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의학기사단의 <환자혁명> 비판

갈수록 열기가 뜨겁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약속대로 이 책을 과학적으로 비판해 보겠습니다. 그 전에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자꾸 기능의학을 죽이려는 시도로 몰고 가시는데요. 거듭 말하지만 저희는 그릇된 정보로 피해보는 분이 없도록 하는 데만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의학’이라는 이름을 붙이려면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저희 글 내용 중 학술적으로 반박이 필요한 부분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사이비과학의 논리는 늘 비슷합니다. 우선 주류과학의 틈새를 찾지요. 현대의학이라고 해서 완벽한 것은 아니므로 틈새는 언제나 존재합니다. 그리고 틈새가 본질적인 문제라고 비난하며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을 부르짖습니다. 의사, 과학자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게으름뱅이가 되지 말고, 스스로 건강을 챙기는 현명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지요.

그럴싸해 보입니다. 하지만 맹점이 있습니다. 대안이란 것에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다는 겁니다. 정말로 의학의 한계를 뛰어넘을 만큼 획기적이고, 진실에 더 가깝다면 연구를 해서 왜 그런지 밝히고, 대규모 임상시험을 통해 효과를 증명하면 됩니다. 왜 그래야만 할까요? 의학이 ‘주관적 관찰/철학’에서 ‘객관적 연구/통계’에 기반한 근거중심의학으로 발전해왔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완전히 사장된 ‘사혈’ 치료가 고대 그리스로부터 19세기까지 약 1,800년간 광범위하게 시행되었다는 사실은 근거중심의학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1809년 알렉산더 해밀턴이 임상시험을 통해 아무 효과가 없다고 밝힐 때까지 모든 의사가 사혈을 하면 환자가 확실히 좋아진다고 ‘주관적으로’ 관찰했던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검증된 사실만 받아들이자는 방법론은 현재 의학뿐 아니라 모든 과학 분과에서 채택하고 있습니다. 사회과학, 인문학 분야에서도 과학적, 양적 방법론과 통계의 중요성이 점점 강조되는 실정이지요.

<환자혁명>이라는 책의 논리도 동일합니다. 현대의학의 정체성이 질병의 근본 원인은 치료하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만 조절하는 대증요법에 있다고 공격하지요. 정말 그럴까요? 이 문제는 앞으로 하나하나 따져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이 책이 주장하는 ‘대안’에 집중해보겠습니다.

저자는 건강을 결정짓는 요소로 ‘영양, 면역, 수면, 스트레스, 환경오염’을 꼽습니다. 모든 병의 원인은 이 5가지에 있고, 치료도 이 5가지를 챙기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의약품보다 비타민/미네랄 등 영양 보충제, 가공식품보다는 유기농 식품, 독소 배출, 충분한 수면, 긍정적인 마음가짐 등을 제시합니다. 그러면서 책 전반에 걸쳐 끊임없이 의약품과 부도덕한 제약회사의 단점을 부각시킵니다.

무슨 대단한 이론인 것처럼 떠들지만 한번 생각해봅시다. 이 5가지가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도 있나요? 하지만 이것만 잘 챙기면 병에 걸리지 않는다거나, 병에 걸렸을 때 원인 및 치료를 언제나 이 5가지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은 객관적 근거가 없습니다. 정말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간절히 바란다고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지요.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2011년 조사에 따르면, 암을 발생 원인에 따라 분류했을 때 예방 가능한 원인은 전체의 42%에 불과했습니다(그림 1, 참고문헌 1). 흡연이 19%, 과체중이 5%, 야채/고기/섬유질/소금 등 식단조절이 9%, 술이 4%, 운동이 1%네요. 5가지 요소를 잘 챙겼을 때 전체 암의 38% 정도를 예방할 수 있다는 겁니다. 여전히 62%의 암은 막을 수 없다는 뜻이지요. “많은 암이 유전의 영향을 받고, 상당수의 암은 아직 정확한 원인을 모른다”는 말이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아도 현재로서는 가장 진실에 가깝습니다.

[그림 1] http://www.cancerresearchuk.org/health-professional/cancer-statistics/risk/preventable-cancer

저자도 누구나 아는 걸 자신이 주장한 것처럼 떠드는 게 민망했을 겁니다.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도 알아요. 근거를 댈 수 없으니 또 남을 비난합니다. 자신의 치료법은 돈이 안 되기 때문에 제약회사가 관심을 갖지 않고, 연구자금도 제공하지 않는다고 합니다(제약회사가 아무한테나 자금을 대주나요?).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콜레스테롤 저하제 리피토와 폴리코사놀을 직접 비교한 실험 따위는 없을 것이다. 아스피린과 오메가3 지방을 비교한 연구도 없을 것이다. 비타민과 자연 보충제들은 특허가 불가능하다 보니, 그런 연구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할 기업이 없기 때문이다. (환자혁명, 100p)”

책씩이나 쓰려면 검색 좀 해보면 어떨까요? 구글만 쳐봐도 폴리코사놀과 리피토를 직접 비교한 연구가 두 개나 있습니다. 폴리코사놀은 리피토보다 효능이 떨어지거나, 아예 콜레스테롤 저하 기능이 없는 것으로 보고했네요(참고문헌 2, 참고문헌 3). 폴리코사놀의 효능에 대한 수많은 논문을 통합적으로 메타분석하고 최종적으로 “효능 없음”으로 결론 내린 논문도 있습니다. 저자가 그렇게 좋아하는 기능의학 학술지에 실렸습니다(참고문헌 4).

특허가 불가능하다고요? 구글 특허 검색에 들어가 ‘폴리코사놀’을 쳐보니 1,680개의 특허가 검색됩니다. ‘오메가 3 지방산’은 72,200개가 나옵니다. 자연 물질 자체는 특허가 불가능하지만, 추출/정제 과정을 차별화하면 얼마든지 특허가 가능합니다. 제약회사들이 외면하는 게 아니라 효과 없는 물질을 약으로 팔 수 없기 때문에 쳐다보지 않는 거죠. 돈이 되면 당연히 약으로 개발합니다.

<환자혁명> 전체가 이런 식입니다.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심혈관질환, 우울증, 비만, 암, 아토피, 항생제/백신 등 많이도 써 놓았습니다. 하나같이 근거는 미미하고, 결론은 황당합니다. 공상과학소설 같아요. 그러나 이런 책의 해악은 생각보다 큽니다. 예컨대 암환자가 그 말을 믿고 항암치료를 거부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화학요법이 아무리 힘들어도 현 시점에서 암환자가 현대의학을 거부하고 장기 생존을 바랄 수는 없습니다. 푼돈을 바라고, 또는 소영웅이 돼보려고 벌인 아무말 대잔치가 충분히 좋아지거나 살아날 수 있는 사람을 질병의 악화나 죽음으로 내몰 수 있다면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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