암세포의 생존 전략을 차단하는 원리로 작동합니다. 어떤 항암제는 암세포의 분열을 막고, 어떤 항암제는 신생 혈관 생성을 억제합니다. 한창 이슈가 되는 면역항암제는 암세포가 ‘세포독성 T 세포’의 공격을 방어하는 과정을 억제하여 면역계 스스로 암세포들을 죽이도록 돕습니다.

암은 면역력이 약해졌다는 일종의 경고 신호일 뿐이라고요? 그보다는 어떤 이유로든 암이 발병하면, 암세포가 생존 전략 중 하나로 면역계를 교란시키는 겁니다. 물론 에이즈에서처럼 면역계가 약해져 생기는 암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발암 원인은 훨씬 다양합니다. 어떤 암은 술/담배, 식습관, 비만 등 생활습관이, 어떤 암은 유전이 더 큰 영향을 미칩니다. 세균이나 바이러스 감염과 연관된 암이 있는가 하면, 자외선이나 독성 물질과 연관된 암도 있습니다. 심지어 태어날 때 이미 발병해 있는 암도 있지요. 이러한 요인들 또한 암 발병과의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지, 인과관계가 증명된 것은 아닙니다. 발암 원인은 복합적일 것으로 추정하지만 아직도 정확히는 모릅니다.

“암 발병 증가를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처럼 여기는데, 미국암학회가 그러면 안 된다. 올바른 정보와 환경오염, 먹거리 규제로 암 환자 수를 의미 있게 줄일 수 있다. (환자혁명, 254p)”

뭐 대단히 권위 있는 것처럼 미국암학회를 비판하지만 사실과 거리가 멉니다. 우리 몸과 암세포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환경오염이나 먹거리 규제가 의미가 없는 건 아니지만 암의 원인이 다양하고 불분명하며 모든 암에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것도 아닙니다. 환자의 노력으로 예방할 수 있는 암은 절반도 안 됩니다(참고문헌 1).

[그림 1] 암과 면역

긍정적인 성격, 스트레스 관리, 깨끗한 음식과 충분한 영양으로 면역력을 키워서 암을 이겨내자고요? 듣기 좋은 잠꼬대지요. 단순하지 않은 걸 단순하게 설명하려고 하면 거짓이 됩니다. [그림 1]은 암과 면역계의 상호 작용을 도식화한 것입니다. 저 수많은 요소 중 한 두 개에만 이상이 생겨도 암세포는 면역계의 공격을 회피하고 계속 증식합니다.

정말로 좋은 생각, 좋은 영양만 잘 챙기면 암이 치료될까요? 긍정적인 태도가 건강에 나쁠 것은 전혀 없겠지만, 어디까지나 항암치료와 함께 챙겨야 할 부분입니다. 이미 많은 병원에서 암 환자를 대상으로 요가, 명상, 멘토링 등 긍정적인 마음을 강화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요. 주 치료는 부정하고, 마음가짐과 식습관 개선만 강조한다면 황당한 노릇입니다.

모든 암은 점점 커지면서 전이되는 속성을 갖습니다. 따라서 일반적인 암 치료는 크게 둘로 나뉩니다. 원격 전이가 되지 않은 초기 단계에 발견되면 보통 수술적 절제를 시행합니다. 이는 완치를 기대하는 치료입니다. 암이 원격 전이되었다면 상황이 다릅니다. 다른 장기로 전이되었다는 건 암세포가 혈관을 타고 이동했다는 뜻이므로 이미 전신에 암세포가 퍼졌다고 간주합니다. 따라서 대장암이나 난소암 등 몇몇 특별한 경우를 빼고 수술은 의미가 없고, 대신 항암 치료를 합니다. 이때는 완치가 아니라 전신에 퍼진 암세포의 성장을 최대한 늦춰 환자의 수명을 늘리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래서 건강검진이 중요하지요. 몸에 이상이 생겨서 병원에 가는 것 보다 건강할 때 꾸준히 검진을 받는 것이 암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별다른 증상 없이 정기검진을 받다 발견되는 암이 많다. 병기로 따지면 1기 혹은 그 이전의 암도 적극적이고도 가혹한 의학적 개입을 통해 치료가 시작된다. (환자혁명, 269-270p)”

항암치료보다 이 말이 더 가혹하네요. 건강검진을 통해 암을 조기에 발견해서 수술로 완치하는 게 대체 뭐가 문제죠? 건강검진 중 CT에서 간 좌엽에 1cm 크기의 간세포암이 발견되었다고 칩시다. 간 좌엽절제술을 받고, 5년 정도 피검사/초음파/CT 검사에서 재발 소견이 없다면 완치 판정을 받습니다. 만일 이 분이 <환자혁명> 책을 읽고 암은 면역력이 약해졌다는 신호에 불과하니 긍정적인 성격과 스트레스 관리, 깨끗한 음식과 충분한 영양만 챙긴다면 어떻게 될까요? 암이 사라질까요?

카이로프랙터 조한경 씨는 암 환자를 몇 명이나 봤는지 모르겠지만, 저희는 답을 압니다. 암환자 중에는 의사의 지시에 잘 따르는 분이 있는가 하면, 수술을 망설이다 몇 개월 후에 암이 더 커져서 오는 분, 심지어 1~2년을 끌다 전신에 암세포가 퍼진 채로 다시 오는 분도 있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현재의 파괴적인 접근법으로 암을 고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항암 치료는 철저히 실패한 치료법이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혁명 259p)”

“미국에서 암으로 죽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대부분 항암 치료 부작용으로 죽는다. 부작용이 아니다. 항암제의 직접적인 작용이 맞는 표현이다. (환자혁명 265p)”

저자는 항암제를 실패한 치료제, 심지어 독약이라고 합니다. 암이 전이되는 이유가 실은 항암제 때문이라고까지 합니다. “유방암 항암제 타목시펜 자체가 독극물이자 발암 물질로 분류된다… 그래서 간호사들이 장갑을 두 개씩 착용한다. 전혀 다른 장기에 2차 암이 생기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환자혁명 265p)”.

그러나 원격 전이된 암 환자의 수명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은 항암 치료밖에 없습니다. 위암을 볼까요? 코크란 리뷰 결과, 항암 치료를 받지 않을 경우 말기 위암 환자의 수명은 4.3개월, 치료를 받은 경우엔 11개월이었습니다(참고문헌 2). 현재 표준 1차 치료제로 쓰는 표적항암제를 검증한 대규모 임상시험에서는 13.8개월, HER2 유전자 양성 환자는 16개월이었습니다(참고문헌 3). 물론 비용이 들고 고통스럽습니다. 비용과 고통을 감내하고 수개월에서 수년 정도 수명을 늘리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는 환자의 가치관에 달린 문제입니다. 치료를 통해 얻는 기대수명이 얼마 되지 않을 정도로 진행된 경우, 의사는 환자와 상의하여 치료를 선택합니다.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항암제가 치료는커녕 오히려 환자를 죽인다고 주장한다면 범죄에 가까운 짓 아닐까요?

P.S> 참, 조한경 씨, 타목시펜은 알약이라 장갑을 끼지 않아도 됩니다. 어디서 뭘 봤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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